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을 키우면서--엄마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고민될때 2002-05-3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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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애가 여름 독감에 걸려 병원 출입을 한 것이 지난주 월요일부터인데 이젠 작은 애는 멀쩡한데 큰 애가 바톤을 이어 받아 연2주를 소아과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펄펄 끓는 고열에 해열제도 잘안듣고 머리 아프다 배아프다며 토하고 우는 작은애를 보니 어찌나 안쓰럽던지.....

잘못하면 뇌수막염이 될 수도 있다는 의사 선생님에 말에 더욱 쫀(이런말 써도 되나? ^^;) 전, 밤새 애 이마에 찬물수건 올려놓고 물수건으로 팔이고 다리고 닦아내며 아이 수발 드느라 날밤새길 여러 날.


드디어 작은 애가 좀 낫는가 싶었더니, 지난 주 목요일 밤부터 큰애가 고열에 등쪽이 아프다고 해서 병원 다니는데 아직까지 안낫고 있네요.


애들은 아프다고 누워 거의 굶다시피하고 있는데, 전 세끼 꼬박 꼬박 한 그릇씩 비우며 다짐했죠.


'나라도 잘먹고 안아파야 애들 돌볼 수 있다.' 라고요.


이 풍경만 본 속모르는 사람은 아마 제가 팥쥐 어멈 아닌가 하지 않았으려나.


애들은 이온음료와 멀건 죽으로 연명하는데 저만 먹는다고 말이죠.



"엄마, 머리 아파, 배 아파.""아빠, 나 많이 아파요."라며 쉴새없이 칭얼거리는 둘째와
아플때마다 한숨 한번씩 푹푹 쉬며 누워있는게 전부인 첫째.


3년전 병원에서 수술하고 마취가 풀려 아플때도 큰애는 병실에 누워 눈물만 뚝뚝 흘리며 이따금씩 아프다는 말을 삼키듯 내뱉곤 했었습니다.





같은 뱃속에서 나왔는데도 형제가 어찌 저리 다를 수 있을까?


형제라면 모두 고개를 갸우뚱하리만치 전혀 안닮은 외모.


자기 것이라면 얄미우리만치 똑 소리나게 챙기고 하고 싶은 말은 꼭 하고 넘어가는 둘째와는 달리, 물건 잘 흘리고 다니고 우직하고 순박한 첫째.


('순박하다'는 요 표현은 주명이 담임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니 오해 없으시기를.....)





세 살터울로 동생을 본 주명이는 여느 집 첫째처럼 동생이 생기는 그 순간부터 큰애 취급을 받았죠.
일단 내 몸이 고단하고 힘드니 떼쓰고 우는 둘째에게 양보할 것을 주명이에게 은연중 많이 요구했던 것 같습니다.


'형'이라는 이름하에 많은 걸 참고 포기했고 스스로 착한 아이가 되어야 엄마가 덜 힘들고 사랑받는다는 걸, 아이는 일찍이 터득했나 봅니다. 아니 제가 강요내지는 애에게 쇄뇌시켰을지도 모를일이지요. 그 땐 밤 11시 전에 이부자리에 누워 쉬어보는게 소원이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양보가 몸에 밴 아이, 엄마가 속상해 할까봐 떼한번 제대로 안부리던 주명이 덕에 아들 둘 키우는 일이 그래도 좀 수월했었는데, 막상 학교에 보내고 나서야 그게 잘못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아이에게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배려하는 법은 가르쳐서 보냈지만, 자기 방어하는 법은 구체적으로 가르친 적이 없어서였을까요? 아니면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데 익숙치 않아서 일까요?



아이가 많이 힘들어하는 것이 일기장 곳곳에서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연필을 빌려가 놓고서 돌려주지 않아 달라고 했더니 연필을 던져서 부러뜨려 놓아 속상하다는 얘기,

물풀을 빌려가서는 풀나오는 입구 부분을 가위로 잘라 못쓰게 만들어 놓은 반친구 얘기,

심한 욕설은 예사로 퍼부우며 심지어 때리기까지 하는 반 아이 얘기,

학교 앞 놀이터에서 노는데 장난삼아 정글짐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상급생 형 이야기 등등.




그렇다고 주명이가 왕따를 당했다거나 교우 관계가 나빴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싫은 일을 당해도 자기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죠.


아이는 이리저리 깨지면서 나름대로 학교 생활에 적응해갔고 친구도 사귀었지만 그걸 지켜보는 제가슴에서는 천불이 났습니다.





한동안 일기장에서 사라졌던 그런 속상한 이야기가 3학년이 된 올해 다시 일기장에 등장했습니다.


'여자들이 죽이고 싶을만큼 밉다....'


로 시작하는 아이의 일기.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짝궁이 자기를 때리고 못살게 군다더군요.


그리고 바로 지난 주에 사건이 터졌습니다.





주명: 엄마 제 등에 붙여놓은 파스 좀 떼어주세요.


(셔츠를 들추고 등에 붙여놓은 파스를 보는 순간, 낯빚이 달라진 제 엄마를 본 주명이 ) 엄마, 너무 아파서 막 울고 있는데 그때 마침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시고는 짝궁 혼내주셨어요. 그리고 우리 화해했어요. 다시는 나 안때린다고 약속도 했구요.





