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 (2003.5.27) 2003-05-27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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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난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                 2003. 5. 27 (화)

일주일 전 이사를 했습니다.

결혼 7년동안 2번째 이사면 남들에 비해 잦은 편도 아니지만 저랑 남편은 이사를 무척 싫어하는 편입니다.  ' 좀 불편해도 왠만하면 그냥 참고 살자 '라는 주의이기도 하거니와 2년전 첫이사때 고생을 좀 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이번 이사도 참 부담 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번 이사도 무지 힘들 게 치루어야 했습니다. 저는 누가 이사 잘 했냐고 물으면 아직도 이사중이라고 얘기합니다.

 

이사 들어가기 전에 미리 청소를 해 두려고 지난번 살던 사람에게 열쇠를 부탁했는데 이 분이 열쇠를 들고 서울엘 가는 바람에 이사 이틀전 저녁에야 열쇠를 받았습니다. 이사 전날 청소를 하러 갔더니만 물도 안나오고 불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필이면 휴일이라 관리소직원도 없고 해서 물어 물어 기사를 찾아서 해결을 했습니다. 기사 왈 " 왜 집나가면서 물이랑 전기랑 다 잠궈 놓고 끊어 놓고 나가지!!!"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씽크대 청소하는데 꼬박 4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이 대목에서 많은 분들은 '이정희라는 사람이 어지간히 깔끔을 떠나 보다'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저 그정도 아니고 아주 평범한 편입니다. 단지 씽크대 구석구석 음식물이 썩어서 말라 붙어 있거나 곰팡이 피어 있고 씽크대의 얼룩덜룩한 것이 원래의 무늬가 아니었더라는 사실, 왠 씽크대 표면에 떡(?)이 그렇게 많이 붙어 있는지, 부엌 한쪽 벽면을 장식한 파파팍 튀어서 흘러내린 무늬에서 나는 선명한 간장 생선 조림 냄새와 애기 주먹만한 말라붙은 밥 3덩어리.... 기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싱크대 물이 내려 가질 않았습니다. 거름망을 들어올린 순간 지름 10cm가 넘는 배수구가 시커먼 진흙뻘같은 썩은 물질로 꽉 막혀 있었습니다. 그 냄새... 전 길거리 하수구 안을 들여다 보는줄 알았습니다. 앞,뒤 베란다 하수구 역시 다 막혀 있더군요. 평소 거의 사용하지 않던 락스를 아낌없이 써야 했습니다.

 

집안의 베란다등 미닫이 문은 밀어서 열리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미닫이 레일에 온갖 쓰레기며 먼지가 가득 박혀서 문이 꼼짝을 못했습니다. 쇠 젖가락으로 다 파내고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물걸레로 닦아 내야 했습니다. 부엌베란다 문틀에서는 쌀이 한컵은 나온 것 같습니다.

 

베란다는 물론이고 안방까지 모든 바닥이란 바닥에서 떼어낸 껌, 캬라멜 씹던 조각등이 4-50개가 넘습니다. 저 혼자 했으면 모두 거짓말이라고 하실 겁니다. 다행히(?) 이웃에 사는 제 친구가 도와주러 왔다가 기겁을 했습니다. 친구 왈 " 이게 집이가? 길바닥이지."

 

부엌베란다 세탁기 놓였던 자리에는 쓰레기 하치장에서 볼 수 있는 몇 년째 밟혀서 화석화된 쓰레기와 같은 온갖 먼지가 물에 섞여서 썩다가 마르다가 한채로 굳어진 것이 약 5cm의 두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세제랑 물이랑 뿌려 불려놓고 삽을 빌려다가 긁어내야 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도움이 아줌마'를 부를걸 하고 후회했습니다.  청소를 하다가 쓰러질 것만 같아 화장실 청소는 당일로 미루었습니다. 이사 당일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 역시나 바닥 하수구가 막혔습니다.  관리실에서 사람이 와서는 너무 막혀서 이 상태로는 안되니 아랫집에 양해를 구해서 아랫집 천장을 통해 뚫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월요일에 이사했는데 금요일에야 겨우 아랫집 사람을 만나서 고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욕실 바닥에 물을 부을 수 없으니 무지 불편하고 냄새가 ...

