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친구다' 공연 관람기 2004-05-26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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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가 만들었다하길래 무작정 갔습니다.

도서관과는 쬐금 친하지만
공연장이나 화랑등과는 그다지 친하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라
사실 '지하철 1호선'조차도 보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실제로는 보지 못했답니다.

저같은 386세대치고
김민기의 노래와 설움 한 켠씩을 간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가장 어린이다운 제목일 것 같은 '우리는 친구다'라는 제목에도
단지 그것을 김민기가 만들었다하여
제 눈시울은 또 아무 이유없이 뜨거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랬지요.

소리높여 외쳐부르는 것도 아닌데, 그저 나즈막하게 읊조릴 뿐인데도
까닭없이 서러워져서 끄억거리곤 했던 그의 노래만을 기억하며

김민기가 만들었다는 것 외에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던 저는
우습도록(지나고 생각해보니) 거창하게 '감동'할 준비를 하고
'학전 블루'로 갔답니다.

학전이 '블루'와 '그린' 두 건물로 되어 있다는 것도
이번 나들이로 처음 알았습니다.

평소에 너무 '불량식품'(?)을 단속해왔던 탓에
아이들에게 좀 미안했던 것을 만회해볼까하여

기름에 지진 인스턴트 냉동 핏자보다는 낫다고 애써 합리화시키며
'디마떼오'에서 화덕에 구운 핏자 한 판을 사먹고

학전 블루 가는 길에
'달고나' 좌판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머뭇거리는 아이들을 채근하여

어린 아이들이 공연에 몰입하기에 가장 적절한 크기의 자그마한 소극장,
'학전'에 자리잡고 앉았습니다.

무대 위에 소품이라곤 달랑 아이들 이층 침대 하나 뿐이었고
그 뒤로 높낮이를 다르게 하여 시각적 생동감을 주는
병풍식 배경 그림이 둘러져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무대 윗단의 가느다란 철망 뒷편에
통기타, 드럼, 콘트라베이스등의 악기가 보였고
더 자세히 보니 물이 조금씩 다르게 들어있는 와인잔들도 있었습니다.

집을 나서기 전 급하게 인터넷 검색하여 휘이익 훑어 보다
관람의 키워드로 주워담은 단어들 중 '어쿠스틱'이라는 단어가
얼핏 스쳤습니다.

극 도중에 보니 하모니카같은 낯익은 악기말고도
'카쥬'라는 낯설은 악기도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일렉트릭'이 아닌 '어쿠스틱' 악기들만으로 연주하는 밴드로
김민기가 무엇을 노래하고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지......

......그냥... 알 것 같았습니다.

극 초반부에 배경 그림 판넬 뒤로부터 들려오는 '컴퓨터 켜질 때 나오는 소리'와
극 중반부에 '테레비 짱'이라 불리는 슬기가 줄줄 외워대는 광고 대사들에

공범끼리의 눈맞춤처럼 이심전심의 웃음을 웃는 객석의 아이들에게
김민기는 또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까요.

어쿠스틱 악기들과 이층침대뿐인 무대를 보며
극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장엄하게 격앙된, 대단한 무대 장치적 기술에 힘입은 감동은
그저 제 '오버'일 뿐임을 직감할 수 있었지요.

지금껏 보았던 공연과 좀 색다르게 느껴졌던 것은
'암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장면전환을 위해 극장 안이 온통 깜깜해지는 일 없이,
그렇다고 남들 다 보는 훤한 데서 옷갈아 입는 것 같이 남사스럽지는 않을 정도로
적당히 보일 것 다 보이면서도 적당히 어두운 조명아래

아이들의 이층 침대가 놀이터의 놀이기구로 '변신'하는 과정과
아이들 방 벽이 놀이터를 둘러싼 나무 몇 그루와 하늘로 '뒤집히는'과정을
고스란히 객석의 아이들이 볼 수 있어서 또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생각했습니다.

'이건 그냥 우리 집 이야기잖아'

제 작은 아이가 극중의 여동생 슬기같은 '테레비 짱'은 아니라는 것과
남매지간인 민호, 슬기와는 달리 제 아이들은 자매지간이고
민호와 슬기는 아빠가 안 계시지만 우리 아이들은 아빠도 있다는 것,

이 정도만 다를 뿐

형제간의 미묘한 갈등과 유치한 싸움, 순수한 우정과 속보이는 거래,
수호천사와 마귀할멈 사이를 오가는 엄마의 모습등등이
너무도 제 아이들과 저의 일상과 닮아 있었습니다.

현란한 조명과 무대장치와 음악만이
아이들을 열광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로이 알았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모습과 마음을 거울 비추듯 보여주는 상황 상황마다
온전히 열광 열광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열광 열광하는 장면들 중엔
어찌된 일인지 엄마인 저는 찔끔 찔끔하는 장면들이 있었답니다.

찔려서 말이지요.^_^;;

엄마와의 단절과 의식의 단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흥분을
아이들 나름대로 해소하기 위해 '의식'과도 같이 치뤄지는
'베게싸움'이나 '잠들기 전 수다'.

'꿈'은 잊어버린지 오래고 현실만으로도 버겁기 짝이 없는 엄마는
'내일'을 위해 자야 한다며 잔소리하려고
번번히 문 열어 젖히고, 팔 허리에 얹고, 한껏 화난 얼굴 표정을 지어보지만
아이들은 완벽히 '취침중' 연기를 하고.

아이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충분할만큼
몇 차례나 반복되는 엄마와 아이들의 숨바꼭질.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에
십 몇층 아파트 칸칸마다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풍경을
그저 보여만주고 있는데도
'선문답'같은 새삼스런 깨달음이 돋아납니다.

'엄마는 우리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아!'라는 민호의 외침.

