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테의 어머니... 2002-02-1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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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도착한 따끈따끈한 씨네21을 뒤적뒤적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제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아름다운 글이 있어서... 아니, 촉촉하다기 보다... 따뜻하게 해준다고 해야할까요? 아니 아니... 그보다 이제 어머니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제게 어떤 길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 음... 생각할수록 꼬이네요... ㅎㅎㅎ

어쨌든, 어려분께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다이어리를 엽니다... 이미 씨네21을 보신 분이라면 싱거운 이야기겠지만요...

씨네21을 몇 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맨 마지막장에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라는 장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즐겨있는 꼭지 중 하나이지요. 이번에는 경희대 영문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이신 도정일님이 글을 쓰셨네요.

글의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스물 다섯에 첫 소설 을 낸 이후 여든 셋이라는 나이에 대표작이라 할 만한 극시 를 내기까지, 괴테의 창조력과 상상력이 매마르지 않고 샘솟았을 수 있었던 원천을 무엇이었을까... 도정일님은 이 점을 무지무지 궁금하게 생각하며 글을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그런 신비스러운 괴력의 한 단서를 괴테의 어떤 시편에서 찾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부모에 대해 회고하며 괴테가 남긴 글이지요...

"아버지에게서 나는 생김새를 물려받고 삶에 대한 진지한 추구의 자세를 배웠다.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나는 삶을 즐기는 법과 이야기 지어내기의 즐거움을 물려받았다."

괴테의 회고처럼, 그의 어머니는 아닌게 아니라 '이야기'로 아들을 키운 여인이랍니다. 매일 밤 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어 아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그런 어머니였다는군요...

어머니의 회고도 옮겨놓았네요.

"바람과 불과 물과 땅 - 나는 이들을 아름다운 공주들과 바꾸어 내 어린 아들에게 이야기로 들려주었다. 그러자 자연의 모든 것들이 훨씬 깊은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밤이면 우리는 별들 사이에 길을 놓았고 위대한 정신들을 만나곤 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아이의 눈은 잠시도 내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는 어떤 인물의 운명이 그가 원하는 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어떤지 나는 금새 알 수 있었다. 원치 않는 쪽으로 사건이 진행되면 아들의 얼굴에는 분노가 서리고, 그가 눈물을 내비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중간에 이야기를 끊고 들어올 때도 있었다. '엄마, 공주는 그 못된 양복쟁이하고 결혼하면 안 돼. 양복쟁이가 악당을 쳐부순다 해도 말야.' 그럴 때면 나는 거기서 이야기를 멈추고, 결말은 다음날 밤으로 비루었다. 그런 식으로 내 상상력은 가끔 아들의 상상력과 자리를 바꾸었다. 어떤 떄는 바로 다음날 아침 그가 바라던 대로 주인공의 운명을 고쳐 이야기해주면서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래, 넌 벌써 짐작하고 있었지? 결과는 제가 생각한 대로 된 거야.' 그러면 그의 얼굴은 흥분으로 빛났고, 나는 그의 어린 가슴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쯤에서 도정일님의 언급을 살짝 옮겨보면요...

'... 그녀는 아들의 예민한 반응에 적절히 반응하고 아들과 함께 이야기를 만든다. 반응은 이미 상상력의 참여이고 발휘이다. 이야기 들려주기가 결코 일방통행이 아니라 '아들과 자기 사이의 특별한 사건'이라는 것을 괴테의 어머니는 잘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들이 반응하고 그 반응에 어머니가 반응함으로써 화자와 청자는 서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자극받는다. 이 자극은 이야기 지어내기를 즐거운 일이게 한다. 밤하늘의 별과 별 사이를 즐겁게 나는 상상력은 또 별과 인간을 잇고, 지상의 별들인 사람과 사람의 가슴 사이에, 사람과 개구리 사이에 길을 놓는다. 이야기는 단순 오락이 아니다. 그것은 상호 반응이며 길 놓기이고 연결하기이다. 이 연결의 능력이 상상력이다.'

참...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죠...

그 뒤 짧은 구절은 비뚤어진 교육열에 불타는 한국의 부모들을 꾸짖는 것이(굳이 '부모'라는 공동명의로 꾸짖긴 하지만, 제 눈엔 아무래도 '엄마'로 보이네요... ㅎㅎㅎ) 좀 식상해 좋은 글 다 망쳤다는 느낌도 들지만요.... 흠흠... 이건 사족이구요...

괴테라는 대문호에게 이런 어머니가 있었다는 것...

당연한 일이다 여겨지면서도 새삼 가슴이 뭉클해 지네요.

