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을 대물림하며... 2004-02-14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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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4/2/14

이제 약 3주 정도만 지나면 승호가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4살의 승호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데려다 줄 때 느꼈던 그 오묘했던 감정이 아직도 살아있
는 듯 한데 어느덧 승호는 8살 어린이가 되어 더 큰 세상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 입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예비 소집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승호엄마는 예비 소집일에 가서 이름이 불리었을 때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고 합니
다. 그런데, 이번에 승호를 데리고 가보니까 그런 절차들은 다 없어지고 그냥 아이 이름 옆
에다가 참석했다는 뜻으로 동그라미만 그려주면 되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모녀는 옷까지 세
트로 맞춰 입고 왔는데 별 행사가 없는 것을 보고는 황당해하는 표정이었다고 하네요. 그
밖에 캠코더를 가지고 오신 분도 있고 회사에서 틈을 내어 온 아빠도 있었다는데 실망을 많
이 한 듯 했답니다. 다들 옛날 예비 소집일을 생각했던 분들로 아마도 첫 아이를 학교에 보
내는가 봅니다.

승호엄마는 승호를 데리고 화장실과 교실 등을 둘러보고 왔다고 했습니다. 교실은 문이 잠
겨 있어서 들어가 볼 수 없었는데 창문을 통해 보였던 교실 앞의 커다란 TV가 인상적이었
고 난방 장치가 잘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나니 안심이 되더랍니다. 옛날 조개탄을 태워 난방
을 했던 교실에서 추위에 떨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었던 승호엄마 입장에서는 난방 장치
같은 것에 관심이 더 갈 수 밖에 없었겠지요.

학생 수만 해도 그렇습니다.
승호가 배정받은 학교는 이번에 학생 수가 많지 않아 세 개의 반(한 반에 30여명)만 운영하
기로 했다고 하더랍니다. 6학년이 여섯 반인 것에 비하면 절반으로 줄어든 셈입니다. 좁디
좁은 교실에 5-60명의 아이들이 꽉 차 있었고 또 그러한 반이 한 학년에 10개가 넘었던 30
년 전을 생각하면 정말 우리나라 교육이 외형상으로는 많이 발전한 듯 합니다.

학교를 다닐 당사자인 승호는 정작 예비 소집일에 가서 친구들이 없어 섭섭해했다고 했습니
다. 승호가 4년 동안 다닌 어린이집이 저희 동네에서 약간 떨어진 곳이라 같은 어린이집 출
신의 친구를 한 명도 만나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아파트 단지에 있는 같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대부분의 다른 아이들은 함께 뛰어 놀고 그랬는가 봅니다. 사실은 이런 문제를
예견하고 승호가 7살이 되었을 때 3년간 다니던 어린이집을 그만 두고 아파트 단지 내의 유
치원으로 옮길까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승호가 다니던 어린이집을 좋아
하고 있었고, 저와 승호엄마도 그 어린이집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다니기로 했었
던 것이죠.

승호에게는 그랬죠.
'어린이집에 처음 갔을 때도 아는 친구는 없지 않았느냐, 그런데 지금은 다 친구가 되었잖
아. 학교 가서 며칠만 다니다 보면 친구 많이 사귈 수 있을 거다. 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
니까 어쩌면 너무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될지도 모른다. 가게에 뭐 사러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친구들을 만나게 될 걸?'
그 이야기를 듣고 승호는 친구를 사귀면 놀이터에서도 놀고 집에도 데리고 오겠다고 그러더
군요. 하여간 지금은 승호가 계속해서 어린이집에 다녔으면 좋겠다던가 이사를 갔으면 좋겠
다는 식으로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는데 어차피 한 번은 넘어야 할 산 아니겠습니까...

7살 때부터 승호가 다닐 학교에 가서 공차기도 하고 산책도 하고 그랬기 때문에 승호에게는
학교 자체가 낯설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어린이집과는 차원이 다른 환경으로 들
어가게 되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겠지만 아직은 입학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별다른 징후없
이 잘 놀고 있는데요, 정작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은 초보 학부형인 저와 승호엄마가
되겠습니다.

첫 아이이자 외동 아이를 막상 학교에 보내려고 하니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게
되더군요. 게다가 승호엄마가 전업 주부가 아닌 관계로 승호의 학교 생활을 전업 주부인 엄
마들 만큼 챙길 수 없는 상황이기에 더더욱 긴장이 되었던 것이죠.

며칠 전에는 승호엄마와 저 사이에 승호의 초등학교 생활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었습니다.
제가 먼저 운을 띄웠죠.
"난 승호에게 적어도 중학교까지는 학교 성적을 가지고 스트레스를 줄 생각이 없는데 어떻
게 생각해?"
"나도 그럴 생각이야."
승호엄마가 의외로 순순히 동의를 합니다.

