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족한 나의 사랑에 관한 반성문 2001-01-12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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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습니다.
살고 있던 집에서 두 블록 쯤 떨어진 곳에 운이 좋게도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었지요.
쓸쓸함이 핑계가 되기도 하고 심심함을 친구로 삼기도 해 자주 그곳에 들렀었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보았습니다.
처음 그 미술관에 간 날은 거의 다섯 시간을 보았나 봅니다.
혹시 놓치는 유명한 그림이 있을라 처음 작품부터 바짝 긴장을 하고 눈에 힘을 주어 작가 이름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그날 기억의 전부는 두통이었습니다.
두번째 간 날은 좀 느슨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조금 멀리서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좀 더 빨리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작품 앞에서는 뭐가 좋은지 찾아내려고 오랫동안 팔짱을 끼고 관찰하고 분석을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더 간 후 어느 날이었습니다.
더 멀리서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된 어느 날인 것 같습니다..
어느 여인이 흐느끼는 듯한 표정으로 다림질을 하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치 떠나는 연인에게 줄 마지막 옷을 다림질 하는 것 같은 그 그림앞에서
그 고통의 깊이에 그 슬픔의 깊이에……
갑자기 숨이 턱 막혀 …… 나는 발길을 묶었습니다.
피카소의 다림질 하는 여인 이었습니다.

그 그림은 그 자리에 계속 걸려 있었을겁니다.
빨리 빨리 채우고 싶은 정체 없는 욕심 앞에서 아마 그 그림이 그 전엔 내 가슴에 들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그림을 만난 후 난 더 편안하게 더 행복하게 미술관을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더 무엇을 찾지 못해 억울하지도 않았고
다른 명작에서 감동을 찾아내지 못해도 기분이 유쾌했었습니다.

엄마가 된지 삼년이 되어 갑니다.
호들갑을 떨었던 것 같기도 하고 무거운 책임감에 힘들던 날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유아 영어를 하면서는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한동안 해리 포터 시리즈를 독파하는 미국의 아이들을 질투의 눈과 절망의 눈으로 바라보던 적이 있었습니다.
인지레벨과 언어레벨을 고려해
어떤 책을 읽어주고
여기엔 어떤 activity 를 해주고 ……
열심히 도와주기만 한다면에서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란 말로 생각이 바뀌면 즐거움이 상실되었습니다.
이제서야 생각해보면 내가 미술관에 가는 일이 편하고 행복했던 것은 감명을 받은 피카소의 그림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감동을 읽어 내지 못하는 다수의 많은 그림들을 그냥 편안하게 받아 들일 수 있는 마음의 넓이를, 너그러움을 얻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내가 유아 영어로 힘이 빠졌던 것은
내가 현재 가지고 있지 않는 많은 능력들에 대해 도움이 되지 않는 욕심과 신경질 을 부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의 하루 중 대부분의 많은 시간은 육아를 위해 바쳐집니다.
아이는 탄력있던 나의 머리결을 푸석하게 만들어 버렸고
나의 비싼 청진기로 병원 놀이를 하고 있으며
하하하 웃을 수 있는 즐거움을 주기도 하며
내가 줄 수 없는 많은 것을 아프게 깨닫게 하기도 합니다.
또 그럴때마다 나를 인정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훈련을 거꾸로 요구하기도 합니다.
아이를 통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를 더 많이 배우고 , 실제의 내 삶과 더 많은 타협을 하는 셈입니다.
아이가 커 갈수록 이런 일은 더욱 많아지고 더욱 노골적이 될 것입니다.

피카소의 감동과는 또 비교를 할 수 없는 나의 아이입니다.
보아도 보아도 지겹지 않는,
시들지 않는, 꽃, 입니다.
잡초처럼 질서는 없고 질기기만 한 것은 현재의 부족한 나의 사랑일 것입니다.
아름다운 그림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간단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왔다 갔다 하는 나의 일상을….. 더 현명하거나 더 인자하지 않는 나를 …
이제는 똑 바로 쳐다봅니다.
엄마 란 말에 겨우….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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