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두딸에게 영어를 접해주려는 까닭은. 2002-03-20 21:54
2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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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쑥'을 알기 전부터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쑥쑥을 알고 나서도 아주 많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린 두 딸에게 영어를 접해주려는 까닭은 무엇인가?'

오래도록 담아두었던 생각들을
유아 영어 게시판에 답글로 올릴 기회가 두어번 있었습니다.

유아 영어 전문가도 아니고 '영어'도 잘 모르는 사람이라
이러한 글을 올리는 것이 어째 좀 주제넘은 일인 것같아 송구스럽기까지 합니다만
그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해 주십시오.

(다른 분의 글에 답글로 달았던 두 글을 조금 다듬어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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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열된 조기 영어 교육 열풍에의 반동인지는 모르겠으나
영어는 초등학교부터 가르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거나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조기교육 자체가 나쁘지 않다고 보며
오히려 제대로 된 적절한 조기 교육은 부모로서 힘써야 할 바라고 믿고 있습니다.

더구나 언어 교육의 시작은 아이가 어릴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언어학자나 아동심리발달학자가 아닌
5살, 9살난 두 딸의 엄마일뿐이므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증거를 말할 수는 없지만

영어를 접하는 시기가 달랐던 두 딸을 키워보니
아이가 어려서 영어를 접할수록
영어를 친근하고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 어떤 거부도 없음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좋다는 주장은
'학습 효과'적인 면에서는 옳은 주장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하는 적절한 시기에 관한 이러한 논의에 대해
초등학교 때 시작해도 늦지 않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며
초등학교 이전에 영어를 시작해서는 안된다라는 뜻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얼마전 '엄마 영어 방송이 들려요'라는 책을 보았는데,
-아이가 초등학교때 본격적으로 영어를 접해준 엄마의 영어교육 경험담이 씌여있었습니다.-
저는 거기 나오는 엄마처럼 그렇게 할 엄두도 나지 않았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아이가 영어로서 기쁘고 즐거울 수 있는 방법으로 영어를 접해주면
아이도 엄마도 스트레스 받지않고
'영어'와 함께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더 굳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은 영어를 참 못하지만
제 어린 두 딸에게 영어를 접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르치려고'가 아니고 '접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르칠 실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를 접해주려는 까닭은

'필요'와 '즐거움' 이 두가지 때문입니다.

아이들 이전에 저 자신이
세상으로 나가는 여러 문 중 한 문의 열쇠로서의 영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부모로서 내 아이들에게 이런 '열쇠'하나 선물로 주고 싶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를 매력적인 언어로 느끼고 있으며
문자 대 문자로 완벽히 해석은 못해도
전공책을 번역서가 아닌 원서로 읽었을 때 더 의미가 닿았던 경험,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해리포터를 번역본이 아닌 원서로 읽었을 때 더 생생했던 경험,
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더빙되지 않은 영어권 영화를 영어 원어로 볼 때 더 감동적이었던 경험,
외국 여행에서 낯선 사람들과 소박한 대화를 나누며 마음이 열리던 경험등등은

다른 나라 언어를 앎으로서
철학과 문화와 사회와 인간에 관한 자신의 지평을 넓혀가는
그 '즐거움'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저는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이런 '즐거움'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제가 유아 영어에서 목표로 삼는 바는
거두고자 함이 아니라
밭을 갈고 씨를 뿌려두는 일이며,
세상으로 나가는 문 하나 열어두고자함입니다.

언제 싹을 틔울지는, 언제 그 문으로 걸어나갈지는 아이가 결정할 것입니다.

어쩌면 아이가 그 문으로 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이에게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저는 그 이유를 존중해줄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도구와 코드로
누구나 반드시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들은
사실 그리 많은 것은 아닙니다.

'영어'라는 것도 그 많은 도구와 코드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다만 언제라도 나갈 수 있게 문 하나 열어두는 것입니다.

발음이 엉망인 엄마라도, 영어를 잘 못하는 엄마라도
자기의 아이에게 영어를 접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엄마일수록
아이가 어릴 때 '엄마와 아이가 영어로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영어가 부족한 엄마일수록
아이가 커가면서 더이상 영어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시기가
더 빨리 오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일은
'효율'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엄마(아빠)와의 정서적 교감이지요.

효율로 따지자면
아이에게 언어를 가르칠 때는 언어학자가
수개념을 가르칠 때는 수학자가
아이와 함께 놀이를 할 때는 놀이 전문지도교사가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논리가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가장 열광하는 '교사'는 바로 '엄마'(아빠)가 아닐까 합니다.

