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지를 기다리며... 2002-02-1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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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잠이 오질 않는 밤이네요.

지금 새벽 1시 반이 다 되어가는데...

만삭의 임신부가 무슨 바람일까요...^^


효지가 누구냐구요?

2주 후면 저와 상봉하게 될 우리 둘째의 이름입니다. 19일로 날을 정했거든요. 윤형이가
15시간 경과 후 결국에는 수술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바람에 우리 둘째는 날짜를 아예 잡아 나오게 되었답니다. 물론, 자연분만을 다시 시도해볼
수도 있지만, 전 약간의 위험을 감수할만한 용기도 없나봐요... 처음에는 한번 해볼까 했다가... 만약의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는(이미
알고 있던 바이면서도...) 금새 꼬리를 내려버렸으니까요... ㅎㅎㅎ

어쨌든, 이번엔 딸일 것이라는 의사의 암시에 따라 이름을
효지라고 지었습니다. 효도할 효에 이를 지예요. 만약 사내아이가 태어난다 해도 효지가 괜찮을 것 같네요. 느낌이 중성적이어서...


몸이 좀 불편하다는 이유로 한동안 다이어리를 쓰지 못했네요. 이제 조금 더 있으면 정말로 한동안 잠수를 해야 할 터인지라, 잠이
오질 않는다는 핑계로 이렇게 자판을 두드립니다.

효지를 기다리며...

이제 곧 만나게 될 효지를 기다리며, 윤형이를
여지껏 키우는 동안 내가 겪은 시행착오는 어떤 것이었는지, 우리 효지에게는 지금까지의 실수를 거울삼아 어떻게 해주어야할지...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드네요.

여러 엄마들의 고민들을 접하면서 제 딴에는 도움을 드린답시고 주제넘게 '천천히 가시기를' 권했지만, 정작 저 역시
마음 속으로는 때로 조바심을 내곤 했지요. 윤형이를 키우면서 겪은 시행착오를 뭉뚱그려 본다면, 이런 이중적인 제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지... 천천히 가야지... 어느 선생님 말씀처럼 느리게 키워야지... 하면서도 말입니다...

특히 유아영어가
그렇지요. 그렇다고 윤형이에게 뭘 많이 해준 것도 아니면서, 누가 어느 개월 수에 얼만큼 한다더라... 이런 말을 듣고 나면 저도 모르게 은근히
제 아이와 견주어보기도 하구요...

하지만, 우리 효지에게는 그러지 말아야죠. 윤형이에게도...

처음에 유아영어를
시작하며 갈팡질팡했던 시간들을 거울삼아, 영어에만 매달리지 않고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해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이런
생각들을 효지를 만나기 전에 정리를 해보아야할텐데...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전에 잠시 연재를 하다가 뜸했던
<어린이의 문화인류학>이라는 책이 눈에 띄어 집어들었습니다.

이리저리 훑어보고 있던 차에 맨 마지막 장이 눈에
들어오네요. 말미에 내용을 정리해 올릴게요.

영어든 뭐든,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접하게 해주려는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아이를 내 마음대로 재단하고자 했던 욕심에서 비롯되었던 것은 아닌지... 요즘 제가 하고 있는 반성의 내용인데, 이 장의 내용이 그런
제 마음을 다시 한번 정리해 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말 말고도 이런 말도 있단다... 라는 소개의 정도를 넘어서서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의 영역을 고루 엄마 손으로 잡아주려는 노력이 아이에게 반드시 유용하기만 한 노력일까...

조금 더디더라도 아직은
어린 우리 아이들이 혼자 터득해 갈 수 있도록, 그리고 정말 자기들이 원할 때, 필요한 만큼의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주는 것이 정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무심결에 윤형이에게는 이런
저런 욕심이 생기고 맙니다. 이제 효지가 태어나면, 효지에게는, 그리고 이제 제법 아기 티를 벗기 시작한 윤형이에게도 그런 이중적인 제 태도를
버리렵니다.

가르치는 대로 익히는 데 익숙한 아이보다 자기의 방식을 만들어갈 줄 아는 아이가 되길 바라면서 말이지요...



<어린이의 문화인류학>, 하라 히로꼬, 최정순 옮김, 삼동자


27. 문화 속에서의 교육(3) 중에서...

