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상상으로 가득찬 그림책들 2004-01-10 01:34
7008
http://www.suksuk.co.kr/momboard/BFA_033/19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네이버밴드 페이스북 트위터
쑥쑥닷컴 - 파일 다운로드

파일을 다운로드 합니다.

댓글 남기기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지금 살던 동네로 이사왔습니다.

그 때 저희 집은 당시 아주 흔했던, 두집이 함께 살 수 있는 구조의 1층 양옥집이었습니다.

저희 집 현관문 옆에 작은 현관문이 또 있고 그리 들어가면 부엌과 방 한칸이 있는...

보통 큰 마루와 부엌 그리고 방 두세칸이 있는 공간은 주인집이 쓰고, 그 옆집은 전세를 주는 그런...

마당엔 꽃밭이 있고, 마당 한켠엔 옆집과 함께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이 있었지요.

그런데 챙피하게도(ㅋㅋ...) 수세식이 아니고, 구식이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때였던 것 같네요.

엄마는 집수리를 싹 하셨습니다.

타일이 깔려있어 신발 신고 들어갔던 부엌을 높여 요즘 우리가 흔히 보는 거실식 부엌으로 만들고

세수도 함께 하던 부엌이 사라진만큼 당연히 그 옆에는 목욕탕이란 걸 만들었습니다.

양변기가 달린 것은 물론이구요.

정말 가기 싫었던 구식 화장실은 옆집만 쓰게 됐죠...



초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루는 친구를 집에 데려왔는데, 함께 마당에서 놀던 중 그 친구가 화장실을 가리키며 저건 뭐냐고 물었습니다.

왠지 화장실이라 말해주기 싫었던 저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지어냈습니다.



"사실 저기는 지하실로 이어지는 계단이다.

지하실은 모두 4개층의 계단을 내려가야 나온다.

저 문을 열면 너는 잘 모르는 동물이 있다. 아주 무섭게 생겼다. 그래서 절대 열면 안된다.

그렇게 4층까지 모두 층마다 동물들이 지키고 있다.

가장 지하에는 장닭이 지키고 있다.

(이 대목에서 전 친구에게 "너 장닭 알아?, 싸움 최고로 잘하는 장닭" 하며 무지 잘난척을 했더랬지요. 사실 그 일이 있기 며칠 전인가 책에서 싸움을 아주 잘하는 장닭 이야기를 읽었었거든요...)

지하실에 뭐가 있어서 그렇게 동물들이 지키고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쨋든 위험하니까 우리집 누구도 저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러니까 너도 절대 저 문을 열면 안된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지금은 누군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아이는 아주 진지하게 들어줬습니다. 정말 무섭다는 표정을 지으며...

요즘 3학년 아이에게 그런 얘기를 해주면 과연 믿을까요?



한편으론 참 부끄러운 기억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말도 안되는 얘기가 통할거라며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지어냈던 저도,

그런 엉터리 얘기를 속으론 어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진짜인양 들어줬던 친구도,

모두 그렇게 때묻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구나 싶어 그립기도 합니다.



유난히 뛰어난 상상력으로 가득차있는 그림책들을 가끔 발견합니다.

한편으로는 정말 말도 안되는 얘기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그렇게 말도 안되는 얘길 진실로 믿는 어린이들 눈높이에 딱 맞는 그런 책들...



이제 머리가 굳어버린 제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하며 감탄하게 만드는 책들...

이상하게도 그런 책들을 읽다보면 어린 시절의 그 거짓말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서도 그런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는 이 작가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지곤 하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는 하야시 아키코와 고미 타로, 그리고 크리스 반 알스버그입니다.

이 중 고미 타로와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아주 독특한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들입니다.





먼저 고미 타로.

고미 타로의 책 중 압권이라면 당연히 '악어도 깜짝 치과 의사도 깜짝(비룡소)'일 겁니다.















이가 아파서 치과에 간 악어, 그 악어를 손님으로 맞이하게 된 치과 의사.

