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한 보스톤 여행 17일 (2편) 2001-10-3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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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LUXURY MANSIONS IN NEWPORT

뉴포트라는 곳은
옛날 식민시대 부호들의 호화로운 대저택들로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미국은 워낙 상속세가 비싸서
관리유지도 힘든 옛 대저택들의 상속을 포기하고
시나 주 정부에 헌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헌납된 대저택들은 박물관으로 개조되거나
관광객들에게 유료로 개방되고 있었습니다.

그 넓은 대저택들이 한 두군데도 아니고
다 보고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라서
가장 유명하다는 Brakers 라는 곳만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브레이커스라는 곳은
뉴욕 센트럴 철도를 소유한 철도왕 Vanderbilt 2세가
16세기 이탈리아 궁전양식을 모방하여 지은
방이 70개 정도되는 대저택입니다.

'이래도 안 놀랠래?' 하듯이 호화사치의 극치를 보여주는 내부 장식에
방에 인터폰 역할을 했던 전화기까지 있어서 놀랐습니다.

Grate Hall 이라는 곳은
그 중에서도 가장 호사스럽게 치장되어 있었는데
방 거의 전체를 황금색으로 칠해 놓았습니다.

'이거 다 진짜 금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안내원이 제 생각을 궤뚫어 보기라도 한 듯
22k 금으로 칠이 되어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제가 너무 뻔하고 경박한 의문을 가졌었나봅니다)

사실 저도 옛날 호화 주택이라는 곳에 한번 가보자는 생각이었을 뿐
크게 관심이 가지는 않았지만
우리 아이의 무관심은 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정도였습니다.

어른들이 열심히 훓어보는 것들을 아이는 건성으로 보거나
아예 볼 생각은 안하고 출입금지용 금줄을 흔들며 놀거나 했습니다.

'야~ 가족 몇 사람이
가족보다 훨씬 많은 하인들 데리고 이리 넓은 집에서 살다니......
여기서 살던 사람들은 정말 행복했을까?,
호화롭긴 한데 여기서 살라고 하면 살고 싶지는 않군'
하고 생각하다,

이런 집에서 살게 된다면 좋을 것 같냐고 아이에게 물어보았더니

" 아니요, 여긴 장난감도 없고 게다가 책도 없어요.
그리구 내가 드레스 싫어하는거 엄마도 알잖아요"
하며 도리질을 합니다.

안내원의 설명 중 더 놀라운 것은 이게 주거용 집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글쎄, 이 큰~ 집이 '여름별장'이었답니다.

방이 백 몇십개가 넘는( 영어 숫자는 왜 그렇게 들어도 그림이 안 그려지는지),
평상시 살던 집은 뉴욕 근처에 따로 있답니다.

안내원의 안내를 따라 이방 저방 귀족들의 생활을 엿보는 일은
중반부터 이미 지루해졌지만

테라스로 나왔을 때 보이는 '바다'와 '바닷바람'은
정말 탐이 났습니다.

아이도
" 야아~,엄마 우리 이런 집으로 이사가자"
하며, 흥분하면 늘 그러듯이 펄쩍쩔쩍 뜁니다.

16. NEWYOLK

가을 단풍으로 유명하다는 화이트 마운틴과
힐러리가 나왔다는 대학 근처의 Apple Picking Farm에 가 보자는 동생,

보스톤까지 와서 뉴욕에 안 가볼 수 있냐며
'망가진 뉴욕' 에 한 번 가보자고 하시는 시어머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뉴욕'을 택했습니다.

사실 '망가진 뉴욕'이 궁금하기는 했습니다.

귀신 영화 볼 때 무섭다며 두 손으로 얼굴 가리고는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 볼거 다 보고야 마는 것처럼

남의 아픔과 불행의 현장을 '볼거리'로 삼아서야 되겠나 싶으면서도
참 궁금하기는 하였습니다.

주말을 이용해 도련님, 시어머님과 함께
새벽같이 뉴욕으로 향했습니다.

우리 아이는 '탈 것'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못 견뎌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는 10시간 이상이라도 즐거워했지만
전철이나 버스등에서는 조금 몸을 뒤틀고,
승용차 안에서는 10분을 못 넘기고
각종 증세를 호소합니다.

보스톤에서 뉴욕은
서울에서 부산 정도되는 거리라
아이는 아주 힘들어했습니다.

가는 내내
" 졸려~, 머리아파~ , 배아파~, 배고파~"
하더니,

급기야는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나를 버려줘어어어어~ 제바아알~"
하고 호소하는 바람에 저를 비롯한 어른 세명이
눈물이 날정도로 웃었습니다.

도련님께서
" 미국에서, 그것도 고속도로 한 복판에서 아이를 버렸다간
당장 police 가 떠서 너는 고아원 가고, 할머니, 삼촌, 엄마는 감옥에 간다고요."
하고 겁을 주었지만,

" 내가 내리고 싶어서 내린다는데,
나 혼자서도 살 수 있는데 police가 무슨 상관이야~"
하며 계속 어른들을 웃겼습니다.( 하하하!)

뉴욕엔
구겐하임 미술관, 자연사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미슬관등
가보고 싶은 곳이 참 많았지만,
1박2일 일정으로 아이와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기엔 무리라는 공통된 판단으로

Time Square, Broadway, Soho, Empire State Building등으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주말이라서 그런지
뉴욕으로 향하는 사랍들이 많기도 해서 뉴욕에 가는 길은 예상보다 멀었습니다.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 치열한 삶을 찾아 오는 사람들,
잡히지 않는 뭔가를 쫒아 오는 사람들,
'뉴욕엔 뭐가 있을까?'

