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에페스, 파묵깔레, 카파도키아, 그리고 또 다시 이스탄불 2005-07-21 13:52
3778
http://www.suksuk.co.kr/momboard/BFA_011/123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네이버밴드 페이스북 트위터
쑥쑥닷컴 - 파일 다운로드

파일을 다운로드 합니다.

댓글 남기기
 

제 5일. 상상력이 많이 필요한 트로이 유적지       

   

갈리폴리 반도에서 배를 타고 트로이로

  이스탄불을 출발한 버스는 도심을 벗어나 고속도로로 접어들고, 우리의 도시 주변의 풍경과도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 공동 주택들이 즐비하게 서 있거나 농가들이 띄엄띄엄 있거나 하는 풍경들이 반복되며 신화의 도시 트로이로 향합니다.

  터키의 아버지 아타튀르크가 처칠이 이끄는 유럽 연합군과 맞서 70만이라는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그 일대를 온통 피로 물들이며 치룬 치열한 전쟁 끝에 승리를 거두고 터키를 구하였다는 그 유명한(이번 여행 전에는 사실 잘 몰랐답니다.) 겔리불루(Gelibolu) 전투의 전장이었던 곳을 지나서, 이슬람 명절인 바이람을 앞두고 신에게 공물로 바칠 양을 잡는 광경을 몇 번씩이나 지나치고, 명절에 쓸 양으로 낙점되어 쓸쓸히 트럭 위에 실려 가는 양 한 마리를 측은한 듯 바라보기도 하면서 버스는 달리고 또 달려 바이람에 쓸 양들을 사고 파는 도축장을 지나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48.  바이람 명절에 신에게 바쳐질 운명의 양이 트럭에 실린 채 쓸쓸히 서있다.

 

  배를 타기 전 식당에 들르니 터키행 비행기에서 보았던 다른 일행들을 또 만나고, 다른 테이블에도 모두 한국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있어서 여기가 머나먼 이국의 항구인지 부산항인지 잠시 헛갈립니다.

  항구의 식당답게 고등어구이가 식사로 나옵니다. 고등어구이를 보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찰지고 따뜻한 밥과 시원한 맛의 김치 생각에 눈물이 날 지경인데, 접시 위엔 여전히 올리브 오일에 볶은 길쭉한 쌀알의 밥이 푸슬푸슬 간신히 모여 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좀 전에 지나쳐 왔던 가축 시장을 가보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약속 시간을 지켜야 한다며 두 눈 부릅뜨는 가이드의 눈길을 피해 몰래 갔다 올 용기가 나질 않아서(또 그래서도 안 되겠지요.) 주변 사람들 구경에 나섰습니다.

  명절을 앞두고 무슨 행사라도 있는지 광장 근처에 군악대 퍼레이드가 잠시 펼쳐지더니 아타튀르크 동상 앞에 군악대가 도열하여 섭니다. 꼿꼿이 서있는 병사들의 사이를 몇 사람이 재빠르게 다니며 군인들의 옷매무새를 돌봐주며 부산스레 움직입니다. 광장 한 쪽의 국기 게양대에 터키 국기가 올라가며 장중한 느낌의 음악이 연주됩니다. 아마도 터키 국가쯤 되는 것 같습니다.   

  타국의 근엄한 행사에 발길을 멈추고 잠시 함께 근엄해지려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빵 파는 소년의 절묘한 포즈가 산만한 여행자의 눈길을 단박에 잡아끌었습니다. 시골 할머니들이 머리에 무겁고 커다란 물건을 이고 기막히게 균형을 잡고 걸어가시는 모습에 경탄하곤 했는데 터키에서 이 같은 포즈를 취하는 총각을 보게 될 줄은몰랐습니다.

  눈짓으로 양해를 구하고(소년은 멋쩍어하면서도 포즈를 취합니다.) 카메라를 들었는데, 아니! 이런! 카메라의 배터리가 모두 방전되어 있었습니다. 버스 단체 관광에서 이렇게 현지인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기회라는 게 정말 흔치 않은 일인데......

  트로이 유적지가 아무리 ‘눈으로 볼거리’들은 없다 해도 시대를 달리하여 고대 도시가 몇 겹으로 겹쳐져 있는 유적지와, 좀 조악하긴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트로이 목마’인데 그 모든 ‘트로이’를 그냥 제 눈에만 담아둬야 한다고 생각하니 발이 절로 동동 굴러집니다.

   ‘준비 안 된 자에게 화 있을진저....’ 여러분은 여행할 때 미리 미리 카메라 충전 체크해두는 것 잊지 마세요.        

   어쨌거나, 보스포러스 해협으로 흑해와 이어지는 마르마라해가 또다시 에게해로 이어지는 다나넬스 해협의 한 항구에서 트로이로 가는 페리(ferry)에 올랐습니다.

  밑으로 보이는 바닷물 속에서 해파리를 발견하고 탄성을 지르는 것도 잠시, 자세히 보니 끔찍이도 많은 해파리에 푸른 바닷물까지 엽기적으로 느껴지며 소름이 돋을 정도로 스산해집니다.

  저 멀리 들판과 산등성이에는 양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습니다. 가이드의 말대로 저 양들이 올해는 무사히 넘겼지만 내년의 운명은 어찌될지......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한 트로이(Truva) 유적지

  트로이 유적지에서는 ‘목마와 숙녀’라는 시 대신 ‘목마와 관광객’이라는 시를 써야할 것 같습니다. 그만큼 관광객의 눈에 쉽게 보이고 이해되는 것은 당시의 유물도 아니고 그저 ‘관광용’으로 만들어놓은 목마뿐입니다.

  목마의 모양새는 그래도 그나마 우리가 영화나 책에서 볼 수 있었던 ‘트로이의 목마’ 흉내를 제법 낸 것이어서, 상실감으로 가득한 관광객의 마음을 조금은 보상해줍니다. 특히 아이들은 2충까지 있고 다락방 분위기가 나며 아찔한 계단이 있는 목마 내부를 탐험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목마 안의 계단을 올라가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트로이 군이 어서 빨리 성안으로 목마를 끌고 들어가기만을 기다리는 그리스 군사라도 된 양 상상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저처럼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은 그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목마를 지나 외양도 허름한 전시관을 들어서면 주인 떠난 지 오래된 채 방치되어 먼지가 뽀얀 시골 이발소나 사진관 같은 전시관 내부의 모습에 상상력보다는 오히려 측은지심이 필요한 지경에 이릅니다.

  그냥 호메로스의 일리아스(Illias)속에 그려진 ‘트로이’를 상상하거나, 브래드 피트가 말을 달리던 ‘트로이’를 떠올리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어차피 전시관을 채울만한 유물이 없는 사정은 이해하겠으나 목마 하나 덩그라니 놓여 있는 것 말고는 어찌 이리도 관광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배려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인지...... 내가 트로이 유적 관리 담당 공무원이라면 이렇게는 안하겠다는 하나마나한 불만을 가져봅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깊은 감명을 받고 그것이 단순 신화가 아니라 사실이었다고 믿었던 독일사람 슐리만이 자비를 털어 오랜 발굴 작업 끝에 발굴했다는 트로이 유적은 기원전 3천년 경부터 촌락을 형상하기 시작하여 여러 도시가 번영과 쇠퇴를 거듭해오며 9겹의 도시 유적을 남겼습니다. 그 중 여섯 번째 도시가 번영을 누리다가 절세 미인 ‘헬레나’를 빌미로 10년이나 지속한 트로이 전쟁으로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지요.

 도대체 ‘트로이’의 그 무엇이 같은 자리에 계속 도시를 건설하도록 만들었을까 궁금해집니다. 언덕에 올라 저 아래 사방으로 펼쳐진 평야를 굽어보고, 눈 가늘게 뜨고 저 멀리 반짝이는 에게해를 살펴보니, 과연 트로이를 탐낼만한 이유는 충분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겹겹이 쌓인 유적지들의 일부가 남아있어 빈약한 상상력이나마 상상을 해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하여간에 트로이 유적지를 둘러보는 일은 상당한 상상력을 필요로 합니다.


