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 떨리는 작가와의 만남 2001-10-20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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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그 분을 만나 뵌 지 두어 달이 다 돼갑니다.
'갯벌이 좋아요'의 작가 유애로 님...

방학 때 집으로 한 번 초대하겠다고 해 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답니다.
(방학 전에 원고를 써놓고 이제야 글을 올려 글 내용에 시차가 있습니다)
그 분께는 실례가 되겠지만 어린이를 사랑하는 분이시니
기꺼이 이해해 주실 꺼라 믿고 딸아이를 데려갈 참입니다.
평소 즐거이 보던 그림책의 작가님을 직접 만나보게 된다는 것이
딸아이에게 얼마나 신선한 충격이 될런지
벌써부터 제가 다 설레입니다.

제가 꼭 그랬답니다.
유애로님을 만나 뵙기 전, 그 분을 뵐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얼마나 설레고 흥분이 되던지...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하나, 어떤 걸 여쭤봐야 하나
떨려서 말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사진으로 뵙던 모습과는 많이 다를까 등등
머리 속이 온통 그분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답니다.

우연히 미술선생님 책꽂이에 꽂혀있던 유애로님의 '견우 직녀'와 '갯벌이 좋아요'를
발견하고는 너무 반가와 그 자리에서 수다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도 없는 미혼인 미술선생님 자리에 꽂힌 그림책은
그저 미술 수업 시간에 쓰려나보다 했는데(전에도 그림책을 인용해서 수업시간에
종이공예도 하고 달력도 만들고 하는걸 보았거든요)
그래도 너무 좋은 작품들이라, 안 그래도 반갑고
어떤 얘기던 마구 얘기를 나누고 싶던 차에
그 책 안에 유애로님이 친필로 직접 하신 싸인이 들어있으니 놀랠 수 밖에요.
알고보니 유애로님은 우리 학교 미술선생님의 대학 선배시더군요.
평소 친분이 두터워 책을 자주 선물해 주신다고 합니다.
게다가 더 반가운 사실은 그 분이 바로 우리 학교 학생의 학부모님이셨다는 겁니다.
올해 입학한 1학년 여학생의 어머니로 가끔 담임선생님 만나 뵈러
학교에도 들르신다는 겁니다. 벌써 몇 번 다녀 가셨다고 하더군요. 세상에 !
유애로님께서 우리 학교에 다녀가셨다니.....
아마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다녀갔다고 해도 그리는 안 반가왔을텐데
유애로님이 다녀가셨다니......
(전에 대통령 후보로 나온 경력이 있으신 정치인이 다녀가셨는데
그땐 뭐 그냥 덤덤했거든요.^_^)
다음에 들르시게 될 때, 꼭 한 번 뵙고 싶다고
꼭 그런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제 뜻을 꼭 전해달라고 부탁부탁 드렸습니다.



어떤 분은 한 작가의 책을 이것저것 다 갖추어 놓는 것보다는
그 작가의 대표작을 하나씩 먼저 보라고 하십니다.
물론 아이 그림책을 처음 접하는 입문시기에는 그게 도움이 됩니다.
'어떤 작가'하면 '무슨무슨 작품'하고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런 대표작을 먼저 하나씩 접해보는게 여러모로 넓고 다양하게 책을
접할 수 있으니까요. 여러작가의 다양한 스타일과 화풍를 접할 수 있어서 좋지요.
그리고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도 초기의 작품에는 그 이후의 작품에 비해서
어눌하거나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있게 마련입니다.(제가 좋아하는 존 버닝햄의
작품에서도 그런 느낌이 오거든요)
하지만 어느 정도 그림책이 늘어가기 시작하면 유독 관심이 가는
어딘지 모르게 내 마음이 더 이끌리는 그런 작가가 한 두 명씩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을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겨납니다.
저는 이렇게 한 작가의 여러 책을 함께 보기를 좋아합니다.
영어로든 우리말로든 가리지 않고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탐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존 버닝햄도 그렇고 윌리엄 스타이그도 그렇고
레오 리오니도 그렇고 채인선님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유애로님이 그렇습니다.
(그외에도 존 쇤헤르, 자끄 뒤케누아, 쓰쓰이 요리꼬, 에일런 크리스텔로우
또 권정생님, 정승각님, 류재수님도 그렇네요. 써 놓고 보니 많군요)



유애로님의 대표작으로는 뭐니뭐니해도 '갯벌이 좋아요'가 꼽힐 겁니다.




