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 잘 하기가 그리 쉬운 줄 알았더냐? 2003-07-15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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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07/15



승호엄마가 승호에게 축구 양말을 사주었습니다. 승호만 사준 것이 아니고 제것도 하나 사왔고 고모 아들 것, 이모 아들 것까지 사왔습니다. 진작부터 축구 양말을 사주겠다고 했었는데 아이들 축구 양말이 너무 잘 팔리는지 아니면 잘 안 나오는지 사기가 힘들었는데 자주 다니던 길가에서 우연히 파는 곳을 발견하여 사온 것입니다.



빨간색, 파란색 두 가지 색깔이 있었는데 승호 것은 빨간색 양말입니다. 그런데, 말이 축구 양말이지 거의 스타킹 수준입니다. 다 신으면 거의 허벅지까지 올라가니까요. 승호엄마 왈, 아이들이 축구를 하다가 무릎을 잘 다치기 때문에 허벅지까지 올라가는 부분을 접어서 무릎을 보호하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만들어진 것 이라네요.



예전에 아는 분으로부터 축구 신발을 선물받았던 승호는 이제 축구 양말까지 갖추었으니 유니폼만 빼고 갖출 것은 다 갖춘 셈입니다.

"아빠.. 축구하자."

승호는 양말을 선물 받고나서 부터 계속 축구를 하자고 조릅니다.



승호와 제가 하는 축구는 이런 것입니다.

놀이터에 가서 그네나 기타 시설물을 골대로 정하고 게임을 하는 것이지요. 때로는 승부차기 형태로 축구를 하구요. 학교 운동장에 가서 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승호랑 축구를 하기에 학교 운동장은 아직 너무 넓더라구요.



대체로 제가 집에 늦게 들어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놀이터에 아이들이 있으면 축구를 하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에 밤 늦게 축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충, 밤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 정도죠. 이쯤 되면 놀이터에서 늦게까지 놀던 아이들도 대부분 집으로 들어가거든요.



저도 피곤하기 때문에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다음에 하자" 하면서 축구를 잘 안 해주는데 승호는 그럴 때마다 "그럼, 내일 하는 거지?" 하고 꼭 날짜를 못박습니다. 저는 '다음'이라고 얼버무리는데 승호는 명확하게 날짜를 집으니 제가 핑계를 더 댈 수도 없고 그 때가서 안 해주면 꼼짝없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쁜 어른이 되는 것이라 피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장마철이라 비가 많이 오잖아요. 그래서, 땅이 젖었다는 이유로 아주 자연스럽게 축구를 하지 않고 있는데 아침부터 비가 오지 않으면 승호는 제가 일찍 퇴근하기를 애타게 기다린다고 승호엄마가 그러더군요. 날씨가 좋은 날 제가 늦게라도 퇴근하면 승호는 "아빠가 나랑 축구하기 싫어서 늦게 오는 거야." 하면서 삐진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허허.. 이럴 줄 알았으면 축구 잘 하는 여자랑 결혼할 걸 그랬습니다. (^_^) 엄마가 축구를 잘 못 해서 엄마랑 축구하는 것은 재미없다고 그러더라구요. 흐흐... 사실 저도 축구 잘 못 하는데 말이죠.



아무튼 그 날 역시 야심한 시각에 승호 손에 이끌려 축구를 하러 나갔습니다.

승부차기 형태의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전 몸도 피곤하고 해서 빨리 끝내기로 작정했습니다.

"승호야.. 15점 먼저 넣으면 끝나는거야."

"응, 그래"

승호는 자신만만하게 소리칩니다.



저와 승호가 축구를 하면 항상 박빙의 승부가 진행됩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승호가 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제가 힘을 덜 쓰기 때문이죠. 어른 다리 힘으로 냅다 슛을 하면 승호는 아마 무서워 더 이상 축구 하지 않겠다고 할걸요? 저는 적당히 재미있게 해줍니다. 그러나, 그 날은 달랐죠. 물론 힘껏 차지는 않았지만 정확하게 찼습니다.



스코어는 순식간에 7:2로 벌어졌습니다. 웃음이 맴돌던 승호 얼굴이 점차 굳어져 갑니다. 경기는 더 진행되어 결국 14:6인가, 하여간 제가 1점만 더 넣으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제가 14점째를 넣었을 때 승호는 짜증섞인 말투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왜 아빠는 잘 넣고 나는 안 되는 거야. 이제 아빠가 한 골만 더 넣으면 끝이잖아."



