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한 보스톤 여행 17일 (1편) 2001-10-3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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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ROLOGUE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와 함께
미국 보스톤에 보름 남짓 ( 9월 27일 - 10월 13일) 체류하다
돌아왔습니다.

아이의 학교에 낸 '부모와 함께하는 현장학습' 신청서에
* 방문 목적: 친지 방문
* 할 일 :
1. 친지 방문
2. 박물관 및 미술관 견학
3. 케임브리지의 대학 캠퍼스 견학
4. 보스톤 주변 풍물 견학
이라고 써냈습니다.

부모와 함께 하는 경우,
국내여행은 4주, 해외 여행은 1주( 휴일 포함)까지 결석 처리가 되지 않습니다.

'붕괴되어가는 교육'속에서도 좋아진 점은 있지요?

하지만 먼 나라를 여행하는 경우
가고 오는데만 이틀이 걸리는데
1주의 시간만 허용하는 것은 좀 불만이었습니다.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체류할 경우엔 3개월까지 허용됩니다.

아이가 방학동안일 때 다녀왔으면 좋았을텐데,
제가 의뢰 받은 문제집 원고를 다 못 마쳐서 때를 놓쳤습니다만
보스톤은 가을이 제일 좋다는 동생의 말에 조금 위안이 되었습니다.

여행보다는
아이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준다는 것과
동생과 도련님을 만난다는 것에 더 중점을 두었었고,

국제면허를 미리 챙기지 못해서
( 챙겼다해도 길 모르면 절대 운전대 못잡는 제 소심한 성격으로
미국에서 가장 운전하기 어렵다는 보스톤에서 운전할 용기는 없었을겁니다.)
차를 운전 할 수도 없어서,
아이를 데리고 전철이나 버스등으로 다니느라 기동성도 떨어지고,

결정적으로 저의 영어가 형편없어서
많은 볼 것과 느낄 것들을 놓치며 아쉬운 적이 많았습니다.

가기전에 예습한거라곤
'아이와 함께 미국여행 31일'- 조선일보사/김숙희 -이라는 책과
세계를 간다 (미국편)라는 책을 설렁설렁 본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보스톤은 스펙터클한 관광도시적 요소가 그리 많은 곳은 아니어서 그런지
여행 안내 책자에서도 소개하는 글이 몇 페이지 안 되었습니다.

가지고 돌아온 얘기 보따리안에
들어 있는건 별로 없지만 그래도 풀어놓아봅니다.

2. VISA & INTERVIEW

저는 미국 비자가 없었기 때문에 비자 신청부터 해야했습니다.

미리 들은 이야기는 있었지만,
비자를 신청하며 조금 열 받았습니다.

첫째,
미국이 뭐 그리 잘났길래 가족 얼굴 좀 보고 여행 좀 하겠다는데 그렇게 까다롭게 구는가
하는 것이었고
둘째,
김형란이라는 '여자'는 완전히 그 '남편'에 위해서 규정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준비해야 할 서류는
저라는 여자가 제 남편과 혼인 상태임을 증명할 수 있는 주민등록등본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남편의 신분과 재정 상태를 증명하는 서류들이었습니다.

세무서에 신고된 남편의 소득 액수가 적어서( 대개 연봉 1,700만원 이하)
인터뷰를 해야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루 앞둔 날
세계에서 가장 힘세다는 미국에,
그것도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미국의 자랑거리인 뉴욕 맨하탄의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비행기가 날아와 박히고 110층짜리 건물 두동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수많은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 테러에 대한 경악, 화를 자초한 미국에 대한 분개
이런 것들과는 별개로
예정된 인터뷰를 해야했습니다.

뉴스거리를 헌팅하는 방송국 차량들을 바라보며
들어갈 수는 있으나 나올 수는 없는 문- 대사관을 들어가는 문이 이렇게 되어 있더군요-을
통해 인터뷰하는 곳까지 여러 절차를 거쳐 들어갔습니다.

제가 상상했던 인터뷰 장면은
탁자같은 것을 사이에 두고 심사관과 마주 앉아
까다롭고 자세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는데,

실상은
티켓 창구같은 창구들이 주루리 늘어서 있고
그 중 미리받은 번호가 표시된 창구로 가서
심사관과 인터뷰하는 사람이
투명판(티켓 창구의 것과 같은)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지는 몇마디의 질문과 대답으로
합격, 불합격 판정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비자가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 하는 것은
그 날의 영사관 기분에 따라 된다는 말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닌 것으로 보였습니다.

3. MY FLIGHT

항공사도 비행 스케줄을 예측 못하는 혼란스러운 날들이 며칠 지난 뒤
'공격당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그래도 뜨고야 말았습니다.

저 자신도 주변 사람들도 괜찮겠느냐고 걱정했지만
한번 포탄 떨어진 자리에 또다시 포탄이 떨어질 확률은 적은 법이라며
예정된 스케줄대로 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테러에 이용되었던 UA( 유나이티드 에어라인)를 타고 말입니다.

KAL 기에 비해 항공권 가격이 40만원 정도 싸다는 것,
아이것과 합쳐 50만원 정도가 남는데
그 돈을 차라리 여행경비나 선물 사는데 보태는게 낫겠다는게 선택 이유입니다.

미국 동부에 있는 보스톤까지 직항하는 비행기가 없어서
적어도 한번은 환승(transfer)을 해야 했는데,
테러 사건으로 짐 검색절차가 강화되고 변경된 것도 있어서
평상시보다 좀 더 신경 쓸 일이 생겼습니다.


5. ON THE AIRPLANE

4살난 둘째 아이를 아이 이모에게 맡기고
시국이 불안한 나라로 떠나려니
저는 여러 가지로 마음이 불편한 구석이 있었지만
아이는 마냥 들떠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하였습니다.
아이의 기뻐하는 이유가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데
벌써 '학교' 라는 곳이 안 갈 수 있으면 더욱 좋은 곳으로 되어버렸나봅니다.