아이발륵(Ayvalik) - 에게해 밤바다를 거닐며 별을 보다.

  어딘가 헛헛한 마음으로 트로이를 뒤로 하고, 에게해를 오른쪽에 끼고 해가 지고 있는 에게해를 따라 버스가 달립니다.

  에게해가 내해라서 밀물과 썰물이 거의 없어서인지 버스는 정말 바닷물이 찰랑거리는(‘철썩’도 아니고, ‘찰싹’도 아니고, ‘찰랑찰랑’입니다.) 바로 옆을 달립니다.

  아! 에게해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버스로 달리며 그저 내려다보기엔 너무나 아깝습니다. 초록 유리처럼 투명하게 찰랑이는 바닷물 밑으로 바닥에 깔린 자갈들의 모습이 하나 하나 그대로 다 보입니다.

  우리가 여행했던 1월에는 유럽 관광객들이 거의 없어서 휴양지가 썰렁했지만, 여름 휴양철에는 정말 대단하겠습니다. 그래도 그 대단한 인파 속에 한번 끼어보고 싶어집니다.

  여름엔 너무 덥고, 봄이나 가을이 좋다는 가이드의 설명은 여름방학과 겨울 방학 밖엔 없는 우리 교사들에겐 그냥 ‘염장지르기’입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호텔 바로 앞에 있는 에게해로 갔습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인데도 구름 사이사이로 별들이 무척이나 커 보입니다. 달무리도 보입니다. 깊지도 않고 파도도 거의 없는 에게해는 속삭이듯 찰랑거립니다. 분위기 정말 죽입니다.

  열정을 숨기지 못하는 미술 선생님은 기어코 양말을 벗고 그 겨울에 바닷물로 들어갑니다. 발을 담그지도 않았으면서 괜시리 부르르 몸이 떨리는데 정작 발 벗고 들어가신 선생님은 물이 따뜻하다 하십니다.   


불쾌한 스프레이  

  아이발륵에서의 밤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일행이 호텔에 들어서서 체크인을 하느라 기다리고 서있는데, 호텔 직원인 듯 보이는 한 남자가 스프레이 방향제를 여기저기 뿌리고 다닙니다. 아무리 천연향이라도 인위적으로 뿌리는 것을 안 좋아하는 사람인데 인공 방향제 냄새를 맡으니 좀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은 잠시 후 다소 심한 불쾌감으로 바뀌었습니다.

  비위 상한다는 얼굴 표정으로 위악적으로 여기저기 칙칙거리며 스프레이를 계속 뿌려대는 것이 아무래도 우리 동양인들 몸에서 마늘 냄새라도 난다는 뜻의 위협적인 ‘시위성’ 행동인가 싶어서입니다. 뭐라고 한마디 하려고 입이 들썩거리다가 괜한 자격지심인가 싶어 접어두긴 했지만, 이번 여행 중 만난 가장 불쾌한 터키인으로 기억됩니다.   


제 6일. 에페스 유적지를 지나 파묵깔레로

 

고대 도시 에페스

  호메로스의 고향인 이즈미르(Izmir)를 지나 에게해 연안의 고대 도시 에페스(Efes) 유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에페스는 신약 성경의 에베소서의 그 에베소입니다.

 에페스 유적지 입구에 ‘누가’의 묘가 있습니다. 성경의 누가복음을 쓴 그 ‘누가’입니다. 친절하게도 성서 보존회라는 이름의 단체에서 우리말 설명 안내 표지판을 세워 두었습니다. 우리말인데도 머나먼 나라 터키에서 보니 어쩐지 잠깐 생소해집니다.

  오르막길 보다는 내리막길이 덜 힘들거라는 생각에서인지 가이드가 여행자들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인솔합니다.

  유적지 입구에 바리우스 목욕탕이 있습니다. 외부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사람들이 몸을 청결히 하고 마을로 들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 목욕탕의 전형적 형태로 ‘바닥 난방’형식이었다니 갑자기 뜨끈뜨끈한 목욕물에 몸 한 번 푸욱 담그고 싶어집니다.

  한 쪽에는 짤막한 수도관들이 쌓여있는 모습도 눈에 띕니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것들을 모아놓은 모양입니다. 자세히 보니 도관 내벽에 석회질 침전물이 침착되어 있기도 합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49 에페스 유적지.

                에페스 고대 도시의 바닥에 묻혀 있던 수도관들이 쌓여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귀족들이 대표자 회의도 하고 공연도 보았다는 오데온을 지나, 메두사 등을 비롯하여 여러 부조들이 조각되어 있어 상당히 아름다운 하드리아누스 신전이 보이고,

신전을 지나니 뱀 무늬 석상이 길가에 서 있습니다. 뱀 무늬 석상은 ‘병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뱀의 ‘허물 벗기’를 ‘치료’의 의미로 생각한 것이라 합니다. 오늘날의 병원들도 이 상징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50.  하드리아누스 신전                                   그림 51.병원을 뜻하는 뱀무늬 석상    

 

  일반 주택가와 부유층 주택가가 구별되어 있는데, 부유층 주택가 입구 바닥에는  모자이크 장식이 되어 있습니다. 그 오래전에도 빈부의 격차는 존재했던 것이지요.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52 일반 서민 주택가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53 바닥이 모자이크로 장식된 부유층 주택가 입구

 

 

바닥에 반쯤 묻힌 도관을 따라 가다보면 스콜라스티카 목욕탕이 나옵니다.       당시의 에페스 사람들은 이곳에서 몸을 깨끗이 하고 신전으로 갔겠지요.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54.  유적지 목욕탕 입구 바닥에 묻혀있는 도관들

 

  근처에는 유곽도 있고, 환기구까지 있는 화장실도 있습니다. 고린도에서 보았던 화장실과 같은 형태의 화장실입니다. 유곽은 아무리 둘러봐도 ‘유곽’이었음을 알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하기도, 그 곳이 유곽이었음을 상상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니케 여신의 부조 앞에서 승리의 여신 니케가 주는 월계관을 받는 것처럼 폼 잡으며 딸아이는 무척이나 즐거워합니다.

  언덕을 내려오니 저 앞에 에페스 최고의 아름다운 건물이었다는 케르수스 도서관 전면이 보입니다. 1만 2천여 권의 서적을 소장하고 있었다는 도서관은 지진에 의한 파손으로 측면과 후면이 모두 무너진 채 앞면만이 위태롭게 서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55 에페스 최고의 아름다운 건축물 케르수스 도서관

 

   도서관을 지나 대극장 쪽으로 가는 길가에 난데없이 길바닥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책에서 미리 읽었지만 직접 보니 더 흥미롭습니다. 이 광고는 매춘 숙소 광고입니다. 오른쪽의 여인 그림으로 유곽이 있음을 알리고 있으며 그림의 ‘발’보다 발의 크기가 큰 남성(즉, 성인 남성)만 들어오라는 광고랍니다. 유치한 장난기가 발동한 여행자들은 서로들 발을 대보라며 키득댑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56 마블 거리 바닥에 유곽을 광고하는 그림 광고

 

  마블 거리를 지나 언덕에 올라 내려다보니 당대의 교역 도시답게 (지붕이 사라진) 가게들이 즐비하게 서 있습니다. 500m 정도의 도로변에 상점이 즐비했고 가로등까지 있었답니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이 곳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였다는데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57. 에페스의 옛 상가

 

  유적지가 끝나가는 즈음에 마지막으로 에페스를 절대 잊을 수 없도록 강렬한 인상을 확실히 남기기라도 하려는 듯 ‘대극장’의 웅장한 모습이 여행자들을 압도합니다. 당대의 여느 극장과 마찬가지로 반원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2만 4천 명 정도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초특급 노천 극장입니다.

