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그 기다림의 끝에서 2004-06-21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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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늘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게 한가지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 세운 아이 교육에 대한 개똥소신(개똥철학도 못됩니다)이
주변 상황에 따라 흔들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죠.

무분별한 학원교육의 폐해를 너무 많이 들어온터라
난 절대 그렇게 지나친 학원교육을 시키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막상 아이가 중고등학생이 됐을 때

내 아이 성적은 별로인데,
주변에 학원 다니는 다른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할 때

과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원에 의지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제대로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식입니다.

학원에 가지 않은 대신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길러져
대학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으면
'기다린 보람이 있었어' 할 수 있겠지만,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뒤쳐지기 시작한 실력이 그대로 굳어져버린다면,
학원에 보내지 않은 자신의 무지를 한탄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그런 막연한 두려움.

아마 가보지 않은 두 길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겠지요.

그런데, 최근 이같은 두려움에서 조금 벗어나
제 소신껏 해보자 하는
희망을 갖게 된 결과를 하나 얻었습니다.

바로 오랜 기다림의 끝에 얻게 된 아이의 한글 터득입니다.

이제 49개월 된 아이니 빠르다고도,
그렇다고 늦다고도 할 수 없을 듯한 한글 습득.

제가 갖고 있는 교육 소신 중 하나가

"아이에게 풍부한 경험의 장을 마련해주되
기능 습득과 관련된 교육은 굳이 따로 시키지 않는다"였습니다.
여기서 한글이 대표적인 기능습득 교육에 속한다 봤지요.

요점은 한가지입니다.

어차피 한글은 언제가 됐든 읽고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굳이 그 시기를 좀 더 앞당기려고 인위적인 방법을 쓰진 말아야겠다입니다.

이와 관련해

전 절대 한글은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은물이니, 오르다니, 미술이니
하고 싶은, 또 하고 있는 사교육도 많은 판에
한글까지 사교육으로 해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또 한가지,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쳐줄 적기는
아이가 글자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일 때이고,
또 그 때라 할지라도
자연스레 생활 속에서 터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할 뿐,
앞에서 인위적으로 이끌지 않는다 였습니다.

이런 나름대로의 개똥소신을 지켜나가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첫번째 고비는

아이 두돌 무렵 즈음

아기나라 선생님으로부터 비롯됐습니다.

아기나라가 끝나고 나니

"아이가 잘 따라해서 지금 한글나라를 시키면 바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수업을 연장시켜야 하는 선생님으로서
어떻게든 엄마를 기분 좋게 해서 띄워주고, 그걸 통해 수업을 계속하도록
설득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함을 잘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솔깃하더군요.

그러나 두 주먹 불끈 쥐고 참았습니다.

"선생님, 한글나라 교육은 원래부터 제 계획에는 들어있지 않았던 것일 뿐더러
벌써부터 한글을 잘 알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두번째 고비는 작년이었습니다.

네살인 또래 친구들의

각종 한글떼기 성공담과 경험담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지요.

(물론 세네살 때 한글을 터득한 아이들이
다 부모가 인위적으로 교육을 시켜서 그렇게 됐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에 대해서는 부모가 가장 잘 아니
그 시기 또한 부모가 결정내릴 수 있는 것이겠지요.
저희 아이는 그 때부터 한글에 관심을 가지는 빠른 아이가 아니었기에
제가 그 시기에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는 얘기일 뿐입니다)

전, 제 아이와 관련해 꼭 지키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이 안에서 비교할 뿐,
절대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는 이런이런 부분은 뛰어난데,
이런이런 부분은 취약하니,
이런이런 뛰어난 부분은 어떻게 더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지
이런이런 취약한 부분은 어떻게 보완해줄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겠다

하는 식이지

또래 다른 아이는 이걸 하는데, 왜 우리 아이는 못하나

하는 식으로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런데 주변에서 하나둘 한글을 뗐다, 한글을 꽤 안다는 얘기들이 들리면서
조금씩 흔들리는 마음이 생겨남을 느꼈습니다.
다른 아이와 내 아이를 비교하지 않는다 하면서도
그게 완전히 되지 않은 탓이겠지요.

한글을 읽어서 좋은게 책을 혼자 읽을 줄 알게 된다는 것인데
어차피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주변 어른이 책을 읽어주고,
나머지 시간은 다른 활동을 하며 보내도 충분하다던 확고한 생각마저
(사실 직장맘인 관계로 하루에 10권 읽어주기도 힘듭니다.
어떤 날은 한두권 읽어주고 땡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하루에 5권씩만 꾸준히 읽어준다 해도
일년이면 1500권이 넘습니다.
결코 적은 양이 아니지요.
혼자 책을 못 읽어도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한 근거입니다)

정말 이 생각이 맞는걸까 싶은 의구심에 자리를 내줄 뻔도 했구요.

그런 제 마음을 확실하게 다잡아준 계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주변 한 엄마의
별로 쓰고 싶지 않아하는 아이 손을 꽉 쥔 채
아이 이름을 쓰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서 또 저의 개똥소신이 등장합니다.

저는 유아기 때 다소 강제적인 교육은(특히 기능습득교육은)
'안한다'가 아니라 '절대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유아기 때는 호기심이 많아
어른이라면 공부라 생각할 것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신나게 접근하는 편이 대부분입니다.
(어른이 보기엔 다소 주입식교육적인 과학책들을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어내는 걸 보면 더욱더 그런 걸 느낍니다)

그런 유아들이 강제적이라 느끼는 정도라면
그 강제성의 강도는 어른이 느끼는 강도에 비해
훨씬 더 상상을 초월하지 않을까,
뭐, 대충 이런 생각 때문이었지요.

