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원하는 아이의 장래희망 2013-01-15 08:46
9260
http://www.suksuk.co.kr/momboard/BFA_048/600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네이버밴드 페이스북 트위터
쑥쑥닷컴 - 파일 다운로드

파일을 다운로드 합니다.

댓글 남기기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며 둘째의 학교생활기록부의 학생의 장래희망,부모의 장래희망란

두칸을 채우기위해 우리는 수많은 고민을 하며 어떤 직종을 선택해도 먹고 살기 어렵다는 요즘...

남들이 너도나도 선망하는 분야 즉 레드오션보다는 블루오션을 권하기 위해 아이를 설득시켜야했다.

부모가 바라는 아이의 장래희망...

대학교수라고 남편과 상의해서 썼다.물론 아이의 장래희망란에는 구체적인 분야를 썼다.

이유를 쓰라는 빈칸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학업에 정진하기 바람'이라고 어렵게 칸을 메꾸었다.

아이가 고2 말 무렵이 되어 장래의 직업을 구체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시기...

요즘 입학사정관 제도라는 것이 진로를 빨리 정해 전공을 정하고 그쪽 방향으로 3년간 스펙을 꾸준히

쌓아야 한다,물론 생활기록부도 장래희망에 맞추어 고등학교 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장래라는 것은 정말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데,빨리 정하라고 독촉을 받다보니 유감스러웠다.

사실 고2에 문이과를 정하는 것도 모험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무튼 우리도 사회과학 분야..라고 전공범위를 폭넓게 정해 이러저리 전공 탐색을 해야만했다.

그리고 결정해야 하는 시기..

우리부부는 아이의 장래희망란에 '신부' 즉 카톨릭 사제라고 써서 보내고 싶었다.

작은 아이의 입덧이 심할 무렵 새로 입주한 아파트의 기도모임 공지를 보고 무작정 찾아갔다.

'묵주의 구일기도'라는 54일간의 기도를 모여서 하는데 기도모임이 끝나면 과일과 떡을 주었다.

입덧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기도후의 간식은 꿀맛과 같았다.

남편의 박사과정이 끝나갈 무렵이었고 아파트도 마련했고 큰아이도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어렵게 결혼해서 빠르게 많은 것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 무렵..

세상에 무언가 영원한 것은 없을까? 고민하던 중 내가 찾은 것이 카톨릭이라는 종교였다.

8개월간의 카톨릭 교리를 받는 내내 작은 아이는 내 뱃속에서 자랐고 영세를 받고 얼마후 아이가 태어났다.

영세를 받았지만 열심히 하는 신자는 아니였다.

나이롱 신자라고 해야하나...맘편히 사는 사람이 뭔가에 절실히 매달려 기도할 일이 없었다.

신앙이라는 것이 뭔지..기도라는 것을 모르고 세월은 흘렀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며 이사를 해야하는데 내가 구한것은 집이 아니라 학교가 먼저였다.

아이를 잘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카톨릭 재단의 초등학교를 찾아갔다.

무섭게 춥던 2월 어느날 초등학교 안에있는 수녀원에 남편과 함께 찾아가 교장수녀님을 뵙기위해

몇시간을 기다렸던가..미리 연락을 하지 못하고 찾아갔기에 발이 시려웠지만 언발을 동동 구르며

아이의 전학을 위해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아이를 힘들게 전학시켰고 좋은 교육을 받으며 어린시절을 보냈고 자랐다.

아이들의 학교 생활은 기도로 시작되어 기도로 끝났다.

그러나 첫 영성체를 받고 성당의 복사를 시키지 않았다.

복사를 하게 되면 아이들이 공부하는데 피곤하고 시간을 빼앗길 것 같다는

나의 솔직하고도 어리석은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중고등학생이 되며...

엄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학교성적이었다.

주일날 아침 학생미사가 있지만 보내지 않았고 저녁 미사에 데리고 다니기도 하고

시험기간이 되면 물론 미사참례 보다는 시험공부가 우선이었다.

1시간 남짓되는 미사에 시간을 뺏기면 100점 받을 성적이 95점 될것만 같았다.

정말 그 어리석음 깨달은 것은 이미 모든 것이 다 지난...요즘이다.

아직 책을 읽지 못했지만 대건고등학교의 교장신부님이 인성이 바로되면 공부는 저절로 된다는 책의

내용을 보며..

큰아이를 키우며 많이 힘들었다.

우여곡절도 많고 아이 키우기가 이렇게 힘들다면 어떻게 자식을 키울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좌절해서 더이상 견딜 수 없을 때....

