내가 과일을 좋아했던가? 2003/08/20 2003-08-20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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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과일을 무지무지,
밥, 과자, 그 어떤 음식보다 더 좋아했다.
남들보다 소화능력이 떨어지는 편이라
사흘들이로 채하곤 하는 나에게
과일처럼 편한 음식이 또 있을까!

엄마가 과일을 사 오면 대부분이 내 차지였다.
집에 들어가는 순간에 맡아 버리는 딸기내음,
오빠랑 남동생은 알레르기가 있어서 근처에
갖다 놓기만 해도 질겁을 하는 복숭아,
한 입 꼭 깨물고 싶게 만드는 앳띤 연두빛을 발하는 풋사과,
빨간 색을 더 진하게 만들려고 뽀득뽀득 닦아서 먹는 홍옥...
손으로 꼭 짜면 목구멍으로 홀랑~ 넘어가 버리는 포도..
배, 참외, 밤, 자두, 귤, 바나나... (힝~ 막 먹고 싶어진다.)

아버지도 몇 조각 안 드시고,
오빠, 남동생도 별로인듯...
그리고 엄마는 거의 드시지도 않았다.
(아빠, 엄마는 과일을 별로 안 좋아하시는 줄 알았다.)
어떨 때는 과일로 배를 채우고 밥은 먹지도 않곤 했다.
아영이를 가졌을 때도 사무실(급식납품)에서 과일은
먹고 싶을만큼 먹기도 했었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이젠 과일이 눈 앞에 있어도 안 먹는다.
왜 일까?
너무 많이 먹다보니 이젠 과일에 질려서? ^^;;
물론 아니다. 여전히 나는 과일이 좋다.
하지만 입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아이들을 커가면서 부터일 것이다.
-결혼 초기에는 살림살이가 어려워서 살 엄두가 안 났고-

내 입보다는 아이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뿌듯하고, 당연하게 여기게 되면서
과일 역시 아이들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
이삼천원어치의 과일 한 봉지를 사 와서
두 아이가 먹을 분량 정도를 내 놓으면 끝이다.
아이들이 먹다 남기면 그제서야 더 이상 먹지 않을 것인지를,
내가 먹어도 되는가를 재차 물어 보고 먹는다.

-이런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 친정 엄마다.
내가 얼마나 과일을 좋아했던지를 아는 엄마는
아이들만 먹이는 것이 마음에 안 좋으신지
가끔 남동생 편에 과일 도매상에 들러 과일을 사서는
다른 물건(참치캔, 멸치, 감자 등)과 함께 택배로 보내곤 하신다.-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 아빠가
왜 과일이나 맛있는 음식을 많이 안 드시는지를 알겠다.
아이들에게 더 많이 먹이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자꾸 그러다 자연히 먹을 마음조차 생기지 않게
적응이 되어 버려서일 것이다.

얼마 전에 복숭아를 깍아 놓았는데,
두어조각 먹던 남편이 아이들이 '엄마도 드세요'라고
하지 않는다고 애들을 나무랐다.
(우리 애들이 평소에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님!)
그러면서 나 자신을 아끼라고,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키우면 엄마는 맛있는 것은
먹지도 않는 사람으로 알게 된다며 나를 질책했다.

작년에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병문안 왔던
사촌 언니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큰 아이가 중학생)
너무 아이들만 챙기고 먹을 거 안 먹고 그러지 말라고..
자기도 그랬는데 나중에 더 몸 안 좋고 고생된다고,
애들 준다고 남겨 놓지말고 먹고 싶은 거 있을 때
먹으라고 충고를 해 주었었다.
(내가 좀 마른 편이라 다들 먹는 걸로 걱정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이들이 잘 안 먹거나 남긴 음식들이다.
과일 한 개에 5백원, 천 원하는 걸 몇 개 사가지고 와서
하나라도 내가 먹으면 마치 아이들 것을 빼앗아 먹는
기분이 드는데 어쩌란 말이냐...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의 부모라면 다들 비슷하리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요즘은 시장 나갔을 때 가끔은
내가 먹고 싶은 과자도 한 봉지 끼워서 사고,
책 주문할 때 우리 부부가 읽을 책도 한 두 권 사는 편이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흐미~ 인자 겨우 서른 다섯살이면서...^^;)
나 자신을 사랑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가끔 게시판에서 아이들을 두고 영화를 보러 갔었다는
님들의 글을 읽으면 오래 전-결혼한 이후로는 한 번도 못 가봄- 에
영화관에서 발을 끊은 우리 부부도
애들 좀 더 크면 꼭 가봐야지 하고 다짐을 한다.

우리들은 백 년도 안되는 짧디 짧은 삶을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들,
해주어야 할 것들,
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너무 많아서
다 못하고 가는가 싶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하루 하루 흘러가는 것이 아쉽고,
일 분 일 초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시간 속에 나 자신을
사랑하는 시간을 꼭 끼워놓자는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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