[갯벌이 좋아요의 시작부분]



1995년 '어린이 문화대상 미술부문 대상' 및 '한국 어린이 도서상 특별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유애로님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아이의 세계를 이해하는
아름다운 작가의 숨결에서 빚어진 사랑스러움입니다.
정말이지 다 큰 어른의 머리에서는 굴러 나올 수 없는 천진함이
유애로님에게는 있습니다.
그림책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작가십니다. 이 점은 그 분을 만나 뵌 후 더욱 확신을 갖게 된 부분입니다.
기교나 기술보다는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아이에게 다가가는 마음,
그리고 아이스러움이 그 분에게는 가득합니다.
근접할 수 없는 숙연함이나 다가가기 부담스러운 껄끄러움이
그 분에게는 없습니다. 마치 토토로 영화속의 사랑스럽고 천진한 메이가
상냥하고 예의바른 언니 사츠키의 영향을 조금씩 받아가며
이쁘게 자라나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꼭 지금의 유애로님 같은 모습이 아닐까 하는
뜬금없는 엉뚱한 상상도 해봅니다.


귀여운 꽃발게가 '바다 끝 흰 구름'을 잡으러 가는 데서부터
'갯벌이 좋아요'의 얘기자락이 시작됩니다.
꽃발게가 바다 '끝'에 흰 구름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수평선 위로 흰 구름이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의 감성이 아니고는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지요.
흰 구름은 아마도 아이의 천진한 눈에
이유없이 좋게만 비쳐지는 즐거운 세계일 수도 있고
늘 멀리서만 바라보던 것, 눈으로만 바라보던 것을 꼭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아이다운 호기심일 수도 있고
무엇이든 살아있다고 여기는 아이들이
친구로 삼고 싶은 싶은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유애로님은 실제로 그런 아이다운 심성을 지니신 분입니다.
그래서 유애로님의 작품은 아이들을 사로잡습니다.
글과 그림을 함께 하는 작가가 드문 우리나라 그림책 작가 중에
(이러한 점이 몇몇 편의 그림책에 아쉬움을 남기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두 가지를 함께 모두 잘 해내시는 작가로 화사한 색감이나 정감가는 그림
그리고 천진한 글은 아이들 마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유애로님의 그림은 대체로 환합니다. 그리고 어찌보면 화려합니다(아니 화사합니다)
그러나 소박합니다. 정이 갑니다. 화려하기는 하나 브라이언 와일드 스미스의
작품에서처럼 다소 흥분된 들뜬 화려함이 아닙니다.
서양의 중세시대 무도회장에서 보여지는 여인들의 드레스같은 그런 화려함이 아닙니다.
은은하면서도 고운 화려함,
그렇습니다. 곱습니다. '곱다'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그림을 자아내십니다.
산천에 지천으로 널린 들꽃이나 우리네 전통옷의 알록달록함이
결코 경박스럽거나 촌스럽다고 느껴지지 않고 '곱다'라는 탄성을 자아내듯
그 분의 그림에는 고움이 있습니다.
(특히 점묘법으로 그리신 '견우 직녀'나 '반짝반짝 반디각시'는 유난히 더 곱습니다)
곱게 물들인 옷감으로,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수놓은 옷감으로
지어진 까치 색동저고리나 새각시 원삼처럼
화사하고 고운 맛이 있습니다.