나는 더 이상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소파위에 굴러다니던 묵주가 눈에 뛰었다.

묵주기도 하는 방법도 잘 모르던 내가 묵주를 들고 기도를 시작했고,하느님께 간청하기 시작했다.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고통의 신비,영광의 신비...라는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면서

우리의 인생과 아이들의 인생 그자체가 이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이 없는 영광이 과연 있을까?

기도를 하고 매일미사를 참례하고 제대봉사를 하며 하느님 가까이로 갈 수 있었다.

하늘을 보면 그곳에 계시는 분에게 우리 아이들..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

그러면서 내 신앙도 성숙해져갔다.

더우기 3년간 모시고 계시던 노신부님의 청빈,절제,순명의 삶을 곁에서 바라보며

작은 아이의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났다.

"요한이는 나중에 훌륭한 사제가 될 인물" 이라고 하시며 잘 키우라고 당부를 하시던..그 말씀이

두아들을 사제로 키우고 싶어 그토록 기도를 하셨지만 사제성소가 없어

큰아이는 의사가 되었고 작은 아이는 카이스트에 다니고 있다고 하시며 아쉬워 하시던 모습..

작은 아이..

특이하게 어려서 부터 선한 마음을 가진 아이였다.

미운오리새끼를 읽어주었더니 엉엉 울기시작해서 어떤 말로도 달랠 수 없었던 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 유니세프 바자회가 있는 날은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털어 고가품(?)을 여러개 사와

엄마에게 혼나고 사온 물건을 책상속에 숨겨두기도 했다.

중학교 때..친구가 교복을 살 수 없어 하복 입는 날 그대로 온 친구를 위해 내게 전화를 걸어 빨리 학교로

교복을 한벌 배달해 달라고 하기도 했던 아이였다.

그러나 이 아이도 오로지 공부만 강요는 부모 아래서 서서히 시들어 가기 시작했다.

아..이제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부터 잘 키웠다면...

지금 우리 부부가 가장 원하는 부모의 장래희망란에 '신부' 라고 당당히 쓸 수 있었을텐데...

2주전 아이에게 우리 부부는 이런말을 했다.

요한아..신부님이 되는 것은 어떨까?

네가 신부님이 된다면 우리는 기뻐하며 맘껏 지지해줄거야...

1년후 서울대학교 합격증과 카톨릭 신학대학 합격증을 모두 받아 카톨릭 신학교를 선택한다면

얼마나 기쁠까?

물론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제가 된다해도 괜찮아..

훌륭한 신부님들 중에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카톨릭신학교를 가신 분들도 많이 계시니까..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형은 국가를 위해 일한다면

너는 하느님을 위해...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아빠도 다시 태어난다면 신부님이 되고 싶다고 하셨어.

아....돌아와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부끄럽고 아쉽고 후회되고...

작은 아이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들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제는 흠없는 완벽한 사람이어야 하기에..

아이가 원한다고 부모가 원한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카톨릭 신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해도 교구청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여러 관문이 있다.

부모와 집안도 그 어려운 관문에 통과해야 한다.

하느님께 바칠 아이였다면...나는 아이를 잘 키웠어야 했는데..

아쉽다.

과연 아이에게 사제성소가 있을까?...

세상에 무언가 영원한 것은 없을까?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서....

 

입력 : 2013.01.19 03:04 | 수정 : 2013.01.20 17:37

석지영 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자전적 에세이 내
한국식 성공 원하는 부모와 갈등 - 발레 못하게 해 실의… 문학서 길 찾아
예일대 진학, 英 옥스퍼드서 문학박사… '아이티인 변호' 고홍주에 감명, 법학으로
난 선생님 복이 있었다 - 고비때마다 '너는 할수 있다'고 격려해주고
공부가 놀이처럼 즐겁다는 걸 일깨워줬죠… "이민자 차별 안 당하고 선물처럼 기회얻어
"강의 첫날 '완벽한 실패' - 잘해야지 다짐하며 단상으로 가다 넘어져
오히려 긴장 풀리며 마음 편해지더라… "복도에 걸린 내 초상화… 정말 민망하다"
아이들 교육은 - 난 완벽한 엄마도, 완벽해지기도 안바란다
내가 사랑했던 책 함께 읽고, 여행하고… 아이들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토론할뿐

석지영 하버드 법대 종신교수와의 인터뷰 영상
지적이고 영민한 데다 아름답기까지 한 여성과 마주하는 일은 곤혹스럽다. 겸손마저 느껴질 땐 '화'가 난다. 석지영(40)은 그런 여자였다.