둘은 서로를 보고 놀라고, 치료 과정에서도 서로를 무서워하며 경계합니다.

그런 둘을 양쪽 페이지에 각각 나란히 배치하고

똑같은 대사를 집어넣은 재치는 정말 대단합니다.

예를 들어 악어가 이 치료를 하다 너무 아파 "아, 아파"하는 동안

치과 의사는 놀라 입을 꽉 다물어버린 악어 이빨에 물려 "아, 아파"하는

그림이 각각 왼쪽 페이지, 오른쪽 페이지에 배치돼있는 식이지요.



역시 고미 타로 작품이면서 전집 <피카소 동화나라>에 들어있는

'전화로 얘기해요(몬테소리)'는 고미 타로의 책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입니다.















엄마, 아빠와 나들이를 갔다온 아이가 누군가와 전화로 그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덧붙이죠.



"다음엔 너도 함께 가자. 그 땐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없으니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자..."



그리고 아이 수화기로부터 이어진 전화선을 따라가다보면

역시 수화기를 들고 있는 개가 나타납니다.



앗, 개와도 이렇게 전화할 수 있는 거구나. 개는 내 친구니까...

정말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게 놀랍더군요.





영화 원작이 된 '주만지'의 작가 크리스 반 알스버그 역시 상상력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죠.

지난번 그림이 환상적인 그림책에서 소개했던 '압둘 가사지의 정원(베틀북)'은 물론이구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중앙M&B)' 역시 뛰어난 상상력으로 가득차있는 환상동화입니다.















5살 이상은 돼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만한 책입니다.

규림이는 아직 무슨 얘기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구요.(2000년 5월생)



몹시 까다로운 치과의사 비보씨는 이가 아픈 할머니를 고쳐주고 대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 두개를 치료비로 받지요.

그러나 비보씨는 돈을 안 줬다는 이유로 할머니를 약도 안주고 쫓아버립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는 그걸 먹고 잔 날 꾼 꿈과 똑같이 되게 하는 야리꾸리한 무화과였습니다.

어느날, 우연히 무화과 하나를 먹고 이 비밀을 알게 된 비보씨는

한참은 '생각한대로 꿈꾸게 할 수 있는 비법'을 열심이 연구합니다.

드디어 '세상 최고의 부자'가 될 꿈을 꿀 수 있게 된 날,

비보씨는 희망에 부풀어 나머지 무화과 한개를 먹기 위해 씻어 식탁에 둡니다.... 그런데....





제가 그닥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상상력 대열에서 빠지면 서러워할 작가가 또 한명 있죠.

바로 존 버닝햄입니다.

관습을 거스르는 것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기로 유명한 영국의 섬머힐 초등학교를 다녔다니 그럴만도 하다 싶네요.



존 버닝햄의 책 중에서도 최고로 꼽을만한 상상력 책은

바로 '마법침대(시공주니어)'가 아닌가 싶네요.















우연히 주문을 외면 날아다닐 수 있는 마법침대를 갖게 된 조지의 여행스케치.

아이를 침대에서 재우며

"오늘밤, 주문이 뭔지 잘 기억해내봐. 마법침대가 규림이를 신나는 세계로 데려다 줄거야" 하면
아이는 거의 까무러칩니다.



우리 동네가 아프리카 밀림이 된다면?

코끼리가 목욕물을 마셔 버린다면?

만원 받고 유령의 집에서 밤을 새라면?

책 읽어주는 곰을 갖게 된다면?



이런 생각을 해보며 사는 사람도 있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네가 만약(비룡소)'



학교에 늦은 아이가, 학교 오는 길에 이상야릇한 일들을 당해서 어쩔 수 없이 늦게 됐다고 얘기하는 '지각대장 존(비룡소)'도 재기발랄한 책들이죠.