집에가서 '첨밀밀'을 다시 보고싶어졌습니다.

맨하탄쪽으로 가는 모든 통로뿐만 아니라
뉴저지 쪽에서 자유의 여신상으로 갈 수 있는 배가 뜨는
리버티 파크도 닫혀 있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이 잘 보이고 사진구도도 좋아보이는 지점에서 차를 내려
대서양을 향해 있는 자유의 여신의 뒷모습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자기 자유만 자유고 남의자유는 뭉개버린 '미국'이 '공격'당하도록 놔두었으니
자유의 여신은 참 '자유의 여신'이군요.

허드슨 강변에
필시 맨하탄쪽이 잘 보이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대로

말로만 듣던 '허드슨 강' 건너편에
쌍둥이 빌딩이 빠진 '맨하탄'이 있었습니다.

63빌딩을 그 곳에 가져다 놓으면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 대단한 빌딩들이
저마다 '자기'를 드러내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빌딩들이 빛을 반사하는 소재들로 외장이 되어 있는지
가을 햇빛아래서 '맨하탄' 전체가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말없이 흐르는 허드슨 강변에 서서
말없는 맨하탄을 망연히 보고 있자니

'거 참 '기~묘'한 곳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대단한 입체감들을 가지는 빌딩들이 서 있을텐데
저마다 빛을 반사하고 있는 수많은 빌딩들이 싸구려 그림 액자속의 그것처럼
맨하탄 전체가 지극히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목구비 또렷한 신부가 지나치게 허옇게 신부화장을 하고서
예식장의 지나친 조명아래 서 있는것처럼
굴곡 많을 그 빌딩들의 이목구비는 온데 간데 없이
그저 허연 달덩이처럼 밋밋한 얼굴로 보여졌습니다.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뉴욕에서
차를 끌고 다니는 것은 현명치 못한 생각이라는 판단으로
뉴욕 외곽의 뉴저지 쪽 주차장에 차를 놓고,
기차를 타고(그곳에선 철도를 PATH라고 불렀습니다) 뉴욕에 들어가기로 하였습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33번가에서 기차를 내려
드디어 '뉴욕'에 입성하여 마음만 바쁜 우리 일행은
지도를 보며 생각했던 포인트를 찾아가 불이나게 셔터를 눌러대기 바빠서

이건 '구경'이 아니라 오리엔티어링(Orientiering) 대회라도 참가한
'정신없는 가족'처럼 보였습니다.

"뉴욕에서 뭘 보았니?"
하고 묻는다면, 이틀동안 거리만 헤매다닌 저로서는

"사람, 차, 빌딩" 이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차나 빌딩이 많은 것으로 치면,
서울도 빠지지 않지만
제가 가 본 그 어느 도시보다도
뉴욕엔 '사람'이 많았습니다.

사람, 사람, 사람.
' 아! 여기가 '뉴욕' 이구나.'

범죄율은 인구밀도에 비례하고
사람에 대한 예의는 인구밀도에 반비례한다더니,

보스톤 거리에서 수없이 들었던 "Excuse me."를
뉴욕에선 잘 들을 수 없었고,
사람들은 서로 어깨를 부딪치면서도 개의치 않고
거리의 사람들은 뭔가 모르게 약간씩 흥분된 상태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다가
'에구 이거 우리만 촌스럽게 구는거 아닌가? '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저마다 카메라나 캠코더 하나씩 들고
'뉴욕'을 저장하기에 바빴습니다.

주말의 뉴욕 거리엔 현지인보다 관광객이 더 많아보였습니다.

사람들 속에서 치이는 걸 잘 못하는 저는 조금씩 어지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걸어다니는게 아니라
발없는 귀신들처럼 스윽슥 휘익휙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고,

일반차보다 더 많은 노란 택시(Yellow Cap)들은
'뉴욕의 규칙'대로
경적을 울려대며 빨간불이든 파란 불이든 개의치 않고 성질을 부려대며
달렸고,

차들도 사람들도 신호등따위는 함께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타임스퀘어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과 차들은 점점 많아졌고
이젠 아예 사람과 차들이 제각각 '점'처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뒤엉켜 끈적~끈적~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타임스퀘어 한복판에서 이런 느낌은 극에 달하여
(묘한 형태의 교차로 한가운데, 섬처럼 달랑 떨어져 있는 곳에
이 곳이 타임 스퀘어임을 알려주는 표지판, 그 옆에 제가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차들의 flow'속에서
가만히 서있기만 하려고 해도 힘을 주고 서있어야 할 것 같았고,

계속 서있으려니

이 거대한 FLOW에 자이로스코프(Gyroscope)라도 비춰지는 것처럼,
사람들과 차들의 움직임이 순간 순간 단절되면서도 이어지는 것 같은
( 사이키 조명 아래서 사람들이 뒤엉켜 춤을 추어대는 것 같은)
'환상'마저 들었습니다.

사방에서 번쩍이는 네온사인 간판들과 전광판들
(특히 건물 전체를 뒤덮은 실린더 모양의 나스닥 전광판)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타임스퀘어에서도 이어지는 브로드 웨이 극장가에는
'The Phantom of The Opera'등 꿈에도 그리던 뮤지컬과 연극 간판들이 즐비했고
표를 사는 사람들과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들,
우리처럼 간판만 보며 벌어진 입 다물지 못하는 얼빠진 구경꾼들로 넘쳐났습니다.

한국에 와보니 LG 아트센터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공연한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습니다.