제가 꿈꾸는 엄마도 바로 이렇게 아이와 무궁무진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엄마였는데... 지금은 윤형이가 말문이 제대로 터지지 않아서... 이런 핑계라도 있지만, 당장 몇 개월 뒤의 내 모습은 어떻게 만들어질지... 윤형이에게, 그리고 윤형이 동생(들???^^)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될 수 있을지... 두렵기까지 하구요.

근데 말이지요...

여기는 유아영어 다이어리란 말이지요...

조금씩이나마 유아영어를 실천하고 있고, 그것도 유아영어 다이어리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곳에 한 꼭지를 틀고 있는 저로서는 어떻게든 좀 연관을 시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어설픈 책임감이 자꾸 생기네요...

예전에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몇 번이고 '영어보다 소중한 것들이 많다'는 애매한 말을 많이 한 기억이 나요.

분명, 그렇다고 확신하고 썼으면서도, 막상 어떤 엄마가 '그게 뭔데요?'라고 캐묻는다면, 글쎄...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요? 아직 저도 두돌이 채 되지 않은 아들 하나를 둔 초보 엄마인 입장이라, 아마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냥, 그런 거 있잖아요.. 왜... 이러고 말끝을 흐리다가 사랑이네, 뭐네... 이런 지극히 추상적인 단어들을 들이미는게 고작 아닐까...

그런 저에게 괴테의 어머니는 수많은 해답 중 하나를 제시해 주신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해 준들, 아무리 시설좋고 비싼 학원에 아이를 보낸다고 한들(물론, 여건만 허락한다면 저도 제 아이들에게 다 해주고 싶지만 말입니다), 괴테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베푼 그 수많은 '이야기'들 만큼 훌륭하고 값진 것이 또 있을까요...

그만큼 자식의 인생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요...

또, 이런 생각도 들어요...

뭐, 애시당초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괴테의 어머니이기를 꿈꾸는 나에게 유아영어는 결단코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 말입니다... 내 손으로 윤형이를 이중언어자로 만들겠다는 꿈은 애시당초 갖고 있지 않다는 말씀이지요...

왜냐하면, 제 능력의 한계를 알고 있고, 영어든 뭐든 언제까지나 자식 손잡고 진도 맞춰 함께 나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지금 윤형이 입에서 불현듯 튀어나오는 영어 단어에 환호하고 장단을 맞춰줄 수 있는 이런 행복한 순간들이 그저 추억이 되어버릴 그 날이 온다면 많이 서운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 때가 되면 자식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혼자 헤쳐갈 수 있게 훨훨 놓아주어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기 때문이지요...

영어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들 많이 이야기합니다. 어쨌든, 수단이라 하더라도 기왕이면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연장이 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 저를 비롯한 여기 엄마들의 한결같은 바램이겠죠. 그래서 이런 저런 값진 정보들을 엄마들이 서로 공유하는 것일 테구요...

전 감히 이 쯤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우리 아이들이 종래 이중언어자가 되리라는 꿈은 일단 접자구요. 최소한, 우리 손으로 그렇게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하지는 말자구요. 그건, 엄마들이 지금 이렇게 십시일반 힘을 모아서 만들어준 토대 위에 나중에 아이들이 스스로 도달해야 할 목표라구요... 그것도 절대로 필수적인 목표는 아니겠지요. 아이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만큼 다른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면 되니까요.

대신, 전 우리모두 괴테의 어머니가 되어보면 어떨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말과 영어의 비중을 어떻게 두고 말을 해야 할지, 책을 읽어주어야 할지에 너무 고민하지 말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우리 아이들의 유년기에 괴테의 어머니처럼 많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것도 그나마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우리말로 말이지요...

이렇게 구구절절 글을 쓰고 있는 저도 하루가 저물 무렵 영어동화책 한 권 읽어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 때면 부랴부랴 책 집어들고 아이 손을 끌기도 하는... 그런 엄맙니다...

그런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위선이 아닌지 내심 걱정스럽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괴테의 어머니'이기를 포기할 수는 없죠.

제가 너무 서두른다면, 그리고 여러분이 너무 서두른다면, 서로에게 '괴테의 어머니' 운운하며 조금씩 행보를 늦추도록 격려하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 정말 유아영어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 이곳을 찾으실 많은 엄마들에게 전 이렇게 늘 실없는 말만 늘어놓고 맙니다. 그 점이 항상 죄송스럽구요...

어쨌든, 혼자 잡지를 뒤적이다 갑자기 쓰게 된 글이라 더 두서도 없고, 그렇네요...

더 글이 꼬이기 전에 오늘은 이만 접으려고 합니다.

'괴테의 어머니'를 꿈꾸는, 그렇지만 그렇게 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은 평범한 한 엄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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