아이가 이 책을 읽고 학교 선생님께 거짓말하는 법을 배우면 어떡하나 우려하는 분도 계시더만,

전 그럴듯한 번지르르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아이보다



"학교에 오는 도중 하수구에서 악어 한마리가 불쑥 나와 제 책가방을 덥썩 물었어요.

책가방을 힘껏 잡아당겼지만, 악어는 놓아주지 않았어요.

제가 장갑 한짝을 휙 던졌더니, 악어가 책가방을 놓고 장갑을 물어

그 틈을 타 허겁지겁 학교로 달려온 거예요."

이런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아이가 더 사랑스럽지 않을까 싶네요.





앤서니 브라운도 놀라운 상상력의 작가입니다.

그 중에서도 전 '터널(논장)'이 가장 맘에 듭니다.















1호선에서 국철로 바뀌는 구간인 서울역에서 남영역으로 가는 도중 잠시 불이 꺼졌다가 켜지면

캄캄한 지하에서 화려한 지상세계로 나오게 되죠.

그 때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지하철이 터널 밖을 나왔는데,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으면 어떻게 될까?"



'터널' 책을 좋아하는 것,

상상력과는 거리가 먼 제가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일겁니다.





'상상력'이라는 한가지 관점으로만 볼 때

제가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책은 타카도노 호오코의 '내 머리가 길게 자란다면(한림출판사)'입니다.















머리가 긴 친구 두명이 머리를 더 길게 기르자고 하자

단발머리 주인공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다리 위에서 땋은 머리를 늘어뜨리면 물고기가 잡힐만큼.

김밥처럼 둘둘 말아 푹신푹신한 이부자리로도 쓸 수 있을만큼.

오른쪽으로 땋은 머리와 왼쪽으로 땋은 머리를 팽팽하게 나무에 묶으면 우리집 빨래를 한꺼번에 널 수 있을만큼."



그렇게 머리가 길면 힘들지 않을까라는 친구들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하죠.



"그 때쯤이면 여동생이 10명은 있을거야. 그래서...

언니인 나는 편안하게 의자에 앉아있기만 하면 돼.

10명의 동생들이 열심히 빗어줄 테니까."





일본 작가들이 참 대단한 듯 싶습니다.

'종합병원(제삼기획)' 역시 일본 작가인 호타카 준야가 글을 쓴 작품이거든요.















엉뚱한 원숭이 의사 선생님과 뱀 간호사 이야기.



약을 먹은 뱀 간호사가 콱 물면? 그게 바로 주사지요.

뱀 간호사 몸에는 눈금이 그려져 있어 어린아이들 키는 물론 가슴둘레도 잴 수 있답니다.

기차놀이도 할 수 있구요.

내시경도 걱정 마세요. 뱀 간호사가 스르륵 뱃 속으로 들어가면 되니까...





'바다기린(베이비북스)'도 일본 작가인 아키야마 타다시가 쓰고 그린 책입니다.















바다에 사는 바다기린.

아무도 본 사람은 없지만, 바다에 사는 친구들은 모두가 아는 바다기린 이야기...





일본 작가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낄 무렵 만난 책들이 있습니다.

뉴욕타임즈가 '2003 최우수 그림책' 10권 중 한권으로 선정해 유명해진 바로 그책이죠.

이호백 선생님의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재미마주)'















아무도 없는 아파트 베란다에 조용히 앉아있던 토끼는

도대체 가족들이 모두 밖에 나가 있는 동안 무슨 일을 한걸까요?



나중에라도 혹 강아지 한마리를 키우게 된다면

(아이가 알러지가 없어 그럴 확률이 제로인것 같지만서도...)

아마 규림이도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될가요?





한태희님이 쓰고 그린 '손바닥 동물원'도 정말 창의적인 상상력이 철철 넘치는 책입니다.















해님도, 엄마, 아빠, 누나, 동생도, 코끼리도, 기린도, 토끼도, 얼룩말도, 사자도, 호랑이도...