  여행자들은 모두 계단에 앉았고, 누군가를 무대에 세워야겠다는 집단적 장난기가 발동하여 음악 선생님의 어깨를 괜시리 밀다가는, 결국 꼬마 여행자들을 무대로 내려 보냈습니다. 여행 기간 내내 엠피3를 무한 반복으로 설정해놓고 ‘어머나’를 함께 들어왔던 두 꼬마는 사실 은근히 관객 앞에서의 공연을 꿈꿔왔기에 잠시 ‘짐짓 당황스러운 척’을 좀 하다가는 바로 무대에 섰습니다. 하지만 아직 가사를 다 못 외워서 대극장에서의 초연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연습할 땐 다 외웠었는데 어마어마한 무대에 서니 너무 떨렸답니다. 요즘 아이들이 아무리 무대 체질이라지만 무대도 무대 나름인가봅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58 에페스 시민들이 연극 관람도 하고 회의도 했던 대극장

 

 

목화의 성 파묵깔레

  터키어로 ‘파묵’(Pamuk)은 목화, ‘깔레’(Kale)는 성이라는 뜻입니다.

 파묵깔레는 터키 최대의 목화 생산지로 질 좋은 면직물로 유명한 곳이랍니다. 파묵깔레에서 들렀던 면직물 매장에서 보니 디자인이나 색상은 아무래도 한국에 비해 덜 세련된 듯 했지만 ‘질’은 꽤 좋아보였습니다.

  눅눅하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에페스 유적 관광을 마친 후 버스에 올라타니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몸이 무거워지며 피곤이 밀려옵니다. 어둑어둑해지는가 싶더니 금새 사방이 깜깜해집니다. 다른 차들도 거의 보이지 않고 가로등도 변변히 없는 길을 여행객들의 노곤함과 침묵을 실은 버스 한 대가 묵묵히 달려갑니다.

  시간차로 인한 피곤함의 고비가 보통 일주일정도라는데, 연일 장시간 버스 여행으로 강행군하는 여행이다 보니 일주일도 안 되어 ‘참을 수 없는 피곤함’이 온 몸을 내리 누릅니다.

  웬만해선 밤 시간외에 거의 잠을 자지 않고, 목에는 끈 달린 볼펜을 두르고, 한 손엔 수첩을 들고 다른 손엔 카메라를 든 채 ‘24시간 대기’형태로 가이드의 설명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창 밖의 풍경 하나라도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듯 날선 칼처럼 곤두세웠던 ‘긴장’은 ‘참을 수 없는 피곤함’에 무장 해제되어 가이드의 설명을 자장가삼아 저절로 눈이 스르르 감깁니다.

  거의 잠이 들려고 하는 참에도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도 이런 상태일까? 음, 이건 정말 ‘불가항력적 졸림’이군. 그러니까 그런 아이들도 용서를 해줘야 마땅한 건가?’, 뭐 이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머릿속을 오락가락 하다가 ...... 퍼뜩 잠을 깨니 우리나라 유성 온천 관광단지 같은 풍경의 관광단지안으로 버스가 들어섭니다. 

  지금까지 묵었던 호텔 중에 다소 격이 떨어지는 호텔이 될 거라고 해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필요한 설비는 다 갖추고 있고 아담하고 소박한 객실들이 수영장을 가운데 두고 □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어서 어쩐지 정겨운 느낌을 주는 호텔이었습니다. 호텔 음식도 전 날 묵었던 별 다섯 개짜리 호텔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59 온천 관광 단지 파묵깔레에서 묵었던 호텔 객실.

                           터키 최대의 면직물 생산지답게 침구류의 질과 색상이 참 예쁩니다.

 

   호텔 로비의 한 쪽 벽에 한국어로 ‘릴렉스 맛사지’라고 쓰인 호텔 사우나 광고가 재미있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60. 파묵깔레의 관광 호텔 사우나 입구의 한국어 광고.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터키 음식을 즐기고 난 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호텔내의   온천장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말이 온천장이지 가운데에 그리 크지도 않은 깊은 ‘탕’ 하나 있고, 두 개의 핀란드식 사우나실과 샤워 시설이 전부입니다. 다만 탕 안의 물이 보통 수돗물이 아닌 탄산수 온천이라는 것이지요.

  저는 사실 ‘대중 목욕탕’기피증이 있는 사람이라(지나치게 마른 사람들은 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실겁니다.) 남녀가 함께 즐기는 온천 탕이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막상 온천장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온통 뿌연 증기가 실내를 꽉 채우고 있어서 사람과 사물들이 모두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모습에 아주 편안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여행 중에도 몇 번 쯤 ‘순간 정전’을 겪었었는데, 터키는 ‘전력난’이 좀 있는 편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후끈후끈’할 정도로 난방을 하는 법이 거의 없기 때문에 터키에서 여행하는 며칠간은 여느 서구 나라를 여행할 때와 마찬가지로 늘 ‘으슬으슬’했습니다.

  저는 그래도 ‘서늘한 공기’를 좋아하는 편이고 연료 절약과 환경 보호 차원에서 난방을 최소한으로 하고 살아온 편인데도 터키 호텔들은 어느 곳이나 좀 썰렁했습니다.

  오랜만에 이렇게 뜨끈한 물에 온 몸을 담그니(탕이 너무 깊어서 온 몸을 담그지 않을 수가 없었음) 저마다 입에서 ‘아~! 좋다~’가 절로 새어 나옵니다.

  호텔 내 온천장을 우리 여행팀이 완전히 접수한 듯 터키 여행객들도, 다른 팀의 한국인 여행객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대단한 한국인들은 온천 탕을 나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몸으로 이번엔 온천장 밖  한겨울 밤의 차디찬 노천 수영장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탕 안에 앉아서 그 모습을 보기만 하는데도 ‘어흐으~르르~~’ 이가 딱딱 부딪칠 지경입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한국 가서 쓰러지면 되지 하는 생각에 뒷일 생각 안하고 배터리를 있는 대로 방전시키려는 듯, 온천장에서의 목욕으로 나른해진 몸을 끌고 또 호텔 바깥으로 나가봅니다.

  시골 동네 기념품점과 잡화점들일 망정 이곳은 한국의 유성 온천이 아니라 터키의 파묵깔레가 아닙니까?

  객실 침대에 깔려 있던 침구가 예쁘다고 느꼈던 사람이 저 뿐이 아니었는지, 다른 분들도 그런 침구 세트를 살 수 있으려나 싶어 인근 가게들을 몇 군데 둘러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은 뒤였고, 열어 놓은 가게들도 타올이나, 가운, 수영복 등을 파는 곳들이어서 원하는 제품을 찾지 못했습니다.

  호텔 바로 앞 가게에는 목소리도 외모도 안소니 퀸을 빼닮으신 멋진 할아버지 한 분께서 늦은 시간까지 가게를 지키고 계셨는데, 약간 취기가 오르셔서 적당히 기분 좋은 상태로 한국에서 온 우리들과 격의 없는 한 때를 보냈습니다.

  30~ 50대에 이르는 우리 일행에게 연신 lady! lady? 하시며 안주인께서 손수 짜셨다는 레이스 쿠션 커버며 이 것 저 것을 우리에게 권유하시긴 하셨지만, 팔아도 좋고 안 팔아도 좋은 한없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친근한 사이에 주고 받는 인사라는 ‘볼 부비기’도 서슴지 않고 하셨지만 아무도 ‘추행’이라고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가게 앞 가판대에는 새 모양의 흙으로 빚은 색색의 쬐그만 물피리들이 쪼로리 놓여있었습니다. 그냥 불면 새된 소리가 나지만 물을 조금 넣어 불면 아침에 기분 좋게 지저귀는 듯한 새소리가 납니다.(물론 실력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나긴 합니다.)