여행을 준비하며 제가 걱정했던 점들은

1. 기나긴 비행 시간에 아이가 지치고 힘들어 하는 것,
2. 아이나 제가 아프거나 다치는 것,
3. 영어실력 '꽝'인- 특히 Listening Comprehension- 제가 '미국 영어'의 본토에서 어떻게
Survival English 라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4. 또다른 테러, 미국내나 세계 정세가 급변하여 한동안 집에 못 돌아오는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쳐진 가공할 만한 테러의 장면에 놀란 가슴을
채 다스릴 새도 없이 '일'이 난 곳으로 가려니 생각이 복잡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걱정했던 여러 가지 것들 중
현실로 나타난 것은 3번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건
비행기 승무원들의 기내 고객 응대 영어라는 것이
어느정도 판에 박힌 것들이어서
예상 문제를 알고 답을 푸는 것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이지만 유럽 여행과 괌 여행등의 경험은
첫 미국 여행에 조금은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아이에게 스튜어디스의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라고 했지만
아이는 어색한지 "엄마가 해~" 하고 슬쩍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기장의 출발전 Anouncement 나 간간이 나오는 기내 안내 방송을 제외하고
( 이건 못 알아들어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비행 중 승무원들에게 들은 말 중 가장 긴 것은
" What would you like to drink ? " 였습니다.

승무원들이 하는 말들은 열손가락안에 꼽을 정도였고
그나마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완벽한 문장으로 하는 경우보다는
외마디인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 Headset, Headset " ( 헤드폰 받으세요, 헤드폰 받으세요)
" Chiken or Beef ?" ( 닭고기 드시겠습니까?, 쇠고기 드시겠습니까?)
"Green Tea, Green Tea,/English Tea, English Tea."
( 녹차 드실 분, 녹차 드실 분 / 홍차 드실 분, 홍차 드실 분)
" Coffee ?, Coffee ?" ( 커피 드시겠습니까?)
" Hot towel, Hot towel." ( 뜨거운 물수건 받으세요)

이런 것들도 구체적 사물을 앞에두고 있고 상황이 명백하기 때문에
전혀 영어를 못 알아 들어도 상관없는 것들입니다.

테러의 여파인지 좌석이 많이 비어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고도
아이는 베개와 담요로 요새(fortress)를 쌓거나
앞좌석과 뒷좌석에 담요를 걸쳐서 텐트를 치거나 해서
몇시간을 땀까지 뻘뻘 흘리며 놀이에 열중했고,

잠잘 때는 팔걸이를 뒤로 제쳐
여러 의자에 걸쳐 다리까지 뻗고 잘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조금 지루해 할 즈음
미리 사서 미 공개 상태로 두었던 읽는 재미( 삼성 출판사) 책 4권을
짜잔~( Surprise ! ) 하고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아이는 끼야호~ 하며 책들을 읽었는데
너무 얇은 책들이라 단 숨에 읽어 버리긴 했지만
오고 가는 비행기 안에서 아이가 여러 번 읽었습니다.

특히, [세계의 축제]- 중국의 춘절, 미국등의 할로윈 등 여러 나라의 축제를 소개-
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갈 때 두 번 비행기를 탔는데,
두 번 다 '슈렉'을 틀어주어서,
이미 본 영화였지만 아이와 저는 나란히 헤드폰을 끼고 영화를 보았습니다.

세 번이나 반복해 보았더니
안들리던 부분이 점점 더 많이 들렸습니다.
( 역시 반복의 효과는 컸습니다)

좋은 좌석 배정 받으려고 출발 시각 4시간 전에 공항에 간 보람이 있어서
앞좌석 복도쪽에 앉아갔더니 화장실 들락거리기도 편했고
미리 생각 못했던건데, 대형 스크린을 볼 수 있는 자리여서
슈렉, 크로커다일 던디 등의 영화를 보며
지루한 시간들을 훌쩍 뛰어 넘을 수 있었습니다.



4. MAKING A CALL

환승할 때 baggage check를 다시 해야했고,
게이트가 한 번 바뀌는등의( 나중에 알고 보니 예사로 있는 일) 이유로 긴장하고 있는데
동생네가 알려준 prepay phone card number 는 자꾸 wrong number 라고 하여
카드를 포기하고 동전 넣는 전화기로 동생네 전화번호를 눌렀더니
( 미국내라도 워낙 넓어서 그런지
전화거는 위치에서 일정 지역을 넘는 곳은 앞에 1번을 먼저 눌러야 한다는 것도
여러번의 실패 끝에 알아냈습니다)

"Please deposit 4 dollars and 85 cents for three minutes talk, thank you."
이런 메시지가 들렸습니다.
( 아마도 이런 문장이었다고 기억됩니다)

'허! 전화 한통화에 4달러 85센트?( 1달러가 1,300원 좀 넘는데)
그것도 동전으로 언제 4달러 85센트를 넣는다냐?'
하며 당황해하고 있는데

옆에 미국에 사는 한국 아줌마로 보이는 아줌마를 발견하고( 어찌나 반갑던지)
도움을 청해 그 아주머니의 전화카드 번호를 입력하여
겨우 동생과의 통화에 성공하고는
식은 땀을 닦으며

' 휴우~ 이렇게 전화 한 통화도 제대로 못 걸고
어떻게 미국땅에서 survival 할꼬'
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아주머니께 들은 이야기로는
미국은 워낙 넓고 장거리 통화료가 비싸서
동전 넣는 공중 전화로 장거리 전화를 하기는 힘들고
대개 미리 돈을 낸 일종의 선불 전화카드의 카드 번호를 입력하거나
전화카드( 우리나라것과 마찬가지) 를 사용하여 전화통화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6. DILAY AND NICE STUARDESS