제 가슴에 또 어김없이 꽂힙니다.

자칭 타칭 '사고뭉치' 친구와의 해프닝 한 장면, 한 장면들은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말라며 내쫓은 제 아이 친구를 떠올리게 해서
또 제 가슴을 쓰리게 했습니다.

인생이 아픔인 사람에겐
여름내 우는 매미의 울음 소리가
'(인생은) 쓰라려, 쓰라려'하고 우는 것처럼 들린다더니

극 중 아이들을 완전히 자기들과 동일시하고
극 중 상황에 온전히 몰입해있는
두 딸들을 양쪽에 끼고 앉아서
찔리는 것 많은 엄마는 계속 '찔리기만 하고' 있었답니다.

민호와 슬기가 서로 윗층에서 자겠다고 싸우다가
'아래'가 좋을까? '위'가 좋을까? 자신들도 헛갈려하는 장면에서

어른들이 어줍잖게 '계층간의 갈등'을 떠올리건 말건
아이들은 '그저 그대로' 자신들의 이야기인 것만 같은 극 중 상황에
풍덩~ 빠져있을 뿐이었습니다.

사고뭉치 아이의 실제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
민호와 슬기와 객석의 아이들이 온통 아수라장으로 뒤집어질때도
'교훈 강박증'의 엄마는 또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된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며 사는데 바빠서
태권도 학원으로, 컴퓨터 학원으로, 전뇌발달 학원으로 아이를 뺑뺑이 돌리며
말보다 주먹이 먼저 앞서는 아버지의 사고뭉치 아들네미라는 타이틀은 벗겨지고

그냥 '신**'라는 아이로
다시 제 마음에 들어왔던 것이지요.

주먹부터 나가고 보는 '뭉치'의 아버지가
민호 남매와 민호 엄마의 한 두마디 말로
뭉치가 민호네서 하룻밤 자도 좋다고 허락하는 부분은
다소 설명력이 부족해서 잠깐 당황스럽긴 했지만

'우리는 친구다'는 어디까지나 '아이들의 이야기'이므로
잠깐 물음표 한 번 찍고 그냥 넘어갑니다.

하룻밤을 같이 자게 된 민호와 슬기와 사고뭉치 아이가
두루마리 휴지로 침대와 장난감 상자와 방 안을 휘둘러
자신들만의 세계를 에둘러놓고

'꾸리 꾸리 여왕 쇼'를 비롯하여 자신들의 '속'을 한껏 다 풀어내고는
윗층, 아래층과 바닥에 깐 매트 중에서
별다른 갈등도 없이 각자 자고 싶은 곳을 골라 눕습니다.

뭐가 또 안심이 안되는지
자꾸만 들락거리는 엄마를
(어이없게도) 잠 좀 자자며 밀어냅니다.

동생인 슬기가 외할머니 댁에 가서 없던 날 밤
목마르다, 귀신나온다하며 몇 번이고 엄마를 불러대던 민호가
동생, 친구와 함께 잔다고 갑자기 엄마를 귀찮아하다니,
피식 웃음이 나오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다보면 알게 되지요.

내 아이의 '마음 방'엔
'엄마 방'만 있는 게 아니라 '친구 방'도 있다는 것을.

"재미있었니?"라는 의례적인 물음을 채 묻기도 전에
7살, 11살짜리 딸아이들이 "재미있었어요~" 합창을 합니다.

엄마는 여기저기 '꾹꾹' 찔려가며 여러 생각의 꼭지들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큰 아이는 어렴풋이 '컴퓨터 키드'와 '테레비 키드'의 비애를 느끼고,
작은 아이는 귀신가면으로 엄마를 놀래켜주는 게 재미있다 생각하고,

세 모녀는 이렇게 1시간 40분동안 '동상이몽'이었지만
각자 느끼는 재미와 감동으로 충만해져 있었습니다.

'눈 앞에 떠오르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고통과 암울의 시기에 우리에게 '친구'를 불러주었던 김민기가

가면으로 얼굴 가린 겁쟁이 아이들과
테레비짱인 아이들과
장난감 총을 친구에게 겨누고 있는 아이들에게,

또 우리의 아이들에게 오늘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친구다'라고.

김민기에게 감사합니다.

테레비와 컴퓨터, 형제간의 사랑과 친구와의 우정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그리고 일일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에 관하여
하루에도 수십번씩 해대는 우리 부모들의 훈계가
아이들에겐 그저 메아리없는 잔소리들이 되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던 차에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게 해줌으로써
스스로 '멋쩍은 깨달음'을 깨닫게 해준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안테나를 높이 세운 엄마는
아이들의 옆얼굴을 슬쩍 일견하는 것 만으로도
아이들에게서 이런 깨달음의 미세한 파장의 떨림을 감지할 수 있었답니다.
(혼자만의 희망사항이거나 착각이었을지도......^_^;;)

저만 '찔리고'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아서
좀 덜 억울했습니다.(^_^;;)

극이 끝난 후
'학전' 밖의 늦은 오후의 훤한 대학로 뒷골목으로 나오자마자
잊지도않고 아이들은 '달고나' 좌판으로 냉큼 달려갑니다.

오늘은 어쩐지
'달고나'를 '길거리 불량 식품'으로 규정하고 싶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각종 첨가물과 유해물질로 범벅된 인스턴트 식품들에 비하면
설탕 한 스푼에 소다 쬐끔 넣은 것이 뭐 그리 위험할라구요.

학전 앞 식당 건물 계단참에 앉아
하트모양과 별 모양이 깨지지않게 조심해가며 뜯어먹고 있는 두 딸들을
양쪽에 끼고 앉아있던 엄마는 마냥 행복하기만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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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영 The Very Busy Spi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