  1달러짜리 물피리 하나씩을 사들고 호텔로 돌아오니, 로비 한 쪽의 벽난로 앞에 우리 일행 몇 분이 모여 있습니다. 다른 쪽 테이블 위엔 터키인들이 함께 대화하면서 돌려가며 피운다는 물 담배도 보이지만 아쉽게도 실제로 물 담배를 즐기는 현지 터키인의 모습을 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61 담배를 즐기는 터키인들이 돌려가며 피운다는 물담배

  함께 여행한 지 일주일이 되어가지만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강행되는 일정 속에서 서로 이름 정도만 대강 알고 있는, ‘무늬만 팀’인 ‘따로 국밥’ 여행객들은 어떻게든 ‘하나’가 되어보려는 ‘강박’을 몇 병의 에페스 맥주와 함께 풀어보려 합니다.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여행지를 여행하고 있으며 직업도 모두 교사로서 공통점이 많다면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건만, 또 탁자 아래에 나란히 줄지어 빈 맥주병들은 쌓여가건만, ‘하나로 풀어지기’가 마음처럼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밤새워 얘기하다보면 어느 순간 벽이 허물어지는 임계점에 도달할 수도 있으련만, 무슨 일이 있어도 새벽 5시에는 일어나야 하는 내일 아침과(정확히 말하면 같은 날 아침) 거의 하루를 버스에서 보내야 할 고단한 하루를 생각하며 객실로 돌아옵니다. 

  미리 온도 설정하여 보일러를 틀어놓고 나간 덕분에 객실이 제법 후끈합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따끈한 밤이었습니다.

 

 

제 7일. 파묵깔레(Pamukkale)에서 카파도키아(Kappadokya)로

 

죽은 자들의 도시, 산 자들의 도시.

  파묵깔레의 석회층 노천 온천지에 이르기 전에 수많은 무덤(석관)들이 사방에 즐비한 묘지(네크로폴리스) 유적이 보입니다.

저 멀리 동이 터오느라 하늘빛은 영묘하고 신비스럽기만 한데, 산 자들의 도시이자 성스러운 도시인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로 가기 전 너른 벌판에 죽은 자들의 묘들이 널려있는 죽은 자들의 도시 네크로폴리스를 한참이나 지나야 합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62 죽은 자들의 도시, 네크로폴리스

 

  더 이상 간단할 수 없이 비바람을 막아줄 관 뚜껑만 달려 있는 서민 석관, 번듯한 집 모양의 귀족 석관, 위엄 있는 아치형의 장군 석관, 이렇게 죽어서까지도 신분과 계급에 따라 묘의 크기와 형태가 다릅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63, 귀족의 석묘           그림 64. 평민의 석묘            그림 65. 장군의 석묘 

 

  산 자들의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역시 ‘목욕탕’이 있습니다. 터키와 그리스 유적지마다 신전 앞에, 사원 앞에, 도시 입구에 있었던 목욕탕들을 둘러 보고나니, 무심히 지나치던 동네 목욕탕과는 사뭇 다른 ‘경건함’이 느껴집니다.

   기원전 190년 무렵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도시 유적 히에라폴리스에서도 고대 도시의 필수 요소들, 즉, 아크로폴리스와 신전, 대극장, 목욕탕 등을 볼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66 산 자들의 도시 히에라폴리스

 

 

석회층 노천 온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의 하나인 파묵깔레 석회층(Travelten) 노천 온천은 병든 자 들이 병을 고치러 몰려들 만큼 효험 있는 온천으로 명성 있는 곳이었지만, 지나친 난개발 탓에 그 물줄기가 메말라가고 있다 합니다.

  연중 풍부한 물이 넘쳐나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여름 한 때 정도만 물이 제법 흐르는 정도이고, 겨울에는 발목을 겨우 담글 정도입니다. 그것도 하루 하루 물줄기를 이 곳 저 곳으로 분배 조절하여 흘려보내야 할 만큼 많이 말라버렸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67.  파묵깔레의 석회층 온천

 

  석회질을 포함한 물이 계속 넘쳐 흘러가면서 석회질의 침전이 이루어져야 석회층 특유의 흰색이 유지될 수 있는데, 물이 말라버린 석회층 이 곳 저 곳엔 이미 시커멓게 색이 죽은 곳들도 보입니다.

  그나마 발이라도 담가보려고 저마다 수건을 준비해갔지만, 너무 이른 아침에 방문해서인지 그마저도 못했습니다. 석회층 보호 차원에서 자유 입장은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발도 못 담그고 계단 모양 석회층에 신비스러운 푸른 빛을 띤 물과 피어오르는 수증기를 바라보며 수로를 따라 흘러가는 온천 물에 손이나 담가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온천 수영장(Pamukkale Tharmal)의 노천 온천 밑바닥엔 기둥을 비롯한 유적지 건물 잔해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채여서, 어쩐지 ‘고대’를 숨쉬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겠다는 신비감도 들었지만 시간에 쫓기는 단체 여행객들에겐 ‘그림의 떡’입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68 대리석 기둥 등의 건축 잔해들이 그대로 잠겨 있는 온천 수영장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온천물처럼 뜨끈뜨끈한 온도는 아니고 37도 정도의 미지근한 물이라고 하니, 겨울에 이 곳 노천 온천에서의 온천욕은 좀 추울 것 같긴 합니다.

 

 파묵깔레에서 카파도키아 가는 길

  ‘파묵깔레에서 카파도키아 가는 길, 아름답다.’

  파묵깔레를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저는 이렇게 한 줄 노트에 적어 넣었습니다.

  하지만 10시간가량이나 버스로 달리고 또 달려도 갈색, 진한 갈색, 흐린 갈색, 회갈색, 녹갈색 풍경이 계속 이어집니다.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던 동료 교사의 경험담이 과언은 아니었습니다.

  땅과 하늘이 끝없이 맞닿아 있는 풍경이 지겹도록 이어지는 터키의 넓은 땅이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지만, 하늘이 빠꼼히 보이는 굽이굽이 대관령 길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69, 70 파묵깔레에서 카파도키아 가는 길

 

지붕 위에 항아리는 뭣하러? 

  깜빡 잠이 들었다 깨기를 몇 번이나 하면서 ‘오늘 안에 도착하기는 하는 건가?’싶었던 카파도키아에 드디어 들어선 모양입니다. 이리 저리 꺾이는 좁은 골목길을 버스가 힘겹게 지나가는 동안 가이드가 뭔가를 열심히 찾습니다. 그 밤엔 어두워서 잘 보지 못했던 항아리를 결국 다음 날 아침 카파도키아 기암 지대로 가는 도중 어느 집 울타리 위에서 보았습니다. 

터키의 시골 주택가 지붕이나 울타리 위에 있는 항아리는 혼기에 이른 처녀가 있음을 의미한답니다. 항아리 세 개가 올려져 있다면 혼기에 이른 처녀가 셋이나 된다는 뜻이지요. 평소에 맘에 두고 있던 처자가 있던 차에 그 처자의 항아리가 지붕 위에 올려진다면 총각은 돌을 던져 항아리를 깨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 표시를 하는데, 만일 둘째 처자를 맘에 두었다면 꼭 두 번째 항아리를 깨트려야하며 잘못 깨트린 항아리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답니다.(하하! 정말 순박한 전설이 아닙니까?)

 그런데 한 가지 유치한 의문이 생깁니다. 잘못 깨트려진 항아리도 문제지만 석 달이고 일년이고 지나도 아무도 깨트리는 이 없는 항아리는 더 큰 문제가 아닌가? 하는.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71 카파도키아 민가 울타리 위에 놓여있는 항아리.

                     지붕이나 울타리 위의 항아리는 혼기에 이른 처녀가 있음을 알립니다.

 

카파도키아 호텔에서 만난 터키 꼬마들

   카파도키아에서 우리 일행이 묵었던 호텔에는 바이람 명절에 가족 여행을 떠난 터키인들이 꽤 많이 와서 이번 여행 중 가장 많은 현지인을 볼 수 있었던 호텔이었습니다.

