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승호의 학교 생활 첫 달 2004-04-0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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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4/4/3

요즘 승호를 관찰하고 있자면 제 마음이 걱정 반, 안심 반이 됩니다.
생각보다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듯하여 안심이 되다가도 이것저것 곰곰히 생각해보
면 문제점이 적지 않거든요. 적어도 제 관점에서는 말이지요.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오후 4-5시까지 어린이집에서 지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으나 학
교에 가게 되면서부터 집에서 혼자 지내야 하는 오후의 많은 시간 동안 뭐 하며 어떻게 놀
까 하는 것이 승호의 최대 관심사입니다. 집에 엄마나 아빠라도 있으면 걱정 없겠지만, 주중
에는 그것을 기대하기도 어려우니 자기도 괴롭겠지요. 갑자기 늘어난 이 엄청난 시간을 어
쩐다냐 하고 말이지요.

잠깐, 승호의 일주일 스케쥴을 살펴볼까요?
3월에는 12시경, 4월부터는 점심 식사를 하고 오니 오후 1시면 하교를 하는데 월요일과 화
요일에는 승호엄마가 오후 1시 조금 넘어 집에 오기 때문에 엄마가 오기 전까지만 할머니집
에 있으면 됩니다. 월요일 오후에는 별 일이 없고, 화요일 오후에는 영어 공부를 합니다. 무
슨 영어 공부냐구요?

어린이집 다닐 때의 친구 몇 명이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1시간 동안 영어 동화책 수업을 받
습니다. 2월 중순 경부터 시작했는데 첫 4주는 'Polar bear, polar bear, what do you hear?'
를 교재로 공부를 하더이다. 선생님이 읽어 주시고, 노래도 부르고, 게임도 하고, 플래쉬 카
드를 만들어 알파벳도 익히는 것 같습니다. 테이프도 주길래 집에서 가끔 틀어주었습니다.
요즘은 두 번째 교재로 'The very hungry caterpillar'를 택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실 승호가 학교 들어가면 영어를 어떻게 하나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학원 보내는 것은
시기적으로 너무 빠른 것 같고, 그렇다고 집에서 쑥쑥의 여러 회원들께서 하시는 것처럼 영
어 동화책을 읽어 주거나 다양한 활동을 할 능력과 시간도 가지지 못 했기 때문에 거의 대
책없이 있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 와중에, 승호와 친했던 어린이집 친구 어머니께서
제안을 하셔서 영어동화책을 가지고 가볍게 영어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게 된 것이죠. 승호
친구의 누나는 몇 년째 그 선생님에게서 배우는데 아이가 영어를 잘 하는 것을 떠나 재미있
게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게 어딘가요.. 또, 혼자만 다른 학교로 배정이 된 승호가 외로
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옛 친구를 만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구요. 하여간, 부모로서 해야할 일을 시간과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떠
넘긴 셈인데 저희가 처한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오후에 승호엄마가 같이 있는데 승호는 이 시간을 이용해서 학교 같은
반 친구들과 노는 기회를 만듭니다. 아직 1학년이라 학교가 끝난 후 친구들을 만나 놀 때도
엄마들이 따라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승호가 그 놀이 약속을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들에게 놀기로 했으니 몇 시까지 어디로 나와달라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전 사실 놀랬습니다.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믿기지 않았죠. 승호엄마 말이 승호가 자꾸 승호 친구 집에 전화를 걸
어 달라고 해서 어떻게 그럴 때 마다 엄마가 전화를 할 수 있냐고 하면서 네가 직접 전화해
라 하고 몇 차례 이야기를 했더니 그리 하더랍니다. 놀이에 대한 강한 욕구가 용기를 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은 오후에 승호엄마가 집에 없기 때문에 승호는 외할머니와 함께 있
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집에서 놀고 있는데 뭔가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승호엄마
의견으로는 지난 겨울 추위 때문에 배우다만 인라인 스케이트 강습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오후에 타면 시간도 잘 가고 승호를 돌보아야
하는 외할머니도 한 숨 돌릴 수 있을테구요. 아마 두 달 정도만 하면 더 배우지 않아도 될
텐데 그 때 마침 학교에서 수영을 가르친다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수영으로 갈아 태우면 될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운동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운동 만큼은 꾸준히 할 수
있게 할 요량입니다.