[견우직녀의 시작 부분입니다]




떨리는 가슴으로 유애로님을 뵈러 발걸음을 옮기며
저절로 잠시 발길이 꽃집으로 향했습니다.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고운 빛깔의 꽃무더기같은 그림을 그리시는
유애로님께 작은 다발이나마 꼭 꽃을 선물해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끌리듯 연보라, 진보라, 청보라가 섞여있는 보랏빛 꽃다발로 눈길이 갔고
그것을 조심스레 받쳐들고 유애로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고 1 짜리 딸이 있을 거라고는 도저히 여겨지지 않는 긴 생머리에
소녀다운 아름다움을 지닌 유애로님은 거짓없는 미소로 저를 반겨주셨습니다.
살포시 웃으시는데 그 입술이 어찌나 얇고 갸날픈지
한동안 제 시선이 저도 모르게 그 분의 입술에 머물렀습니다.
우리의 이야기 꽃은 서서히 시작되어 끝이없이 이어졌으며
시켜놓은 과일빙수는 서로가 거의 손도 못 댄 채
줄줄 녹아 그만 색동물이 되버렸답니다.
마치 그분의 작품 '쪽빛을 찾아서'의 책 뒷부분에 덧붙임으로 나오는
자연염료로 물들인 옷감의 색깔처럼 말입니다.
으~음! 마치 잇꽃으로 물들인 분홍빛의 옷감처럼요.

유애로님은 다양한 기법으로 작업을 하셨습니다.
대표적인 점묘법이 그렇고
또 '쪽빛을 찾아서'에서는 직접 천에 자연염료로 물을 들이시고
그 천에 올을 메워 그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리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림에는 그 천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나 있습니다.
쪽빛을 그대로 담아낸 그 색깔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저는 이 책의 가치가 충분이 있다고 여깁니다.
물쟁이의 선한 눈빛, 그리고 유애로님 특유의 순수하고 깨끗하면서도 화사한 그림,
쪽빛을 찾아 애쓰는 어진 수고로움, 그 행로에 대한 진실함들이
곱게 표현된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외국 작품이 범람하는 이 시대의 그림책 기류에 우리 정서를 담고 고연히 자리매김을
하는 그런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유애로님은 혼연의 힘으로 작품을 만드십니다.
그 자체에 몰두해서 그 순간에는 그것밖에 생각 안 하신다고 하며
부끄러운 듯 함빡 미소를 띄우십니다. 한 가지에 그렇게 몰두할 수 있는 것도
잡념이 많은 어른에게서 보다는 천진한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모습입니다.
'갯벌이 좋아요'를 만드실 때는 실제로 단아와 소담이와 함께 갯벌에서 살다시피
하셨다고 합니다(단아와 소담이는 유애로님의 두 따님 이름입니다)
실제로 만지고 느끼고 밟고 줍고 때론 눕고 때론 멍하니 바라보고....
그리고 나서 망둥이도 따개비도 물새도 갯지렁이도 나오는
또 조개도 은빛 소라게도 해초도 말미잘도 낙지도 나오는
그런 아름다운 작품 '갯벌이 좋아요'를 만드셨습니다.
'갯벌이 좋아요'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젤로 좋아하는 장면은
물새를 피해 꽃발게가 갯지렁이 아저씨 집으로 들어와 굴 속에 가득 찬 갯지렁이의
발을 열심히 헤치고 지나가는 장면입니다.
접혀있던 책이 길게 펼쳐지고 정말 발이 많은 갯지렁이 몸 밑으로
열심히 기어가는 꽃발게의 모습.
그림이 펼쳐지고 난 후의 그림 옆에는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꽃발게는 굴 속에 가득 찬 갯지렁이의 발을 헤치고 나가다가 발이 너무 많아서
백하고 스물 두 번째에서 숫자를 잊어버렸어요'
이 부분을 제 딸아이가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게다가 이 부분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꽃발게가 멈춰있는 곳의 위치가
실제로 갯지렁이의 백 스물 두 번째쯤 됩니다.
이걸 저는 직접 세어 보고 있었다니까요. 저도 우습죠? 한 번 직접 세어보세요. 정확치는 않아도 비슷한 지점쯤이 됩니다)

이 부분을 보고 즐거워하는 제 딸아이 그 모습이 마치 '꼬마 검둥이 삼보'에서의 마지막 부분을 보며 유쾌해하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꼬마 검둥이 삼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유사한 즐거움으로 느껴지는 꼬마 검둥이 삼보의 그 부분을 잠깐 옮겨만 볼까요?


