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크고 깊었던 하루. 2003-12-22 14:45
4028
http://www.suksuk.co.kr/momboard/BFA_011/114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네이버밴드 페이스북 트위터
쑥쑥닷컴 - 파일 다운로드

파일을 다운로드 합니다.

댓글 남기기
* 2003년 12월 21일 *

정말로 오랜만에 올리는 다이어리입니다.
(죄송합니다. 저의 게으름을 용서해주시어요.ㅠ.ㅠ)
--------------------------------------------------------------------
어제는 참 인상적인(오래도록 제 마음에 새겨질) 하루였습니다.

뜻하지않게(이런 횡재가!)
김덕수 사물놀이 전용 난장 극장 개관기념 공연 티켓이 생겨서

연말이라 잠잘 시간도 없이 바쁘다는 남편에게
온갖 협박과 회유를 거듭한 끝에(언제나 이 생활을 청산하려나요. ㅠ.ㅠ)

사무실에서 일요일에도 혼자 나가 일하고 있던 남편을 픽업하여

주말 저녁 느즈막히
부천으로 가족 나들이를 나섰습니다.

부천은 정말 '문화 예술의 도시'더군요.

서울 외곽 순환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려
(그런데 이 도로는 왜 이렇게 톨게이트가 많은 건가요? ㅠ.ㅠ)

'중동'에서 나오자마자 '부천 영상문화단지' 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이정표를 따라 죄회전하여 아주 조금 더 달려서 표지판따라 우회전하니
바로 오른편에 야인시대등 텔레비전 드라마 세트장이 보였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세트'티가 좀 나긴 해도 제법 그럴듯하게 보이던 그 세트들의
또 다른 뒷편의 '진실'에 웃음도 나고......

공연 시간에 쫓겨 세트장을 다 돌아보지는 못하였지만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현장 체험 학습으로 이 곳을 다녀갔던 선생님들 말씀으로는
아이들이 아주 좋아하며 숨바꼭질하듯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난장 극장 입구 맞은편에는 '아인스 월드'라고
(공연 시간때문에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에펠탑,자유의 여신상 등 세계의 유명한 건축물과 구조물들의 모형을
화려한 조명등으로 치장하여 꽤나 볼만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곳도 있었습니다.

근처에 '에디슨 박물관'도 있다고 하니
다음에는 하루정도 시간을 내어 두루두루 다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허허벌판인데다 치밀하고 친절한 이정표들이 세세히 있는 것도 아니라서
눈치껏 직감대로 핸들 돌아가는대로 길을 만들며 가다보니

근사한 극장을 머릿속에 그리며 가던 우리의 눈앞에
크고 작은 천막 몇 동이 모여 있는
'난장 전용 극장'이 보였습니다.

요즘은 정말
'간이 건물'설치 기술도, 디자인도 아주 근사하더군요.(화장실까지!)

천막치고는 근사하다고 해도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이나 난타 전용 극장등
제 머릿속에 떠올린 '극장'이라는 그림에 견주에 보건대
참 '고졸'하기도 해서 눈물이 다 나려고 했습니다.

지난 12월 18일로 결혼 10주년이 된 저희 부부는 사실
우리 마당(연세대 앞)이라는 전통 문화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었습니다.

저희가 결혼발표를 했을 때 같은 동아리 사람들이
"아니~ '장단' 맞추라고 했지~ 누가 '눈' 맞추라고 했어~"하며
농을 하던 기억이 납니다.(^_^)

한 때는 거금을 들여 장만한 각자의 장구도 가지고 있었지만
(보유기간은 길지만 그에 상응하는 실력은...ㅠ.ㅠ)
활용시간이 점차 줄어들면서
집에 보관하던 중 서생원이 줄을 쏠아먹는 일도 생기고 하여
제가 근무하던 학교의 풍물반에 기증을 하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그동안 아주 뜸하게나마 국악공연등을 보기는 하였지만
오랜만에 북,장구,꽹과리,징의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주 많이 설레었습니다.

