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지 이야기 2 -'개밥'과 '쥐약' 2004-03-21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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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지'에 관한 제 생각을 ‘나만의 교육 다이어리’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학부모들의(특히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학교 이야기’엔
‘촌지’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번 다이어리 ‘촌지 이야기 2’는
지난 번의 다이어리에 중언부언하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촌지를 주지도 받지도 말아야 하는 이유'가 그 주제가 되겠습니다.

제 글을 계속 써나가기에 앞서
저와 같이 교직에 몸담고 계신 분들이나 학부모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제 글이
촌지에 대한 그 어떤 욕심도 없이 열심히 교육활동을 하고 계시는
수많은 선생님들께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많은 학부모님들께서 ‘촌지’에 대해 필요 이상의 걱정을 하고 계시는 경우나
실제와 다르게, 혹은 과장되게 알고 계시는 부분도 많다는 것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촌지를 받지 않고 있는 교사들일지라도
수많은 학부모님들의 ‘촌지’에 관한 걱정에 일정정도 책임을 느껴야 하겠다는 것과

아이를 바르게 키워야 할 일차적 책임이 있는 학부모님들께서는
촌지에 대하여 ‘현실적 핑계’보다는 ‘옳고 그름’에 천착해주시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제목의 ‘개밥’과 ‘쥐약’은 제가 새로 만든 단어들이 아닙니다.

‘개밥’은
제가 육아휴직하고 있던 어느 날,
강남의 한 백화점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무리의 엄마들이 나누던 대화 속에서,

‘쥐약’은
함께 근무하던 동료교사의 말속에서 듣게 된 단어였습니다.

“3월이네~ 에휴, 또 개밥주러 가야겠네~.”

“어휴! 하마터면 오늘 쥐약 먹을 뻔 했네.”

‘촌지’를 그렇게 일컫기도 한다는 것이 아주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으나
제 귀로 직접 그 단어들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그것이 비록 일회적인 것이었다 해도
오래도록 여진을 남기며 제 마음을 두들겨댔습니다.

‘개밥’과 ‘쥐약’

단 두 마디의 말속에 아무렇게나 구겨져있는
그 엄청난 ‘비아냥거림’과 ‘냉소’와 ‘자조’와 ‘부끄러움’

이것이 제가 촌지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 같습니다.

촌지는
‘개밥’이자 ‘쥐약’인 것입니다.

길어질 제 이야기의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촌지’는 해서도 안 되고 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허망한 중독’일뿐.

저는 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학부모이자 현직 교사입니다.

학부모이기도 하고 교사이기도 하기에
촌지에 관하여 학부모와 교사 양쪽의 입장과 현실을
어느 정도는 객관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은 서울의 중학교여서
초등학교나 지방 소재의 학교와는 또 다른 상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본'이라 하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한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촌지 관련 다이어리를 초등 게시판에도 올렸었는데,

그 때 어느 현직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제 글을 읽으시고
불편하신 마음을 답글로 다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저는 그 분의 '불편함'이 오히려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답글에 달린 답글들이 제겐 더 큰 놀라움이었습니다.

'촌지'라는 것이
학부모들에게 있어서 제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짐’이었구나 하는 것과
그로인해 든 '멍'도 제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큰 것이었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답글들이 달린 후
그 초등학교 선생님께서는 본인의 글을 삭제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교사와 학부모사이에 '촌지'로 인해 패여진 골이
제가 느끼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깊은 것이었다는 것을.

우리 사회에서
'촌지'라는 것이 어느 정도 '관행'처럼 되어버렸다는 것도 압니다.

담배 한 갑부터 수억원대의 뇌물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저는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됩니다.

저 자신이 학생으로서 학교라는 곳을 다니는 동안
'촌지'(그 때는 '와이로'(?)라고 했던가요? 일본말일까요?) 라는 것을
그다지 의식해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촌지’를 모르시는 제 부모님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기억은
초,중,고등학교 12년을 통틀어 한번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 어머님의 기억은 좀 달랐습니다만, 제 기억엔 없는 일입니다.)

‘촌지’를 모르고 지내면서도 별다른 불편 을 모르고 지냈던 저의 학창시절 그 자체가
제가 촌지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이유이자 그럴 수 있는 ‘힘’이기도 합니다.

