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2001-06-1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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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에 TV 시청시간이 통털어 2시간도 잘 안되는 나,
지금은 딸아이가 가끔 비디오를 보기 때문에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한 번 플러그를 빼놓은 TV를 무려 일주일이
지나도록 다시 꽂아보지 않은 적이 많았던 나,
그런데 오늘 오랫만에 TV를 주시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틀어놓으신 TV에서 '강원래'라는 이름이 들리는 순간
엉거주춤 쇼파에 엉덩이를 묻게 되었죠.
그리고는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 전까지 줄줄 많이도 울었습니다.
원래 눈물이 많고 울기도 잘하는데 아이낳고
또 그런저런(!) 일을 겪고나서는 더욱더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눈물이 말라서 이제는 더이상 나올 눈물도 없다는
슬픈 기억들을 간직한 사람들의 말은
저보다 더욱더 비참하리만큼 슬펐던 사람들의 얘기인지,
아님 잘못된 얘기인지 저는 갈수록 눈물이 많아지기만 합니다.

그렇게 건강하고 활기차던 사람이 1급 중증 장애인이 되어
갑갑한 마음을 삭이는 장면은 정말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살았던 '장애인'에 대한 생각을 해봅니다.

전에 시신기증에 대한 글을 올릴 때 사실 많이 고민됐었습니다.
과연 잘하는 짓인지, 잘난척으로 보일까봐 걱정되는 부분도 없지않 있었지만
그보다는 저의 아픈 기억을 되내이는게 저로서는 많이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때 차마 미처 밝히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까지 밝힐 용기가 그때는 없었던 거 같습니다.
사실은 밝히지 않은 얘기속에 제가 하고 싶었던 또 다른 얘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강원래'씨의 모습을 TV를 통해서 본 오늘 하고자 합니니다.

내 속내를 드러내야 진정한 내 진실이 전달되고
잘난척 하는 글이 아닌,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이 될 수 있다는 생각과
나 또한 마음속에 도장찍힌 고통의 흔적들을 덜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첫아이, 그 아이는 장애인이었습니다.
중증인 선천선 심장병보다 더 저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그리고 저를 오늘날의 그나마 이만큼 '생각하는 인간'으로 자라나게 한 것은
그 아이가 장애인이었다는 겁니다.
정신 지체 장애라고 불러야 할 '다운증후군'이었습니다.
그리고 심장병때문에 태내에서 산소공급이 원할히 안 되
한쪽 눈이 백내장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늘이 노랳습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청천벽력이 저에게 일어난거였습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슬픔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첫단계인 분노가 먼저 몰려왔습니다.
나름대로 착하게 살았고 머리 큰 남학생들을 상대하며 힘들긴 했지만
임신기간동안 태교에도 나름대로 애썼고
그리고 우습게 들리시겠지만(유전자 이상은 아이큐와 상관없는거니까)
우리 부부 모두 아이큐 140, 150이 넘는데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하늘이 원망되고 그리고 의료진이 원망됬습니다.
왜 우리나라 산부인과에서는 양수천자를 권유하지 않는지
(미국에서는 의료보험 적용도 되고 모든 산모가 받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양수천자에 약간의 위험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제가 이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늦은 노산도 아니었기에
이렇게 다운증후군일 확률이 극히 희박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저처럼 당한 사람에게는 100%의 확률인데
왜 제 산부인과 담당의는 저에게 양수천자라는 것이 있으며
그 검사를 받을 의향이 있는지조차 물어보지 않았는지
모든 것이 남의 탓으로 여겨지고 원망이 되었습니다.