엄마 검둥이 맘보는 호랑이 색 버터로 아주 맛있는 핫케이크를 만들었습니다.
엄마 검둥이 맘보는 스물 일곱 개를 먹었습니다. 아빠 검둥이 잼보는 쉰 다섯 개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꼬마 검둥이 삼보는
아 글쎄 예순 아홉 개나 먹었다니까요.(우리 딸아이 특히 이 부분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배가 너무너무 고프니까요.


'갯벌이 좋아요'의 유애로님이나 '꼬마 검둥이 삼보'의 헬렌 반너맨,
'곰 사냥을 떠나자'의 헬린 옥슨버리는
모두 어머니 입장에서 그림책을 만드신 분입니다.
'피터 래빗'의 베아트릭스 포터나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의 버지나아 리 버튼도
어머니의 위치에서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세밀화를 그리시는 이태수님이나 '코끼리 왕 바바'의 장 드 브루노프,
'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의 로저 뒤봐젱은
아버지 입장에서 그림책을 만든 분입니다.
또 레오리오니는 정말 우연한 기회에 손주를 위하여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고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 작가인 나카가와 리에코는 유치원 선생님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염두에 두고 그림책을 창조해내는 분들의 작품에는
여지없이 아이에 대한 '사랑'이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유애로님에게 미대 교수로의 길을 완전히 접고
그림책 작가로서만 전념하시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간단합니다. 이게 더 행복하니까요. 소중하고 가치있고 또 즐겁고요."
유애로님은 대학시절 지도교수님이셨던 미대 교수님의 소개로
그림책 전집에 삽화를 그리기 시작하는 걸로 아이들 책세계와 인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유애로님은 큰 딸아이 단아를 가졌을 때
배가 남산만해서도 그림책 그림을 그리면서 그렇게 행복했었다고 추억합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계속해서 그림책 작업을 하시면서
'이게 바로 내가 할 일이다'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대학에 출강하시던 일을 지금은 완전히 접으셨습니다.
오로지 그림책에만 몰두하고 계십니다.




유애로님 작품 중 제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돼라 돼라 뽕뽕'입니다.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갯벌이 좋아요'이구요)

몬테소리의 피카소 동화나라에 전집 중 한 권으로 구성되 있던건데
최근 국민서관에서 낱권으로 펴 냈습니다.
종이의 질감을 반질반질 코팅된 것으로 하지 않아서 인지
오히려 전집에 있을때보다 느낌이 좋습니다. (이 책의 그림은 이렇게 광택이 없는
질감의 종이로 볼 때가 훨씬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좋은 작품들이 전집에 묶여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모두 낱권으로 나와서 세상의 빛을 더 보아야 합니다.
(종이의 질감에 대해서 더 언급하자면 광택이 없는 인쇄상태가
원래 그림을 그린 종이-머메이드지인지 와트만지인지 둘 중 하나일 것 같은-의 질감이
더 잘 전달됩니다)



