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뢰벨 직원들은 프뢰벨 제품을 사지 않는다? 2003-08-2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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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하자하자! 프뢰벨, 몬테소리, 아가월드 불매운동)

두어달 전쯤인가 한 여성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78년생인 그 여성의 직업은 애널리스트.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증권사에 들어와 2년 동안 선배 애널리스트 밑에서 훈련받고 정식으로 자기 분야를 맡아 애널리스트 생활을 시작한지 겨우 1년도 안된 상태였습니다.

그런 사람을 왜 만났나구요? 음, 이 아가씨가 교육 담당 애널리스트가 된지 1년도 안돼 글쎄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꼽히지 않았겠습니까. 전 분야 베스트 중 최연소.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비결이 뭔지 궁금했지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이 아가씨가 업계 관심을 끌게 된 보고서는 바로 웅진닷컴에 대한 기업분석 리포트였습니다. 다른 애널리스트들이 웅진닷컴의 매출액과 순익 등등 각종 수치에만 매달려있을 때 이 아가씨는 프뢰벨, 몬테소리, 한솔교육 등등 다른 유아교육업체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유아교육 시장 전체의 트렌드를 알게 되면 그 안에서 웅진닷컴 위상과 성장성을 측정할 수 있게 되리라는 이유에서였지요. 다행히 해당 업체들에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어 알음알음 현장의 실제적인 목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 프뢰벨 직원들, 그 중에서도 프뢰벨 상품기획실 직원들은 절대 프뢰벨 제품을 사지 않는다는 거였지요. 왜냐? “제품이 괜찮긴 하지만 그 정도 가격을 지불할만큼의 가치는 되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높은 가격을 책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비싸야 팔린다”는 아주 고전적인 논리 때문이랍니다. 실제로 어떤 제품은 대중화를 위해 프뢰벨 치고는 다소 저렴한 가격에 내놓았던 적이 있는데 완전하게 실패해 몇권 더 붙이고 이름 바꿔 고가에 다시 출시한 경우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프뢰벨 뿐만이 아닙니다. 몬테소리 직원들은 몬테소리 책을, 아가월드 직원들은 아가월드 책을 안 산다는 현실...

그동안 심증만 가지고 있던 사실들의 물증을 잡은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전집을 참 많이 산 사람 중 하나입니다. 지금은 절대 안 살 것 같은 책들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다 뭘 잘 모르던 귤미 돌 이전에 산 책들이지요. 물론 이 책들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값어치를 하고 있나 하는 측면에서 가슴앓이를 하는 거지요.

이 쯤에서 저의 전집 편력을 고백해야겠습니다.

제가 처음 전집을 구입한 것은 규림이 낳고 3개월쯤 됐을 때였습니다. 잘 아는 먼 친척언니가 몬테소리 영업사원을 한다며 친정엄마께서 책 살려면 그 언니한테 사는 게 어떻냐고 말씀하신게 단초가 됐지요. 계획보다 빨리(결혼 후 3년은 팡팡 놀려고 했는데...푸헤헤) 아이를 낳은 저는 당근 준비되지 않은 엄마였고, 아이를 낳고도 책에 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백지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만난 언니는 저에게 “조금 더 빨리 사줬으면 좋을 뻔 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하게 됐으니 다행”이라며 이것저것 권했습니다.

아, 무지한 엄마라는 자괴감. 지금이라도 이것저것 해보자라는 조급함에 덜컥 피카소창작동화와 베이비몬테소리 1, 2를 들여놨지요. 가격이 부담스러운게 사실이었지만 이게 큰 이슈는 아니었습니다. 마치 이걸 안사주면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 안해주는 엄마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더 컸으니까요. 그리고 며칠 후 받아본 책들, 피카소야 창작은 어차피 한질 정도 필요하니 그렇다 치고, 베이비몬테소리가 문제였습니다. 1은 그런대로 책도 있고, 좀 커서까지 활용할 수 있는 제품들이 끼여있어 그냥저냥 넘어갔는데, 교구 중심의 2는 한눈에도 조잡스러움에 이런 걸 수십만원씩 주고 산 제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더군요. 언니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그날로 2는 반품시켜버렸습니다. (사실은 1도 귤미 두돌 쯤 무렵 중고로 팔아버렸답니다)