'비엔나에서도 못 보고, 뉴욕에서도 못 봤지만 서울에선 꼭 봐야지.' 다짐했습니다.

아스팔트로 뒤덮인 뉴욕의 가을은 이미 겨울 냄새가 나고 있었고,
대도시지만 오래된 도시답게 흙과 나무와 풀밭이 많은 보스톤보다
저녁 기온이 많이 쌀쌀해서

내일의 일정을 남겨두고 서둘러
뉴저지의 친구집으로 향했습니다.

17. MY FRIEND'S PLACE

대학교 2학년 때 캐나다로 이민가서
그곳에서 공부도 하고 장가도 가고 아이도 낳은 대학친구가
뉴저지에 살고 있습니다.

뉴욕 '바로 옆'이라던 친구의 집은
뉴욕에서부터 시속 120, 140km 로 달려서
1시간 30분정도 걸려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남동생이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바로 요~기야, 우리집 가자"하시는 친척분 따라나섰다가
차로 4시간을 달렸다며

" 누나, 미국에서 '바로 옆이야', '엎어지면 코 닿을데야' 이런 말 절대 믿지마"
했던 생각을 하면 1시간 30분 정도는
그야말로 'Just a stone's throw'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늦은 저녁 시간에 도착한 우리 일행을 친구 부부는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Home, Sweet Home'이 느껴지는 아늑한 집과 따뜻한 가족이었습니다.

대학생일 때 캐나다에 갔지만
처음에 고등학교 공부부터 시작한 친구는
컴퓨터쪽으로 전공을 바꿔 공부하였는데
컴퓨터 엔지니어의 수요가 많고 대우도 좋은 캐나다와 미국에서

우리 도련님과 마찬가지로
어느정도는 소위 말하는 '성공,이란게 보장되어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는 일이 비슷한 도련님과 친구는

요즘 미국이 불경기라 감원이 계속되고 있고
출장갔다 와보면 사라진 동료들이 있어서
'비애감'과 '불안함'이 느껴진다는 얘기며
언젠가는 '내 사업'을 할거라는 얘기들을 나누며

오랜만에 '한국말'로 밤이 깊은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습니다

오랜 이국생활로 쌓인게 많은 '남자'들의 수다는 아줌마 수다 못지않았습니다.

오랜 타국 생활로 외국인들과 섞여서 생활하는게 익숙해졌을 법도 하건만
그래도 도련님과 친구는 '한국 사람'이 그립다고 합니다.

아무리 미국에 오래 살아서 영어가 능통하고
외국인과 섞여서 살아가는데 큰 무리가 없다 해도

노골적이건 은근히건 타민족에 대한 배타와 무시가 있게 마련이고,

'척!'하면 '착!'하고 통하는 게 없기 때문에 늘 '외로움'이라는 게 있다는겁니다.

'말'과 '먹거리'와 '일'은 섞을 수 있어도
'정서'라는 건 쉽게 섞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18. THE EMPIRE STATE BUILDING

친구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아침에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뉴욕'을 볼 수 있는 방법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 엠파이어 빌딩에서 뉴욕, 그것도 엠파이어 주위의 뉴욕 남쪽 지역을
한 번 본 것으로 '뉴욕'을 봤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말입니다.)

무역센터 테러사건이후 고층빌딩 공포증이 확산되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수가 많이 줄었다는데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오르려는 사람들의 줄은 길기만 하였습니다.

1929년 대공황 때 고용 창출을 위해 짓기 시작했다는
102 층짜리 이 건물은
웬만한 거리에선 사진기의 뷰파인더에 다 들어오지도 않았고

그냥 올려다 보기라도 할라치면 목이 뒤로 꺽어질 것 같이 높아서
한참 건물 끝을 보고 있자면 건물이 흔들~ 흔들 하는 것 같은게 어지럼증까지 났습니다.

높은 건물에 제법 익숙해진 우리지만
102층 건물앞에서는 '시골 할아버지의 촌스러움'을 연출하고야 말았습니다.

건물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나오는 사람들과 들어가는 사람들의 수를 조절해가며 들여 보내고 있었고

들어가서도 표사는 곳까지 줄을서고,
표를 사서 엘리베이터 타는 곳까지 또 줄서고,
아무튼 줄서기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도 예상보다 진도가 빨라서
줄서기 시작한지 1시간 정도후에 드디어 86층 전망대 ( Obserbatory)에
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여태껏 올라가 보았던 그 어떤 전망대보다도
넓은 시야가 느껴지는 그런 전망대였습니다.

그저
"이야아~"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무너진 쌍둥이 빌딩이 있는 남쪽 데크에는 다른 쪽보다 훨씬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망원경으로 쌍둥이 빌딩이 있었던 쪽을 보니
사방에 높은 건물들이 있어서 그 '폐허'가 직접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성조기가 건물 전체에 드리워진 건물 옆에
아직도 계속되는 발굴 작업으로 '먼지' 가 '푸울~푸울~' 나고 있는 곳이 있어서

그곳이 무너진 곳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19. HARVARD YARD & HARVARD SQUARE

하바드 건물 본다고 '하바드'를 느낄 수야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안가면 아쉬우리라 생각하며 아이 손잡고

평생 다시는 갈 일이 없을지도 모를 '하바드'를 가 보았습니다.