샌프란시스코에서 환승 비행기에 올라 탔는데
출발 시간이 지나도 출발을 안하더니
기장이 안내 방송으로 뭔가 ' mechanlcal problem' 이 있어서 출발 시간이
한 시간 정도 지연된다고 하는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긴장하고 있는데,
이미 승객들이 자리잡고 앉아 있는 상태에서
엔지니어들이 들락거리며 비상시 사용하는 문짝을 뜯어내어
손보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은근히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비행기에
나이가 지긋해보이지만 스타일이 멋있는 스튜어디스 한 분이
(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승객들 좌석을 돌며 일일이 상황 설명을 해주시는데

사실을 정확히 설명하면서도 안심을 시켜주는 성실한 설명에
( 제 듣기 능력이 형편 없어 몇 개의 clue가 되는 단어들로
어렵사리 유추한겁니다.)
정말 '프로'의 향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런 '출발 지연'이 일상적인 일인지
승객들 교양이 높은건지
승객들은 각자 책을 보거나 노트북을 두드리며
각자 자리에 앉아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연을 보상해주는 항공권 할인 쿠폰 두장에 위로를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했습니다.

7. RENDEZVOUS

어찌되었건 비행기는 떠서, 현지 시각으로 새벽 1시 55분에
드디어 보스톤 로간 공항( Rogan International Airport) 에 도착했습니다.
( 테러에 이용되었던 비행기들 중 두 대가 이 공항에서 떴습니다)

현지에 사시는 도련님과
도련님 장가보내기 작전 중인 시어머님께서 마중을 나오셨습니다.

도련님 차에 올라 탔는데,
엉덩이가 점점 뜨끈해지며 더워지길래
장시간의 비행으로 몸이 안 좋아져서 열이나나? 하고 생각했더니
좌석에 히팅이 되는 차였다고 하더군요.

" 좋은 차네요"
했더니,
"렉서스( LEXUS)를 보고 '그냥' 좋다고 하시면 곤란하죠~"
하고 시동생이 좀 서운해했습니다.

미국 사람들도 렉서스 한번 타 보는게 소원이라고 할 정도로
좋은 차라고 하는걸 나중에 들어 알게 되었지만

'차'란 그저 굴러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제가
사귀는 여자도 없이 사는 낙이라고는 차에 투자하는 것 뿐인 도련님께
맞장구를 확실히 못 쳐드려서 좀 미안했습니다.

" 사실, 여자보다 차가 더 필요하고 더 좋아요. 남자들 대개 그럴걸요?"
하시며 시대에 맞지않는 말씀을 하시길래

" 요즘 세상에 그렇게 사셨다간
어떤 여자한테건 내침을 당하실텐데요"
하고 난정이 버전으로 일침을 놓아주었습니다.

시어머님께서 서운해 하시는걸 애써 모르는 척하고

미국에서 '가장 최초'의 것들이 많은 보스톤답게
구획이 엉망인( 익숙해지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릴 듯 한)
구불구불한 도로를 1시간 정도 달려 새벽 세시에
동생네 집에 도착하여

길고도 지루한 하루를 접었습니다.

8. MY SISTER'S PLACE

아이는 흥분했는지 이른 아침에 일어나 이모집을 탐색하였습니다.
( 사실, 한국과는 낮과 밤이 완전히 뒤바뀐 곳이니 그럴만도 하겠지요)

아래층에 거실과 부엌, 윗층에 침실 하나와 욕실 하나가 전부인
탐색할 것도 없어보이는 집이었지만 아이는 이 낯선 집을
탐색하며 들떠있었습니다.

이렇게 단촐해 보이는 집이지만
한 달 렌트비는 무려 1,000불
( 이보다 더 좁지만 집세가 비싼 동네의 방 한칸짜리 도련님 집은 1200불.)

미국 사람들 대개는 평생 월급 받아서 집세 내고 세금내고
허덕이고 살다가 죽는거라는 얘기가 실감났습니다.

미국의 집들은 전부 카페트가 깔려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동생네 집은 바닥이 마루였고 게다가 바닥 난방까지(현관과 욕실바닥까지)
된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카페트 깔린 집보다는 마루바닥 집이 더 고급에 속하고 렌트비도 비싸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
우리 '구들장'과 '아궁이'를 보면 꽤나 놀라겠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구들장과 아궁이는 아니더라도 카페트가 아닌 마루바닥인 것이 아주 맘에 들었습니다.

영어학원에 갈 시간이 되었다는 동생에게
언니가 왔는데 어딜가냐며 붙잡아 앉혀놓고 얘기를 나누다가
동생이 식사 준비하는 틈을 타서
인터넷에 접속하여 '쑥쑥'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나왔습니다.

인터넷,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정~말 훌륭한 발명입니다.

동생네가 사는 아파트( 이런 걸 '플랫'-FLAT이라고 하나봅니다) 단지는
한 회사에서 운영하는
아주 넓은 단지로 참 평화로운 풍경을 가진 동네였습니다.

한 건물에 3~5가구 정도씩 있었고
이층으로 되어 있었지만 한 집이 이층씩이고 집위의 집은 없었습니다.

집집마다 벌써 할로윈 장식이나
심지어 크리스마스 장식까지 해놓았습니다.

미국인들이 할로윈을 어떻게 지내는지 보면 좋을텐데
할로윈 전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가을비가 고즈넉하게 내리는 동네를
운전 경력이 별로 없는 동생이 어정쩡하니 운전하는 차로
천천히 돌아다녀보았습니다.

좀 '있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더니
집들이 나무나 풀밭 등 주변과 다른 집들과의 조화를 깨지 않으면서도
저마다의 개성이 있어서
내 손으로 내가 살 집을 짓는게 인생의 목표중 하나인 저는
열심히 그 집들을 &#54995;어보았습니다.

