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대한 단상(1) ...학원 안 보내기 대작전 2002-10-0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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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10. 9
영어 학원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일반적인 교과과목 학원들을 말하는 거랍니다. 놀라셨나요? (제 입장에선 영어 학원도 당분간은 고려하지 않고 있긴 합니다만....)

예전부터 저의 현실적인 육아(?) 목표는 "학원 안 보내고 초,중등교육 끝까지 시키기"였습니다.
너무 초라한가요? 아니면 너무 거창한가요?
보내면 보내고 안 보내면 안 보내는 거지....이렇게 생각하실 분들 많으실테고
저 역시 굉장히 강한 의지를 가지고 내린 설정은 아니었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 수록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이루기 힘든 목표라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우선 주변에 학원이 너무나 많고, 학원 안 다니는 아이들을 찾아 볼 수 없으며, 학원 보내면 성적이 어느 정도는 상승한다는
바로 이 세 가지 강력한 특성 때문에 학원에의 유혹은 떨치기 힘든 겁니다.
아니,이제는 차라리 유혹이 아니라 학교 마치고 학원 가는 것이 일상사가 되었으며 거의 정규 교육 과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10월로 접어 들면서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 제가 맡은 학급의 달력에는 D-28 이란 빨간 글자가 등장했습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떠들어 대지만 얼굴은 상기되어 있고 소화가 안 된다거나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합니다.
네, 수학능력시험이 한달이 채 안 남았습니다.
이제 그동안 고생했던 결과들이 나타나면서 뿌듯해 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절망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성적들을 보면서 (성적도 성적이지만 아이들의 의존성이나 자신감 결여 등의 문제를 느끼면서 더욱) 제 아이는 절대 학원을 보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더 생각합니다.
학원의 도움은 큽니다.
아이가 학원 시스템에 잘 적응하기만 하면 중학교나 고등학교 1,2학년 내신성적은 학원이 책임져 줄 확률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원숭이의 꽃신"입니다.

꽃신이 없이도 잘 살았던 원숭이가 오소리(?)가 공짜로 만들어 준 꽃신을 신어보고는 좋아합니다. 거친 바위와 산길,그리고 나무들을 쉼없이 오르내리던 원숭이의 발에 오소리가 만들어준 꽃신은 너무나 폭신폭신 했으니까요. 원숭이는 그 꽃신을 신고 더 이상 발이 아프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행복해 합니다.
꽃신이 닳으니 오소리는 동전 한 닢을 받고 또 꽃신을 만들어 줍니다. 이제 꽃신에 익숙해진 원숭이의 발바닥은 점점 부드러워져 갑니다.
그리고 또 꽃신은 닳고....이제는 오소리가 만들어 주는 꽃신을 신으려면 동전 두 닢이 필요하고 , 네 닢이 필요하고....
점점 불어나 원숭이가 감당하지 못 할 만큼 비싼 값을 치러야 하게 되었습니다.
돈이 없지만 이젠 꽃신을 신지 않으면 발바닥이 아파서 한 발자국도 걷지 못하는 원숭이.....
저희 학급의 일부 아이들을 보면서 그 원숭이가 생각났습니다.

어느 아이는 지금은 반에서 중상정도의 성적인데, 학부모와 상담을 하다 보면 중학교 때는 전교 *등 했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게 아니라면 그 아이는 학원에 다닌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그리고 그 학원을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거지요.
3월 들어서면서 모의고사 360 점을 받은 어느 아이가 성적이 오르락 내리락 몇 번 하다가 최근의 모의고사에서도 370점대를 받았습니다. 일년 동안 공부한 대가가 거의 없었던 거죠.
반면에 똑같은 점수대에서 출발한 다른 한 아이는 최근 390점 가까운 점수를 받았습니다.
전교에서 1,2 등을 다투는 두 아이에 대한 비교입니다.
물론 이 두 아이는 공부하는 스타일이라든지, 환경, 따지고 보면 성격자체도 많이 다르므로 적절한 비교가 될 수 없지만 ,옆에서 공부하는 것을 지켜보면 무엇이 다른가가 느껴집니다.
학생들과의 질문과 답변이 몇차례 오가면 교사들은 대번에 느낄 수 있지요.
이 아이의 머리 속을 채우고 있는 지식들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를.....
두 아이 모두 전교 1,2등을 다투니까 둘 다 공부 잘 하네....이렇게 넘겨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한 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을 때 느끼는 괴로움이 엄청납니다.
그리고 상위권 성적을 받는 아이들의 예를 들었지만 공부를 잘 하든,못 하든 전반적으로 그런 문제를 다 겪고 있음이 요즘 아이들에게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모두 열심히 하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음을 괴로워하며 스스로를 자책합니다.
열심히 하는데도 왜 성적이 오르지 않을까요? 일반적으로 공부 방법의 문제라고 하겠죠.
맞습니다. 공부 방법은 아주 큰 열쇠가 됩니다.