듣던대로,
눈에 보여지는 것들로만 보자면

캠퍼스가 대단한 것도 아니고
건물들도 하바드 기념관등의 몇 개의 건물을 빼면
수더분하고 평범하기만 한 이층짜리 빨간 벽돌 건물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지나 다니는 학생들도 얼마나 대단한 수재들인지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관광객들을 위해 안내원과 함께 볼 수 있도록 개방된 강의실이나
개방적인 큰 건물들을 제외하면
연구동이나 강의실등의 건물 출입시에는
통행카드 같은 것으로 카드 긁듯이 해야 문이 열리는 식이어서
일반인이 아무 건물에나 들어가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문대로 하바드 야드에 있는 하바드 동상의 왼발은 유난히도 반짝였습니다.

존 하바드 동상의 발을 만지면 하바드에 들어올 수 있다는 속설 때문에
아들낳게 해 준다는 제주도 돌하루방의 코처럼
관광객들이 하도 만져서 심하게 마모되어
최근에 새로 만들어 붙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존 하바드 동상의 실제 주인공은
하바드의 설립자가 아닌 그냥 하바드 대학생 중 한 명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재미삼아 하바드 동상의 발을 만져보았습니다.

우습다고 생각하면서도 남들처럼 다 해보는게 '관광객의 유치함'이라는 것이지요.

캠브리지라는 넓은 지역에
Harvard, MIT 등의 대학들이
어디서부터가 하바드인지 MIT 인지 구별이 안가게
울타리도 경계도 없이
하나의 거대한 대학촌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어서
다 둘러보지는 못했습니다.

레드 라인의 하바드 대학 전철역이 있는 교차로는
Harvard Square 라고 불립니다.

전철에서 내릴 때 약간의 연기와 냄새가 났는데
진화를 이미 마친 듯한 소방관들이 주욱 서서 쉬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소방관들인데
미국 소방관들을 먼저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같았다면
역무원들이나 지나가던 사람들에 의해 적당히 처리되어졌을 법한
사태였던 듯한데 소방관들이 출동해 있었습니다.

하바드 스퀘어에서도
길건너에서 잠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는게 '싸움'이 난 듯 했는데

싸움구경 즐기는 것은 미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금새 사람들이 모이고,
몇 분후 경찰이 츨동했습니다.

경찰관이 싸운 당사자인 흑인 청년과 몇마디 말을 나누길래
훈방조치정도를 예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수갑을 채워
일반 경찰차가 아닌 영화에서나 보던 범인 호송차같은 차에 태우는 것이었습니다.
( 그 청년도 순순히 응하는 것이 단순한 싸움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고
미국인들은 원래 경찰에게 무조건 협조(?)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선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수갑채우는 장면도
미국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미국인들은 참 policeman , fireman 과 친한가 봅니다.

하바드 스퀘어에는 COOP 라는게 있었는데,
하바드 대학생들을 위한 일종의 협동조합 같은 것으로
하바드 학생들에겐 더 저렴한 가격으로
책, 의류, 용품, 커피등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저는 COOP를 '쿠프'라고 읽었는데,
현지인들은 '코우업'이라고 했습니다.

하바드생들은 어떤 책들을 읽을지 궁금하기도 해서 서점엘 들어갔는데
지하 1층에 어린이용 책들이 있어서
저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그리로 향했습니다.

거기서 저와 우리 딸은 영어 동화책을 실~컷 구경하고 나왔습니다.

듣던대로
미국의 영어 동화책이 우리나라보다 더 싼 가격에 판매되는 것은 아니라서
구경만 했습니다.
(메이지는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더 비쌌던 것 같습니다)

이 책방을 우리집 옆에 옮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간절하기는 했습니다.

우리 아버님이 보라고 허락해주셨던 몇 안되는 텔레비전 프로중 하나인
'하바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프로에 대한 가물거리는 기억과 함께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동생집에 돌아왔는데

조카녀석이 아무거나 집어들어 껴 넣은 비디오가
우연히도 '러브 스토리' 였습니다.

전에 살던 사람들이 놓고 간 비디오인데
오래된거라 화질도 엉망이라고 동생이 말하기도 했고,

저도 무뎌진 아줌마의 감성으로
'우~우우우우 우우우~'하는 음악과 함께 눈밭을 뒹구는 청춘남녀의
애달픈 사랑이 그리 마음에 와닿는 것도 아니어서

건성으로 보고 있다가,

'음? 저건 어딘선가 본 풍경인데?'하다가

남주인공 라이언 오닐이 영화속에서 하바드대생이었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하바드 교정과, 차타고 가다 본 것 같은 콜롯세움 모양의 건물,
눈에 익은 도로등이 눈에 들어오며
갑자기 영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학교 다닐 때
'러브스토리'가 대화체로 되어 있어 생활영어 익히기에 좋다는 말을 듣고
에릭 시갈의 '러브스토리' 한영 대역판을 들고 다니며 읽었던 기억도 났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영어책으로는
영어교과서 다음으로 그것이 처음이었다고 기억됩니다.




20. SHOPPING , EATING and MY POOR ENGLISH

우리의 생활이 얼마나 '미국'에 가까운 것인지는
이렇다할 기념품이나 선물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주 신기하고 특이한 물건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우리와 좀 다르게 느껴진 것이 있다면

소수인(Minority)들을 위한 상품들도 다양하다는 것,
쇼핑몰( Shopping Mall)이 주거지역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넓은 지역을 커버해야 하기 때문에 그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
( 어떤 쇼핑몰은 그 안에 백화점이 4개나 있었고,
동네 전체가 쇼핑 몰들만 모여 있어 거대한 AREA를 형성한 곳도 있었습니다.)