차선이 이차선을 넘는 경우가 별로 없고, 도로도 좁고 구불구불하고
통행차량도 많은데다 곡선형 교차로(CIRCLE)가 많아서
도로가 상당히 복잡하게 느껴졌습니다.

신호등들이 전깃줄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모습도 이채로왔습니다.

집에 오던중 들린 슈퍼마켓에서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여
계산보조원 중 한 아가씨에게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더니
눈이 큰 그 아가씨는 멀뚱멀뚱 쳐다만 보는 것이었습니다.

헉! 이 간단한 영어를... 내 발음이 그렇게 엉망이란 말인가? 하며 아뜩해지는데
계산원 할머니가 아주 친절하게 ( 너무 친절해서 다 못 알아 들었음 ㅠㅠ)
찾아가기 복잡했던 지하의 직원용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주었습니다.

알고보니 미국에 산다고 다 영어를 할 줄 아는 것은 아니랍니다.

미국에는 단순 노무직등의 일자리를 찾아 남미등에서 온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3주동안 쇼핑몰등에 < NOW HIRING > 이라는 문구가 걸려있는 걸 많이 보았습니다.

'기회의 땅'이라는 미국,
그러나 더 이상 올라갈데가 없는, 그 높이가 너무 낮고 불안정한 그런 '기회'라는 것들이
밀입국이나 불법체류라도 불사할정도로,
가족과 익숙한 생활의 터전을 버리고 올 정도로
그리 절실하고 가치있는 것일까? 하는
답이 없는 질문도 해 보았습니다.

저녁에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동양식품 전문 가게라는
'Reliable store'에도 가 보았습니다.

현지의 한국인들에게 '김치'는 끊을래랴 끊을 수 없는 것이어서
'김치' 하나를 사러 한시간 이상씩 차를 몰고 가는 것은 예사랍니다.

그런데,미국에서 파는 김치는 참 맛있었습니다.

동생이 학원가는 것을 계속 못가게 할 순 없어서 학원에 보내고,
( 동생에겐 영어가 얼마나 절실하겠습니까?)
우리 아이와 두 돌된 조카를 데리고
초가을의 햇볕이 기분좋게 내리쬐는 집 주위 풀밭길을 산책하였습니다.

도토리 나무가 아주 많아서 바닥엔 도토리 천지였고
우리 나라 다람쥐보다 훨씬 큰 회색 다람쥐들과
너무 새까매서 무섭기까지 한 까마귀들이
지나치게 평화로운 마을의 정적을 간간이 깨주었습니다.

이 집 저 집에서 집밖에 내놓은 리틀타익스,피셔프라이스 등의
미끄럼틀이나 미니풀, 자전거등이 집에 두고 온 작은 아이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9. MUSEUM

1) The Children's Museum

우리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곳입니다.

롯데 월드 건너편의 삼성 어린이 박물관과 같은
어린이 박물관입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한 곳은 Arther's World 였습니다.
아서와 도라(DW)의 집과 부엌, 교실처럼 꾸며져있는
코너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기존의 건물을 리노베이션하여 만든
박물관 옥상에는 멀리서도 어린이 박물관임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거대한 아서 풍선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Grandparent's Attic 에서
옛날 미국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이 입던 옷들도 입어보고

Supermercado( 시장 놀이 코너)에서
좋아하지만 엄마가 잘 해주지 않는 소세지( 플라스틱 모형)도
마음껏 집어서 저울에 달아보고,

핼멧(helmet)쓰고 암벽등반도 해보고,
고글(goggle) 쓰고 끌(chisel)로 목각도 다듬어보고,

Science Playground의
서로 다른 경사면에서 쇠구슬도 굴려보고,
여러 가지 뜰채와 도구로 비누방울도 만들고,
거대한 비누막 표면의 환상적 색깔의 소용돌이 등에 탄성을 지르며

8살짜리 우리 아이와 3살짜리 조카는
머리카락이 촉촉히 젖도록 열중하며 놀았습니다.

토마스 비디오를 하루에 세 번은 보는
'기차광'인 조카 녀석은
커다란 놀이용 기차 레일에서 나오려 하질 않았습니다.

한 개에 우리돈으로 15,000원 이상가는
토마스, 퍼시, 헨리 등의 토마스 기차 시리즈( Brio 제품)들을 사모으느라
동생네 가계에 부담이 이만 저만이 아니랍니다.

연결부위가 고리가 아닌 자석으로 되어 있어서
소근육발달이 아직 미숙한 어린 아이들이
여러 기차들을 연결하며 가지고 놀기에 좋아보였습니다.

아침부터 서둘러서 갔건만
아쉬어하는 아이들을 달래며 밖으로 나와보니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습니다.

< 세계의 어린이 박물관 >

'어린이 박물관'이라는 개념 자체가 비교적 최근에 생긴 것이라
세계적으로 어린이 박물관의 수는 그리 많지 않고
그나마도 현재 어린이 박물관의 대다수가 미국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 보고 느끼려는 노력을 하는 부모들이 늘어감에 따라
어른을 위한 문화적 공간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들을 배려하는 시설이나
아주 어린 아이들도 즐길 수 있는 Interactive Area를 두려는 시도가
지난 몇 년간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어
세계적인 추세가 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삼성 어린이 박물관도 시설의 수준면에서는
보스톤 어린이 박물관에 결코 뒤지지 않고 오히려 앞섰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만,
보스톤의 이곳 저곳을 다녀본 공통된 느낌인데

인구 밀도가 높은 우리에 비해
여러 시설과 장소에 접근이 용이하고
더 오랜 시간 충분히 이용해볼 수 있다는 점이 달랐고

그 점이 부러웠습니다.