제왕절개였기때문에 출산후 바로 걸을 수가 없었기도 했지만
처음에 남편과 의료진이 저에게 그 사실을 숨겨서
(산모에게 충격이 크다고 당분간 정밀검사 나올때까지 숨기자고 했다더군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있다가 의료진들이 병실에서 자기들끼리 의학용어로
말을 주고 받을때 제가 얼핏 알아듣고 캐물었습니다.
그리고는 아픈배를 움켜지고 면회시간같은 것도 무시한채
신생아실로 무작정 달려가서 문을 박차고 들어가
인큐베이터 안에서 가냐린 숨을 헐떡이고 있는
내 아이를 보았습니다. 그 여리고 예쁜 아이를 보았습니다.
나중에 심장병으로 마지막 가는 날까지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도 어느 누구 하나 제 딸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고
생각지 않을 정도로 제가 평소 알고 있는 다운증후군의
그런 모습이 아닌 신생아치고 너무 곱고 예쁜 얼굴이었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줄줄 쏟아져 내리는데
저는 그만 그 자리에서 실신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퇴원하는 날까지 불어오는 가슴을 방치한채
산모가 이러면 안된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내 울기만 했습니다.
그때는 머리속이 멈쳐 버린 듯 아무 생각이 안나고
눈물 흘리는 인형처럼 흘려도 흘려도 끊임없이 왈칵왈칵 눈물이
넘쳐 나오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서 퇴원을 했습니다.
내 아이를 내 손으로 안고 퇴원을 했습니다.
이때부터 나에게는 하루에도 수 천번씩 고통과 다짐 사이를
넘나드는 번뇌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죄가 없다. 장애는 죄가 아니다.
케네디의 어머니처럼 나도 이 아이를 눈부시게 키우자.
그녀가 그러지 않았던가
"나의 아홉아이중에(숫자가 맞는지 정확히 기억 안나지만)
가장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고 가장 사랑스런 아이는 바로 이 아이다"라고....
언젠가 읽었던 책에 그 유명한 케네디의 형제중 하나가 정신지체였다는
걸 기억해내고는 그리고 그 어머니가 그 아이를 가장 사랑했다는 걸
더듬어 내고는 이가 악다물어질 정도로 굳은 다짐을 해보기도 하고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이 장애인에게 결코 녹녹치 않다는 현실감에
아이를 재워놓고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가며 이민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늦은 저녁 퇴근한 남편과 의논해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며, 숨이차 제대로 젖꼭지를 잘 빨아대지도
못하는 아이를 보며, 우유먹이다 말고 아이를 부둥켜 안고 오열하기도 했습니다.

먹고 자고 싸고 누워만 있는
다른 여느 아이와도 별 다를 것이 없는
아이를 놓고 하루에도 수 천번씩 번뇌하고 고민하는
제 모습이 언제부턴가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바로 '엄마'라는건가 봅니다. '엄마'라는 존재가
저를 그렇게 강하게 만들어 주었나 봅니다.

이러지말고 아이에게 한 번 더 웃음을 보여주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이렇게 나약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고...

열심히 이런 아이들을 잘 키워내고 있는 엄마들끼리 모인
사이트에 접속해서 정보도 출력하고
또 마음을 가라앉히고 각오를 새롭게 할 양서들도 읽고 하였습니다.
이때가 아마 저와 제 첫아이가 함께 했던 가장 좋은 추억들이었던것
같습니다. 그 이후론 갑자기 악화된 아이의 심장병으로 병원에서의
고통스러운 기억들 뿐입니다.
하지만 아이의 마지막 가는 얼굴은 미소를 머금은 듯 너무도 평안하였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떠나보내고
어떤이들은 저를 위로한다고
장애인으로 사느니 그렇게 떠나보낸 것이
차라리 아이에게도 낫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주위의 멸시와 눈총을 받고 자라나느니
이렇게 아무것도 모를때 그렇게 훨훨 날아간 것이
차라리 잘 됐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하지만 글쎄요?
저는 지금도 답을 모르겠습니다.
그저 아이를 앞세운 부모로서 마음이 아릴 뿐입니다.
그 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길었을수록 내가 흘렸어야 할 눈물이나
감내했어야 할 고통이 컸을지 몰라도
백일도 못 채우고 그렇게 떠나버린 아이가 그저 사뭇치게 그리울 따름입니다.


장애인으로 사는 것이 왜 그토록 힘겨워야 하는지
왜 우리 사회는 이토록 장애인을 힘들게 하는지....
선천적인 장애인과 후천적인 장애인중 누가 더 불행할까도 생각해 봅니다.
처음부터 누려보지 못하고 장애인이 된 사람들이나
누려보았지만 사고로 장애인이 된 사람들이나
나름대로 불행하기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이 그들을 더이상 불행하게 만들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장애인의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그의 '엄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장애인들을 위한
배려가 제대로 되있지 않은 도로에 대해
착잡하게 얘기하는 강원래씨의 모습을 TV로 보며
"장애인이면 다야?"라고 소리치는 몰지각한 정상아닌 정상인을
TV로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저녁이었습니다.