아무때나 심심할 때 은근슬쩍 제가 "돼라 돼라~" 하고 운을 띄우면
딸아이가 배꼽을 쓱쓱 문지르다 제 엉덩이를 쑥 내밀고
손으로 톡톡 치면서 "뽕뽕"하고 외치는데
이 고슴도치 엄마 그저 아이의 재롱에 넋을 잃고 흐뭇해하는 모습이란..........!
'돼라 돼라 뽕뽕'은 장난기가 가득한 이 책의 주인공 나무요정 뽕뽕이가
주문을 걸때의 대사입니다. 늘 이리저리 장난칠 생각에 눈이 반짝반짝한
나무요정 뽕뽕이는 꼭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딸아이도 뽕뽕이가 장난을 치는 장면에서는
마치 자기가 장난을 치는양 사뭇 긴장하고 흐뭇해 합니다.
저는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혹시 '방귀 대장 뿡뿡이'가 이 책을 아이디어로 해서
탄생한게 아닌가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방귀 대장 뿡뿡이보다는 나무요정 뽕뽕이가 훨씬 더 귀엽습니다)
뽕뽕이는 사자 두 마리의 갈귀끼리 묶어놓는가 하면
풀잎으로 변해있다가 갑자기 나타나선 하마를 놀래켜 주기도 합니다.
그때 하마가 쿵하고 넘어진 엉덩이 뒤에 자그마한 그림으로
다람쥐가 넘어져 있는 모습도 참 귀엽습니다.
장난꾸러기 뽕뽕이는 급기야는 모두가 잠든 밤에 동물들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이때 잠들지 않고 깨어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부엉이와 주인공 뽕뽕이만 컬러로
처리하고 잠이 든 동물들은 흑백으로 처리한 그림도 재치있습니다.
그리고 동물들이 뒤죽박죽이 되는 장면에서는 역시나 유애로님하면 떠오르는
그 아름다운 보랏빛이 하늘을 감쌉니다. 아마도 보랏빛은 환상적인 그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나봅니다.
'숲 속에는 큰 소동이 벌어졌어요.' 하는 부분을 제가 읽고 나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머리 사자, 더벅머리 악어, 길쭉 귀 원숭이....."하며
제 딸아이가 읊어댑니다. 너무너무 신이 나서요. 마치 자기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양
즐거워합니다.

뽕뽕이는 뒤죽박죽 되버린 동물친구들이 화가 나서
"장난꾸러기 뽕뽕이, 나무나 되어 버렸으면....."하는
생각에 정말로 나무가 되어 버리고 그 자리에서 꼼짝 못하게 되어버립니다.
그리곤 곧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고 "내 나뭇잎을 따서 너희들 머리에 붙이고
한쪽 발을 세 번 굴러 봐. 그러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갈거야."라고 말합니다.
후훗! 한쪽 발을 세 번 구르라니..... 제 딸아이 무슨 소원이 있으면 화분의 나뭇잎을 따서
머리에 붙이고 한쪽 발을 세 번 구르는 버릇이 생겼답니다.
밤이 되자 쓸쓸해진 '나무' 뽕뽕이를 보곤 친구들은 마음이 아파
다시 뽕뽕이가 나무 요정이 되게 해달라고 빕니다.
아름다운 별빛가루가 하늘에서 내려오며 나무를 감싸자
(이때도 역시 환상적이 보랏빛이 사용되었습니다)
뽕뽕이는 다시 나무요정으로 되돌아 옵니다.
금방 자기가 장난친 걸 후회하는 뽕뽕이나 자신들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었지만
나무가 되어 쓸쓸히 밤을 보내는 친구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달라는 친구들이나
이 모두가 아이답고 순수합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도 그렇게 아이처럼 순수하게 그리고 마냥 즐겁게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유애로님께 그림책 작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여쭤봤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이해하는 것, 아이의 감성과 하나가 되는 게
아니겠냐고 하십니다. 작업을 하시는 해가 거듭될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유애로님도 그 점이 항상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는다고 하십니다.
아이를 위한 아이다운 이야기, 아이가 즐거워할 그런 이야기와
그림을 그려야지 어떤 의도나 목적을 지닌 어른들의
이해타산이 가미된 그런 출판은 삼가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림책은 그림책을 읽을 아이를 위한 것이지 그림책을 사 주는
어른들의 눈에 들기 위한 책은 아니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또한 유행에 편중하는 그런 그림책도 한편으론 씁쓸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동안 만화풍의 어린이 책이 범람을 하거나
동양화 풍의 그림이 유행을 하니까 너도나도 동양화 풍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한 것을
안타까와 하셨습니다. 자기만의 독특함으로 소신을 갖고 해야 할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연약한 외모에서는 달리, 그 여린 감성에서와는 달리
강직한 성품을 지니신 멋진 분이셨습니다.
기왕에 말이 나온 김에 출판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질문에
전보다는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나 사상자체가 많이 향상되었고
의식있는 좋은 출판사들도 많이 나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하십니다.
처음 작가님께서 작업을 하실 때보다는 많이 정착된 분위기라며
예전에는 저작권같은 것도 제대로 계약사항에 들어가 있지않아
계속해서 책이 출간되는데도 정작 작가는 인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에 비하면 발전이 많이 되었으나 여전히 국내작가를 발굴하고 대접하기보다는
외국도서를 번안출판하는데만 여념이 없는 몇몇 출판사들에 대해서도
아쉬운 현실이라는 것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짐작되는 출판사가 있었지만 어느 출판사가 특히 그런가요? 라고 질문드려 봤는데
그 질문에는 괜한 얘기를 꺼냈나 보다며 구체적으로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편하게 얘기하다보니 그런 얘기까지 나왔다며 겸연쩍어 하셨습니다.
아마 제가 허심탄회하게 이것저것 여쭙다보니 작가님의 심기가 곤란하실 수도 있겠다
싶어 얼른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아이를 생각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시는 작가님이 좋아하는
다른 작가는 누구일까 평소 궁금하던 차에 여쭤봤습니다.
"그런 질문 많이 받아요. 그런데 너무 많아요. 모두가 이미지가 틀리고 화풍이 틀리고
감성이 틀리고 그런 면에서 많은 작가분들을 좋아해요. 또 수시로 이끌리는 작가나 작품이
변하기도 하구요." 하시며 머쩍은 웃음을 지어보이십니다.
"그럼 본인의 작품중에 가장 아끼시는 것은요?" 라는 질문엔
"아니,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습니까? 다 소중하고 정이 가지요.
또 한편으론 저마다 아쉬운 점도 있고 암튼 모두 애착이 갑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데
볼이 발그레지십니다.