시설이나 규모면에서 우리의 삼성 어린이 박물관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할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로 세계의 다른 어린이 박물관들의 웹사이트 주소를 올리니
한번 가보십시오. ( 사이트 주소를 클릭하시면 이동합니다)

<미국>

* The children's Museum of Denver
<a href="http://www.cmdenver.org"><font color="green">www.cmdenver.org</font></a>

* The children's Museum of Utah (Salt Lake City)
<a href="http://www.childmuseum.org"><font color="green">www.childmuseum.org</font></a>

* Chicago children's Museum
<a href="http://www.chichildrensmuseum.org"><font color="green">
www.chichildrensmuseum.org </font></a>

* The children's Museum of Indianapolis
<a href="http://www.childrensmuseum.org"><font color="green">www.childrensmuseum.org
</font></a>

* Minnesota children's Museum ( St. Paul)
<a href="http://www.mcm.org"><font color="green">www.mcm.org</font></a>

* The children's Museum Boston
<a href="http://www.bostonkids.org"><font color="green">www.bostonkids.org</font></a>

* Children's Museum of Manhattan
<a href="http://www.cmom.org"><font color="green">www.cmom.org</font></a>


< 한국>

* 삼성 어린이 박물관 (서울)
<a href="http://www.samsungkids.org"><font color="green">www.samsungkids.org</font></a>



< 오스트리아>

* Zoom Kindermuseum at the Museum Museumsquartier (Vienna)
<a href="http://www.kindermuseum.at"><font color="green">www.kindermuseum.at</font></a>

< 캐나다>

* Musee Juste Pour Rire ( Montreal )
<a href="http://www.hahaha.com"><font color="green">www.hahaha.com</font></a>

* Science World British Columbia ( Vancouver )
<a href="http://www.scienceworld.bc.ca"><font
color="green">www.scienceworld.bc.ca</font></a>

< 영국 >

* Eureka! The Museum for children( Halifax, West Yorkshore )
<a href="http://www.eureka.org.uk"><font color="green">www.eureka.org.uk</font></a>


2) Museum of Science

보스톤 과학 박물관의 모토(Motto)는
근래의 박물관 전시 트렌드를 반영한 듯
'Touch it , Feel it, Live it" 이었습니다.

그저 눈으로 보고 지나가는 전시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손으로 조작해보며 체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전시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박제동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만 봐도
자연에서 그 동물들이 사는 환경처럼 꾸며 놓은 세트와 함께 전시해 놓았는데,
헤드폰으로 자연음향과 동물들의 울음소리등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버튼을 누르면 그 환경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까지 맡을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여러 종류의 바다새들이
바닷가에서 하늘을 날기도 하고 모래사장이나 바위위에 앉아있기도 한 전시 세트에는
새의 이름이 써 있는 각각의 버튼을 누르면 해당하는 새에게 조명이 비춰져서
여러 종류의 새를 이름과 함께 구별하여 익힐 수 있고,
헤드폰을 이용하여( 유료 대여) 철썩거리는 파도소리와 함께
각종 새들의 끼룩거림을 들으며
버튼을 누르면 짭조롬하고 비릿한 갯내음을 맡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실제 자연에서 느껴볼 수 있는
여러 냄새들이 조화를 이룬 부드러운 냄새가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강렬한 냄새라서 다소 역겹기도 한 냄새들이었는데

아이는 "읔!" 하고 코를 감싸 쥐면서도 하나하나 다 냄새를 맡아보았습니다.

시간에 따라 여러 가지 ' 사이언스 쇼'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 중 'Lighting Show'를 보기로 하였습니다.

쇼의 진행 내용은
예상&#54720;던 범위를 크게 넘지 않은 평범한 것이었지만

'나레이션'과 '시연'의 수준을 넘어
관객들을 긴장시키며 쇼에 집중하게 만들면서 긴장감있게 진행하는
진행자의 쇼맨쉽에 매료되었습니다.

볼 것은 너무 많았고 시간은 너무 부족했습니다.

아이를 재촉해가며 서둘렀지만
결국 다 보지 못했는데 박물관 문 닫을 시간이 되었다는 안내 방송이 들렸습니다.

아이는 아쉬워서 어쩔 줄 모르며
"엄마, 내일 또 오자"고 하는데
또 올 수 있는 시간이 날지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3) MUSEUM OF FINE ARTS

세계 4대 미술관 중의 하나라는 보스톤 미술관은
'기품'있는 전시와
건물로 들러싸인 , 작지만 아름다운 두군데의 정원이 인상적인 곳이었습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잘도 끌어모은 '약탈물'들을
그야말로 '전시'하듯 전시해 놓은 대영박물관과 루부르 박물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촐한 전시물들이지만( 그래도 하루종일 걸려 다 보지 못했습니다)

관람객의 시선과 동선의 높이와 흐름을 잘 배려한 듯한
아주 편안하고도 '품위있는 수수함'이 느껴졌습니다.

'우리 이렇게 그림 많아'하고 자랑하듯
큰~ 방의 사방 벽에 그림들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다닥다닥 붙여 숨막히게 걸어 놓았던 루브르와는 달리

전시 공간을 복도식으로 디자인해 놓은 곳이 많아서
복도 한가운데를 걸어가며 양편의 전시물을
이쪽 저쪽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감상할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복도식으로 된 미로같은 전시 공간들을 하나씩 지나
다음 전시공간으로 향할 때마다
아직 보지 않은 공간에 대한 신비감과 궁금함이 생깁니다.

대영박물관에서는
계단과 계단 사이의 공간이라도 차지하고 있던
한국 전시 코너가 이 곳에선
아예 있지도 않았습니다.

시어머니께서
" 이상하다. 작년에 왔을 때는 분명히 있었는데~ " 하십니다.