토요일은 엄마, 아빠가 집에 다 있지만 공교롭게도 지난 11월부터 동사무소에서 제공하는
바둑 강좌에 가야하는 날입니다. 석달치를 한꺼번에 등록하는데 이번에 두 번째로 등록을
또 했거든요. 언제, 한 번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승호는 바둑도 바둑이지만, 할아버지 선생
님이 가르쳐주시는 한자에도 관심이 많아 꽤 열심히 다닙니다. 가끔 저하고도 바둑을 두는
데 한번도 바둑을 배워보지 못한 저에게 패하고 나서는(저는 규칙을 잘 몰라 그저 둘러싸서
따먹는 전술로 나갑니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제가 이기더군요. 허허..) 배우고 있는 바둑 교
재를 숨기는 것 있죠? 제가 그 교재를 보고 바둑을 더 잘 두게 될까봐 숨기는 거라고 합니
다. 고 놈 참... 그것이 얄미워서 한 번은 날을 잡아 바둑, 장기, 알까기 이 세 가지 게임을
한꺼번에 한 날이 있었는데 제가 모든 경기를 다 이겼다는 것 아닙니까.. 원래 알까기는 승
호가 저 보다 잘 하는데 그 날 따라 제 컨디션이 좋았는지 알까기 마저 이겼지요. 승호 표
정 볼 만하더이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르고 눈도 뻘개지는 것이 곧 울 태세더라구요. 아
무튼 요즘도 바둑 열심히 다니는데 언제쯤 저를 제압할까요? 허허..

자, 그럼 승호의 학교생활은 어떨까요?
승호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칭찬카드'입니다.
선생님께서 말 잘 듣고 잘 하면 학생들에게 칭찬카드를 주시는가 본데 그거 모으는 재미에
푹 빠져있습니다.
제가 퇴근하면 꼭 '오늘은 칭찬카드 몇 개 받았다' 하면서 실적을 보고합니다. 동시에, 지금
까지 모은 것이 몇 장이다라는 이야기도 덧붙이지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승호가 칭찬카드를 받기 위해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뭐든지 열심히 하
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까지 듭니다. 즉,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 점이 걱정
되어 승호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카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승호에
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하는 점에 대해 말이죠. 승호엄마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아직 승호
가 그것을 이해할 나이는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이해시키려하지는 않고 때
때로 가볍게 이야기해주곤 합니다.

승호 선생님은 칭찬카드 다섯 개를 모아오면 멸치를 두 마리씩 주십니다. 이 멸치가 대단히
맛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승호는 이 멸치를 몇 마리 먹어보질 못 했답니다. 칭찬카드를 많
이 받았다는 승호가 왜 멸치를 못 먹었을까요? 바로 칭찬카드를 멸치와 바꾸지 않고 계속
모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짝꿍이랑 경쟁이 붙어서 누가 칭찬카드를 많이 갖고 있나 겨
루고 있나 봅니다. 그 칭찬카드라는 것이 빨리 빨리 회전이 되어야 되는데 승호와 승호 짝
꿍처럼 쥐고 놓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선생님께서는 새로 칭찬카드를 또 만들었다고 합니
다.

승호엄마가 교실 청소하러 갔다가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선생님은 승호가 칭찬카드
를 많이 받았는지 잘 모르시더랍니다. 그럴 수 밖에요. 와서 멸치랑 바꿔 먹어야 저 아이가
그 동안 칭찬카드를 많이 받았구나 생각할텐데 오질 않으니 아예 못 받은 줄 아실 것 아닙
니까... 조금 도가 지나치다 싶어 제가 승호에게 아빠도 그 멸치가 먹고 싶으니까 좀 바꿔와
라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겨우 한 마리 가져다주는 것 있죠?

승호가 칭찬이나 상 뭐 이런 것들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 걱정이 많이 됩니다.
그와 연관되어 승호의 이중생활(?)이 떠오르네요.
집에서랑 학교에서랑 상반된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이 꽤 있다고 하잖아요. 승호가 바로 그
런 이중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이거이 무슨 말이냐 하면, 역시 승호엄마가 토요일에 교실 청
소하러 갔는데 승호가 엄마를 발견하고는 "엄마다!"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더랍니다.
그 모습을 본 승호 담임 선생님께서 놀라면서 "아니, 승호가 이렇게 씩씩하네" 그러시더랍
니다. 그 동안 승호가 학교에서는 조용하고 얌전한 모습만 보였다고 하시면서요. 승호가 집
에서는 얼마나 까불고 말도 많은데요. 한 마디로 이중생활을 한 것이죠.

그나저나 초등학교 1학년 승호가 꿈꾸는 자신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요?
얼마 전 수업 시간에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승
호에게 물었습니다. 친구들이 제일 많이 되고자하는 직업이 뭐였냐고 말이죠. 놀랍게도 화가
였답니다. 10명 가까이 되는 친구들이 화가가 되겠다고 했다네요. 그 밖에 많은 직업으로는
과학자, 선생님이 나왔고, 승호는 축구선수라고 대답했답니다. 축구선수가 꿈인 친구는 승호
를 포함하여 3명이었다고 하네요. 전 3명은 더 될 줄 알았는데 말이죠. 승호 또래 남자 아이
들은 대체로 축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아닌가봅니다.