지금의 딸아이를 임신했을때
이 아이만큼은 감히 장애아를 업신여기지 않는
올바른 정신의 아이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언젠가 이해할만한 시기가 오면 '언니'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고
장애인에 대한 생각도 함께 나누어 볼 작정입니다.
더 이상 장애인들이 슬퍼지지 않도록 내 아이에게만이라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함께 어우러지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서 얘기해 주려고 합니다.
"신체적 장애는 결코 장애가 아니다. 마음이 망가진 사람이
진짜 장애인이다."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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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이라도 더 '시신기증'에 동참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며
그리고 미력한 제 글을 읽으신 후
어느날 아이데리고 소아과 갔다가
그 병원에서 시신기증 등록을 하고 오셨다는 메일을 보내주신
고운 마음의 여인을 생각하며
덧없는 글을 덧붙입니다.

작년에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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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기증에 대하여


아래에 있는 글은 꽤 오래전에 작성했던 글입니다.
길지만 꼭 좀 읽어봐 주십시오.
너무 음울하고 또 제 개인적인 아픈 상처를 너무
여과없이 쏟아낸 것 같아 입력만 해놓곤 올리지 않았던 글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 저희반 학생 아이의 전화를 받고는
너무 우울하던 차에 이글을 올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올리기는 하는데 역시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저녁 저를 답답하고 우울하게 만든 그 학생은
두어달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현재까지도 강북삼성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이입니다. 얼굴의 뼈가 온통 다 으스러져서
말조차도 못했는데 며칠전부터 조금씩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담임인 제게 전화를 했더군요.
사고가 나기전에 같은 반 다른 급우와 싸우다
그 친구를 심하게 때린 적이 있어 저에게 야단도 엄청 맞은 학생인데
그러면서 정이 들었는지 그래도 담임이라고 저한테 젤먼저
전화까지 했더군요. 음식도 씹을 수가 없어 링겔과 쥬스로
살아간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자기 얼굴이 완전히 변했다고
코뼈는 아예 내려앉았고 얼굴형체 자체가 완전히 딴판이 됬다고
내년 5월쯤부터 시작해서 여러차례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그런데 마지막 말이 저를 너무 가슴아프게 했습니다.
한쪽 눈을 실명했다는 군요. 한쪽 눈을....
가슴이 무너지는줄 알았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증자가 있어야 이식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데
이식수술을 받더라도 얼마나 시력이 돌아올지는 모른다던데
기증자는 너무나도 부족하고(누군가가 시신기증을 해줘야 하니까)
수술을 받고자 하는 대기자는 너무 많아
자기가 수술을 받게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병원말로는 3년이내에 받아야 될텐데 라고 했다네요.
이제 나이 열여덟인 밝디 밝은 한 소년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시련입니다.