미국사람들이
중국,일본,인도네시아,아프리카가 아닌
'한국의 신비'엔 관심이 없는가 봅니다.


10. BUS & SUBWAY ( T )

대개의 사람들이 차를 몰고 다닌다는 가정하에 버스나 전철이 운행되고 있어서
아침 저녁 러시아워때만 이삼십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나머지 시간에는 1시간이나 두시간에 한 대씩 오기 때문에
버스 시간을 놓치지 않도록 조심해야했습니다.

진정한 미국인이라면
차를 타고 가면서 던킨 커피도 마시고 신문도 보며
DRIVE THRU 가게에서 차에 탄 채 물건을 살 수도 있어야 한다고 하니
듣던대로 미국인들의 생활에서 '차'를 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인가봅니다.

제가 느끼기에도 처음 미국에 살기 시작한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영어'보다 오히려 '차를 운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스톤같은 대도시들은 전철이 있지만,
대개의 미국의 다른 도시들은 전철이 없기 때문에
차가 없으면 그야말로 집이 '철창없는 감옥'이 되어버립니다.

동생네와 동네의 다른 아이엄마와 함께 '퀸시 마켓'이라는 곳을 갈 때
처음으로 전철과 버스를 타보았습니다.

차가 없기도 하고 ( 남편들이 몰고 나갔으므로)
주변 지리에도, 차 운전에도 익숙치 못한 세 엄마와 세 아이들은
버스타고 전철타고 흔들흔들~ 퀸시마켓까지 갔습니다.

버스비는 어른이 75센트, 아이는 35센트로 한국보다 많이 비쌌습니다.

보스톤은 미국내에서 가장 물가가 높은 '베스트 5'에 드는 도시라고 합니다.

덩치가 남자못지않은 버스 기사 아줌마는 너무 멋졌습니다.

전철운전 기사중에도 여성기사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도 버스 탈 기회가 그다지 없었던 우리 아이는
이국땅에서의 버스타기에 신이 났습니다.

버스 정거장이나 지하철 출입구, 지하철 토큰(1달러)에는 모두 T 라고 써 있었고
이 곳에선 지하철도 subway 보다는 그냥 ' T ' 라고 한답니다.

미국에서 가장 먼저 전철이 생겼다는 보스톤의
전철 시스템을 이해하는데 며칠 걸렸는데
우리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지하로도 간다는 것뿐
전철이라기보다는 '전차'가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터거덕 터거덕~ 터거덕 터거덕~'하고 달리는게 완행 열차를 연상시킵니다.

2량 또는 많아야 3량정도의 열차는 귀엽기까지하고
지상 도로를 운행할 때는 도로상에 레일이 있어서
다른 차들과 마찬가지로 도로 신호체계에 따라 운행하며
앞에 차가 지나가면 멈추기까지 해야합니다.

요금은 우리처럼 거리구간에 따라 다르지 않고
타는 '역'마다 1$ ~ 2$까지( 정말 비쌉니다) 차이가 납니다.

우리 아이는 운임료가 얼마냐고 역무원에게 물었더니
나이도 안 물어보고 공짜라고 해서 며칠 그냥 탔는데
( 역무원 부스 바로 앞에 있는 개찰구는
정기권등을 가진 사람이나 어린 아이들이 그냥 탈 수 있도록 되어 있음)
나중에 여유가 나서 요금 체계표를 읽어보니
5세 이하가 무료였습니다.

그 역무원이
키 작고 덩치작은 동양아이인 우리 아이를
5세이하라고 ( 우리 나이로는 6,7살) 본겁니다.

전철은 시내 방향으로 가는 Inbound 와
시외 방향으로 가는 outbound 로 나누어 지는데
outbound 방향의 어느 역부터는 요금이 무료인 곳도 있고
아무튼 전철 운영체계를 이해하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그리고 안내 방송을 알아 듣는데도 이틀정도는 걸렸습니다.
( 처음엔 안내 방송이 안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ㅠㅠ)

우리나라 전철처럼 정확한 발음과 적절한 말속도로
" 다음 정차할 역은 군자, 군자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계속해서 온수, 고속터미널이나 장암, 노원 방면으로 가실 분은
이번 역에서 하차하여 7호선으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자상하게 안내하는 방송도 없었고,

전광판 문자 안내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비교적 최근에 생긴 Red Line 의 몇몇 차에는 전광판이 있었음)
운전기사가 외마디로 정차할 역을 한 번( 가끔씩은 두 번) 말해주는게 전부인데다

역마다 전역과 다음역을 표기해 놓은 우리와는 달리
딱 그 역명만 포기되어 있어서
영어 귀머거리나 다름없는 초행자인 저는
노선도를 열심히 보며
제대로 안 들리는 기사의 안내 방송에 귀기울여야 했습니다.

전철에 타서 '사람구경'을 했습니다.

그먀말로 '인종 박물관' 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철안에서
우리와는 좀 다른 그들의 문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 자리를 내드리는 것은 우리와 비슷했지만
서울 전철에선 우리 아이 정도의 아이에게 자리를 내주는 경우는 별로 못보았는데
그 곳 사람들은 아이에게 자리를 내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가장 특이하게 보여졌던 것은
두 사람의 일행이 같이 타서 한 사람은 앉고 한 사람은 서서
대화를 하는 경우
편하게 대화하라는 배려인지 서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는 경우였습니다.

우리 아이가 자리에 앉고, 제가 서서 아이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도
제가 아무리 "It's OK" 해도 저에게 자리를 내 주었습니다.

남의 자리 빼았는 것 같아 민망해진 저는
아이가 앉고 제가 서있을 때
아이와 얘기를 안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자리를 내 주었습니다.

전철 차량이나 역사, 운영의 현대적인 면은 우리가 여러 수 위였지만
대화하는 사람들과 아이에 대한 배려는 그들이 우리보다 한 수 위였습니다.