절반의 만족. 근데 이 절반의 만족이 무섭다는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돈은 돈대로 들였으면서도 썩 만족스럽지는 않고. 다음번엔 정말 좋은 책을 잘 골라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게다가 당시 저희 아파트에 아가월드 책 열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아가월드에서도 아주 영업을 잘하기로 소문나신 분이 아파트 젊은 엄마들을 휩쓸고 있었지요. 어느날 우연히 알게된 귤미 또래 아이집에 가서 본 아가월드 책들은 왜 그리 색깔도 예쁘고 내용도 좋아보이던지... 그 중에서도 알록달록 코끼리 엘머책들이 끼어있는 드림북은 정말 환상이었습니다.

동네 친구가 된 그 엄마 소개로 만난 아가월드 영업사원 분은 제게 아주 색다른 접근법을 제시했습니다. 이름하야 ‘5대 요소 만족론’ 영어, 정서, 사회성, 자연, 체육 등 5가지 분야를 골고루 발전시켜줘야 하고, 이를 위해 5가지에 해당하는 다양한 책들을 빠짐없이 구비해줘야 한다는 주장이었죠. 아가월드 제품을 예로 들면 영어는 빙뱅붐, 정서는 세계의 그림책과 드림북 등 창착책, 사회성은 보조개왕자와 미피, 자연은 아임어리틀, 어메이징 애니멀 등. 체육은 책으로 보완하기 어렵고 대신 교구를 통한 놀이활동으로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20% 할인까지...

당근 전 또 한번 헤까닥했지요. 몬테소리 10개월 무이자 할부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고민고민하다 빙뱅붐1, 2와 보조개왕자, 드림북, 아임어리틀, 어메이징 애니멀을 차례로 사들였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이걸 사줌으로써 귤미가 조화로운 아이로 자랄 수 있는 토대를 다 마련해주기라도 한 것같은 만족감에 휩싸였었지요.

프뢰벨과의 인연은 가장 늦게 만들어졌습니다. 규림이가 두돌을 한참 지난 후, 수업이 젤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선택했던 프뢰벨 은물. 그러나 막상 받아본 은물 품질은 정말 수준 이하였습니다. 이리저리 고민하다 아는 분이 제 걸 넘겨받겠다고 해 명의이전을 하려고 했더니, 글쎄 구입한지 한달도 안된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받았는지 안받았는지도 모르는 제품을 어떻게 명의이전해주느냐는 싸늘한 답변만 들어야 했습니다. 그냥 썼어도 됐을텐데, 일단 마음이 떠난 제품을 이상하게 정말 사용하기 싫더군요. 고민하다(사실 맘 같아서는 반품하고 싶었지만 저한테 은물 하나 팔려고 몇 번씩 다녀간 영업사원 분에게 미안해서) 그냥 테마동화1으로 교환했습니다. (그런 사연이 있어서여서일까요. 다른 책들은 그래도 살 때는 기쁜 마음이었는데, 테마동화는 정말 별로라는 느낌만 들더라구요.)

그리고 지금. 이제 39개월 된 아이를 둔 엄마로써 전 정말 그 때 카드에 서명을 한 제 손가락을 깨물어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 이후로 알게된 정말 수많은 주옥같은 단행본들, 보림의 솔거나라, 보리의 달팽이과학동화, 웅진 수학동화 등등 훨씬 저렴하면서도(이거 세가지 다 합해도 드림북 가격 하나 못당합니다... 그뿐인가요, 보조개왕자 비디오는 아무리 싸게 계산해봐도 1개당 3-4만원은 넘어갑니다...흑흑) 내용은 알찬 전집들은 또 얼마나 많던지....

가능하기만 하다면 유아용 출판업체들의 각 전집 원가를 계산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지요. 업체들이 그런 내용을 밝혀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휴대폰 이용료 원가를 밝히라고 주장하는 시민단체 요구가 그렇게 거세도 잘 안되는 판에 별 요구 없이 그냥 사주는 저같은 엄마들이 이렇게도 많은데 업체들이 뭐하러 그런 걸 밝힌답니까.
(그뿐인가요. 이런 업체들은 코스닥 등록, 거래소 상장 이런 것에도 관심 없습니다. 지금 상태로도 돈 잘 벌어 경영진들 잘 먹고 잘 사는데, 굳이 기업을 공개해 매출, 순익 다 보고하고, 주주 눈치보고 그러기 싫다는 것이지요. 사실 기업 공개 주 목적이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인데, 큰 투자가 필요없는 유아교육업체들로서는 더더욱 이유가 없는 셈이지요.)