  호텔이나 상가, 유흥업소들이 밀집한 지역을 조금 벗어나, 여닫이 창문을 한번 열면 다시 닫기가 힘들 정도로 바람이 몰아치는 언덕에 덩그러니 있는 호텔이었는데, 로비며 엘리베이터며 식당이며 호텔 어디나 사람들로 붐볐고, 빈 방이 거의 없는 듯 했습니다.

  가이드가 단체 체크인을 하는 동안 잠시 로비에 서 있으려니 너무 너무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이 우리 일행에게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걸고 싶어 어쩔 줄을 모릅니다.

특히 제 딸아이에게 이름이 뭐냐, 몇 살이냐 물어보며 지대한 관심을 보입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72 바이람 명절을 맞아 이즈밋에서 카파도키아까지 가족 여행을 온 꼬마들.

                              너무나 예쁘고 천진스러운 아이들이었습니다.

 

  이스탄불에서 그리 멀지 않은 터키 북서부 이즈밋(Izmit)이라는 곳에서 터키 한가운데인 중부의 카파도키아까지 장거리 가족 여행을 온 아이들이었는데, 그 중 부세라는 이름의 여자 아이는 영어도 곧잘 합니다.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다고 하는데 배운 영어를 실습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지 딸아이와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너무나 즐거워합니다.

  터키의 여자들은 하나같이 예뻤지만 부세는 정말 너무 예쁘고 천진스럽고 상냥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옆에 있던 남자 아이들의 이름도 물어보아서 듣긴 했는데도 압둘라였는지 압살롬이었는지, 마흐메트였는지 무하마드였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선해 보이는 눈과 쾌활한 목소리의 아이들로 마냥 즐겁고 들떠서 한 마디 하고 깔깔 웃고 한마디 하고 하하 웃던 그 천진난만한 얼굴과 목소리가 아직도 제 눈과 귀에 선합니다.

 

동굴 클럽에서의 밸리 댄스 공연

  옵션 관광이긴 했지만 터키 특유의 춤이라니 한 번 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단체 관람 버스에 올랐습니다.

  하긴 허허벌판 언덕에 덜렁 호텔 하나뿐이고 차로 20분은 가야 가 볼만한 곳이 있는 외딴 곳에서 밸리 댄스라도 안 보면 영락없이 호텔 방을 지켜야 할 판이니 선택의 여지라고 할 것도 없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몇 몇 외인부대파 선생님들은 가는 버스만 빌려 타고는 다른 곳에 내리셔서 나름의 시간을 보내고 택시로 귀환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도 그 분들은 그런 방식으로 여행을 즐겨온 관록이 있으신 분들이시랍니다.     

  가이드가 ‘밸리 댄스’라고만 말해서 밸리 댄스 하나 보는데 70불은 너무 심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밸리 댄스는 공연 중 일부일 뿐이었고, 터키의 결혼 풍속을 노래와 춤으로 보여주거나 여러 민속 춤, 종교적 선무 등을 다양한 의상과 함께 3시간 여 동안 보여주며 술과 안주를 무제한 서비스해주는 공연이어서 보고 나서까지 본전 생각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카파도키아 특유의 기암지대답게 동굴 속에 꾸며진 공연장도 이색적이었고. 높은 단 위의 무대가 아니라 객석과 같은 높이의 한 가운데를 무대로 방사형으로 객석들이 있는 형태여서 무대의 열기가 그대로 객석으로 전해지는 듯 합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73. 결혼식 장면을 춤과 노래로 꾸민 공연. 청년이 처녀에게 구혼하는 장면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74. 공연은 밸리 댄스외에도 몇 가지 민속춤을 보여줍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75 밸리 댄스

 

  물을 타면 우윳빛으로 변한다는 ‘라끄’의 맛이 좀 낯설고, 지하 동굴의 객석 여기저기에서 피워대는 담배 연기로 온통 매케하긴 했지만, 터키 사람들도 어지간히 잘 노는 민족이다 싶었고, 가무를 즐기는 우리 민족의 후예들은 그에 질세라 머나먼 나라의 클럽에서 스스로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밸리 댄스 자체도 생각보다 그렇게 선정적이지도 않았고(3류 댄서라며 실망하시는 분도 계시는 듯한데 처음 보는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 민속 춤을 보여주는 공연이어서 공연 자체로는 아이들과 함께 봐도 될 듯 했습니다만, 남성 관객들 중 몇 명을 불러내어 웃통을 벗기고 밸리 댄스 흉내를 내게 하는 뒷풀이 장면이 좀 걸렸고, 무엇보다도 담배 연기로 가득 찬 지하 공연장 자체가 아이들과 함께 오기엔 부적절했습니다.

  딸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았던 것을 잘 했다 생각하던 참인데(딸아이는 오래도록 불만입니다.) 그 연기 속에 아이들과 함께 앉아있는 사람들도 꽤 많아서 놀랐습니다.

  밸리 댄스는 원래 다산을 기원하던 춤이었던 것이 술탄을 유혹하는 춤으로 이용되면서 일명 ‘배꼽춤’이라는 선정적인 춤의 대명사가 되었답니다.  

  공연이 끝나고 난장을 트는 모습은 우리의 마당놀이나 사물놀이의 뒷모습과도     비슷해서 그리 낯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익숙한 리듬도 몸으로 잘 타지 못하는  제게 터키 댄스 음악은 '어쩌라는 것인지 알 수 없게' 애매하고 익숙치가 않아서 무슨 춤인지 규정할 수 없는 ‘엉거주춤’이 되어버렸습니다. 다른 분들도 익숙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던지 다를 ‘막춤’을 추면서도 난생 처음 보는 터키인들과 함께 어우러졌던 인상 깊은 밤이었습니다. 역시 여행의 백미는 ‘사람들 속에 섞여 들어가는’것입니다.

 

제 8일. 기암 괴석의 카파도키아

 

너무나 인상적인 카파도키아

  터키 여행지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을 저에게 고르라고 한다면 이스탄불과 막상막하로 택일하기 어려운 곳이 바로 이 곳 카파도키아입니다.

  이스탄불이 블루 모스크와 성 소피아, 톱카프 궁전 등 인간의 삶과 종교와 제국의  명멸이 화려하게 남겨진 곳이라면, 카파도키아의 괴레메 파노라마는(기암 괴석 지대)수 만년에 걸친 경이로운 대자연의 작품이고, 데린 구유의 지하 도시(암굴 주거지)는 자신의 신념과 종교를 지켜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절박함이 눈물겨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곳입니다.

 

괴레메 파노라마(Goreme Panorama)

  카파도키아로 오기 전에 트로이 유적지에서 만난 미국 교포 아주머니들께서 카파도키아에서는 꼭 ‘기구’를 타라고 강력 추천을 하셨습니다. 230불 정도의 거금이 들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여행의 일정엔 기구 여행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지금까지도 미련이 남습니다. 카파도키아의 절경은 정말로 기구를 타고 높은 곳에서 천천히 떠다니며 봐야 그 경관을 제대로 다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카파도키아 지방 특유의 기암 괴석 지층은 수만 년 전의 화산 분출로 형성된 응회암과 용암층이 오랜 세월동안 각각 그 굳기의 차이에 따라 차별적으로 풍화, 침식작용을 받아 독특한 지형과 암석들을 형성하며 웅대한 파노라마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76 응회암 지대의 기암 괴석으로 펼쳐지는 괴레메 파노라마

 

아름다운 자연 속에 고통스런 삶의 흔적, 지하 도시

  데린구유(Derinkuyu)는 ‘깊은 우물’이라는 뜻의 지하 도시로서 카파도키아에 만들어진 지하 도시들 중 하나입니다.      

  ‘종교’란 과연 무엇이기에 이토록 황량한 바위산을 한없이 뚫고 내려가 빛도 들어오지 않는 미로 같은 지하 도시로 사람들을 모여들게 한 것일까요?  한사람 겨우 통과할 정도의 좁은 길을 허리마저 굽혀 굽이굽이 내려가며, 신을 향한 인간의 경건함과 엄숙함을 느낍니다.