공연 시작전
무대의 화이트 보드엔(정식 스크린이 아닌 화이트 보드)
사물놀이 25년이라는 아주 짧고 소박한 영상이
'소리'도 없이 펼쳐졌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상쇠(수석 꽹과리 연주자라고 할 수 있지요) 김영배님의
생전 모습을 흑백 영상으로 보니
또 제 목구멍은 따끔거려오고......

김덕수,김영배,이광수...
이들은 모두 아버지도 남사당패였고
대물림하듯 다른 길은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서부터 남사당패와 함께 떠돌아다니며
조막만한 손으로 장구를 치고
조막만한 발로 줄타기를 하고
아직은 말랑거리는 머리로 상모를 돌려왔던 사람들입니다.

핏속에 유전자처럼 흐르는'끼'는 같다하더라도
이들은 각기 다른 모습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게중 예술적 혼과 기획력(현대 사회가 필요로 하는)을 두루 갖춘
김덕수에 의해 '우리의 소리와 몸짓'이
세계인의 고막과 심장을 두들겨대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의 성공적 공연과 갈채로
'역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사람들이 '사물놀이'에 눈과 귀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공연 모습은 못뵙고
비디오로만 보던 고 김영배님의 쇠(꽹과리)치는 모습은
다른 상쇠들의 그것과는 너무도 달라서
저는 옴짝달싹을 못한채 그 분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었습니다.

'느닷없었던 그의 자살'을 예고라도 하듯
'쇠'를 쳐대면서도
얼굴에는 어느 한순간도 표정의 변화가 없었던 그 모습을
(선동적인, 너무나도 선동적인 쇠를 쳐대면서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하겠습니다.

김덕수의 '들어감을 고하는 소리'와 함께
소고치는 (선녀처럼 고운) 여인들의 하늘거리는 춤 뒤로
천둥번개 바람같은 소리로 시작된 공연은

중간중간 복색을 바꿔입는 막간의 시간을 메꾸기 위해
방자와 향단이로 분한 사회자들에 의해 진행된
다소 진부한 진행이 좀 거슬리기는 했지만

이전 공연에서의 감동과 다음 공연을 기다리는 설레임으로
조금은 용서가 되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뒷풀이 전에
무대 한켠에서 단원들을 소개하며 감사의 말을 하던

5척 단신의 이 '작은 거인'을 눈앞에 두고
저는 또 눈물이 '울컥'했습니다.

끈임없이 '자기 길'을 가는
그저 자기 길을
가고 가고 또 가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보노라면
'인간'에 대한 '경외심'마저 생깁니다.

자신의 키를 단 한자도 못 늘이는
저같은 '범인'들은
자기 키로는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할, 그런 크고 깊은 '세상'을

(가시밭길을 헤쳐오며 고난의 성장을 이룩해온)
이같은 '거인'들의 어깨위에 올라 보게 됩니다.

6살, 10살의 제 딸들의 마음밭에는 어떤 '씨'가 뿌려졌을지
저로서는 알 수 없지만

두 아이 모두
그 개벽하는 '소리'와
황홀하도록 어지러이 휘몰아치며 돌아가는 '몸짓'들을
경이로운 눈으로 몰입하여 보았습니다.

여럿이 자반뒤집기를 하면서
긴 끈 달린 상모를 돌리며
훠이훠이~ 휘돌아가는 장면은
가히'최면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어떤 공연이든지
화면을 통해 보는 것과
무대 바닥에 발 딛는 소리까지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실제 공연을 보는 것은
아주 '다른' 일인 것 같습니다.

작은 아이는 예쁜 부채춤을 가장 좋아하며 눈 반짝이고 보았고
큰 아이는 판굿춤(무당춤)을 보더니
"와하하! 저건 내 춤이다. 저 춤은 나도 잘 추겠는걸?"하며 아주 즐거워했습니다.
(우리 아이는 집에서도 이렇게 들뛰고 다니거든요 ㅠ.ㅠ)

허허벌판속 천막 극장에서의 뜨거운 감동을 안고
어두운 저녁에 집으로 향하며
우리 네식구 밥먹을 곳을 의논하던 중
문화단지 바로 맞은 편에

'허어어어억~~~ 저것이 무엇인고~'하며 네 식구 눈이 휘둥그레지는
황홀한 '빛'의 조형물들이 있었으니
(극장으로 오던 시간에는 불이 켜있지 않아서 못 보았습니다.)