손잡이가 오른쪽에 붙어있는 냉장고등 왼손잡이들을 위한 물건들은 기본이었고
'이런 것도 다 있네~?' 하고 놀라게 되는, 구경만 해도 재미있는 상품들,
이런 물건 사는 사람들도 있을까 싶은, 굳이 살 필요까지는 없어 보이는 물건들등

우리 시장에서는 그다지 수요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것들도
판매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다운타운 거리에서는 꽤 자주 보이는, 우리나라의 편의점에 해당하는
CVS & PHARMACY,
( ' 약'의 종류가 엄청 많아서 웬만한 약은 이곳에서 다 살 수 있더군요)

살 것은 없어도 볼 것은 많은 ,중국인이 경연하는 88 market,
( 제 개인적 취향이긴 하지만,
이런 것들도 다 먹는건가 싶게
그 용도를 알 수 없고 비위가 좀 상하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상품 디스플레이에 관해 우리나라 백화점들로부터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은 백화점들,
( 상품 진열이나 조명, 고객의 동선에 관한 배려등에 별로 신경쓰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그저 입이 따악 벌어져서 다물지 못하도록
거대한 창고 같은 매장에 바닥부터 천정까지 숨막히게 상품들이 쌓여있고
저거 언제 다 먹고, 언제 다 쓰나 싶게 무지막지하게 큰 단위 포장들로만 파는
우리 나라 대형 할인매장은 아주 귀엽게 보일 정도인
Kosko 같은 초대형 창고형 할인매장들,

천원짜리만 파는 우리나라의 천냥하우스 비숫하게
모든 물건값이 1달러인 1dollor shop,
( 뉴욕에선 99센트 하우스도 있었습니다)

집꾸미기 및 수리 용품을 전문으로 파는 대형 매장인 HOMEDEPO,

유아용품과 아이들 장난감 전문 대형 매장인 TOYSRUS 나 KIDSRUS,

문구류만 판다는 문구 전문 대형 매장,
( 차를 타고 지나가며 본 것이라 STAPLUS인지 STAPLE 인지
간판을 정확히 보지 못했는데, 제가 알고 있던 Stationary store 는 아니었습니다)

우리 음식에 대한 향수를 못버린 한국인들이
4,5시간 차몰고 가는 것을 개의치 않는 한국 식품 전문점등이

제가 본 쇼핑몰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한국 식품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열정'은 말릴 수가 없는 것이어서

보스톤에 사는 아줌마들이 조를 짜서 교대로
한달에 한번씩 동네 사람들의 쇼핑리스트를 모아
새벽같이 차를 타고
뉴욕인지 근처인지에 있는 '한아름'이라는 -우리 나라의 하나로 마트 같은 곳- 한국인이
경영하는 쇼핑몰에 가서 한달치 장을 보고 ,
옥 사우나( 뉴욕 33번가에 있었음)에 가서 사우나하고,
미장원가서 머리까지 만지고 오는게
월례 행사로 된 곳도 있답니다.

하지만 아이 엄마인 저의 눈을 가장 잡아끌고,
고로 돈을 제일 많이 쓴 곳은
어린이 장난감 및 용품 대형 매장인 TOYSRUS 라는 곳이었습니다.
(간판의 'R'자는 좌우가 뒤집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필요치 않은 것들인데도
아기용 캐리어나 유모차도 그 형태와 디자인이 참 다양해서
재미나게 구경하였습니다.

쌍둥이용 유모차도
좌석이 앞뒤로 배열된 것, 옆으로 나란한 것등은 한국에서도 보았지만
서로 마주보게 되어 있는 형태나 거의 마차수준의 대형 바퀴가 달린 유모차등은
처음 보는 흥미로운 유모차들이었습니다.

기저귀 전용으로 냄새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만들어졌다는 쓰레기통 등,
있으면 펀리할 수도 있고 없어도 그만인,
아주 세세한 용도의 용품들,

우리돈으로 10,000원~ 15,000원 정도 하는
블루, 도라, 바니 등등의 낯익은 비디오들,

crayola, klutz 등의 크레욘, 색연필, 핑거 페인트,페이스 페인트 등등등

정신없이 볼 것들이 너무도 많았지만

제가 가장 오래 서성대던 코너는

별자리 투영기, 현미경과 프레파라트 세트, 화학 실험 키트등
과학 교구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탐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이것 저것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다 결국
눈 딱 감고
별자리 투영기와 현미경 세트를 집어들었는데,

미국올 때 1,000불 준 언니에게 보답한다며
동생네가 돈을 지불해주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화학실험키트도 집어넣을걸.....)

동네에서 문방구나 지물포, 완구점등을 쉽게 볼 수 있는 우리네와는 달리

가위 하나, 벽지 한 롤, 딸랑이 한 개를 사려고 해도
미국 사람들은 최소한 30분정도는 '차'를 타고 가서
이런 대형 전문 쇼핑몰들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제가 돈을 많이 쓴 또 한군데는
보스톤 과학 박물관내에 있는 Museum shop 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카드 '할부' 결제를 시도했던 저는
이번 미국여행에서 가장 길게,
고로 가장 말이 안되는 영어를 '어버버버버'하며 진땀을 뺐습니다.