우리반 학생의 이 가슴아픈 전화를 받고는
(그래도 본인은 제 안부를 묻고 걱정하지마시라고 하더군요.
후! 나쁜 녀석, 가슴이 저려서 혼났습니다)
저녁내내 답답하고 한숨 나고 막막하고 눈물나고
우울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컴을 켜고 이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밑에 글에서도 제가 드리고 싶었던 말씀이지만
정말 주제넘는 말씀이지만 쑥쑥맘님들 '시신기증'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주세요.
당장 하시라는게 아니고 한 번 생각만이라도 해봐주십시오.
남의 일이다 생각지마시고 한번쯤은 생각이라도 해봐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신다면 오늘 이글을 올리는 작은 보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주제넘어서 죄송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아파 제대로 잠을 이룰것 같지 않습니다만
여러분들은 평안한 밤 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이 아래글은 저의 개인적인 아픈 상처들도 많이 묻어있습니다.
불행한 저의 상처로 여러분들을 우울하게 만들지나 않을지
걱정스럽습니다. 그냥 제가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정도로만
지나가면서 읽어보시고 '시신기증'에 대해서만 한 번
생각들 해봐주십시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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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 쓸까말까 한참 망설이다 올립니다.
(지금도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요)
오늘 퇴근하다 기름이 바닥이라 주유소 들렀는데요.
계산하느라고 지갑열다보니 항상 제 지갑 맨 앞면
투명비닐 속에 꽂혀 있는 작은 증명서가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들어와서요.
뭐냐하면 '시신 기증 등록증'입니다.
제가 불의의 사고로든 아님 어떤 이유로든
죽게 되었을 때, 제 몸을 기증한다는 증서이지요.
사용할 수 있는 장기는 모두 적출해서 사용하고,
그외의 것은 의학실습 해부용으로 쓰라고요.
(너무 말이 잔인한가요?)
저는 이 등록증을 항상 지갑 맨 앞면에 넣어둡니다.
왜냐면 제가 죽게 되었을때 제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주려면 시간이 촉박하거든요.
그나마 시간이 덜 촉박한건 '눈'이라고 하더군요.
사후 6시간이내에만 적출하면 이식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기왕에 주기로 한 거, 하나라도 더 소중하게 쓰이면 좋을 것 같아서요.
제가 시신기증을 할 당시엔 뇌사상태에 빠졌을때
장기기증이 가능하다는 것이 법제화가 되지 않은 상태여서,
시신기증 당시 작성한 유서에는 본인이 뇌사상태에 빠지게 될 경우에도
장기를 기증하겠노라고 단서를 달아놨죠.
어차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나도 받은게 많은데
내가 주고 갈 수 있는 건 내주고 갈수도 있잖아요?
무슨 섬뜩한 말이냐고 하실 분들도 많으실 거에요.
아님, 무슨 대단한 일 했다고 자랑하려고 이러느냐고 하실 수도 있구요.
저도 첨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던건 아니에요.
아주 오래전에는 죽은 뒤 화장하는 것조차
두 번 죽는것 같아서 절대 안된다고 생각했었고,
그 이후에는 시신기증에 뜻은 있었지만 겁이나서(?) 못했었구요.

그런데 제게는 너무도 아픈 계기가 있었죠.(이말 하려니 벌써부터 눈물이 나서... 이거 원)
제겐 지금 29개월 된 딸아이가 하나 있는데요, 그 위에 딸아이가 하나 더 있었드랬죠.
세상에 태어나서 딱 49일간을 살다가 제 품을 떠나 먼 하늘나라로
훨훨 날아가버린 그런 딸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선천성 심장병이었습니다. 수술을 받고는, 그 작은 몸에 가슴을 열어
수술을 받고는 영원히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허망하게 그 아이가 제 곁을 떠나버린
바로 다음날 제가 한 일이 바로 제아이가 수술받은
세브란스의 의과대학에 저와 제 남편의 시신을 기증한 일이었습니다.
아직도 체온이 남아있는 아이를
(병원에서는 아니라고 했지만 적어도 제게는 그랬습니다)
영안실 냉장고에 넣어두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저는 친정엄마 앞에서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밤새 꺼이꺼이거리다가 그 다음날 동이트자마자
남편에게 제아이 마지막 가는길에 내가 꼭 해야 할일이 있다고
당신도 함께 해줘야 한다고 그동안 우리가 미루고 미루던 일을
꼭 오늘 하자고 졸라서(남편은 그런 저를 바라보며 저를 안고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길로 병원에 가서 시신기증을 했습니다.
저도 쉽게 한 거는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서
이런 저의 아픈 상처까지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 이후 저는 거의 반 정신 나간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몇달간은 주변에서 저를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이제는 그만하라는 소리를 들을때까지
검은색 옷만을 입고 다녔습니다.
아니 옷을 갈아입지를 않았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겠군요. 살아있는게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도 잠이 오고 배가 고프다는 사실이
너무 추하고 화가 나고 그랬습니다.
물론 밤마다 남편 몰래 독한 술을 먹지 않고는
(아마 남편은 알고도 모른척 해줬을 겁니다)
잠이 들 수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잠을 잔다는게
수치스러웠습니다. 죽을 것만 같은 심정이 잠자는 동안만이라도
잊혀진다는게 덧없었습니다. 세상이 온통 잿빛이었죠.
청춘의 덫'이던가요. 심은하가 딸아이를 잃고는
밤중에 깨어나 네발로 다니는 짐승처럼 방 이리저리를 기어다니며
울부짖던거.... 제가 바로 그랬습니다. 나중에 그 드라마를 보며
얼마나 가슴이 저몄던지 정말 어쩜 전의 내모습이랑 저렇게 똑같을까하면서....