미국 예일대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한 뒤 영국 옥스퍼드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에서 다시 법을 공부한 뒤 2006년 한국계 최초로 하버드 법대 교수로 임용된다. 2010년에는 하버드 법대 종신 교수로 선출됐다. 아시아 여성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라, 하버드라면 껌벅 죽는 한국에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그가 자전적 에세이를 들고 이달 한국에 왔다.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북하우스)는 영어에 대한 공포와 수치심으로 미국 교실에 앉아 있던 일곱 살 소녀가 전 세계 수재가 모이는 하버드 법대 강단에 서기까지의 성장사다. 석지영은 "나에게 성공이란, 내게 진정한 기쁨을 주는 것을 찾아 그것을 탐구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석지영은 한국말을 대부분 알아들었지만, 답변은 영어로 했다. 나이 마흔에 자서전을 쓰게 된 동기부터 물었다.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엄친딸이라는) 수사적 이름표가 나한테 붙었다는 생각에 움찔했다. 이 책을 써서 내 (진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엄친딸' 아니다

―자신을 '엄친딸'이라고 부르는 것에 충격받아 그걸 해명하려고 책을 썼다던데.

"종신 교수가 된 뒤 한국에 왔더니 어딜 가나 나더러 '엄친딸'이란 단어를 아느냐고 묻더라. '재능 많고 총명하며 예쁘기까지 한 엄마 친구의 완벽한 딸'이라는 뜻이라던데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해서 놀랐다. 그 별명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 속엔 '비교'가 들어 있고, 비교의 대상이 자녀이며, 뭣보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어머니라는 것 때문이다. 비교는 자녀에게 상처를 준다. 아이들은 부모가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아낀다는 걸 느끼며 자라야 한다."

―석지영의 성공비결이 궁금한 부모들은 이 책을 읽고 하버드에 가려면 피아노, 발레, 불어까지 모든 방면에 만능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녀를 더욱 압박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내가 살아온 이야기일 뿐 내가 이렇게 성공했으니 당신도 이렇게 해보라는 지침서가 아니다. 한국 문화와 교육 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느 사회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공통의 주제, 기본적인 태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음악, 무용, 위대한 문학작품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예술적 감수성을 성장기에 꼭 기르라고 말해주고 싶다. 예술을 이해하고 즐기는 과정을 통해 내면에 잠재된 열정을 발견하고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삶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석지영이 하버드가 아닌 다른 대학의 교수였다면 화제가 되지 않았을 거다. 한국에선 스님도 하버드를 나와야 인기를 얻는다.

"한국인들에게 하버드대학이 특별한 상징이란 걸 잘 알고 있다. 교육과 배움의 성취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보는 한국적 가치관에서 기인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하셨을 때 일면식 없는 나를 알아보셨을 정도다(웃음). 대학 캠퍼스를 거닐고 있으면 하버드 투어에 나선 한국 소녀들이 사인을 요청한다. 당황스러운 일이지만, 한국 독자들과 폭넓은 교류를 하게 된 것은 기쁘다."

―당신 또한 예일대 법대가 아니라 하버드 법대를 선택했다.

"학부를 예일에서 다녔기 때문에 다른 학교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또 하버드 법대는 미국의 법률 시스템과 깊이 연관돼 있다. 미국 법대에서 사용하고 있는 소크라테스 교수법도 하버드 법대에서 시작된 것이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 해럴드 고(고홍주) 미국 국무부 법률고문 등 한국계 미국인들의 성공이 귀감이 되고 있다. 미국의 교육 시스템과 한국 부모의 교육열이 시너지를 일으켰다는 분석에 동의하는지.

"미국 시스템과 한국 부모의 교육열이 결합(combination)된 것은 맞지만 그들이 조화(harmony)를 이뤘다기보다는 오히려 서로 충돌(conflict)하고 갈등했던 것이 성공의 에너지 아닐까. 부모가 지닌 한국의 전통적 가치관과 미국의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하고 이를 헤쳐나가려는 노력이 자녀 세대를 강인하게 만들었다. 저항은 혁신의 에너지다."