옛날에 트럭 운전수, 과학자, 화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던 승호의 지금 꿈은 바로 축구
선수입니다. 반 친구들을 모아서 놀 때 하는 것도 축구이고 집에서 PC로 하는 유일한 게임
이 바로 축구 게임입니다. PC 게임에 너무 몰두할까봐 일주일에 세 번, 30분씩 하는 것으로
규칙을 정해놓고 따르게 하고 있는데 열심히 하더라구요. 동시에 제가 조금 일찍 퇴근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저랑 진짜 축구를 하고 말이죠. 옛날에 비하면 슛의 강도나 정확도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저나 승호엄마를 본다면 유전학적으로 승호가 진짜 축구선수가 될 확률은 매
우 낮다고 생각되지만 어느 하나를 열렬히 추구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를 어서 사귀어 학교 운동장에서 원없이 축구를 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마침 승호네 반 아이의 어머니들이 모여서 주말체육(이것도 일종의 과외라고 할
수 있나요?)을 하기로 했다네요. 체육대학에 다니는 학생을 강사로 섭외해서 아이들에게 축
구를 가르치자는 것입니다. 승호도 참석하겠느냐고 물어왔다는데 승호가 빠지면 되겠습니
까.. 오직 그런 날이 오기만을 기다린 아이인데요. 다음 주 토요일부터 주말에 한 번 씩 한
다고 합니다. 하필이면 미리 끊어 놓은 바둑이랑 겹쳐서 바둑을 한 시간 정도 손해볼 것 같
습니다. 그 만큼 승호에게는 축구가 중요하거든요. 하여간 승호는 토요일이 제일 바쁘게 생
겼습니다. 오전에 학교 갔다가 오후에는 축구, 바둑을 해야하니까요. 토요일에 쉬는 저와 승
호엄마는 덕분에 편하게 되었습니다. (^_^)

기분이 좀 그래요. 제가 어렸을 때는 그냥 친구들끼리 모여 동네에서 공 차면 그것이 바로
축구였고, 학교 다니면서부터는 학교 수업 끝나고 운동장에서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고, 고
무줄 놀이도 하고 그랬는데(그것도 막 뒤섞여서 말이죠. 야구하다가 축구공이 날아오면 그
냥 뻥 차 버리고 말이죠), 요즘은 시간을 맞추어 조직화 시켜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잘 놀지
를 못 하니 말이죠. 아이들이 방과 후에 워낙 배우는 것이 많아 그렇기도 하고, 옛날에 비해
길거리에 차가 많아져서 아이들이 마음놓고 뛰어 놀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는 것도 이유가
될 듯 합니다. 또한, 아파트로 대변되는 도시의 거주문화가 영향을 준 것도 있을테구요.

4월이 되면서 급식도 시작되고 교과목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면에서는 승호
가 별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교과서를 보니 교과목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녔던 아이들이 소화하기에 그리 어려운 내용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더이다. 간혹
종일반이 아닌 유치원에 다녔던 아이들이 초반에 급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
던데, 4년간 어린이집에서 점심을 먹었던 승호는 오히려 밥이 맛있다고 야단입니다. 게다가
우유를 그리 마시지 않던 승호가 학교에서 나눠주는 우유는 잘 마신다는 것입니다. 벌컥 벌
컥 한 번만 쉬고 다 마신다고 자랑합니다. 알고 보니 우유 잘 마시는 분단에게도 단체로 칭
찬 카드가 주어진다고 하더군요. 이 칭찬카드에 대한 집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눈여겨 보
고 있습니다.

참, 승호도 처음에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는지 눈을 깜빡거리는 틱 증후군이라
고 하나요, 그런 증상을 보였습니다. 며칠 그러다가 요즘은 잘 안 보이는데 저희는 무슨 눈
병인가 해서 안과에도 데리고 갔었어요. 그런데, 별 일 아니라고 의사도 이야기하고 마침 그
이야기를 들은 누나가 남자아이들이 특히 그 나이에 그런 증상을 보일 때가 많다면서 그냥
모른 척 하라고 그러길래 좀 지켜보았더니 좋아지네요. 승호엄마 말로는 승호 반 아이들 몇
몇이 비슷한 증상을 보이더랍니다. 그 만큼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다는
이야기겠죠. 더 큰 사랑과 믿음으로 아이를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튼 요즘 이것 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아 골치 아프고 컨디션도 안 좋은 상황에서 승호의
학교 생활 이야기 듣는 재미에 살고 있습니다.

1학년 초, 부모도 아이도 힘든 때이지만 반면 이 때 만큼 역동적이고 활기차고 재미있는 시
기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다들 바쁘고 힘들겠지만 따뜻한 봄 날 햇볕 놓치지 마세요..

(승호는 1997년 3월생 남자아이로 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1시간씩 영어
story telling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집에서 영어 노래 듣고 아주 가끔 제가
읽어 주는 영어 동화책 보고, 매일 아침마다 학교 가기 전에 EBS에서 하는 영어 방송을 밥
먹으면서 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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