 

이정도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삿짐센타도 정말 잘못 만나 돈은 돈대로 들고 고생은 고생대로 해야 했습니다. 처음 계약한 곳에서 주문이 많으니 아마도 다른곳에 넘겼나 봅니다. 이삿짐 센타에서 왔다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일하는 품새가 첫눈에 이거 뭔가 잘못되겠구나 싶더군요. 게다가 오자마자 견적이 잘못 나왔느니, 이돈 받고 할 수 없느니... 자기들 끼리 싸우고 한명은 가 버리고, 차가 작아 한 대 더 불러야 한다느니...

 

나중에 남편이 점심식사하며 파악해 보니 이 사람들이 노숙자 출신들로 한명 외에는 모두 경험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같이 온 아줌마는 살림을 살아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짐 쌀 때부터 '어, 저러면 안되는데... ' 싶더니만 새 집에 이삿짐을 부리는데 무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것입니다. 제가 냉장고 청소하고 음식물 치우는 동안 밀려오는 짐 때문에 그 아주머니 딴엔 치운다고 치웠는데...

 

제가 밥그릇을 이틀뒤 밤에야 겨우 찾았습니다. 그것도 부엌 베란다 하수구 옆에서.  곰솥이 씽크대 찬장 맨 위에 들어가 있고, 수세미와 새제가 장식장에, 모든 냄비 종류와 그릇들은 뚜껑과 이별을 한 상태이고 그나마도 이가 빠지거나 금도 가고...

 

안방을 제외하곤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망이 된 상태에서 첫날, 둘째날.... 이제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장롱 한짝은 테입 붙인 선을 따라 좌~악 벗겨져 있고, 침대옆 협탁은 받침대가 부러졌습니다.

 

너무 어이없고 화도 나고 했지만 그냥 계약했던 돈 다 주고, 결혼전 직장 생활할 때 샀다가 임신, 육아, 또 임신, 육아를 거치며 신어보지도 못하고 이제는 불편해서 모셔두기만 하는 구두 몇켤레까지 쥐어서 보냈습니다.

 

지난 일요일 비가 오길래 이때다 싶어 베란다 유리창 청소를 했습니다. 물로 씻지 않으면 도저히 벗겨지지 않아서 외려 비오는날이 적격이더군요.  어제 아침 큰애가 "엄마 오늘은 밖이 잘 보여요." 하더군요.

 

힘들게 이사를 치르며 처음엔 화가 나고 고달픔에 힘겨워 했지만 그 과정에서 '떠난 자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떠난 자리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그 흔적은 그 자리에 들어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게 마련인데 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몇 번의 떠남을 경험했고 그 떠남의 모습이 다른이들에겐 어떻게 남아 있을까?  나는 과연 그런 과정에서 뒤에 올 사람을 한번이라도 깊이 생각해 보았던가?

 

살아간다는 것은 늘 새로운 만남과 이별의 반복이요, 새로운 곳에서의 정착과 떠남의 반복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느 누구도 한 곳에서, 한 자리에서 평생을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비단 거주의 문제만이 아니라 직장이나, 사람 관계, 자신의 능력에 이르기 까지, 특히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늘 변화를 겪게 되고 그 변화가 일상이 되어있으며 그 변화는 정착과 떠남의 반복인 것 같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우리는 헤어짐과 떠남 보다는 만남과 시작을 중요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첫 인상, 첫 출발, 첫 사랑... 등을 중시하고 새 출발, 새 집, 새 직장등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면에 어쩌면 '내가 떠나고 난 자리는 어떠할까? 내가 떠난후 다른 이들에게 남겨진 나의 이미지는 어떠할까? 나는 이 자리에 있는 동안 이 자리를 얼마나 감사했던가?...' 와  같은 생각이 조금은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는 늘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 떠나면 그 사람에 대한 이러저러한 평가를 합니다.  남은 사람들의 평가를 기준으로 떠난 사람의 유형을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개가 빠지니 우리조직이 훨씬 발전했어.