그런 이유에서 전 시중에 낱권으로 책을 풀어주는 시공사, 비룡소, 한림출판사, 보림, 보리 등의 회사에 아주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제가 전집으로만 파는 출판사들과 해당 출판사에서 만들어내는 책들이 모두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20-30% 할인된 가격에 사면 그런대로 값어치를 해내는 전집도 물론 있습니다. 가끔은 할인 못받고 비싸게 샀지만, 다른 곳에선 절대 구할 수 없는 책인데다, 아이가 워낙 좋아해 마르고 닳도록 보고 읽었으니 본전 뽑았다 싶은 때도 있습니다. 또 저는 앞으로도 (물론 이전과는 달리 이것저것 꼼꼼히 생각하고 비교해본 후에겠지만) 괜찮은 전집이 있으면 과부 쟁빚을 내서라도 아마 살 겁니다.

다만 엄마들을 봉으로 아는 출판사들에게 우리 엄마들이 봉이 아니라는 본때를 한번 보여줄 수 있다면 정말 속시원하겠다는 답답함에서 이런 글을 써보는 것이지요.

제가 이번주 매달려있는 주제가 ‘바야흐로 프로슈머(프로슈머+컨슈머) 시대’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캐논사의 200만원대 전문가급 디카가 초첨기능에 문제가 있었다네요. 디카 동호회 사이트 회원들이 줄줄이 불만의 글을 올리고 불매운동 벌이고, 업체에 제품 성능 공개테스트하라고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나서 드디어 업체가 굴복하고 공식테스트를 벌였답니다. 국내 디카 역사상은 물론 캐논사로서도 전세계적으로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는데요, 결국 “제품에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AS에 문제가 있었음은 시인하고, 8월 11일 이전에 산 모든 제품 구입일을 8월 11일로 간주해 향후 한달간 환불, 반품 모두 받아주고 또 이날부터 2년간 무상AS해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걸로 마무리를 맺었답니다.

정말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진짜 프로슈머가 절실한 곳은 바로 유아출판업계, 유아교육업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아이를 위해 돈을 쓸 때면 마치 장님, 귀머거리가 되버리는 것 같은 저같은 엄마들이 포진해 있는 한 요원한 일일까요? 그래서 저 먼저 거듭나기로 했습니다. 글구 나름대로 내린 결론을 토대로 몇가지 말씀드려보자면

1.창작책 전집 사지 말기
---저는 개인적으로 몬테소리 피카소 책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피카소에 수록돼있는 창작책을 못읽어봤다고 아이가 잘못 된다거나, 부족해진다거나, 문제가 생긴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프뢰벨 테마동화나 아가월드 세계의그림책 또한 마찬가지겠지요.

2.영어 전집 사지 말기
---빙뱅붐도 가격을 떠나보면 귤미도 참 좋아하고, 덕분에 영어에 많은 도움을 받긴 했습니다. 그러나 엄마인 제가 조금만 더 부지런을 떨었더라면 그 돈으로 훨씬 좋은 많은 책들과 테잎, cd, 비디오 등을 사줄 수 있었고, 비슷한 효과를 봤을 거라는 생각은 변함 없습니다. 프뢰벨 8방식도 똑같습니다.

3.베이비용 교구 전집 사지 말기
---베이비몬테소리, 베이비스쿨, 해피토이. 3대 출판사가 베이비용 교구라며 내놓은 제품들입니다. 베이비몬테소리와 해피토이는 직접 자세히 살펴본 사람으로서 정말 허접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구요, 베이비스쿨은 제가 두 제품에 학을 뗀 뒤 “그럼 베이비스쿨은 괜찮을까”라며 프뢰벨 사이트를 꼼꼼히 뒤져 확인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내린 결론이 “두가지보다는 나은 것 같지만, 없어도 무방하다. 대체할 수 있는 책과 교구들이 사방에 널려있다”는 것이었답니다.

흑흑... 너는 다 사놓고, 우리들더러는 사지 말라며 돌을 던지신대도 할 말 없습니다. 으앗, 돌 날라온다... 빨리 피해야지,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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