별자리가 그려진 티셔츠를 시댁 식구들 것 까지 온 식구 수대로
거의 보따리 장사 수준으로 사고,

우주에 관한 , A부터 Z 까지 모든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그림과 함께 배열해 놓
은,밤에는 야광빛까지 나는 아이들 티셔츠,

떨어뜨리면 번쩍 번쩍 불이 나는 작은 고무공,

버튼을 누르면
PEEP! PEEP! 하는 기적소리와 처거덕처거덕 기차가는 소리가 나는 기차책,

우리 아이가 선생님 드린다며 집어든 크레욜라 색분필등

한 보따리를 사들고
가격표들의 가격들을 속으로 합산해보며
계산대로 가서( 여기까지는 아무일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카드할부결제 할 때
"3개월로 해주세요" 하듯이

너무도 당연하게( 한치의 의심도 없이 )

"Three months, please"
라고 계산원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계산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Sorry?"
하고 되묻는 것이었습니다
(보스톤에선 제가 알고 있던 Excuse me? 나 Pardon? 보다는
Sorry?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저는
순간 등줄기에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던져진 상황이라 수습은 해야겠기에
말하고 있는 저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알 수 없는
횡설수설 영어로
'할부'라는 -이 영어 단어를 몰랐던게 화근 - 것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는데

계산원이 급기야 매니저를 부르고
저는 또 그 고통스런 '영어'를
'그러니까, 음 그게, 그게 말이죠,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점점 꼬이게 말하고 있었는데

그 놀라운 매니저가 제 말을 알아듣고 설명해주는 것에
(전에 수퍼에서 화장실 위치 가르쳐준 할머니처럼 '너무' 친절하고 자세하게
말해줘서 다 못 알아듣고 말았습니다ㅠㅠ)
제 상상력과 유추를 보태 겨우 이해한 바는

신용카드 할부제도가 우리와 좀 다르다는 거였습니다.

우리는 판매자에게
"3개월로 해주세요, 6개월로 해주세요"
이렇게 직접 할부 결제 거래를 정하지만

그 곳에선 (점포마다 적용방식이 조금씩 다르기도 한 듯)
구매 고객과 판매자는 일단 총액 거래를 하고
'할부'는 차후에 고객이 신용카드 회사에 연락하여
별도로 계약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나봅니다.

사실 이것도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고
동생네나 도련님도 한국과는 할부결제방식이 다르다는 사실만 들어서 알 뿐
직불카드인 Debit card를 쓰거나, credit card를 쓰더라도 일시불 결제만 했을 뿐
실제 할부 결제를 시도해 본적이 없어서 할부 결제 방식에 대해 잘 모른다니
미국의 카드 할부 결제 시스템은 아직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쩄든 <할부>에 해당하는 영어가 installment 라는 것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단어가 될겁니다)

여행자의 즐거움 중 하나가 그 지방의 '특색 음식,을 먹어본다는 것일텐데,
미국에서 그런 음식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Chinise Buffet Restaurant 정도가 제가 가 본 식당 중 고급에 속했고,
미국식 정식 레스토랑에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우선, 그런 곳은 음식값이 아주 비쌀 것이었고,
한국처럼 '설렁탕 하나 주세요'로 끝나지 않는,
미국에서의 까다롭고 세세한 음식주문이 좀 겁이 났고,
뭐 하나라도 더 보려는 욕심에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중간에 짬을 내서 한 끼 때운다는 생각으로
패스트 푸드점에서( 한국에선 거의 안 가는 곳) 대충 식사를 해결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다니던 곳엔
스타벅스, 던킨 도넛, 맥도날드등이
우리 나라 노래방 만큼이나 많았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무슨 열이 그리 뻗치는지
음료수 달라고 하면 무조건 얼음부터 넣어서,
번번이 얼음을 빼달라고 말해야 했고

물종류를 많이 못마시는 제겐
스몰 사이즈 커피도 왜 그리 양이 많은지
항상 다 못먹고 버리곤 했습니다.
(스몰 사이즈 커피를 마시는 미국인들은 거의 보질 못했습니다.)

남은 커피를 들고 '에구 이걸 어쩌나'하고
안절부절 하며 어정쩡하니 서있을라면
도련님이
"형수님, 여긴 미국이예요, 미국식대로 하세요"
하며, 제 컵을 뺏아들고는
안에 커피가 들어있는채로 쓰레기통에 그대로 던져 넣곤 했습니다.

동생도 도련님도
미국에선 쓰레기를 버리는 것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종량제 봉투에 더 이상 담을 수 없을 때 까지 꾸욱꾹 담다가 가끔 봉투가 터지기도 하고,
음식물 찌꺼기 말려서 분리수거하고, 재활용품 분리수거하고,

이렇게 쓰레기도 이것 저것 생각하며 버리던 습관으로는
' 미국식 쓰레기 버리기'에 좀처럼 익숙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미국은 '일회용품 천지'라더니 정말 그 말이 맞는 말이어서

제가 3주동안 버리고 온 일회용품들만해도
커다란 비닐봉지로 하나는 족히 채울 수 있을겁니다.

'그래 니네 땅 넓어서 쓰레기 묻어둘 곳 많다 이거지'
은근히 부아가 났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다들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유쾌발랄' 할 것 같았는데
패스트 푸드점 점원들의 고객응대의 친절도와 세련됨은
우리나라 점원들에게 훨씬 높은 점수를 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나저나, 아는 단어나 문장도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왜 그렇게 들리지가 않는건지.....

미국인들과 '대화'라고 할 만한 대화를 할 일은 거의 없었고,
( 보스톤이나 뉴욕 사람들은 서울 사람 못지 않게 다들 바빴습니다.)

어눌한 영어실력의 여행자에겐
먹을 것을 주문하거나 물건 살 때처럼
어찌보면 뻔한 상황에서의 단순한 영어가 고작이었는데
그것도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가 도넛 먹고 싶다고 해서
던킨 도넛에서 먼치킨( 쬐그맣고 동그란 공모양) 달라고 했을 때
점원이 뭐라고 했는데 첫 번에 못 알아들어서
"Sorry?"
했더니 조금 느리고 확실하게 말해주는 것이
" How many?" 였습니다.