(헤어-인디언의)텐트에서
내가 무심코 이야기를 하면서 종이학을 접고 있으니까 10세 전후의 인디언 아이들은 대단히 재미있어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접어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종이를 주세요'하고는 열심히 제각기 접기 시작했습니다. 결코 어떻게 시작을 하는지 묻지 않고 말입니다. 천천히
접는 법을 보여달라거나 가르쳐 달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가지를 자기가 해보고 나름대로 '이제 되었다'고 생각할 때 내게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 학은 지쳐있군', '이 놈은 멀리까지 날 수 있겠다'라든가 '예쁘구나'라고 하는 말을 즐거운 표정으로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히로꼬가 만드니까 나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 마리의 학을 접은 뒤에 아이들은 '다른 것은 또 뭘 만들
수 있어요'하고 묻습니다. '다른 것을 가르쳐주세요'가 아니라요.

미국의 필라델피아 근교에 있는 피츠비크시의 중류가정에서
베이비시터로 일하며 아이들에게 종이학을 접어 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아이들의 반응과 이 곳 헤어-인디언 아들의 반응은 정말 다른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아이들은 "May I make a crane[swan]"라든가, "How do I fold this?", "What do
I do next?"라고 묻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내가 좀 빨리 접는다고 생각하면 "Oh, you go too fast."라고 하면서 자기들의
속도에 내가 맞추어주길 바랍니다. 헤어-인디언의 아이들이 내가 접어가는 속도를 그냥 지켜보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입니다.

더우기
헤어-인디언의 어린애들은 종이학을 여러 번 제가 직접 접어보고 접는 방법을 터득하고 나면 처음으로 '다른 것 무엇을 또 만들 수 있어요?'하고
다음 것에 흥미를 표시하는 반면, 미국 아이들 중에는 혼자서 한 두마리 접어보고 난 후 곧 "Can you make something
else?", "Show me something else.", "I wnat to make a Christmas tree."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다른 예도 있습니다.

헤어-인디언이나 그 이웃 인디언의 어린이들 중에는 이누뷔크라는 맛겐지 강 하구의
마을에 있는 기숙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캐나다의 북극해 연안 서부에 사는 에스키모의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곳의 선생
말로는 수공이건 계산이건 에스키모 아이들은 조금 해보고 잘못했거나 틀린 것이 있더라도 선생님에게 가져와 어떤지 물어본다고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격려나 지적을 받은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반응해 일반적으로 진도가 빠르다고 합니다.

그런데, 헤어-인디언의 아이들은
선생님이 일부러 '어떻냐, 잘 되어가냐"고 물어도 씩 웃기만 하며 자기가 충분하다고 생각할 때까지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단
가지고 왔을 때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는 교과의 진행 속도가 에스키모 아이들에 비해 뒤쳐지기
쉬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차이는 백인사회와의 접촉에 있어서 에스키모가 헤어-인디언에 비해 훨씬 빨리 기계와 관련한 지식을
습득한 것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종이학을 접는 일은 '내가 기억한다'는 헤어-인디언의 방식으로 훌륭하게 습득되지만,
무전장치의 조작이나 수리, 비행기의 정비, 미용사의 기술, 간호사의 기술 처럼 일정한 교육과정을 거쳐 교사의 지도를 받아야하는 경우에는 그다지
능률적인 방식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헤어-인디언의 방식은 결국 캐나다 문명의 일부로 흡수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을 생각할 때
에스키모보다 더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게 합니다.

어쨌든, 나는 1960년대 초기에 접했던 '내가 기억하고
익힌다'는 이러한 헤어-인디언의 자신에 찬 발랄한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구체적으로 주위의 세계에 접하고, 자기의
세계를 자기가 구축해가는 기쁨을 알고 있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에 돌아와서 주변을 둘러 보았을 때, 어린이나
청년이나 '배움을 받는다'는 일에 너무 열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일정한 커리큘럼에 의한 교육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자기의 마음에 떠오르는 호기심을 자신의 페이스로 추구하기 위한 여유가 없는 어린이들이 많은 것은 슬픈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아기에 '자기가 익히는 기쁨'을 깊이 체험하고 있는 어린이들이라면, 중학교나 고등학교의 커리큘럼에 억눌리는 생활 속에서도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는 자신있는 10대를 보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잘 관찰하고', '자신이 해본다'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른들 편에서 그것을 기다려주는 여유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color=green>그래요...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 꼭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유년기의 자유로움이겠지요. 그런 자유로움이야말로 우리 윤형이와
효지, 그리고 쑥쑥의 모든 아이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일 거예요. 효지가 세상의 빛을 보기 전에 자꾸 자꾸 전 마음을
다잡아야겠어요. 효지야,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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