    아무개 가고 나니 속이 시원 하구만.

    아무개 자리? 그거 누구나 할 수 있잖아.

    아무개가 누구야?

    아무개? 인간성은 없어도 일은 잘 했지.

    아무개? 인간성 하나는 좋았지.

    아무개가 없으니 이럴 때 참 아쉽네.

    아무개가 없으니 정말 힘들군.

    이럴 때 아무개라면 어떻게 했을까?

 

저는 솔직히 이제껏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개가 없으니 이럴때 참 아쉽네' 내지는 '아무개가 없으니 정말 힘들군' 하는 말을 듣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어느 곳에서나 필요한 존재, 그래서 내가 빠지면 모두들 힘들어 하는 가치있는 존재'를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우연히 전해들은 이야기를 되새기며 그동안의 제 생각이 얼마나 단면적이고 소아적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여동생의 시어머니는 현재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쉰 중후반의 곧 정년을 바라보는, 평생을 평교사로 교직에 몸담아 오신 할머니 선생님입니다.  그동안 중간 중간 여동생을 통해 들은 그분의 교사다운 면모는 여러모로 참 존경스러웠습니다.  

 

몇주전 스승의 날에 이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반 아이들에게 스승의 날 선물 대신 '선생님께 상을 달라'고 하셨답니다.  즉 반 아이들이 모두 모여 평소 선생님이 자신들에게 했던 일을 돌아보고 가장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좋았던 점 한가지를 선정해서 반 아이들 모두의 이름으로 상장을 만들어 달라고 하셨답니다.

 

아이들은 학급회의를 두 번에 걸쳐 진행했고, 여러 가지 논의 끝에 선생님께 '학생 건강 지킴이 상'을 직접 그리고 써서 드렸다고 합니다.  즉 다른반 선생님들은 귀찮아서 과외 시간은 물론이고 체육시간에도 자습을 시키거나 형식적으로 체육을 시키는데 자신들의 담임선생님은 할머니 선생님인데도 체육시간은 물론이고 기타 과외시간이면 몸소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장에 나가서 경기도 하고 게임도 하셔서 자신들의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였습니다. 선생님은 물론 그 상을 기쁘게 받으셨구요.

 

저는 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아이들이 그 과정에서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와  곧 정년을 앞둔 그분의 떠난자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우선 많은 후배 교사들이 그분이 떠나고 나면 '그분이 없어서 힘들다'라는 생각보다는 문득 문득 닥치는 고비에서 '그분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분 밑에 가르침을 받은 많은 아이들도 자라면서 어쩌면 많은 선택과 갈등의 순간에 그분을 떠올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특정한 능력 때문에 떠나고 난 뒤 아쉬움으로 남는 존재이기 보다는, 있는 동안 다른이들에게 그러한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지혜와 신념을 남겨주는 사람이 정말 가치있는 사람이 아닌가라는 어쩌면 뻔한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불교도는 아니지만 ' 이 세상에 내가 소유하는 것은 없으며, 내가 살고 있는 이 땅도 집도 모두 잠시 내가 살아있는 동안 빌려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제 몸이나, 제 몸을 빌어 나온 제 아이들도 제 것은 아니지요. 때문에 내가 살아있는 동안 빌려 쓴 것들을 죽을 때 잘 돌려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자리를 제 자식들이 이어 받겠지요.

 

이 세상을 떠난후 나의 떠난 자리는 과연 어떻게 비춰질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이사였습니다.^^*

 

 

힘든 이사를 마치고 이어서 대학원 기말고사가 닥쳐 옵니다.

많은 분들이 기다고 계실 '내 아이 가르치기'를 미루는 변명입니다.

6월 중순까지는 오늘 처럼 그저 부족한 저의 이러저러한 생각의 단편으로

이 다이어리를 메워 나갈 것 같습니다.

 

며칠 비가 온뒤 모처럼 좋은 날씨로군요.

아이들과 즐거운 추억 많이 많이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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