엄마: 주명이 네가 먼저 약올렸니?





주명: 아니요. 책상에 그어놓은 줄 넘어왔다고 갑자기 등을 팔뒤꿈치로 찍었어요.





엄마: 정말 다른 이유 없었어?


파스는 누가 붙여준거야?





주명: 제가 너무 아파하니까 선생님이 양호실 갔다오라고 해서 거기서 붙인거에요.





엄마: 아니 갠 레슬링 선수도 아니고 어떻게 팔꿈치로 등을 찍을 생각을 하니....


너 지난번에도 한동안 너 괴롭혔다는 그 애가 또 짝궁이 된거야?





주명: 네. 현XX. 그 애 맞아요. 그 애 나만 때리는 게 아니라 우리반 동환이랑 다른 남자애들도 잘 때 려.





아빠: 주명아! 앞으론 맞고 좀 다니지 마라. 네가 덩치가 작냐, 힘이 약하냐? 어떻게 여자애한테도 맞고 다니니? 네가 먼저 남을 때리면 안되지만 널 이유없이 때리는 아이에겐 남자건 여자건 또 때리면 이유없이 남때리지 말라고 단단히 경고 하고, 다음번에 또 그러면 너도 적극 대처하란 말이야.





주명: 적극 대처라뇨?





아빠: 계속 괴롭히면 너도 힘은 있지만 쓰지 않을 뿐이라는 걸 보여주란 말이지. 쓸때없이 힘자랑하는 녀석은 남자건 여자건 너도 때려주란 말이야. 아마 그러면 다시는 너 못 건드릴거야.





주명: 아빠, 내 짝궁은 여자인걸요? 엄마가 여자 때리는 남자는 팔푼이라고. 여자 때리면 안된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착한 어린이 아니잖아요.





아빠: 그렇게 사람 패는 애는 여자 아니야. 또 그러면 '내가 힘이 없어서 너 안때리고 봐주는 게 아니니 또한번 그러면 혼내준다.'고 경고 한번 주고 그런 뒤에도 또 때리면, 다시는 네 몸에 손 못대게 따끔하게 혼내주란 얘기다.





주명: 네. 아빠.





엄마: 주명아, 친구가 네게 요구하거나 행동하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면 참지말고 아니라고, 그렇게 하지말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



별로 친하지도 않은 반친구들이 달라고 한다고 선물받은 연필 몽땅 갖다주고, 집에 놀러온 친구가 네 장난감 함부로 다뤄 부숴놓는데도 아무말 안하는게 착한게 아니야. 정당한 이유없이 때리는 거 맞고, 울기만 한다고 착한 아이가 되는게 아니야.



그건 엄마나 아빠, 심지어 선생님이 네게 뭘 요구할 경우에도 해당돼.


엄마나 아빠, 선생님도 사람이라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가끔 잘못된 판단을 할 경우가 있거든.


네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게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면 네 의견을 말하렴.


네가 그런다고 널 착한 어린이 아니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어. 만약 그래서 네가 나쁜 어린이 소리를 듣게 된다해도 너무 맘쓰지 말고.



너보다 어린 재필이도 나름대로 이유를 들어 싫고 좋고를 분명히 표시하잖니.


지난번에 네 친구가 놀러와서 재필이 장난감 발로 밟고 함부로 다루니까, 재필이는 형친구인데도 당당히 얘기하더라.


"형아, 참 나빠. 내 장난감을 함부로 발로 밟으면 어떻게 해. 형아 이럴거면 우리집에 놀러오지마." 라고.



엄만, 네가 참지만 말고 네 의사 표현을 분명히 했으면 좋겠고 최소한의 자기 방어는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아빠도 그런 뜻에서 말씀하신거 다 알지?






아이 둘을 키우면서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가 어릴 땐 육체적으로 엄청 힘들었는데 커갈수록 정신적으로 더 힘들어진다는 생각.





아이가 입학하기전에 요즘의 학교 사정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더라면 '여자는 어떠한 경우에든 때려선 안된다.'는 시대착오적인 발언대신 좀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아이에게 해줄 수 있었텐데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그랬다면 아이도 저도 좀 덜 힘들어했을텐데 하고 말입니다.





아이가 커가면서 어느 선까지 부모가 개입하는 게 옳은지를 늘 고민합니다.


그냥 지켜봐야할때와 개입해야할 때가 판단이 잘 서지 않아서요.





삼십대 후반쯤 되면, 세상 살아가는 이치도 좀 알고 세상을 좀 담담하게 바라볼 줄 알았는데 아직도 사소한 일에 목숨걸고 달아오른 양은 냄비처럼 흥분하는 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이없을 때가 많아요.


그래도 계속 도닦는 마음으로 노력해야겠지요.


왜냐하면 전 엄마니까요.




>>>주명이는 93년 7월생, 동생 재필이는 96년 9월생으로 2000년 봄(주명 8살, 재필 5살)부터 영어 그림책과 시디롬, 비디오로 집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작성일: 2002년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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