촌지 건넨 아이를 선생님께서 유달리 예뻐하는 데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최대의 불이익이라면 불이익이었을까요?

세상물정 몰랐던 어린 저는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것도 별로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지금 4학년인 제 큰 아이가
놀이방과 유치원 생활 3년 포함해서 일곱 분의 담임 선생님들을 만나는 동안
한번도 '촌지'를 해 본적이 없고 '촌지'를 고민해 본 기억도 없습니다.

저의 교사생활과 함께 시작된 ‘촌지’에 대한 고민들을 통해
‘촌지’에 대해 준비된(?) 학부모가 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입니다.

89년 첫 발령이후 15년간 4개의 학교를 거쳐 오는 동안
수많은 선생님과 함께 근무해왔지만
(한 학교에 최소한 60분 이상의 선생님들이 근무하시며
해마다 이동이 있으니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수도 상당하네요.)

그 중에서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촌지'를 유도했던(소위 밝힌다고 소문난) 분들은
지금 애써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세 분정도로 손꼽아집니다.

소문까지는 나지 않은 분들, 적극적으로 뿌리치지는 않는 분들까지 포함시킨다면
촌지를 받으시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을 수도 있겠지요.

'관찰'이 취미인 저는 ‘밝힌다고 소문난 분’들을 관찰했었습니다.

그 관찰결과가 바로 제가 촌지를 주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이런 사람들은(교사라고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열이면 열 모두
교육자로서 기본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었으며
교사가 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촌지'에 대한 논란중 하나가
받지 않으면 주지 않는다, 주지 않으면 못 받는다하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시작이 어디였는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겠지만
촌지의 '시작'은 '주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느 한 개인의 이기심이 있었을 것이고,

주는 자의 이기심과 받는 자 마음속의 욕심은
서로가 서로를 당기며 강력한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졌을 것이고,

거래의 성사 결과에 대한 근시안적 평가는
거래의 지속성과 파급성을 야기했을 것이며

거래의 지속성에 대한 기대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더 이상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하게 된 ‘받는 자’들은
'미끼‘와 ’덫‘을 놓게까지도 되었을 것이고,

무분별한 파급성으로 사람들은 점점 더
왜곡, 과장된 ‘필요’와 ‘걱정’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고......

이제 와서는
안 주면 못 받는 것인지, 받지 않으면 줄 수 없는 것인지도
불분명해져버렸습니다.

한마디로 '버릇'이 잘못 들었습니다.

무엇이든지 한번 맛이 들면 ‘기대’와 ‘예상’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이것이 습관이 되면 '중독'으로 이어지기 쉽상입니다.

이같은 습관과 중독은
‘주는 이’와 ‘받는 이’ 모두에게 해당될 것입니다.

저도 촌지를 받은 적이 있었음을 고백한 바 있습니다.

촌지를 ‘받아서는 안 되는 것’으로 제 양심이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촌지를 안 받거나 되돌려주는 것도 생각보다 힘든 일입니다.

저도 ‘돈’ 좋아합니다.

하지만 촌지 안받기도 쉽지 않았다 하는 것은

제 마음 한켠에 촌지를 받고 싶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촌지 주기’가 중독이 되신 분들은 어떻게든 촌지를 주려하기 때문입니다.

서랍 속에 억지로 쑤셔 넣어진,
책갈피 속에 숨겨진,
케익 상자 윗뚜껑에 납작하니 붙어있는,

그 외에 수단과 방법이 날로 진화해가는 그 봉투들을 앞에 놓고는
갖가지 방법으로 봉투를 남겨두고 간 학부모들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덜어보자는 속셈으로,
서둘러 ‘증거’를 인멸하려는 범죄자라도 된 마음으로

교실에 학급 도서를 사다놓거나
이런 저런 이유를 만들어 학급 아이들에게 선물이나 상을 주거나
학급 잔치에 쓰기도 했지만

그리 하는 것으로 제 자신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고 해도
‘촌지 받기’는 그 어떤 이유로도 옳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제가 촌지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가장 근본적이고도 큰 이유일 것입니다.

아주 간단하고도 명쾌합니다.

촌지를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현실 운운’은 제겐 그저 하나의 핑계로 여겨집니다.