그곳이 바로 부천 호수공원의
'루미나리에'였던 것이었습니다.(http://www.luminarie.or.kr)

지난 가을부터 있었던 루미나리에가
'화이트 루미나리에'라는 컨셉으로 연장된 모양입니다.

1월4일까지만 한다니
저희가 우연히도 시기를 잘 맞춰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성인 6000원, (초등학생부터) 어린이 4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는데
(한파로 인해 일부 프로그램이 빠져서 디스카운트된 가격이라고 합니다)

제 두 딸들은 양팔을 쫘악 펴고 '끼야아~" 소리지르며
'빛의 제전'으로 달려들어갔습니다.

저희 두 부부도 너무나 들뜬 마음이 되어
아이들을 따라 오랜만에 달음박질을 쳐보았습니다.

'헉헉'거리며 숨쉴때마다 밀려들어오는
차가운 공기도 새삼스러웠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자꾸만 둘러보게 되는
그 '빛'들은

방금 전 제 가슴을 울려대던
그 '소리'들을
그만 잊어버리게 하고 말았습니다.

공원 가장자리로 주루리 늘어선 천막마다
candle, cookie,dall등의 주제로
다소 촌스럽지만 정겨운 전시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핀란드에서 오신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보는 시간도 있었고
천막 속 아이스 링크에서는
러시아 아이스 발레단의 아이스 발레 공연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한 눈에 휘~이 보이는 곳을 한바퀴 도는데 한 사람당 5000원이나 하는
조랑말 수레도 아이들만 태워주었는데
아저씨는 애교스럽게 채찍질하시고(거의 시늉만 ^_^)
두 딸은 말 고삐 하나씩 각각 잡고 '까르륵 깔깔깔'웃는데
말할 수 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사람의 평균적 일생을 80년으로 칠 때
'행복한 순간'들만을 합하면 불과 28일 정도가 된다고 하는데

어제 우리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본 그 순간들도
그 '28일간의 행복한 순간들'에 포함되었겠지요.

황홀한 '소리'와 '빛'에 취하여
'밥'을 잊었던 우리 가족은 문득
시간이 많이도 흘러서 밥때가 지났음을 깨닫고,

그렇다고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하고 다시 들어오는 것도 애매해서
아토피로 먹거리의 제약이 많은 작은 아이에게는 다소 '반칙'이었지만
상황을 핑게삼아
천막 속 한식집에서 오랜만에(실로 오랜만에 )
소머리 국밥과 파전등을 먹었습니다.

톱밥 압축한(MDF) 연료로 불을 때는 커다란 난로도
아이들에게는 무척 신기하게 보였는지
꽁꽁 언 얼굴과 손발을 녹이며
별것도 아닌 것에 마냥 즐거워하였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깨닫는 것은

'그저 순수하게 즐거운' 이같은 시간들이
부모에겐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큰 의미가 되어 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항상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닌 세상살이에서

이렇게 '아무 뜻없이' 그저 가족과 함께 즐거웠던 기억들이
무언가에 상처받고 힘들어질 때
우리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모든 스케줄이 우연히, 갑자기 느닷없이 이루어진 것이었긴 하지만
집에서 출발한 오후 4시 30분부터 다시 집에 도착한 10시 30분까지의
6시간 동안에 우리 가족은
또 하나의 '크고 깊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원래 순발력이 아주 떨어지는 사람이라
'계획에 없었던 일'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어쩌지~'하며 마음을 못잡는 사이
좋은 기회가 휘익휙 지나쳐가버리곤 해서
지나고 난 다음 아쉬워하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아이들을 키우면서부터는
이렇게 벼락치듯 생기는 스케줄에도
'일단 한 번 가보는거야'하며
(알량하지만) 제나름의 배짱도 부릴 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이 페이지 > 스크랩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중한 글에 감사 댓글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