이제 승호가 찰 차례입니다. 꼭 넣어야 한다는 결연한 표정이 아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저를 한 번 째려보더니 힘차게 공을 찹니다.

"슛!"

아, 그러나 공은 골대를 벗어나고 맙니다.

상황이 어찌되었겠습니까?

승호가 입술을 실룩거리더니 곧 울려는 표정입니다. 제가 "승호야.. 너 왜 그래? 진다고 울려는 거니?" 했더니 참고있던 울음을 폭발시킵니다.

"박승호.. 축구 하다가 우는 바보가 어디 있어? 응? 아빠 먼저 간다."

저는 협박조의 멘트를 내뱉고는 공을 집어들고 아파트 현관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갑니다. 그런데, 현관에 거의 다 들어가 승호의 눈에 제가 들어오지 않을 지점에 이를 때까지도 승호의 울음 소리만 들리지 따라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걸까요..



뒤를 돌아보았더니 승호가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엉엉~" 서럽게 울고 있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자기 시야에서 아빠나 엄마가 안 보이면 뛰어 올 아이인데 이번에는 좀 다릅니다. 코너에 숨어 보고 있자니 이쪽 눈치도 안 보고 그저 계속해서 울고만 있는 것입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워서 또는 억울해서 울고 있는 것일까요?



지나가던 사람들과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데다가 야심한 밤에 승호 울음 소리가 너무 크게 울리는 것 같아 저는 다시 승호에게 다가가서는 옆의 벤치에 앉았습니다.

"승호야.. 이리 와. 아빠 옆에 앉아서 울어." 그랬더니 승호는 저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는 계속 웁니다. 울음 소리는 많이 약해졌습니다.



전 승호가 울기 시작했을 때부터 머리를 굴리고 있었습니다.

'이건 좀 다르다. 옛날 같았으면 나를 좇아 뛰어들어올 놈인데 이제 그러질 않네. 좀 컸다는 건가? 어떻게 하지? 얘가 왜 우는 거지? 나한테 진 것이 억울해서? 더 놀고 싶어서?'



옆에 서서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는 승호를 바라보다가 드디어 말을 꺼냈습니다.

"승호야.. 아빠가 축구 가르쳐줄게. 왜 승호는 골을 잘 못 넣고 아빠는 골을 잘 넣는지 가르쳐 줄게. 좋지?"

승호는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그때부터 무자격 축구코치 승호아빠의 슛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승호야. 차봐. 거봐라. 네가 방금 찬 것 아빠가 쉽게 막았지? 왜 그럴까?"

"가운데로 가서."

"맞다. 승호 너는 공을 주로 가운데로 차잖아. 그럼 아빠는 서서 다 막아. 그렇지? 알까는 경우 빼고는 다 막잖아."

알깐다는 말에 승호가 웃기 시작합니다. 이런 지조 없는 녀석같으니라구. (^_^)



"자, 이번에는 네가 막아봐."

저는 골대 구석으로 공을 찹니다. 당연히 승호는 못 막고 골인이 되죠.

"승호야. 다시 차봐."

승호에게 공을 찰 기회를 넘겨 줍니다.

승호는 저를 흉내내어 구석으로 공을 찹니다. 그러나, 공은 빗나가서 골대 밖으로 굴러갑니다.



"승호야. 너 월드컵 때 봤지? 그 잘하는 선수들도 페널티 킥 할 때 못 넣는 것 봤지?"

"응.."

"그런 거야.. 그 선수들은 나라를 대표하는 훌륭한 선수들인데도 골을 못 넣기도 하잖아. 그 선수들이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는데.. 너는 그렇게 연습해봤어? 아니잖아. 그러면서 골 안 들어간다고 울고 그러면 되니?"

"..."



그 때부터, 한 20분간 슛 연습을 했습니다. 주로 구석으로 차는 연습을 말이죠. 구석을 노리고 차다 보니까 처음에는 골대 안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더 적었습니다. 당연하죠. 그래서, 전 더더욱 칭찬과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야.. 안 들어갔지만 잘 찼어. 방향이 아주 좋아. 조금만 더 연습하면 들어가겠는데?"