자전에세이 출간을 기념해 서울에 온 석지영 교수를 16일 홍대 앞 북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책으로 가득 찬 도서관이 외로웠던 어린 시절의 가장 좋은 놀이터였다”며 웃었다. 종신 교수의 영예에 대해서도 “안주가 아니라 마음껏 도전하고 모험하라는 격려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 이진한 기자
춤을 추고 싶었던 법학자

교포 1.5세대인 석지영 또한 '한국식' 성공을 원하는 부모와 갈등했다. "춤을 출 때 진정 살아있다"고 느꼈던 그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의 반대로 아메리칸발레학교(SAB)를 그만둔다. 실의에 빠져 있던 그를 구원한 것이 문학이다. 예이츠, 디킨슨, 브레히트에 빠져든 소녀는 예일대 문학부에 들어갔다가 마셜 장학생에 선발되어 옥스퍼드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어머니의 교육열이 대단했더라.

"공부는 물론 옷 입는 법까지 딸들의 부족한 점을 관찰하고 고치게 하는 어머니와 사는 게 쉽지는 않았다(웃음). 물론 어머니의 열성적인 뒷바라지가 오늘의 나를 있게 했지만, 동시에 '아, 나는 나만의 기준을 세워야겠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다가는 진정한 성장의 기회가 사라지겠다'는 깨달음도 함께 얻었다."

―발레를 못 하게 하는 부모에게 맞서 저항할 용기는 없었는가.

"열다섯 살인 내게 힘이 없었다. 지금도 발레의 꿈을 접은 게 가슴 아프다. 그때의 교훈은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내 열망이 이끄는 길로 가는 게 맞는다."

―그래도 서울대 나온 아버지와 이화여대 나온 어머니의 DNA를 무시할 수 없다.

"내가 심하게 운이 좋다는 걸 안다. 하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여러 다른 요소가 합쳐져서 결과물이 나온다. 부모님 없이 내가 있을 수 없지만 그것이 DNA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스승 복도 많았더라. 고비 때마다 등장하는 선생님들은 '너는 할 수 있다'고 격려하며 손을 잡아준다.

"내가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이 교사의 중요성이다. 내 인생을 이끈 가장 중요한 관계(key relation)는 대부분 선생님과 이뤄졌다. 나의 선생님들은 학생 개인의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조언해주셨다. 학습은 놀이처럼 재미있다는 걸 일깨워줬고,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소수민족, 이민자, 그리고 여성이어서 차별받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지

"'경험'이라는 것은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해석의 조합으로 형성된다. 내 기억에 차별을 심하게 받은 경험은 없다. 오히려 선물처럼 여러 가지 기회를 부여받았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불가사의한 것은, 발레 하던 소녀가 법대 교수가 됐다는 사실이다. 책에 보니 아메리칸 발레학교 동료였던 발레리노는 무대에서 은퇴한 뒤 하버드에 들어가 공공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었더라. 이게 가능한 일인가?

"미국에서는 자신을 재창조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평생 한 가지 직업만 갖고 사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하나의 커리어(career)를 갖고 있다가 새로운 공부를 해서 새로운 커리어를 갖는 것,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 아니다. 나는 종신 교수라 내가 원하는 만큼 대학에 머물 수 있지만 10년 뒤에 내가 어떻게 될지 100% 확신할 수 없다."


2011년 1월 미주 한인의 날을 맞아 ‘자랑스러운 한인상’을 수상한 석지영 교수. / 연합뉴스
성공이란 무엇인가?

영어 이름이 '지니 석'인 그가 개설한 '공연예술과 법' 강의는 하버드 법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 중 하나다. 알렉 볼드윈 같은 할리우드 스타를 비롯해 유명 발레리나, 작가들을 강사로 초청해 열띤 토론을 펼친다. 형법, 가족법이 전공이지만 석지영은 패션, 예술 등 다양한 분야와 법의 접목을 시도한다. 하버드 법대 교수 100여명이 만장일치로 그를 종신 교수에 선출한 것도 이런 실험과 학문적 성취 덕분이다.

―하버드 법대에서는 종신 교수가 되면 초상화를 그려 복도에 건다던데.

"매일매일 그 앞을 지나다니는 게 고역이다. 정말 민망하다(웃음)."

―문학에서 법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된 계기는.

"문학을 읽고 즐기는 건 행복했지만 그걸 해석해 글로 쓰는 작업이 힘들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묘사하는 일보다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실용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해럴드 고 국무부 법률고문의 영향이 컸다. 그는 1991년 아이티 쿠데타 후 폭력과 박해를 피해 피신한 아이티인들을 대변한 변호사였다. 미국 정부는 난민들을 관타나모 기지에 수용했다가 아이티로 돌려보냈다. 당시 예일대 법대 교수였던 해럴드 고는 법대 학생들과 함께 아이티 난민을 대표하여 연방법원에서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해럴드 고 자신이 군사 쿠데타가 발생한 모국을 떠나 미국에 망명한 한국인 부부의 자녀라는 점에서 내가 받은 감명은 더욱 컸다. 해럴드 고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를 바쳐 일하는 사람이다."