그리고나서 얼마간의 정신을 차리고 한동안은
자선사업가가 되어있었습니다.
제 소득수준에는 분명히 자선사업가였습니다.
아픈 아이들이 나오는 프로나 길가의 걸인,
그외 제눈에 비친 세상의 모든 불쌍한 사람들을
그냥 넘길수가 없었습니다.
죽은 아이 이름으로 성금을 보낸곳이 몇군데나 되고
또 그액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지금의 딸아이를 얻었습니다.
그때 결심한게 있습니다.
절대로 '건강'이 제일이다. 기타 여하 어떠한 문제로도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절대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욕심내지 않는다.
존재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사실만이 전부다.
그저 내곁에 살아있다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모든 세상을 얻었다.
그래 가장 소중한 크나큰 것을 보잘것 없는 알량한 욕심들로 채우지 말자......


그런데 그때의 굳은 결심이 지금은 아련한 기억으로 떠오르고
많이 변질되 있는 저를 발견하고는 가끔 깜짝깜짝 놀라고는 합니다.
그리고는 저 스스로를 채찍질 합니다.
이게 아니다, 이게 아니다 하고요.


제 긴 넋두리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히 부탁드립니다.
아이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답니다.
이것저것 욕심내다가도 아이가 감기라도 호되게
앓을라치면 그동안의 욕심이 후회되고
자신을 되돌아보게되는 그런 마음,
엄마라면 누구나 있는 그런 마음 아니겠습니까?
여기 쑥쑥에 들어와서 얼마간은 조바심도 나시고
욕심도 나시고 또 한동안은 안절부절 못하고
그러셨을겁니다. 저도 그런 과정을 거쳤으니까요.
저야 지금은 저를 다잡으면서 마음이 평온해졌지만요.

심장병이나 백혈병을 앓고 있는 자녀를 두신
엄마들이 저희를 보면 얼마나 가소롭겠습니까.
저도 심장병 자녀를 두었던
그리고 그 병으로 아이를 잃었던 엄마로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모두 우리아이를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부모로서 최선을 다합시다.
절대 욕심부리지 맙시다.
그리고 나 혼자서만 살아갈 수 없는 세상,
남의 아이도 생각하고 궁극적으로 환원해야할
이 사회도 생각하면서 '시신기증'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봐 주시기를 감히 거듭 부탁드립니다.
이런 부탁이 안면을 마주 대한 대화에서는 절대로
힘든 일인데 인터넷의 힘을 빌려 건방지게 한 번 제안해 봅니다.
그저 당장은 실행에 옮기기 힘드시더라도
미력한 제글을 계기로 한번쯤 곰곰히 생각만이라도 해봐주십시오.
참고로 시신기증은 모든 대학병원과 기타 관련 사회단체에서
받고 있습니다. 사후 자신의 자녀나 친지들이 한사람이라도
기증을 반대하면 기증처리를 하지 않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와 제 남편은 시신기증시 작성한 유서에
앞으로 태어날 제 자녀에게 이런 부탁을 해두었습니다.
'네 마음이 아플줄로 안다.
그러나 아빠, 엄마의 뜻이니
부디 고귀하게 받아들여 주기를 바란다.
너를 믿는다' 라고요.
지금은 장례비가 없는 무의탁 노인들이나 사형수들이
그리고 의료계 종사자들이 간간히 기증을 하고 있다던데
사회전반에 걸쳐 '시신기증'의 분위기가 확산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아참! 그리고 시신사용후 처리는 매장도 화장도 모두 가능합니다.
유족들이 원하는 대로 해준답니다. 깨끗하게 봉합도 해준다는군요.

아! 정말 죄송했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서둘러 나갑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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