"와, 이번 것은 방향뿐만 아니라 속도도 엄청난데?"

연습이 계속 되면서 승호가 차는 공이 점점 골대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바깥쪽으로 휭 지나가던 공이 골대를 맞추기 시작하더니 골대 안쪽 구석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승호는 그 성과에 고무되었는지 신이 나서 열심히 공을 찹니다.



"승호야.. 네가 아직 어려서 다리에 힘이 없어 그러는데 밥 많이 먹고 연습 많이 하면 아빠처럼 세게 공을 찰 수 있거든. 공도 세고 구석으로 들어가고, 그렇게 되면 승호는 정말 축구챔피언이 될 수도 있는 거겠지. 다음 번에는 오른쪽 구석으로 넣는 연습하자."

"예"



그 동안 승호를 키우면서 느낀건데 일정 시점에 아이들에게는 뭔가에 대해 가르침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발현되는 것 같습니다. 작년이었나 재작년이었나 승호 고모부가 승호에게 공을 차는 법을 가르쳐준 적이 있습니다. 특별한 것은 아니고 공을 찰 때 왼발을 디딜 지점과 오른발로 임팩트하는 간단한 방법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그것이 승호에게는 굉장히 인상깊었나 봅니다. 그 때까지는 자기 마음대로 공을 찼는데 공이 제대로 나가지도 않고 해서 불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모부로부터 한 마디 듣고 나서 차보니 훨씬 공이 잘 차진다는 것을 안 것이죠. 이번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나 봅니다. 아빠에게 설명을 듣고 그렇겠구나 하고 공감한 뒤 연습을 해보니 훨씬 낫다는 것을 안 거죠.



그 후, 며칠 지나서 오른쪽 구석으로 차 넣는 연습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승부차기 게임을 했죠. 그런데, 그거 조금 연습했다고 금방 나아질까요? 아니죠.. 제가 역시 상당한 점수 차로 앞서가기 시작했고 승호는 다시 불안감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여기서 아이에게 또 다시 실망감을 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승호가 눈치 못 차리게 슬슬 하기 시작했죠.



결과요?



예상하시는대로 승호의 역전승이었습니다. (^_^)



(승호는 1997년 3월생 남자아이로 2001년 9월초부터 집에서 영어를 접하게 되었으나, 2002년부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어린이집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 외에는 특별한 활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덧붙임) 한 번은 축구를 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3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근처를 지나가다 구경을 하더군요. 야심한 시각에 왜 놀이터에 나왔는지.. 하여간 저와 승호가 열심히 승부차기 하는 것을 보던 아이의 입에서 "재미있겠다" 하는 소리가 조그맣게 튀어 나왔습니다. 전 모른 척 하고 축구를 계속 했습니다. 그런데, 승호가 갑자기 할 말이 있다면서 귓속말을 합니다. "아빠.. 저 형도 하고 싶은 가봐." 제가 보기에도 그랬습니다. 굉장히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어요. 그래서, 제가 "너도 한 번 차 볼래?" 하고 이야기하려던 순간 아이 엄마가 아파트 창을 통해 아이를 부르더군요. 빨리 들어오라고 말이죠. 아이는 결국 아쉬운 듯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도대체 아이랑 뭘 하고 놀지?'

'시간이 없는데 언제 놀지?'



이런 고민에 빠진 아빠들이 꽤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제가 제안 하나 할까요?

일주일에 한 두 번이라도 조금 일찍 퇴근해서(많이 일찍도 아닙니다. 아이가 잠들기 한 시간 전이라도 좋죠) 아이 데리고 동네로 산책 나가세요. 아이가 자전거 좋아하면 자전거 끌고, 인라인 좋아하면 인라인 신고 말이죠. 아이는 자전거나 인라인 타고 아빠는 옆에서 따라 걸어가고, 그렇게 산책을 하다 보면 아이랑 굉장히 친해집니다. 아이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게 되구요. 그리고, 나이 먹어가면서 점점 불어나는 배둘레 햄에도 압박을 가할 수 있구요. 일거양득 아닙니까? (^_^)



퇴근 후 아이와의 동네 산책.

시간도 잘 가고, 힘도 안 들고, 건강에도 좋고 아이도 좋아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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