아이가 또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해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바닐라로 달라고 하는데까지는 순조로웠는데
점원이 "커퍼콘" 하며 저를 쳐다보는겁니다.
('커퍼콘', 이렇게 세글자로 옮겨놓은 것보다 더 짧게 들리는,
거의 외마디 수준의 말이었습니다)

'커퍼콘?, 이건 또 뭔가?
하고 멍하니 서있으려니
얼굴도 잘생긴 남미계 청년인 그 점원이 친절하게도 웃으며
( 제가 겪은 미국 점원중 친절도가 아주 상급)

"컵 오어 콘"하고 천천히 말해주고 나니

그제야 뭉쳐있던 '커퍼콘?'이 'cup or cone?'으로 떨어져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못 알아들을 이유가 없어보이는 이런 말들도
실제로 들어본 적이 없는 말들은 한번에 들리질 않았습니다.
(테이프에서 또박또박 말해주는 "How many?"나 "Cup or cone?"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How many?" 라는 말은 물건 살 때 외에도
또 다른 상황에서도 쓰였습니다.

식당에 들어설 때 자리 안내하는 직원의 첫마디가
바로 이" How many?"였습니다.

우리나라 식당도 이런 경우 첫마디가
"몇분이십니까?" 하는 말이고,

상황은 좀 달랐지만 이미 도넛 사면서 귀에 한번 꽂혔던 말이니
쉽게 접수가 되었습니다.

아직은 '말하기'보다 '듣기'가 익숙하고,
낯선 땅에서 '진짜' 미국인들이 말을 걸어오면 조금 쑥스러워하던 우리 아이가

미국사람에게 한 첫 영어는

"Napkin, please"였고,

"Yellow star, please"
"Six"
"Thank you"
"Yes"
"No"
등이 보름남짓되는 미국 체류 기간 중 우리 아이가 한 영어의 전부입니다.

손에 흘린 음료수를 닦을 냅킨이 필요했을 때,
풍선 살 때 노란별 모양 풍선 달라고 할 때,
전철안에서 몇 살이냐고 묻는 미국 아줌마의 질문에 대답할 때,
( 미국 나이로는 자기가 6살이라고 들어 알고 있었나봄니다)

그외 예 ,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간단한 질문들에 대답할 때 했던
초간단 영어들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No"는 내용상으로는
그리 간단치가 않은 "No" 였습니다.

보스톤 미술관에서 나올 때 길건너에서 차를 타고 가던 여자가
차창을 내리고 뭐라고 우리에게 묻는데
거리도 좀 멀고 거리의 소음도 있고 해서 잘 안들린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인데
아이가
"No" 하니까
그 여자는 주변을 기웃거리며 망설이듯 다시 운전해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놀라서
"저 아줌마가 뭐라고 그랬는데?"
하고 물으니
"우리보고 여기 사냐고 그랬어. 그래서 아니라고 했어"
이러는 겁니다.

제가 우리 딸보다 '듣기' 능력이 떨어지는게 확실히 증명되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미국에서 처음 배워 가장 많이 연습한 말은
' benefit '이라는 좀 의외의 단어였습니다.

아이가 삼촌집 거실에서 종이컵 하나를 들고
뭔가 같은 단어를 계속 중얼거리며 다니길래
뭐라고 하는건가 하고 잘 들어보았더니

" Benefit, Benefit."
하는 것이었습니다.

'웬 Benefit?' 하고 생각을 더듬어 보니
보스톤 코먼 공원 건너편의 서울 명동 같은 거리를 걷다가
종이컵 하나 들고 " Benefit, Benefit." (우리말로 치면 한 푼 줍쇼!) 하며
적선을 구하던 걸인이 생각났습니다.

'으이구, 그 많은 영어 중에 하필 배운 것이.......'

이번 여행을 통해
'실제 영어' 듣기와 말하기에 대해 드는 생각은

영어 교재나 테이프등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표현들도
'미국사람들'의 입에서 일상적인 속도로 나오는 말들을
첫 번에 알아듣기가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

한국에 있는 미국인들처럼 한국인들은 영어를 잘 못한다고 생각하여
어느정도 듣는 이를 배려해주기를
미국에 있는 미국 사람들에게 바래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

그래도 문자상으로라도 알고 있던 표현들은
나중에라도 결국은 들리긴 한다는 것,

내가 미리 알고 있지 않았던
'수많은' 그들의 '표현'들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것,

모르는 단어는 하나도 없는 문장이라도
그 단어들이 모여서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는
그 말이 쓰이는 상황에서 겪어봐야 한다는 것,

상황이 익숙한 상황인 경우엔
영어도 더 잘 들린다는 것,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
상대가 자기 말을 잘 못알아 들을까봐 너무 '또박또박' 말하려하면
상대방이 더 못알아 들을 수도 있다는 것,
( 일상적인 대화에선 단어 몇 개가 뭉쳐 한단어 소리처럼 나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Two cups of coffee, please " 보다는 "Two coffees, please "가 더 잘 통하는 등
미국에는 미국식 영어가 있다는 것,

문법적으로 맞는지 자신할 수 없더라도
말의 '속도'를 어느정도 빠르게 하고
자신감있게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등이었는데,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말한다면