삼일 정도 되어 버스와 전철타기에 어느정도 익숙해져 여유가 생기니
버스나 전철 안의 광고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특정 상품에 대한 광고보다는
기업 광고나 공익 광고, 대학 광고등이 많았습니다.

그 중 제 눈을 가장 잡아끌었던 것은
흑인 여자의 흑백사진과 함께 실린 공익광고였습니다.

'One crime was worse than Her rape.
Being told it was her falt.'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역시 흑인 모녀의 흑백 사진과 함께 있는
( 흑인 모녀의 흑백사진, 백인 모녀의 칼라사진보다 훨씬 감동적이었습니다.)
청소년의 탈선에 관한 글들도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제가 영어 원문을 외우기엔 무리인
10줄도 넘어보이는
청소년 탈선에 관한 글들이었는데
( 하나같이 명문장들이었는데, 베껴왔으면 좋았을텐데...)

글의 마지막쯤,
부모와의 대화 채널이 있는 아이들은
도처에 널려있는 성적 유혹에도 쉽사리 빠지지 않는다는 내용 끝에

" Communication is Protection"
이라는 마지막 문구가 그 앞의 긴 글들을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하여
제 머리에 딱 꽂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강간이나 청소년 탈선등에 관한 이러한 논의들은
아주 생소한 것들도 아니고
많이 이야기되어졌고 생각해보았던 문제들입니다.

하지만
짧으면서도 그래서 더 강렬하고 파워있게 느껴지는
이런 문장들의 매력에 전율하게 됩니다.

'내게 광고 카피라이터의 재능이 있다면.....'

그리고 또하나 눈에 띄었던 광고는
'아기 바로 재우기 운동 본부'같은 곳에서 낸 것 같은 광고였는데

"Please, put your baby to sleep on it's back.
Face up to wake up."

저도 아이 뒤통수 이쁘게 한다고 엎어재우다가 ,
영아 돌연사 사망률이 높다는 말에 놀라서
바로 뉘였다가,

별로 상관없다더라는 말에 또 엎었다가,

아이를 엎었다 뒤집었다 했던 큰 아이때의 일이 생각나서
웃음도 나왔습니다.

둘째 아이는 니 마음대로 자라 하고 그냥 놔 두었는데
전전긍긍 엎었다 뒤집었다 했던 언니보다 더 짱구입니다.

버스나 전철을 타서 지하를 달릴 때면
달리 할 일도 없고 해서
광고 등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문장 하나에도 '각운'( Rhyme)등의 리듬요소를 고려한 흔적이 보이는
글들이 많아서 흥미로웠습니다.

11. QUINCY MARKET & HORBOR

여행 책자에도 대단하게 설명되어 있던 퀸시마켓을 갔습니다.

그러나 왁자지껄한 원초적인 시장 풍경을 예상하고 갔던 우리들은

내부 건물에 있는, 지나치게 깔끔해서 매력이 없는 먹거리 장터와
건물 외부의 양쪽에 있는, 동일한 디자인의 역시 지나치게 깔끔한 마차 모양 노점들을 보고
좀 실망했습니다.

이 사람들한테 우리 남대문 시장을 보여주면 엄청 놀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정도를 그렇게 요란하게 서술해 놓았다니
여행 책자의 설명들을 반 정도만 믿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스톤 거주 4년차인 도련님도
미국인들은 별거 아닌 것도 관광 상품화해 놓아서
안내 책자만 믿고 가보면 실망스럽고 시간과 돈이 아까운 경우가 꽤 많다고 합니다.

우리의 기대가 너무 큰건지
그네들은 사소한 것들에도 크게 감탄하는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관광 상품 개발에 너무 소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퀸시마켓에 느낀 불만은
조금 더 걸어서 그림같은 바다 풍경이 나오자
조금은 보상이 되었습니다.

항구의 질펀함은 없었지만
모두 하얗게 칠을 한 배들이 나란히 묶여있는 풍경과
푸른 바다위에 점점이 떠 있는 하얀색 요트들이 가슴과 눈을 시원~하게 해 주었습니다.

항구 가까이에 Aquarium 도 있었지만
우리 나라의 코엑스 아쿠아리움을 본 사람에게는 좀 시시할거라는 말에
항구 주위를 좀 더 산책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푸르르' 날아 왔는데
'포르르' 날아오는 우리 나라 참새에 비해 너무 뚱뚱한 참새였습니다.

미국엔 먹을게 넘쳐나서 거지라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더니
비둘기도 갈매기도 모두 건강이 지나쳤습니다.


12. BOSTON COMMON ( The first public park of America)

보스톤은 미국 건국사중 초창기에 형성된 도시라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들이 많습니다.

'보스톤 코먼'이라는 공원도 메사추세츠 주정부청사
바로 앞에 있는 미국 최초의 공원입니다.

영국 런던의 '하이드 파크' 분위기를 내려다 많이 못 미친듯한 분위기지만
편안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공원이었습니다.

다소 어설픈 유럽'풍'과 모던한 건물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높이 늘어선 도심 한복판에
이런 규모의 공원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공원도 큰 맘먹고 가야하는 우리네 사정으로서는
많이 부러웠습니다.

보스톤 코먼안에도 놀이터가 있었는데
우리 아이는 " 끼야아~ 놀이터다아~"하며 달려가서는
다른 곳에 가 보고 싶은 엄마의 욕심에는 개의치 않고
온갖 혈통의 아이들과 함께 섞여 잘도 놀았습니다.

오후가 되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는 이유로
아이를 달래서 놀이터를 빠져나와 공원을 한바퀴 둘러 보았습니다.