모두 모두 손바닥에 물감을 바른 후 찍어낸 손바닥도장으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끽해야 손바닥 대고 색연필로 윤곽 따라 그려주기만 주구장창 해대던

제 눈에는 그저 모든게 신기할 따름이었죠.



팁 하나! 뒷편에는 책에 나왔던 그림들을 따라 그려볼 수 있는 설명이 돼있습니다.





몬테소리 피카소 동화나라에서 또 좋아했던 한권의 책이

바로 파니 졸리의 '호저 로드리그'였습니다.



아프리카바늘두더지를 호저라고 한다네요.

로드리그는 날카로운 가시털로 뒤덮여있지만, 아주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답니다.

어느날, 귀여운 아이가 멋진 비눗방울을 불고 있길래 한번 만져보려 했는데...

그만 비눗방울은 가시에 찔려 펑...

그 뒤로 로드리그는 가시를 가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맵니다.



5분마다 빗질을 하고 헤어스프레이를 뿌리는가 하면,

매우 튼튼한 수영모자를 써보기도 하고,

가시 끝에 체리를 박아넣어보기도 하고,

새의 깃털로 뵤족한 가시를 가려보기도 하고....



그래서 파니 졸리가 같은 로드리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단행본 '고슴도치 부부의 침대찾기(아가월드)'를 발견했을 때 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가시 많은 고슴도치는 어떤 침대에서 잘 수 있을까?

아, 전 지금껏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살아왔는데...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국민서관)'도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책입니다.















'개'가 등장하는 네개의 명화.

어느날, 그 개들이 그림에서 기어나오는데

그만 술에 취해 자기 그림이 아닌 다른 그림들에 들어가버리고 말죠.

그림을 이해하는 나이에 더 어울릴만한 책입니다.

한편으론 우리 아이들보다는 서양 아이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을만한 책인 듯도 싶구요.

그래도 전후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며 읽다보니

나름대로 깔깔거리며 보더군요.





'할머니의 선물(사계절)'은

"세상에 이런 선물도 있을 수 있구나"싶은 생각에 정말 눈물이 날 것 같더군요.















푸른 하늘 한 조각,

정글의 왕이 으르렁거리는 소리,

계곡의 속삭임,

아침 안개에 입맞추는 드거운 햇살,

윙윙거리는 벌새의 날개짓 소리....



아이의 사고의 폭을 확 넓혀줄 수 있을만한 책이 아닌가 싶네요.

단, 아이가 어느날 "엄마, 이번 생일 선물로 방울새가 먹고 간 이슬의 흔적을 가지고 싶어요" 한다면
참 난감해지겠지만....





'숨어있는 집(마루벌)'은 언젠간 나도 그런 숨어있는 집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희망에 감싸이게 합니다. 아이도 그럴까요? 그랬으면 좋으련만...



그림도 너무 예쁠 뿐더러,

숨어있는 집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세명의 목각인형은

정말 숨을 한번 훅 불어주면 곧 살아날 것만 같은 느낌을 풀풀 풍겨내는

아주 톡특한 책입니다.















위의 책들이 다 기막힌 상상들로 가득찬 책이지만

상상력의 보고는 뭐니뭐니해도 서양 신화와 우리 전래가 아닐가 싶습니다.

하늘에 무수히 나있는 별들을 보고 어찌 그리 멋진 이야기들을 꾸며냈으며

해와 달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왜 칠석날마다 비가 오는지, 왜 가자미 눈이 옆으로 돌아갔는지, 메기 입은 왜 귀 뒤까지 찢어졌는지 등에 대해 어찌 그리 그럴듯한 거짓말을 지어낼 수 있었는지...





이런 책들을 읽는다고

아이가 반드시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창의적인 아이로 자라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아이의 세계를 조금은 더 넓혀줄 수 있겠지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제 세계가 조금 더 풍부해지는 것 처럼....


마이 페이지 > 스크랩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중한 글에 감사 댓글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