'듣는다'는 것이 단지 '고막의 진동'이고,
'말한다'는 것이 단지 '성대의 진동'이라는 단순한 물리적차원이 아닌,
그 이상의
' 쌓여진 지식과 사유, 생활경험',
'상대의 표정 및 몸짓의 해석' 등의 '총체'가
'communication' 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상한 결론' 말고
진짜 제가 느낀 것은

"내 영어는 거의 영어가 아니야"
이것입니다.(ㅠㅠ)


21. HORIZON, CELESTIAL SPHERE, SUNSET, AND THE MOON

뉴욕에 들어가기 전
차를 주차할 곳을 찾아 뉴저지로 넘어가던 길과
뉴욕 일정을 마치고 보스톤으로 돌아오던 길에서 본

'지평선'과 '천구',와 '달' 을
저는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
심은 사람도 알 수 없고 거둘 생각도 없어보이는
그저 사방으로 줄지어 서있는 옥수수들,

그 너머로 끝을 알 수 없는 지.평.선.

'이게 지평선이라는 것이구나'

낮시간의 수업시간에, 지평선을 느낄 수 없는 조각난 하늘을 보며
아이들에게 '느끼게' 해주는 일이 너무나도 어려운
'천구(Celestial sphere)'라는 것.

이렇게 사방 끝없는 지평선위에
지평선 근처부터 머리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점점 진해지는 하늘빛으로
완벽하게 '공간'을 이루고 있는 '천구'.

'아! 정말 < 천구 >로구나!'

진짜 지평선에서 떠오른 달은
추석이 지난 달이라 크기가 많이 작아진 달이었지만

'지평선'에서부터 떠오르는 달을 볼 기회가 없는 '우리의 달'보다
엄청 '큰' 달이었습니다.

진짜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별들도 손에 잡힐 둣 가까워 보였습니다.

" 와! 미국은 달도 엄청 크고 뚱뚱하네~?"
하는 우리 아이의 외침에 '하하하' 웃다가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자기네가 '하늘'과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대"
하는 도련님의 말에

'미국 사람들, 정말 엄청난 사람들이군' 하는 생각에
좀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보스톤 과학 박물관 옆, 찰스강변에 있는 놀이터를
우리 아이는 아직도 그리워합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도 별로 다칠 일이 없어보일 만큼
안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아주 예쁜 놀이터였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와는 다른 이유로 이 곳을 아직도 생각합니다.

찰스강에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해가 지는 서쪽을 바라보는 일은

더 열심히 살지 못한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래도 저 자신을 조금쯤은 위로하는 너그러움이 공존하게 되는
아쉬우면서도 넉넉해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때의 석양은 왜 그런지 좀 낯설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던 붉게 물든 노을은 보이지 않았고
해가 지는 순간까지,
아니 오히려 해가 지는 순간에 가장 찬란하게 마지막 빛을 뿜어내다
갑자기 져버렸습니다.

해가 점점 낮아져서
강건너 두 개의 높은 빌딩 사이에 해가 걸치자

이 쪽 강변의 빌딩들에 그 빛이 반사되고
이 빛은 또 저 쪽 강건너 빌딩들에 반사되고
이렇게 어지러이 반사된 빛들은
마침내 찰스강 주변 전체를 '황금빛'으로 빛나게 해서

너무나 황홀한 '아우라(Aura)'마저 느껴졌습니다.

나무도, 나뭇잎도, 바닥에 깔린 나무껍질 조각들도, 놀이기구도 온통 금빛이었고
그 속에서 노는 우리 아이의 얼굴도 아예 황금빛이었습니다.

붉은 빛이 아닌 '황금빛' 석양,
해가 지는 마지막 순간의 그 놀이터는
'공동경비구역'의 마지막 사진 한 컷처럼 제 가슴속에
'찰.칵.'하고 새겨졌습니다.

아이가 노는 동안
강변에 벤취들이 놓여있는 찰스강을 바라보고 있자니

Good Will Hunting이라는
-MIT의 청소부지만 수학교수도 감당 못하는 엄청난 수학 천재-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Good Will Hunting]에서
내면의 아픔과 갈등을 어쩌지 못하는 천재 청년에게
심리치료학 교수( 로빈 윌리암스)가 해주었던,

저의 심금을 울렸던 그 말들을 해 주던 그 벤취가
어쩌면 이 찰스강의 벤취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보며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의도했을 법한 그런 메시지보다도

'아이 엄마' 특유의 채널로 들을 수 있는
그런 떨림과 울림을 느꼈습니다.

아무리 천재라도 헤어나지 못하는
굿 윌 헌팅의 가슴에 응어리진 어.린.시.절.의.아.픔.

"너는 피아노를 수학적으로 물리적으로 분석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너는
'음악'을 느낄 수는 없어.

너는 모짜르트와 베토벤에 대해
그들의 출생년도부터 그들의 사소한 버릇까지 좔좔좔 읊어댈 수는 있겠지.
하지만 너는
'모짜르트'와 '베토벤'을 느낄 수는 없어"

하고 천재 청년을 몰아치던 로빈 윌리암스의 대사들,

또다시 제 가슴에서 '웅웅'거리는 이 말들을 되새기며

우리 아이가 피아노와 모짜르트와 베토벤을 '이해'하기에 앞서
'피아노'와 '모짜르트'와 '베토벤'을 먼저 '느낄' 수 있기를,

아이의 '어린시절'이
아이의 앞으로 살아갈 날을 풍요롭게 하도록 보듬어줄
그런 '엄마'가 될 수 있기를
조용히 기도하였습니다.


22. EPILOGUE

미국을 떠나며 아이와 엄마가 똑같이 한 말
: " 아~ 육개장 먹고 싶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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