  지하 20층, 사방 9km에 달했던 이 곳에 4만여 명이 살았다 합니다. 현재는 8층까지만 관람이 허용되고 있습니다.

  종교적 핍박을 피해 하나둘씩 이 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삶의 의지와 종교적 절박함으로, 맨손으로 돌로 한없이 응회암을 파고 들어갔을 것입니다.

  중간 중간에 비상시 차단용인 돌문까지 갖추고 있는 좁은 미로들 사이를 ‘生’의 절박함으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사람을 화려한 갑옷과 무기로 무장한 군인이 따라잡을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개미집처럼 뻗어있는 지하 도시엔 ‘사람살이’가 없는 것 없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음식 창고, 부엌, 우물, 학교가 있고, 물론 예배당이 있고, 거기에 고해성사실과  죄인을 벌세우는 기둥까지 있습니다.

  지하로 상당히 내려갔는데도 그다지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십 몇 층에 이르는 그 엄청난 깊이까지 지상에서부터 관통하는 ‘환기구’를 파놓았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사람’이 눈물겹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77 지상부터 지하 전층을 관통하는 환기구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78. 동굴 주거지 안의 음식 저장 창고.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79 사방 9km, 지하 20층에 걸쳐 동굴 안은 이같은 미로로 얽혀있습니다.

 

우치히사르(Uchisar)와 괴레메 야외 박물관

  '뾰족한 바위‘라는 뜻의 우치히사르의 바위 표면에는 붉은 색으로 테두리가 칠해진 수많은 구멍들이 뚫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들은 예로부터 주민들이 키우던 비둘기들의 둥지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비둘기를 ‘전서구’로 이용하기도 하고, 그 똥을 모아 포도밭의 비료로도 썼다고 합니다. 카파도키아의 유명한 포도주 맛의 비밀은 바로 이 ‘비둘기 똥’에 있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림 80. 우치히사르.

               바위 표면에는 주거용 출입구와 비둘기 둥지로 사용되었던 수많은 구멍들이 있다.

 

  괴레메 계곡에 있는 암굴 교회들을 관람할 수 있는 야외 박물관이 있습니다. 종교적 박해를 피해 지하 도시로 숨어 들어갔던 절박한 세월이 지나가니, 이번엔 또 너무 신앙심이 느슨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에 스스로 암굴 속에 교회와 수도원을 짓고 절제와 금욕의 종교 생활을 했던 곳입니다.

 정말 ‘종교’란 무엇일까요? 태신자로서 25년간 다닌 교회를 어느 일요일 아침 문득 아무런 고민도 번민도 없이 나가지 않기로 한 저 같은 사람의 강팍한 마음속에도 데린구유와 괴레메는 ‘인간’과 ‘종교’에 대해 깊고도 묵직한 질문 하나를 던져둡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81. 괴레메 야외 박물관(옛 수도원)의         그림 82.햇빛이 닿지 않는 동굴 속이었던 까닭에     

             동굴 교회 안 천정의 종교적 그림.                  성화들이 매우 잘 보전되어 있습니다.

 

 

앙카라의 한국 공원

  너무나도 깊은 인상을 남긴 카파도키아를 뒤로 하고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앙카라로 향했습니다.

  이스탄불만큼 화려한 조명을 받는 문화 유적의 도시는 아니지만, 터키의 행정 수도는 엄연히 앙카라입니다.

  터키의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켰고,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도시 이스탄불과는 별개로 새로운 행정적 수도를 앙카라로 정했습니다.

  이미 캄캄해진 거리를 달려 앙카라로 들어서니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 풍경’이 차창에 비칩니다. 새로울 것 없는 오랜만의 익숙한 풍경이 마음을 편안케 합니다.

  ‘화무십일홍’처럼 ‘낯선 곳으로의 열정’도 열흘을 못 넘기고 ‘편안하고 익숙한 내 집’이 그리워집니다.  

  하지만 저 멀리 높은 곳에 흰색의 각진 기둥들이 도열하여 떠받치고 서있는 근엄하고도 웅장한 건물, 아타튀르크 영묘가 눈에 들어오며 이 곳이 터키의 수도 ‘앙카라’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킵니다.

  터키가 그토록 사랑하는 ‘터키의 아버지’ 아타튀르크는 열흘도 안 되는 날 동안  ‘달리는 버스’로 터키를 휘리릭 훓고 지나가는 이방인에게조차 깊이 각인되어졌습니다.

  아타튀르크 영묘를 돌아 잠시 후 버스는 ‘한국 공원’ 앞에 멈춰 섭니다. 가로등도 변변히 없는 공원 안의 ‘한국전쟁 참전 토이기 기념비’에는 당시 ‘한국’ 이라는 멀고도 낯선 타국에서 그들의 짧은 ‘생’을 마감한 ‘토이기’인들의 명단이 빼곡히 새겨져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83 앙카라 한국 공원 내의 한국 참전 기념비.

                            전사자의 이름과 나이가 빼곡히 쓰여있습니다.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낯선 터키어 이름들 옆, 사망 당시 그들의 나이가 잠시 숨을 멈추게 합니다. 17세, 18세......일면식도 없는 머나먼 나라의 ‘자유 민주주의 수호’가 이렇게 허망하게 이름 석자로 남은 그들과 그들을 잃은 가족들에게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잠시 이 곳을 스치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여행자들은 그저 잠깐 고개 숙여 묵념하는 것 외에 달리 그들에게 경의를 표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사람이지만 그래도 자식을 낳고 키워본 사람으로서 가족을 잃는다는 것과 자식을 잃는 그 마음이 어떠할지 짐작은 해 볼 수 있기에 770명의 ‘토이기’ 이름들 앞에서 잠시나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하지만 그 조차도 알 리 없는 9살짜리 한국 사내아이는 기념품점에서 산 ‘무드링’(기분 반지)을 떨어뜨렸는데 깜깜해서 찾을 수 없다며 난리가 났습니다.        

 

 

제 9일. 또다시 이스탄불로


‘블루모스크’냐 ‘탁심’이냐.

  제한된 시간 속에서 여행자들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섰습니다.

  원래의 일정상으로는 마지막 일정에 톱카프 궁전과 함께 블루 모스크를 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내부의 신비로운 타일 모자이크가 너무나도 아름다워 ‘술탄아흐메트 자미’라는 건조한 이름보다는 ‘블루 모스크’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는 블루 모스크도 당연히 가보고 싶었지만,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현지인들과의 부딪침’도 놓치고 싶지 않은 여행자의 마음은 오락가락 난감했습니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터키인들과 부딪칠 수 있는 곳은 신시

가지 중심의 ‘탁심’광장 주변이라고 합니다. 어느 대도시를 가나 ‘명동 거리’같은 곳이 한 곳쯤은 있게 마련이지요.

  블루 모스크로 가자니 탁심이 울고, 탁심을 가자니 블루 모스크가 웁니다.

  저 자신도 어느 한 쪽으로 마음을 잡지 못하고 대책 없이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밤새 다들 ‘그래 결심했어!’라도 했는지 탁심 쪽으로 중론이 모아졌답니다.

  그래도 우리가 묵었던 호텔이 성 소피아, 블루 모스크, 톱카프 궁전, 지하 궁전 등대단한 유적지들이 밀집해 있는 이스탄불 ‘구 시가지’내의 ‘술탄아흐메트 지구’에 있던 곳이라, 이스탄불을 떠나던 날 아침, 다시는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를 블루 모스크의 겉모습이나마 잠깐이라도 다시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선택’이란 항상 ‘자장면과 짬뽕’같은 것입니다. 자장면을 먹으며 옆 사람이 먹고 있는 짬뽕을 힐끗거리고, 짬뽕을 먹으면서는 또 자장면을 아쉬워하는 것이지요.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84.  톱카프 궁전 문 안에서 바라본 블루 모스크.