발목 만큼밖에 물이 차 있지 않은 'frog pond'라는 연못이 있었는데
한 쪽에 11월부터 야외 스케이트장으로 개방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아이는 11월에 또 보스톤에 오자고 합니다.
( 아이구 얘야, 9월에 미국왔다 11월에 또 올 정도의 '있는' 집이면
우리 집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지.....)

13. FREEDOM TRAIL

보스톤 코먼 공원 안에 있는 여행안내소에서부터 시작되는
20cm 정도 폭의 빨간선이 프리덤 트레일입니다.

여행 안내소에서 우리돈으로 15,000원 가량의
The Complete Guide to Boston's이라는 여행 안내 책자를 샀는데
그 책자에
이 빨간선만 따라가다보면
보스톤 다운타운 주변의 주요명소들을 거칠 수 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요 명소'란
건물의 외관이나 주변 풍광을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니라
보스톤 시민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혁명과 독립'의 투쟁사의 의미가 깃든 곳들이 많았으므로

보스톤 시민만큼의 뼛속부터의 자랑스러움을 가지고 있을리 만무한,
그리고 미리 공부조차 하지 않고 무작정 프리덤 트레일을 따라가고 있는
한국의 무지한 여행자에게는
그저 명동과 종로거리를 휘이 둘러보는 이상의 감흥을 주지 못했습니다.

책자에서 대단히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는 교회 건물들도
노틀담 성당이나 쾰른 성당을 본 사람에게는
시골의 소박한 교회보다도
더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부정했던 그 '영국'이
그들이 세운 건물들과 시계탑속에 어설프게 모방되어져 있었습니다.

'식민'이란 이렇게 증하고도 질긴 것인가 봅니다.

14. PLIMOTH PLANTATION & MAYFLOWER

Plimoth Plantation 은
우리 나라의 민속촌쯤에 해당하는 곳으로
1920년 종교의 자유를 찾아 Mayflower 호를 타고
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들이 영주를 시작한 곳입니다.

추위와 극심한 식량난으로 첫해 겨울에 반수 정도의 사람들이 죽었고
다음해 가을에는 마사카이토족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풍부한 수확을 해서
인디언들과 함께 감사제를 한 것이 Thanksgiving 의 시초라고 하지요.

플리모스(Plimoth)라는 곳은
보스톤에서 동남쪽으로 40마일 떨어진 곳으로
바닷가 아주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살던 집들과 텃밭등의 풍경을 재현해 놓았고
각 집에는 그 당시 청교도(Pilgrim)들의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당시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며 설명도 해주었습니다.

집집마다 있는 텃밭에는 당시의 작물들을
현재도 재배하고 있었습니다.

집들의 기본적 구조는 거의 같았습니다.

긴 풀을 엮어 만든 지붕과 나무판자들을 대어 만든 벽,
모닥불에 커다란 포트 하나 걸쳐 있고, 위로 하늘이 보이는 굴뚝,
흙바닥에 놓인 침대와 그 옆에 놓인 아기요람.

저렇게 작은 요람에 뉘인 아이와 함께 했을 그들의 고단한 삶이
제 가슴을 조금 아프게 했습니다.

아기 요람이 또 집에 두고 온 아이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현재 사용하는 언어로 굳이 형태를 분류하자면
'통나무 원룸'이 되겠지만
통나무집의 낭만과도 원룸의 세련됨과도 거리가 먼

자고, 먹고,
이렇게 가장 기본적인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더 이상 간결할 수 없는 집과 살림살이였습니다.

마침 점심식사 때라 그런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먹고 있는 것이
당시의 사람들이 먹었던 형태의 음식이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렇다고 합니다.
( 이거 제대로 된 영어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뒤죽박죽 질문을
용케도 알아듣고 대답해줍니다)

'양파덮밥'정도로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은 음식으로
양파와 쌀밖에 보이지 않는 '척박함'이 느껴지는 음식이었습니다.

제주도 민속촌의 '막살이 집'에서도 느꼈었던
이 '척박함'은
오래도록 무겁게 눌러 앉아 날리지도 않을 것 같은 먼지와 함께
침대에서도, 거의 세숫대야만한 놋쇠접시에서도,
하늘이 보이는 굴뚝에서도, 벽에 걸린 양파자루에서도 느껴졌습니다.

우리 아이가
"엄마, 침대가 왜 이렇게 작아요?"
하고 물어보는데,
정말 웬만한 남자 어른들은 다리가 침대 밖으로 나올 것 같이
침대가 작았습니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마리 앙뜨와네뜨의 침대를 봐도 그렇고
제주도 막살이 집의 방을 봐도 그렇고,
이 곳 Pilgrim Village의 침대 크기를 봐도 그렇고
옛날 사람들은 지금 사람들보다 키가 많이 작았었나 봄니다.

필그림 빌리지를 지나 조금 걸으니
당시 살던 인디언들의 마을을 재현한 곳에 이르렀습니다.

필그림 마을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주거 형태를 보여주는
지붕에서부터 벽,문까지 온통 나무껍질로 된 집들과 당시 생활 풍경을 재현해 놓았고,

당시 원주민 인디언 차림을 한 사람들이
모닥불 피워 바비큐 하기, 돌을 깎아 펜던트 만들기, 동물의 가죽 손질하기등
당시의 생활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습니다.

플리모스 플랜테이션에서 조금 떨어진 바닷가에
실제 메이플라워 호와 같은 모양과 크기로
복원(Reproduction)된 '메이플라워호 2'가 있었는데,

실제 메이플라워 호는
청교도들이 미국땅에 왔던 1620년 다음해에
영국으로 돌아갔고, 몇 년후 기록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 배에 127명이 타고 왔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배의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고,

배의 옆면에 뚫린 구멍으로 바깥을 향해 있는 대포들이
목숨과 운명을 걸고 왔을 사람들의 '삶의 절박함'을 말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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