글과 그림을 함께 하고 계신데 아무래도 전공이 그림쪽이다보니 글 쪽에 어려움이 있지는
않느냐는 감히 실례되는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작가님은 우선 글과 그림을 함께
하게 된 연유부터 말씀을 하셨습니다. 글과 그림의 작가가 다를 경우 서로 자신의 것에
중점을 두게 되다보니 잘 어우러지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서로의 것이
더 돋보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욕심이기에 앞서 예술가의 자기 작품에 대한 본능인 것 같다며
또 진행과정에서도 어느 것이 먼저 작업되느냐, 어느 것이 주가 되느냐에 따라
서로 상충된 견해가 있을 수도 있다며 그런 점에서 글과 그림을 함께 하시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그리곤 미소 띤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글이 더 어렵다거나 그림이 더 쉽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똑같이 어렵고 똑같이 소중합니다."

'음! 정답이다.' 저는 속으로 이런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곤 점묘법으로 그리신 작품에 대해서 여쭤봤습니다.
'견우직녀'나 '반짝반짝 반디각시'의 그 고운 점묘법 그림들이
마음 속에 진하게 기억 되 있던 저로서는 당연한 질문이었습니다.
점묘법이 아니라면 반딧불이의 그 불빛을 어떻게 이렇게 곱게 표현했을까 하는
생각이 처음 '반짝반짝 반디각시'라는 책을 대할 때부터 느꼈던 점이니까요.
에릭칼의 'The Very Lonely Firefly'에서는 반딧불이의 불빛을 작은 전지를 이용해 반짝거리게
표현했는데 그것도 참으로 기발하다고 느꼈지만 그보다도 '반짝반짝 반디각시'의
반딧불이 모습이 훨씬 환상적이고 아름답다고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점묘법의 느낌이 잘 들도록 그림의 사이즈를 좀 크게 했습니다]