그리고는 저와 승호엄마는 서로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주고 받았죠. 승호엄마는 학교 생활
을 굉장히 재미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학교 가는 것이 즐거웠고 각종 특별 활동반에 참가해
서 친구들과 함께 배우고 놀고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런 경험 탓인지 자식의 학교 성적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반면, 저는 별로 재미없는 학창 생활을 보냈습니다. 제가 참여했었던 특별 활동반을 생각해
보면 기껏해야 '수학경시반' 정도였습니다(요즘도 이런 것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결과 승
호엄마에 비해 학교 성적은 우수했을지 모르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드는 생각은 '그 시절이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전 승호가 저처럼 학교를 다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
니다. 승호엄마처럼 학교를 다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경험을 통해서도 동일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더군요. 구체
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비록 의견이 다르더라도 대전제가 같다면 앞으로 발생할 저와 승호엄
마 간의 수많은 이견들을 조정해나갈 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과연 아이의 성
적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부모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장담 못 하겠습니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도를 많이 닦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고등학교 전
의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그 때까지 어떤 면을 강조해서 아이 교육을 끌어갈 것인가에
대한 큰 그림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큰 그림이 구축되어야 구체
적인 안들도 만들 수 있을텐데 걱정입니다그려. 부모로서 이런 것을 배우고 공부할 시간이
많이 부족하네요.

동료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아이 교육이 정말 어려운 이유는 아빠인 나 자신의 인생관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구요.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부모의 인생관, 가치관이 확립
되어 있다면 그에 따라 아이의 교육관도 자연스럽게 힘들이지 않고도 정의될 수 있을 것입
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저 자신이 확고한 인생관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 교
육 문제에 대해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빨리 철 들어야 할
텐데요.

이런 혼돈된 상황 속에서 며칠 전 저의 부부는 하나의 작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제 책상을 승호에게 물려주기로 한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써오던 책상을 이제 초
등학교에 입학하는 승호에게 정식으로 물려주기로 한 것이죠. 그 책상은 지금까지 쭉 승호
방에 놓여 있었지만 승호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현대식의 책상과 의자, 책꽂이 세트를 하
나 장만하면서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적어도 승호엄마의 생각은 그랬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학교 생활을 시작하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하고 싶다는 것이었죠. 반면 저는 좀 다
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승호에게 제 책상을 물려주고 싶었습니다.

비록 30년 가까이 된 책상이라 요즘 것 같이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아직 부서진 곳도 없고
흔들리지도 않아 쓰는데는 지장이 없거든요. 또, 아버지가 쓰던 책상을 아들이 물려받았다
그러면 왠지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어쩌면 이런 생각을 아주 일찍부터 하고 있었는지도 모
르겠습니다. 특별한 용도가 없었던 그 책상을 결혼하면서 분가할 때도 가지고 왔고, 승호가
태어난 후 이사할 때도 가지고 왔으니까요.

그런데, 며칠 전 승호엄마가 저의 이런 생각을 눈치챘는지 책상은 물려주고 의자를 좋은 것
으로 하나 사겠다고 그러더이다. 승호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승호는 아직 개념이
없답니다. 책상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인지 아빠가 쓰던 것을 물려받아도 좋고
새로 사도 좋답니다. 그래요, 승호가 비록 지금은 제 생각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나중에는
이해하리라 기대합니다. 수십년 전부터 사용했던 책상을 아들에게 물려주는 아빠의 기대와
마음을 말입니다.

어제 퇴근해서 보니 승호엄마가 책상 위에 코르크 판을 깔고 책상 서랍 앞쪽에도 코르크 판
으로 덧붙여 놓았더군요. 저는 잘 몰랐었는데 세월의 탓인지 책상 위에 다소의 금이 나있었
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서랍 앞 쪽에는 승호가 아기 때 판박이를 하도 많이 붙여놓아서 너
무 지저분해 가렸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서운하냐고 저에게 묻더이다.
서운하긴요, 오래된 제 책상(이제 승호 책상이죠)이 새로이 탄생한 것인데요.

요즘은 허리에 좋은 의자도 많다던데 다음 주말에는 승호 의자나 보러 나가봐야 겠습니다.

(승호는 1997년 3월생 남자아이로 며칠 후면 초등학교에 갑니다. 앞으로 영어 교육을 어떻
게 해야할 지에 대해 요즘 고민 중입니다.)

덧붙임) 작년에 어쩌다가 승호가 입학하게 될 초등학교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게되었습니다.
비록 운동장에서 주로 훈련받느라 건물 안으로는 화장실 갈 때 밖에 들어가보지 못 했지만
승호가 다닐 학교라는 생각을 하니까 조금 색다르더라구요. 예비군 대장이 여러분들의 자식,
조카들이 다니는 학교니까 담배 꽁초 같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그랬는데 그 말
도 가슴에 와닿구요.

그런데, 화장실 가려고 본 건물에 들어가 화장실을 찾고 있는데 현관 입구 왼편에 있는 방
의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학교발전기금접수처' 뭐 대충 이런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 나도 승호가 다닐 학교에 발전 기금 좀 낼 수 있을까?'
훈련 마치고 집에 들어와 승호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이 동네에 돈 많은 사람들 많으니까 그 사람들이 내겠지" 하는 대답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
다.

열심히 일해서 발전기금도 좀 내보렵니다. 앗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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