                                  일정 변경으로 가보지 못하게 된 블루 모스크를

                            이렇게 먼 발치에서 보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야 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영화- 톱카프 궁전(Topkapı Sarayı)

  톱카프 궁전은 흑해 부근부터 아라비아 반도,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이었던 오스만 왕조의 술탄들이 기거하던 곳으로, 400여 년 동안의 ‘제국의 영화’가 담겨 있는 왕궁입니다.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의 접선인 보스포러스 해협을 굽어보듯 높은 곳에 웅장하게 서있어서 ‘스쳐가는 이방인’이라도 그 영화로웠던 제국의 강력했던 술탄의 권력을 상상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과거 한 때 이 자리에 큰 대포가 있었다 하여 Top(대포) Kapı(문) 궁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도 하며, 현재는 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술탄이 등극할 때마다 증축을 거듭해왔다는 이 궁전은 지엄한 ‘술탄의 인장’으로 장식된 입구부터가 들어오는 이를 압도하며, 어느 구석 한 곳 수수한 곳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85 제 1정원을 지나면 술탄의 인장으로 장식된 위엄있는 문이 보입니다.

 

  제 1정원부터 제 4정원까지, 술탄의 주방부터 하렘까지 70만 평방미터나 된다는 이 궁전을 제대로 다 보려면 하루 꼬박 걸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로 이 곳 톱카프 궁전에서 단체 버스 관광의 폐단의 극치를 씁쓸하게 느껴야만 했습니다.

  저는 궁전 구석구석에 제 눈도장과 발도장을 찍으며 이 곳을 정말 천천히 ‘씹어먹듯’ 둘러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구시가지의 톱카프 궁전 바로 옆 블루 모스크 대신 신시가지 한가운데의 ‘탁심’으로 기수를 돌린 우리 일행은 마음이 무척 바빴습니다. 궁전에 들어서자마자 누가 뛰자고 한 것도 아닌데 모두들 경보하듯 종종 걸음을 치더니 나중엔 아예 냅다 뛰기 시작합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뿜어내는 상쾌한 아침 공기와 오랜만에 제대로 비치는 햇살이 드리우는 그 아름다운 그림자들을 찬찬히 느껴볼 틈도 없이.

  정신없이 뛰는 여행자들 뒤로 처지게 된 가이드는 어이가 없습니다. “저기요~, 저 여기 있거든요~”합니다. 음~ 이쯤 되면 도대체 우리가 뭘 하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집니다. 어차피 버스 관광이 ‘찍기 관광’이라지만 이렇게 ‘뛰면서 찍기’까지 갈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정신없이 앞서가는 여행자들을 뒤에서 가이드가 부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우리 스스로 머쓱한 웃음을 ‘크하하하’ 웃으면서도 ‘경보’는 계속되었습니다.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를 것들인데......’하는 아쉬움에 늘 일행 끄트머리에서 허덕이다가 ‘이래가지고서야 쯧쯧쯧, 나중에 다시 와야겠는걸’ 이러다가는, 마지막 정원의 테라스에서 ‘금각만’의 멋진 풍광을 바라보며 급기야는 “반드시 다시 올 것이다. 터키에”하고 자못 비장한 다짐을 했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86.  톱카프 궁전의 제 4정원 테라스에서 바라본 보스포러스 해협

 

   특히나 꼭 보고 싶었던 ‘하렘’이 있는 북서쪽은 근처도 가보지 못한 채 궁전 오른편의 건물들만 부산스럽게 들락날락거렸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영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곳은 세계 최대의 에머랄드가 박혀있는 페르시아 스타일의 단검과 49개의 작은 다이아몬드들로 둘러싸인 86캐럿 다이아몬드를 비롯하여 온갖 호화로운 보물과 황제와 황후, 왕자, 공주 등이 입었던 의상 등을 전시해놓은 ‘보물관’이었습니다. ‘촬영금지’임을 알면서도 ‘홀린 듯’ 셔터에 손이 가고야 맙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87, 88: 톱카프 궁전 보물관의 호화로운 전시물들 (훈장과 왕실 요람)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89, 90: 오스만 왕조의 술탄과 황후의 의복

 

  보물관과 더불어 ‘술탄’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또 한 곳은 술탄이 내방자와 긴밀하게 밀담을 나누던 ‘알현실’이었습니다. 이 곳의 문 밖에는 수도꼭지가 하나 있습니다. 궁전이나 모스크 입구에 ‘몸을 청결히’하는 의미의 수전이 있다는 것에 이미 익숙해진 저는 이것도 황제를 만나기 전 손을 씻는 정도의 의미로 쉽게 상상을 했지만, 이번 것은 좀 다릅니다.

  이 수도꼭지는 황제가 ‘밀담’을 나누는 동안 틀어져 물을 흘려보냅니다. 안에서의 밀담이 밖에서 들리지 않게 하는 일종의 ‘방음’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하지만 결국은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술탄의 고독’과 ‘사방에 항시 도사리고 있는 암살의 위험’과 ‘힘겨운 비밀’이 느껴집니다.          

 

보스포러스 크루즈

  30년만의 이상 기후로리스에서 크루즈를 포기해야 해서 여행 초반부터 맥이 풀렸었지만, 다행히 여행 마지막 날에는 오랜만에 해가 반짝 떠서 드디어 ‘크루즈’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차피 내 발로 걷는 게 아니기는 마찬가지라 해도, 그래도 버스보다는 ‘천천히’가는 배 위에서의 유람은 훨씬 여유롭고 또 뭔가 ‘낭만’의 냄새가 물씬합니다. 저 멀리 보이는 톱카프 궁전과 성 소피아, 블루 모스크 등을 ‘진짜’ 마지막으로 두 눈의 망막에 열심히 새겨 넣었습니다. 

  바람을 맞받으며 가는 배 앞전이 너무 힘겨워 배 뒷전으로 갔습니다. 객실에 앉아서 창 밖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바람을 맞아야’ 유람 기분이 나는 법이지요.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91 보스포러스 크루즈 여객선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시가지

 

   아이들이 들고 있는 새우깡 냄새를(새우 씻은 물 정도의 냄새일텐데도) 기막히게 알아채고 몰려드는 갈매기들이 제법 ‘바다’를 느끼게 합니다.     

  흑해에서 흘러든 바닷물은 이스탄불을 관통하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지나 마르마라해로 흘러갑니다. 이스탄불을 유럽과 아시아 지역으로 나누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배를 타고 가며 양쪽을 번갈아 보는 재미도 독특합니다.

  한강에도 유람선은 있지만 한강변과 보스포러스의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세느강에서는 정말 ‘파리’를 느낄 수 있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에서는 정말 ‘빈’을 느낄 수 있고, ‘보스포러스’해협에서는 정말 ‘터키’를 느낄 수 있었는데, 유람선을 타고 한강을 흘러가는 외국인들은 과연 ‘이국으로서의 한국’을 느낄 수 있을까요? 복원되는 청계천은 정말 ‘서울’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요?

  파리에도 이스탄불에도 신시가지는 물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곳에 ‘구시가지’도 있다는 것입니다. 새삼 ‘일제’가 뼈저리게 원망스럽습니다. 서울은 ‘구시가지’를 일제에 의해 유린당했습니다. 사대문 안의 고풍스런 구시가지를 이제 다시 복원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영화 ‘나비효과’처럼 잘못된 현재를 고쳐보려 과거로 돌아가는 일의 무상함을 수긍하면서도, 그래도 자꾸 부질없는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탁심 (Taksim)에서 원 없이 터키인들과 부딪치다.

  ‘블루 모스크와 바꾼’ 탁심에서 우리 일행은 지난 열흘 동안 보았던 모든 ‘사람’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봄으로써 ‘여행의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20일부터 4일간 계속되는 바이람 명절 끝이기도 하고 일요일이기도 했던 탓인지, 진두에 서서 진격하는 형상의 아타튀르크 기념탑이 있는 탁심 중심부(Taksim Meydani)에서 오고가는 사람들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주말에 서울 명동거리를 하릴없이 거니는 듯 그냥 마음이 들뜹니다.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인파를 헤치며 가는 일은 ‘생활인’에게는 짜증일 수 있겠지만 ‘관광객’에겐 그저 즐거움입니다.