전문 성우가 나레이션하는 동화 테잎보다도
엄마의 육성으로 읽어주기를 바라는 아이의 마음도
바로 이런 이유때문일 것입니다.

아이의 전 교육과정에는
반드시 '그 아이 자신'과 그 아이의 '부모'가 그 중심에있어야 하며
영어 교육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을 가르쳐줄 수 있는
만능교사가 될 수 있는 부모는 아주 극소수일 것이고,

아이가 커감에 따라 배우는 지식체계가 방대해지면
타교육기관에 아이의 교육을 의뢰해야 하는 때도 올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도 역시 중심에는 아이와 부모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만.)

엄마가 더이상 가르쳐줄 것도 접해줄 방법도 생각해내기 힘들 그 때까지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열심히 영어를 접해줄 것입니다.

영어가 많이 부족한 저는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큰 아이에게 벌써 이러한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우리말로 된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나 '아버지의 꽃은 지고 이제 나는 어린애가 아니다',
'경이로운 인간의 몸'과 같은 책을 읽고 있지만
영어로 된 것은 'Three Wishes'같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이가 커갈수록 우리말로 자리잡은 지식과 정서와 사유와 경험의 세계와
영어로 자리잡은 그것들간의 격차는 점점 커질 것입니다.

영어가 부족한 엄마인 저에게 그러한 격차는 아주 아쉬울 일이겠지만
한편으로 그러한 격차는 한국에서 살아가며 영어를 배우는 한국인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엄마와 영어로 함께 했던 시간들,
엄마가 직접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엄마와 함께 '길'을 찾아보았던 경험들은

영어를 떠나서
아이의 인생에 두고두고 든든한 거름이 되어줄 것이고,

아이의 영어 공부에 대해서도
'고향'이라는 것이 주는 것과 같은 '친숙함'과 '익숙함'을 주리라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거창하게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현재 아이들이 보는 영어 '그림책'과 '비디오'등을 보며
저와 아이들이 함께 느끼는 '기쁨'과 '감동'이
저로 하여금 계속해서 아이들과 영어로 함께 하는 시간을 갖도록
밀어주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영어 그림책(영어 교육용이 아닌 영어권 아이들이 읽는 창작동화)이나
영어 동화 비디오등을 아이들과 함께 보다보면

'영어'이전에 '기쁨'과 '감동'을 느낍니다.

'기쁨'과 '감동'이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리 두 딸이 이제 그만 자라고 재촉할 때까지 영어
그림책들을 읽고, 마르고 닳도록 영어 동화 비디오들을 보고 또 보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이들을 위한 책들과 비디오들이지만
때로 철학과 심오한 깨달음과 깊은 질문들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물론 아이들은 (어른들은 모르는) 자기들만의 세계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에
더 열광하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영어때문에 '한' 맺혔던 사람중의 한 사람입니다.

학력고사를 마치고 '지겨운 영어'와도 끝을 냈습니다.

대학교에 처음 들어가서는 토플책을 들고 다니는 친구들을 경멸하며
영어를 멀리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과연 제가 처음부터 '영어'를 지겨워했었던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입학할 무렵 '영어'라는 것을 처음 들었던 때의
그 신비감과 흥분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참고서 부록이었던 영어 테잎을 마르고 닳도록 들으며
교과서 한 권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던 그 때는
발음(리듬감과 억양등도)도 지금보다 훨씬 좋았다는 기억이 납니다.

계속해서 '제 방식'으로 영어에 열광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제 영어 실력이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영어'로 즐거웠던 시간들은 머지않아
'문법'의 수렁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시간들로 바뀌어 갔습니다.

관심은 많지만 '영어'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아이의 영어 교육에 관심이 많지만 그런 한편,
늘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가 자문해보고, 브레이크를 자주 걸게 됩니다.

부모의 '한'을 아이에게 이입시키는 일은
부모와 아이 사이에
메꿔질 수 없는 깊은 도랑을
부모 스스로 파는 격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영어란 무엇인가?'

'왜 아이가 영어를 배우기를 바라는가?'

'내가 아이의 영어 공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 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봅니다.

저는 이 질문들에 대해

'영어란, 있으면 상당히 편리한'도구'이다'

'아이가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으로 성장해 가기를 바라며
더 많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길 바란다'

'아이가 영어에 대한 '두려움'과 그보다 더 나쁜 '지겨움'을 갖지않도록
영어와 함께하는 " 아이의 기쁨"을 나의 노력의 근간으로 삼는다'

라는 답들을 정리해두고 있습니다.