점묘법으로 작업하시는게 잘은 몰라도 상당히 오랜 시간과 정성을 요한다고 하던데
평소 점묘법으로 즐겨 그리시는지 그리고 작품을 하실 때
어떤 기법을 사용하시겠다는 것을 어떤 관점으로 정하시는지를 여쭤봤습니다.
유애로님은 특별히 어떤 기법을 고집하지는 않는다고 하십니다.
자신이 그려내고자 하는 이야기에 가장 잘 어울릴 그림을 그리고자 하다보니
그 스토리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그림이 나오는 법이라고 하십니다.
글과 그림이 잘 어우러지게 하려다 보니 글의 소재에 따라 점묘법을 택하게 됐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곤 저보고 그림이나 기법에 관심이 많냐고 전공이 무어냐고 되물으시는 데 괜싫이 민망해서 "저는 독수리를 그리면 닭처럼 됩니다. 그래도 멋진 그림을 보는 건
즐겁습니다. 특히 아이그림책에서는요." 하고 얼버무리고 말았답니다.
사실 저는 점묘법하면 '쇠라'밖에는 떠오르지 않거든요.(^_^)


작가님의 그림책에는 주로 우리의 것을 살리는 주제가 많은데 일부러 그런 주제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하시는지 여쭤보았습니다. "물론이에요. 평소 우리 주변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로 그림책을 만드는 일이 즐거워요. 그리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런 쪽을 좋아하고 또 어느 정도 의도도 가지고 만듭니다."
말이 나온 김에 작가님의 작품 중 영문으로 출간된 '견우직녀'에 대해서도 여쭈어 보았습니다.
견우직녀뿐 아니라 한국적 정서가 풍기는 다른 작가의 그림책 몇 권도
이번에 함께 영문으로 출간되었다고 하십니다.




[영문판 견우직녀의 표지...The Two Love Stars라는 제목으로 출간]




[영문판 견우직녀의 내용]




교포 자녀를 위한 기획이었다던데 저는 교포 자녀는 오히려 아름다운 우리말로 읽혀야 하고
이런 식의 영문 출간으로 우리 그림책이 전 세계 어린이들에 읽혔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맞는 말이라며 함께 맞장구를 쳐주셨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우리보다 그림책에 대한
관심을 먼저 갖기 시작했고 과감한 투자와 장려정책, 훌륭한 기획 등으로 이미 세계 시장에서
각광받는 유명한 작가며 작품들이 많다며 그에 비해 우리나라 작품은 아직 널리 알려진게 드물다고
아쉬워 하셨습니다.
그와 더불어 저는 우리나라 그림책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디즈니 캐릭터를 무찔러야 한다는
주장까지 펴며 작가님의 작품중에도 훌륭한 캐릭터가 많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반짝반짝 반디각시'의 반딧불이를 비롯한 많은 등장 동물(모두 우리정서의 동물들입니다)
'쇠똥구리구리'의 쇠똥구리 벌레, '갯벌이 좋아요'의 꽃발게, '돼라 돼라 뽕뽕'의 뽕뽕이,
그리고 아름다운 직녀 등.......
그런 귀엽고 아름다운 캐릭터들이 우리 아이들의 공책에 책가방에 신발주머니에
필기도구에 도시락통에 우산에 모두모두 자리잡아야 한다고 저도 모르게 흥분하며 주장했습니다.
유애로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그런 생각까지는 못 해 봤네요. 좋은 생각이에요."라고 호응을
해주셨습니다. 아직은 막연하지만 여건이 된다면 어린이 도서관이나 우리작가의 그림책에
나오는 캐릭터를 살려서 캐릭터 사업, 또는 우리 작가의 좋은 그림책을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으로
승화시키는(스노우맨이나 우리 할아버지의 감동을 능가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며
혹시 그렇게 되면 확실하게 팍팍 도와달라는 장난기 어린 부탁까지 드렸습니다.
더불어 우리 독자들이 좀 더 그림책 작가님들과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개된 자리나 기회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아이들이 작가님들을 많이많이 만나뵐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말씀드렸습니다.