저는 이 점을 저 자신에게 늘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현실을 핑계삼지말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지 말자”

그런데
촌지에 대한 제 생각과 그에 따른 제 행동을
가장 강력하게 규제하고 압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내 아이는 어떻게 생각할까?”입니다.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보다
더 무섭게 저를 강제하는 것은 바로

‘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촌지를 건네고 온 날 아이에게
“오늘 너희 담임 선생님께 촌지주고 왔단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말할 수 있으신가요?

저는 그리하지 못하겠습니다.

제 아이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촌지를 건넬 수 없습니다.

촌지를 받는 교사들과 받지 않는 교사들,
촌지를 건네는 학부모들과 촌지를 건네지 않는 학부모들.

물론 여기에는 다양하고도 넓은 ‘스펙트럼’이 있을 것입니다.

아이를 인질 삼아 촌지를 교묘히, 혹은 노골적으로 유도하는 교사부터 해서
(교사로서의 제 경험에 이런 교사는 극히, 정말로 극히 소수입니다.
부디 이 점을 믿어주세요.)

은근히 기대하는 교사,
주면 좋고 안줘도 그만인 교사,
좀 껄끄럽긴 하지만 편애 안하면 그만이지 하는 교사,
받는 마음도 불편하지만 돌려주는 것에도 불편함을 느끼는 교사,
어쩔 수 없이 받은 촌지나마 학급 아이들에게 쓰는 것으로 위로삼는 교사,
그리고 촌지는 절대 받지 않는 교사까지.

자기 아이가 반드시 다른 아이보다 더 잘나보여야 하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떤 경우에라도 무조건 촌지를 건네야 직성이 풀리며,
당연히 일정 정도의 대가를 바라면서 교사를 마음대로 조정하려는 학부모,
(이것이 바로 ‘개밥’이자 ‘쥐약’)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꼭 잘나보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 아이가 뭔가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
(불이익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에겐 ‘관심’이 정말 ‘보약’인데
내 아이가 선생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휩싸인 학부모,

남들 다 하는 것 같은데 안하기도 좀 불편한 학부모,

선생님께서 수고하시는 것도 사실이니
촌지 좀 드리는 것도 그리 나쁠 것은 없다는 학부모,

아이의 학년이 바뀔 때마다 담임 선생님의 분위기와 소문을 파악하여
촌지를 할지 말지와 그 액수를 결정하는 학부모,

해마다 꼭 촌지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촌지를 하지 않아서 아이가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촌지를 ‘처방’하는 학부모,

부모가 촌지 건넨 아이들과 우리 아이가
뭔가 차별을 받는 것은 아닌가 걱정은 좀 되지만
그래도 촌지를 하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아서 촌지를 안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 어째 좀 찜찜한 학부모,

나름의 소신이 있어서 초지일관 촌지를 건네지 않고 있으며
촌지의 여부에 따라 아이를 대하는 담임교사의 불편부당함도
아이가 세상을 살면서 겪으며 견뎌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는 학부모,

더 나아가
촌지를 밝히는 교사의 부당함을 당당히 지적하고 넘어갈 수 있는 학부모까지.
(이런 학부모가 바로 대한민국 대표 학부모!)

촌지를 적극적으로 긁어모으며 받은 만큼 꼭 되돌려주는 교사들과
촌지는 반드시 하고야말며 그 대가도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학부모들은
제 글에서 논외로 하겠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며
만약 제 옆에 계시다면 두 손을 모아잡고 제 온 마음을 다하여
‘촌지는 해서도 안되고 할 필요도 없답니다’
이렇게 간절히 제 말씀을 올리고 싶은 분들은

촌지로 인해 상처받고 고민하며 갈등하는 학부모님들입니다.

촌지를 해서는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옳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고
‘내 아이에게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라고 위에서 이미 말씀드렸지요.

뇌물,청탁, 금품 수수, 불법 정치자금, 부당 이익, 직권 남용 등등의 해악과
한 울타리로 묶을 수 있는 ‘촌지’라는 것은

아이가 현재 머물고 있는 ‘교육’과 앞으로 머물게 될 ‘사회’를
총체적으로 비틀리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인 것입니다.

촌지를 일정정도의 효과가 있는(소위 약발 듣는)
‘약’이라 생각하시는 분들 많습니다.

촌지가 약인 것은 맞습니다.

‘독약’이기도 하고 ‘마약’이기도 하지요.