좀 늦어도, 단번에 효과를 보지 못해도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가고 수정해가면서 습득한 자신만의 공부방법을 가지고 있는 학생은 끝에 가서 만족을 할 수 있습니다.
특정 상황에 길들여지지 않았으므로 다양한 상황에서 적응을 잘 하며 문제 해결력을 발휘하는 자신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수학능력시험 같은 현실적인 결과를 생각해도 그렇고,무엇보다 자신이 느끼는 만족감이 큰 힘이 됩니다.

그런데, 특히 중학교 과정에서 학원을 다니면 학원 시스템은 너무나 아이들에게 잘 맞춰서 쪽집게 식으로 쏙쏙 머리에 집어 넣어 줍니다.
아이들은 잘 받아 먹기만 하면 되죠. 학교에 오면 배운 내용으로 문제를 기가 막히게 잘 풀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험도 잘 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제가 살고 있는 울산의 모 학원의 경우, 십 여대의 버스가 하루종일 아이들을 실어 나르며 울산 시내를 질주합니다. 한마디로 잘 나가는 학원이죠.
이 학원은 아이들에게 학교 선생님들이 낸 시험 문제를 가져오면 1,000원씩 준답니다.
그래서 그 학교의 몇 년간의 시험문제를 모두 확보한 후 시험기간이 되면 아이들에게 그것을 달달달달 외우고 풀게 합니다.
실제로 학교의 시험 문제는 변화가 그리 다양하지 않습니다. 학교 교사들도 반성해야 할 문제입니다만....
그래서 그 학원을 다닌 아이들은 거의 틀림없이 성적이 오르게 되고 아이들도,학부모들도 학원에 깊은 신뢰를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 좋은 성적은 이젠 그 학원을,혹은 다른 학원이라도 안 다니고는 못 배기게 되는 잘 못 끼워지는 첫 단추이며, 원숭이가 처음 받아든 꽃신인 셈입니다.

고 3인 지금도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제가 소용없다고, 그 시간에 차분히 자기 스스로 정리를 해보라고 하지만
그 아이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 성적은 안 오르지만 거기라도 다녀야 안심이 되거든요."입니다.
아이들이 학원에 기대는 심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리고 그것이 많은 부분 오히려 자생력을 떨어뜨리는 독소가 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기에
말리지도, 부추기지도 못하는 고3담임입니다.
하지만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이라면 일일이 부모님께 전화 걸어 학원 보내지 말라고 말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성적이 떨어질 수도 있고, 불안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스스로 공부해서 성적을 올릴 수도 있고, 그것이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또 공부하는 재미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득할 것입니다.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줄 학부모님이 계실지는 저도 자신할 수 가 없는 일이지만요...^^

물론 더 잘할 필요는 없으니 그 정도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학원의 도움을 받겠다고 하실 분도 계시겠죠.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해보실 것은 아예 공부를 못하는 학생보다 학원 다녀서 적당히 잘 하는 학생들이
스스로의 성적이 빈껍데기 같은 것임을 더 잘 느끼고 있으며 그래서 자신이 가능성이 없음도 더 빨리 결정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의 그 마음까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까요?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음을 모르고 자신이 단추도 제대로 못 잠그는 바보라고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르는 아이들의 마음을요.....

오늘도 저는 생각합니다.
학원에 다녀서 아이의 성적이 표 나게 쏙쏙 오르는 맛을 거부할 용기가 나에게 있을 것인가?
성적 오르는 다른 아이들이 샘나서 아이가 학원에 보내달라하면 알아 들을 수 있게 설명해주고, 아이가 스스로 ' 학원파들' 과의 경쟁에서 위축되지 않게 심리적으로 안심시켜 줄 수 있을 만큼 아이와 신뢰를 쌓을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나름대로 자신과 주변 상황과의 싸움에서 버티는 힘을 배우는 아이를 보며 흔들리지 않을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제가 왜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를 두고 "학원 보내지 않기"를 벌써부터 결심해야 하는지를 함께 공감해 주실 수 있을지요.
어쩌면 인스턴트 음식을 먹이지 않고 자연식품에만 입맛을 길들이기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무의식 중에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지는 것처럼, 학원에서의 학습에 길들여져서는 안되겠다고 벌써부터 고민하며 "학원 안 보내기 대작전"을 구상합니다.
구체적인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은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첫 번째 답인 듯 싶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 볼 문제이지요.
제 아이도 너무나 부족하고 저 자신도 아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학원 보내는 일이 그리 쉽게 결정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한번 더 생각해 보며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고 고민해봅니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아이들의 인성,행복 이런 것들 대신 성적에 대한 이야기만 하게 되었습니다.
성적이 모든 것은 아니지만 오늘 제 이야기의 초점을 그리 맞출 수 밖에 없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학원에 대한 제 생각이므로 정말 교육에 신념을 가지고 학원을 운영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사과 드립니다. 아마도 그 신념으로 제 말의 의미를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학원을 보낼 수 밖에 없는 분들께도 혹시 제 글이 누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다만 아이를 학원으로 등 떠밀어 보내는 것을 너무 안일하게 결정하지는 말자는 뜻으로 써 보는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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