이런저런 얘기에 시간은 너무나도 빨리 흘러버렸고
저는 그림책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질문을 드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학적 관련일을 하는데 평소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전학오는 아이들을 보면
아이뜻에 못이겨 부모님이 전학을 시키기는 해도 실업계 고등학교에 대하여 편견이 있어
못마땅해 하는 경우가 많던데 어떻게 작가님은 중학교때까지 성적도 우수한 큰 딸아이를
(지금도 학과 성적이 시각디자인과 1등인 우수한 성적입니다)
우리 학교에 진학시키게 되었냐는 다소 불쾌할 수도 있는 질문을 드렸습니다.
실례될 수도 있지만 사실 궁금한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작가님은 흐뭇하게 웃으시며 아이가 원하는 길을 열어주는게 부모의 몫이
아니겠냐고 오히려 반문을 하십니다. 단아는 부모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미술에 재능이 있고
본인도 그것을 하고 싶어하는데 스스로가 시각디자인과가 있는 고등학교를 원했다며
실업계 고등학교에 대한 편견은 전혀 없다고 하셨습니다.
딸아이가 중3 때 아이와 함께 시각디자인과가 있는 여러 학교를 직접 돌아보았으며
선생님들과 상담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여러 학교를 돌아본 후, 아이가 이 학교를 원했고 작가님이 보시기에도
이 학교가 맘에 들어 통학거리가 다소 먼데도 불구하고(참고로 저희 학교는
헌법재판소 근처, 작가님의 댁은 구로쪽입니다) 선택에 별로 주저함이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작가님의 말씀을 새겨들으며 아이교육이나 삶의 태도에 있어서도 참 배울 점이 많은
분이시라고 느꼈습니다.
유애로님은 담임선생님과도 메일을 주고 받으며 아이의 교육에 관한 상담을 하신다고 합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도 담임선생님께 편지도 드리고 메일도 드렸었다며
그 중에서도 지금 담임선생님이 얼마나 자상하시고 친절하신지 꼬박꼬박 정성어린 장문의
답장을 주신다며 고마워 하셨습니다.

큰 딸아이 단아도 그림책 작가의 길을 걷게 하고 싶으시냐는 질문에는
"글쎄요. 본인이 원한다면요. 사실 행복한 직업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단아보다는 둘째 소담이가 그림책 쪽에 더 관심있어 하는 것 같고
단아는 다른 분야의 미술에 더 관심있어 하는 것 같아요. 지켜봐야죠." 라고 하십니다.
단아는 작가님을 만나 뵙고 몇 달 지난 8월 24일 한국디자인 진흥원에서 주최한
'한국 청소년 디자인 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가을에 펼쳐진 학교 축제 때는 직접 디자인한 엽서를 선보였는데
그 그림에선 정겨움이 느껴졌습니다.



"어머, 어째요. 이렇게 시간이 많이 지난 줄 몰랐어요. 선생님이 저를 보고 싶다고 하셔서
이곳에 나오는 길에 담임선생님도 뵙고 상담 좀 드리려고 시간약속을 해 놨는데..."
시계를 보니 이미 담임선생님과 하셨다는 약속시간이 훌쩍 지나버려 있었습니다.
덩달아 죄송한 마음에 담임선생님과 뵙기로 한 약속장소에 함께 달려가
담임선생님께 저 때문에 단아어머님이 늦으셨다고 사과를 드렸습니다.
담임선생님이신 동료교사는 괜챦다며 제게 눈을 찡긋 해보이셨고
담임선생님과 도란도란 말씀 나누시는(옆자리에 제가 드린 보랏빛 꽃묶음을 살포시 내려놓으신)
유애로님을 뒤로 하고 저는 그 자리를 빠져 나왔습니다.
'반짝반짝 반디각시'의 무당개구리가 그려져있는 유애로님의 명함을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며 돌아오는 발걸음은 절로 흥에 겨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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