아무런 대가없이 주시는 선생님의 관심은 틀림없이 아이에게 ‘보약’이지만

촌지의 대가로 받는 선생님의 관심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아이에게 ‘독약’입니다.

계속해서 촌지를 건네는 부모를 둔 아이는
(부모가 촌지를 건넨다는 것을 아이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사랑과 관심을 ‘돈’으로 살 수 있으며
또 ‘돈’으로 사야하는 것이라고 배우게 될 것입니다.

또한 촌지는
한 번 주기 시작하면 계속 줘야 안심이 되고
한번 받기 시작하면 계속 받고 싶어지는
습관성과 중독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마약’과도 닮았습니다.

촌지를 하지 않을 때 느끼는 불안함의 핵심은
‘불이익’과 ‘무관심’이겠지요.

저도 목격하고 들은 것이 있는 바,
이러한 불이익과 무관심이 터럭만큼도, 한 점의 티도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힘주어 말씀드리고자 애쓰는 바는

학부모들이 상상하는 ‘불이익’이라는 것에도
사실 터무니없이 과장되어 있는 부분들이 없지 않으며

선생님으로부터의 ‘관심’이라는 것에도
필요이상의 부적절한 ‘집착’이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불이익에 대한 과장된 상상과
관심에 대한 부적절한 집착은
‘촌지’라는 ‘약’을 오용하고 남용하게 만듭니다.

촌지를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아이와 촌지를 받게 되는 교사들을
‘습관성 약물중독자’로 만들어버리는 일입니다.

습관적으로 ‘촌지’를 약으로 쓰는 학부모들은 ‘면역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알레르기 환자마냥 선생님의 언행 하나 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과잉 반응’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촌지’ 받는 것이 습관이 된 교사들은 촌지에 ‘무감각’해집니다.

처음엔 마음 한구석 불편하기라도 했지만 점차 아무렇지도 않게 되서
촌지를 받은 아이의 얼굴을 봐도 적당히 무덤덤하고
촌지 받았다고 해서 그 아이에게 딱히 잘해주는 것도 아닌 상태가 됩니다.

촌지가 명분도 없지만 ‘실리’마저도 없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촌지를 게걸스럽게 밝히는 교사에게 촌지를 주고 돈으로 산 ‘관심’이
아이에게 무슨 큰 도움이 되겠으며

촌지 받았다고 딱히 잘해주는 것도 없는 교사에게 습관적으로 준 촌지는
손익대비 경제논리로 볼 때 또 얼마나 억울한 손실이란 말입니까?

아이를 맡긴 부모로서 교사로부터의 ‘불이익’에 대한
(안쓰러울 정도로) 터무니없는 불안감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닫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2년 전, 수업 시간 중에 휴대폰을 사용하는 문제로
저에게 여러 번 지적을 받아오던 아이가 있어서
(휴대폰 외에도 여러 가지 규칙들을 종종 어기곤 했기에)

지적해온지 여러 달 끝에
그 아이의 휴대폰을 일주일간 제가 보관하는 것으로
벌을 대신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은 죄도 있고, 벌에 대한 이유를 제가 충분히 설명하였기에
아이는 무척 당황하고 난감해하면서도
(요즘 아이들에게 휴대폰을 빼앗긴다는 것은 거의 ‘죽음’입니다.)
어느 정도 반성의 뜻을 보이려 애쓰며 며칠을 잘 견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벌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그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분별없는 학부모들이 대개 그러하듯
(제 나름의 분류입니다.)
다짜고짜 교장실에 전화를 했다가 안 계시다고 하니
교감 선생님을 바꿔 달라하여 교감 선생님을 아주 곤혹스럽게 하고 있었습니다.

제 자리가 마침 교감 선생님 바로 앞자리라
통화내용으로 미루어 휴대폰을 빼앗긴 그 아이의 부모인 듯 하여
교감 선생님께 수화기를 건네 달라는 사인을 보내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며 한시름 놓으셨다는 듯 제게 수화기를 넘겨주셨습니다.

“***의 어머님 되시지요?”하는 제 목소리에
그 어머님은 너무나 놀라서 말씀을 잇지 못하고
엉겁결에 끊으시려고까지 하셨지만

장장 30여분 간에 걸친 저와의 긴 통화 끝에
교사로서의 저의 교육적 행위에 대해
어느 정도 납득을 하신 것 같아 다행으로 생각하며
통화를 마무리하려던 참에 그 어머니의 마지막 한마디는
저로 하여금 오래도록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선생님 뜻을 잘 알겠구요~ 그런데요~......
제가 오늘 이런 전화했다고해서 우리 아이 너무 미워하시지는 않으실거지요~?”