  각자 가고 싶은 곳이 서로 달랐던 여행자들은 이젠 제법 터키가 익숙해졌다고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용감하게’ 찢어졌습니다.

  ‘쇼핑’보다는 ‘사람 구경’에 갈증이 났던 저는 백화점보다는 사람이 가장 많은 거리를 따라 사람들 속에 휩쓸려 갈 수 있는 거리를 선택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 같아 보이는 거리는 ‘명절맞이 할인'이라 쓰인 현수막이 입구에 걸린 이스티크랄 거리(Istiklal Cad.)였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92. 이스탄불 신시가지 중심인  탁심의 이스티크랄 거리

 

   거리 입구에 들어서니 ’여지없이‘ 버거킹과 맥도날드와 던킨 도넛이 버티고 서있습니다. ‘흠~ 화장실은 해결되었군’ 생각하며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따라 거리 끝까지 흘러가보았습니다.

  생각보다 꽤 많은 세계 여러 곳의 고풍스런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낭만적인 노면전차(시가전차)도 보입니다. 바이람 기간에는 공영버스도 무료라던데, 한량짜리 이 전차도 무료인지 장난스런 사내아이들이 전차 뒤에 매달려 찧고 까붑니다. 20년쯤 젊었으면 나도 한번쯤 매달려보겠는데......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93 탁심 메이단 광장 한가운데 서있는       그림 94 이스티크랄 거리를 왕복 운행하는

                      아타튀르크 기념탑                             한 량짜리 노면 전차.

                                                               아이들이 장난스럽게 매달려 갑니다.     

 

  이 거리도 그랜드 바자르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메인 도로를 중심으로 길을 따라 계속 작은 길들이 갈라지고 있었고, 어떤 것은 바자르 특유의 지붕도 있었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93. 바자르의 전형적인 지붕이 있는 상가

 

  계획했던 쇼핑 품목인 가죽 쟈켓과 터키석 장신구 세트는 이미 구입한 다음이라 여유로운 마음으로 윈도우 쇼핑을 즐기기로 했습니다. 살 것도 아니면서 가격을 물어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실컷 구경하였습니다.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과일, 채소, 생선 가게 등이 늘어선 골목이 보입니다. ‘싱싱한’ 과일과 야채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피곤함이 사라지고 눈이 시원해집니다. 그리스와 터키 모두 채소는 정말 ‘싱싱’했습니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96.  싱싱한 야채들.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97. 생선 가게

 

                                클릭하시면 화면을 닫습니다. 

                                 그림 98. 올리브를 비롯하여 각종 야채 절임 식품들

 

탁심에서 딸을 잃어버리다.

  선물용으로 자그마한 냉장고용 자석을 좀 싸게 사려고 흥정하는 동안 일행되시는 분들이 먼저 가겠다고 해서 그러시라고 했는데, 제가 너무 시간을 지체했었나봅니다. 

  까만 비닐봉지 하나 들고 돌아서니 사방이 터키인들로 꽉 채워진 시장 골목 안에 일행과 제 딸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일행과 함께 있겠지 싶으면서도 간혹 엉뚱하기 이를 데 없는 제 딸이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골목을 위 아래로 훓어도 안 보이고 이렇게 골목 골목 들어찬 사람들 속에서 제 딸과 일행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뭐 별일이야 있겠어?“ 싶던 마음 한 켠이 점점 쪼그라들고 시간이 좀더 지나자 급기야는 ’공황장애‘까지 올 지경입니다.

  혹시 일행과 떨어졌다 하더라도 처음에 메인 도로를 들어설 때 아타튀르크 동상이 있는 ‘탁심 메이단’을 이정표로 주지시켜두었으니 알아서 찾아오겠지 하면서도 제 눈엔 이미 거리도, 사람도 들어오지 않고 머나먼 나라 터키에서 딸을 잃은 한심한 엄마의 모습이 된 것은 아닌지 안절부절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길이 엇갈렸을 때 둘 다 움직이면 계속 엇갈릴 것이라는 생각으로 일단은 탁심 메이단으로 돌아가 있자고 생각했습니다.   

  한 편으로는 딸을 걱정하면서 한편으론 그깟 냉장고 자석이 뭐 대수라고 그거 몇 개 사려다 ‘터키에서 딸 잃어버린 엄마’가 되는가 스스로 자책해가면서, 그러면서도 한 방송국에서 명절 풍경 스케치로 시민 인터뷰하는 광경도 힐긋거려가면서, 길 건너에 서있는 앰뷸런스에 가이드 설명대로 빨간 십자가가 아닌 초승달 모양이 그려져 있는가도 확인해가면서 어디선가 ‘마~’하며(제 딸은 엄마라 하지 않고 꼭 국적 불명의 ‘마’라고 부릅니다.) 딸의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는지 귀를 곤두세우고 목을 길게 빼어 이리 저리 살핍니다.

 아마도 그 때의 제 모습은 어딘가 살짝 제 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보였을 성 싶습니다.

  걱정에 휩싸여 기다릴 때의 시간은 어찌 그리도 더디 가는 것인지......

  집합 시간은 가까워 오고 ‘아흑! 드디어 터키를 떠나는 마지막 날에 탁심에서 딸을 잃는구나’ 하고 자못 과대망상에 빠져 입안이 바작바작 말라가는데, 저 쪽에서 제 딸과 일행이 ‘무심한’ 얼굴로 나타납니다.

  “마~! 도대체 어디 갔었던 거예요~! 걱정했잖아요~!”   

11살 된 딸은 이제 더 이상 ‘엄마가 걱정할’ 사람이 아니라 ‘엄마를 걱정하는’사람이 되었네요. 기다리는 동안 거의 초죽음이 되었던 제 속은 그냥 계속 제 속에 있도록 놔둬야겠습니다.

                        

제 10일. 드디어 서울로! 아! 물냉면!, 오! 김치!   

  터키로 날아오던 비행기 안에서의 긴장은 열흘 만에 옛말이 되고,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고 앉자마자 여태껏 팽팽히 조여져 있던 몸과 마음이 완전히 풀어져 녹아내립니다.

  기내식으로 저녁을 먹고 나니 눈꺼풀이 무겁게 내리깔리고, 저녁도 안 먹고 곯아떨어진 아이에게 담요를 덮어주고는 꿈도 없는 깊은 잠 속에 빠져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편서풍 기류를 타고 비행하는 것이라 비행시간이 좀 짧아지긴 했나봅니다. 죽은 듯이 잠들었다 문득 잠을 깨니 벌써 승무원이 선반을 펼치고 아침 식사를 내려놓습니다.

  아이는 아직 정신없이 자고 있지만 혹시나 싶어 아이 식사까지 받아두고 제 쟁반에 놓인 음식들의 면면을 몽롱하게 내려다봅니다. 롤빵, 슬라이스 치즈와 햄, 춘권 모양새의 정체모를 음식, 퍽퍽해 보이는 쵸코 케잌.

 ‘어휴~ 입 안의 습기가 다 말라버릴 것 같은 음식들이라니......’

여행 중에 늘 그 비슷하게 먹어왔건만, 좀 있으면 서울에 도착한다는 생각이 제 입을 참으로 간사하게 만듭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냉면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무 초절임과 채 썬 오이와 삶은 계란 반 쪽이 얹어진 냉면 그릇을 받자마자 시원한 육수부터 주욱 들이켰습니다.

  “아~흐~! 시원해. 바로 이 맛이야~!”  

아! 드디어 서울에 왔습니다.


마이 페이지 > 스크랩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중한 글에 감사 댓글 남겨주세요.

     

독후활동 워크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