지금 내가 주변의 한글교육 분위기에 휩쓸려
함께 동참하게 된다면
나 또한 저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한 전

과감하게 한글교육에 대한 미련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연말...

어느 순간부터인지 아이가 한글에 부쩍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여기저기 보이는 글자가 뭔지 물어보기 시작하고
책을 읽을 때도 제목 글자에 유난히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한글 교육의 적기가 된 셈이지요.

이 때부터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한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자연스레 길을 터줄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전 그리 빨리 관심을 보이리라 예상을 못했기 때문에
(그게 빨리도 아니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전
아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한글을 떼면 되는 것 아니냐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전혀 준비가 없을 수 밖에 없었지요.

마침 기탄한글 평가판 이벤트를 하길래 하나 사들였습니다.

그런데에...

결론적으로 기탄한글 16권 중에서
2권도 채 못하고 접었습니다.

실은 제가 올해 여러모로 액땜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올 들어서 줄줄이 아이가 2번 입원하고
동시에 저도 몸이 많이 안좋아져 계속 잔병치레를 하느라
꾸준히 접해줄 시간을 못만들어냈기 때문이지요.

올 초인가, 맘스쿨에서 구입한
아리수한글에서 나오는 글자블럭과 한글카드도
같은 이유로 사만 놓고 거의 써먹지 못했습니다.
(블럭을 좋아하는 저희 아이는 글자블럭을 갖고도 성 쌓기에만 여념이 없더군요.)

어쨋든, 다른 모든 활동을 포기한 제가
그나마 꾸준히 해준 게 한가지 있습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제목을 손으로 하나하나 짚으며 글자를 또박또박 읽어준 것입니다.

'아야어여' 하는 식의 브로마이드가 하나 방문에 턱 붙어있는 덕에
아야어여는 알고 있는 아이에게

가끔 글자의 원리를 설명해주기도 하면서요.

'나'가 나오면 'ㄴ'을 가리키며
"이게 니은이거든. 요 니은 대신 동그라미 이응이 오면 뭘까"
"아"
"그래. 요 ㄴ은 '느으', 그러니까 '느으 아' 해서 나야"

'봉'이 나오면, 역시 같은 원리로 보를 얘기해준 후,
"보에 동그라미가 붙었네. 동그라미 '응' 그러니까 '보 응' '봉' "

하는 식의 조합식 원리.

이렇게 한두번 가르쳐주면 다음엔 기억할 줄 알았는데
(원래 아이들이 기억력이 뛰어나잖아요)
몇번씩 같은 제목을 읽어줬음에도 전혀 기억을 못하는 모습을 보면
한편 답답하기도 했지만,
전혀 내색은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내색해봤자 또 뭐 어쩌겠습니까.
또 한바퀴 뒤집어보면, 모른다고 그게 뭐 큰 대수겠습니까.

그러던 차에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서
그야말로 한글의 소나기를 맞았습니다.
(집에서의 한글 환경에 비해)

신발장에 적혀있는 친구들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자연스레 친구 이름에 들어있는 글자를 터득하기 시작했지요.
또 어린이집에서 스티커놀이를 통해 글자를 조금씩
가르쳐주시는 모양이더라구요.

어느날 아이가 쉬운 한글은 대충 읽는다는 걸 알게된 이모가
(제가 친정집 근처에 사는데다 직장맘인 관계로
친정집에 사는 이모와 아이가 접할 시간이 많습니다)
a4용지 한장에 20여개 칸을 만든 다음 각 칸마다 다양한 글자를 프린트해서
아이에게 갖다주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가위질을 좋아하는 아이는 칸대로 따라 자르길 즐겼고,
이 과정을 거치며 또 글자를 읽힌 모양이더군요.

그렇게 하기를 몇개월.
요즘은 아주 어려운 글자 외에는 거의 다 읽어냅니다.
잘 모르겠는 글자가 있으면 스스로 원리를 적용해 가면서 발음해내기도 합니다.
'모에 ㅂ이 왔으니까 음..몹' 하는 식으로요.

읽기가 되니 쓰기도 자연스레 해결됐습니다.
글자를 써보라 시킨 적이 한번도 없음에도
역시 어느 순간부터 자기가 아는 글자를 하나씩 쓰기 시작하더군요.
요즘엔 거기에 재미를 들였는지
'소연주희닥었사랑자라복' 등등등
말도 안되는 글자들을 나열해 쓰는게 일과입니다.

아직 복모음(귀, 쥐, 왜, 돼 등 자주 본 글자를 제외하고)은 약간 헷갈리고,
받침 두개 있는 단어는 아예 모를거라 혼자 지레짐작하고 있지만

어쨋든 전 요즘 아이에게 너무도 큰 선물을 받은 거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조급해하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기를 기다리면
언젠가는 아이가 그 기다림에 반드시 보답할 때가 자연스레 온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그 체험을 바탕삼아
비록 개똥소신이지만, 한번 지켜나가보자 하는 굳은 힘을 준 것에 대해서요.

이상 여성학자 박혜란님의 '믿는만큼 자라는 아이들'이 아닌

개똥소신녀 귤미의 '기다리는만큼 보답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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