제 가슴이 ‘쿵’ 내려앉으며 마음이 아프기까지 했지만
한편으론 화가 나기도 해서
“어머님, 지금 그 말씀은 제 인격을 모독하시는 말씀이십니다.”하고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학부모님들께서는 부디 ‘교사’라는 사람들을
건전한 상식과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인격을 갖춘 사람들이라는
믿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이에 벗어나는 교사가 있다 해도
(어느 집단이나 비상식적인 생각과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에 맞춰 섣불리 ‘촌지’를 약으로 쓰실 생각은 부디 하지 말아주세요.

선생님께서 예뻐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은 고맙고도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을 목적삼아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사는 어느 아이에게나 공평해야 하지만
교사도 감정과 취향을 가진 인간인지라
공명이 일어나는 아이들도 있고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세세한 규칙을 꼼꼼하게 적용하시는 선생님이시라면
유난히 개성이 강한 아이를 힘들어하실 수도 있을 것이고

자유분방한 성품의 선생님이시라면
하라는대로만 하는 아이들을 좀 답답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인간관계나 마찬가지로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도 소위 궁합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 아이가 선생님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다양성’은 사실
그 자체가 아이에겐 ‘세상’을 배우는 일입니다.

누가 봐도 불편부당한 ‘편애’가 아니라면
선생님들 개개인의 고유한 성품과 교육관에 따른 이러한 다양성을

무조건 ‘편애’라는 주파수에만 맞춰 보지 마시고,
내 아이와 궁합이 좀 안 맞는 선생님에 대해서도
조금쯤은 마음 편하게 생각하셔도 되겠다는 것과

선생님의 관심 한가운데에 있지 않은데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핏자는 똑같은 조각으로 나눌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산술적’의미로 똑같이 나눠지기는
힘들 때도 있는 법이지요.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아이를 맡으시는 선생님이 바뀌게 되는데
바뀐 선생님마다 분위기 맞춰서 일년에 한 번씩
아이와 엄마의 정체성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부모와 가족의 사랑과 관심’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일관된 ‘자아 정체감’과 ‘자존감’입니다.

지금까지 촌지 한 번 해본 일이 없고
앞으로도 할 계획이 없으신 학부모님들,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촌지는 안하고 있지만
그래도 어쩐지 자꾸 신경이 쓰이시는 학부모님들,

여러분께서 하신 판단과 행동에 확신을 가지세요.

여러분께서 촌지를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먼 훗날 여러분의 자녀들은 자랑스러워 할 것입니다.

내 아이만 잘 봐달라는 뜻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쩐지 촌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해 오신 학부모님들,

그런 마음이 들도록 만든 데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사들에게도
촌지는 정말로 불편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라도 습관성 촌지를 끊어보세요.

안테나를 필요이상으로 높이 세워두지만 않는다면
걱정하시는 일들 중 대부분의 일들은 실제 일어나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이제 막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켜 놓고 촌지를 고민하시는 학부모님들,

여러분들이야말로 이 몹쓸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중요한 분들이랍니다.

걱정도 되고 고민도 되시겠지만
딱 1년만, 올 한해만 눈 딱 감고 ‘촌지’를 잊어보세요.

‘첫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엄마들에게’라는 다이어리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초등학교 1학년은 첫 학교생활로서
아이가 온갖 습관을 형성해가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습관은
학부모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랍니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께 촌지를 드렸다면
초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께 촌지를 드리지 않을 명분을 찾기 힘드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초,중,고등학교 12년간을 촌지로 버텨야하는 긴 수렁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초등학교 첫 1년을 촌지 없이 보내게 된다면
첫 단추를 훌륭히 채우게 되는 셈입니다.

촌지 안하기.

제가 해보니 생각보다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답니다.

그리 비장한 각오나 대단한 용기가 필요치도 않았답니다.

촌지를 주지 않았다고 해서
제 아이들이 그 어떤 부당한 대우도 받은 적이 없답니다.

여러분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많은 선생님들께서
촌지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으실 뿐만 아니라
촌지를 아주 불편해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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