영어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은
아시는 바와 같이
절대 그렇지 않음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영어 하나 잘 한다는 이유로
특별 선발을 통해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이
정작 전공 과목이나 다른 과목에 대한 수학능력이 턱없이 부족하여
중도 포기하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다고 하지요.

영어 교육이
아이가 느끼고 경험해야 할 수 많은 것들을 좀먹는 일은
아이의 영어 교육을 생각하는 부모로서 크게 경계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는 다른, 차별적인 '힘'이 아닐까 합니다.

'영어'와 남들에게는 없는 이 '힘',
이 둘 중에 반드시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저는 과감히 영어를 놓겠습니다.

어느 날, 세기적 예술가 백남준이 인터뷰를 하였답니다.

백남준의 영어는 그야말로 개차반이라고 들었습니다.
(미국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겠지요)

계속해서
"What?" , " Pardon?"을 되풀이 하는 기자에게

백남준은 소리를 빽 질렀답니다.

"니가 내 말을 알아듣던지 해야지,
내가 너에게 내말을 이해시키려는 노력까지 할 이유는 없어"

오만방자하다고 할 정도의 '자신감'이지요.

영어를 아주 잘 하는 사람이라면 기자가 아주 쉽게 인터뷰 할 수 있겠지만,
영어만 잘 하는 사람에게 미국 기자가 인터뷰 하고 싶은 경우는 아마도 없을 겁니다.

영어만 잘하는 사람보다는

영어도 잘하는 엔지니어,
사람 심리에 대한 이해와 통역할 업무에 대한 이해가 깊은 통역사,
영어권 기자와 능숙한 영어로 우승 인터뷰하는 골퍼,
아이의 눈높이 언어와 감성으로 영어 동화를 풀어내는 동화 전문 번역가,

이런 사람들이 되어도 좋겠고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영어를 거론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 되어도 좋고,

영어가 아니라도
세상을 느끼고 살아가는 또 다른 코드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세상을 거침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도 좋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전투적으로 나가면 쉽게 지칠까 염려되어
저는 기준치도 낮게 잡고
느릿느릿 가고 있습니다.
( 사실 전투적이 될 실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저 늘~ 일상적으로 영어의 바다에 나가서 놀다 오려고 합니다.

영어 '공부'는 아이가 학교 들어가면
원하지 않아도 지겹도록 해야 될 터이니

엄마가 할일은
아이에게 '영어와 함께 느끼는 기쁨'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엄마 자신이 세계적 음악가였던 것은 아니었지만
정명훈, 정명화, 정경화를 키워낸 그 엄마 처럼

우리도 우리의 아이들을 그렇게 키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보영 씨가 그랬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늘 엄마나 이모등 가족들과 영어로 놀고 영어 만화도 보았지만
가족중에 아무도
'너, 영어 못하면 이다음에 큰일 나.' 영어 잘해야 돼'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아이가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게 하는 것'

저는 이것이 유아 영어 교육의 1차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들과 비디오등을 보다 가끔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저는 리스닝이 상당히 안 좋은 것이 영어에 대한 '한 '중의 '한'인데,
아이들이 저보다 더 리스닝이 좋다는 사실에 많이 놀랍니다.

이것이 바로 아이에게 일찍 영어를 접해주는 것이 좋은 이유 중
가장 으뜸이 되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아이들은 들리는 대로 그대로 흡수하고
아무도 시키는 사람 없는데
스스로 반복을 거듭합니다.

저는 알고 있는 단어도 못알아 듣는 단어가 많은데
(어떤 때는 빌 클린턴도 못알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신통하게도 아는 단어를 못 알아 듣는 경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세서미 스트리트등을 볼 때
'뭐라고 한거지?'하는 제 옆에서 아이가 그 단어를 따라 반복하는 걸 듣고야
'아~ 그거였구나'
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저에게 얼마나 큰 '희망'을 주는지......

제가 가르친 것만, 딱 저만큼만 아이의 영어 공부가 진전된다면
그 얼마나 암울한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수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수영을 전혀 못하는 엄마라도
아이들을 매일 '영어의 바다'에 데리고 나가 놀면
아이는 발도 담가 보고, 파도 타기도 해보고,
가끔은 짠물도 마셔보고 하면서
언젠가는 멋지게 혼자 수영을 즐길 날이 온다고 믿습니다.

저는 물이 무서워 돈들여 강습 받고서도 수영을 제대로 못하는데
제주도가 고향이신 친정 어머니는 '물개' 할머니십니다.

수영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저 매일 바다에 나가 놀다 보니
바다와 친하게 노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 것이지요.

'매일 바다에 나가 놀았다는 것'

이것이 우리 아이들의 영어 교육에 '희망'과 '힌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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