―하버드 법대에서 첫 강의를 하던 날, 너무 긴장한 바람에 단상을 향해 걸어가다가 장렬하게 넘어지는 장면이 인상적이더라.

"하하! 그날 정말 긴장했다. 옷도 완벽하게 입었다.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밖에 없었다. 커피와 함께 강의실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뒤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라. 그보다 더한 실패는 앞으로 없을 테니까(웃음). 학생들에게 완벽한 교수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라지자 강의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긴장도 풀려 우리 강의실은 매우 인간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배우 알렉 볼드윈을 강사로 초청했다. 미국의 가족법이 이혼한 남성이 자녀양육권을 얻는 데 불합리하다는 점을 강조한 토론회였다.

"여성운동이 활발해지면서 국가가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이었고 성취도 높았다. 그러나 여기서 파생된 문제점이 있다. 가정 폭력 '혐의자'들의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직 사실로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혐의자들의 권리는 대체로 무시된다. '가정 폭력'의 법적인 정의가 매우 넓어지면서 남성에게 더욱 불리해졌다. 특히 이혼은, 남성이 가정 폭력의 혐의를 뒤집어쓰는 경우가 많고 그 때문에 자녀양육권을 여성에게 빼앗긴다. 이혼 과정을 겪은 볼드윈 또한 아버지도 어머니만큼 자녀를 양육하고 싶은 권리가 있는데 현재의 법은 남성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의 항의가 있었을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여성운동이 일궈온 개혁과 성공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성주의 개혁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의도하지 않은 결과, 부정적인 결과까지도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우리 세대 페미니스트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단지 여성을 돕는다는 명분만으로 정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명사들을 강의에 초청한다. 보수적인 하버드에서 '튄다'는 핀잔을 듣지는 않는지.

"하버드가 젊은 교수들을 뽑는 이유는 혁신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버드는 시간에 갇혀서 변하지 않는 학교가 될 것이다. 내가 아는 하버드는 결코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이 한국에서 인기다. 당신은 책에 '내게 법률 연구와 법학도를 가르치는 일은 법 안에서 위대하게 살기를 갈망하는 방법'이라고 썼더라. '법이 곧 정의'라고 믿고 장발장을 추적하는 자베르 경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법학도를 가르치는 나에게 그 질문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하버드에서는 법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올바르게 적용하는 기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지만,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한다. 단지 법의 언어에 고지식하게 따르는 법률전문가가 아니라 실용적인 지혜와 절제력, 자비심을 가지고 법을 포괄적이고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고결한 인품의 소유자를 키우는 것이 목적이다. 자베르의 '법은 곧 정의'라는 경직된 사고의 교훈은 법학뿐 아니라 모든 고등교육(elite education)에 적용된다. 세상에는 정확하게 정해진 것보다 애매모호한 일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나.

"나는 완벽한 엄마가 아니고 완벽해지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시간 날 때마다 내가 어린 시절 사랑했던 책들을 아이들과 함께 읽는다. 여행을 떠날 때 가능하면 아이들을 데려간다. 학교 개근보다 여행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의 일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아이들과 토론한다."

―세속적인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부모의 과도한 욕심, 그리고 자신의 꿈 사이에서 씨름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부모와 학생 모두 성공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같은 하버드대 교수라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지 찾아라. 그러면 진정한 성공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마이 페이지 > 스크랩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중한 글에 감사 댓글 남겨주세요.

     
로그인 후 덧글을 남겨주세요
신록예찬 2014-03-14 21:47 

1년여전 글을 이제보고 댓글달아 봅니다.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시고, 그보다더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는데에 기도의 힘이 컸다는 말에 늘 공감하고 감동합니다.

5학년 딸하나 키우는 엄마로서 젊을때는 아이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졌지만 딸하나만 주셨습니다.

아들을 두어서 사제가 되었으면 얼마나 영광스러울까 문득문득 생각할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딸하나도 수녀가 되겠다면 감사하겠는데 본인은 영 관심이 없고 제게 그런 복은 없나 봅니다.ㅎㅎ

두째 아드님이 참으로 사랑이 많은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계시다면 이루어지리라는걸 저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실걸 알면서도 댓글 달아봅니다.

하느님의 은총안에서 항상 평화를 누리시길 바라며..

하니비 2013-01-16 07:57 

큰 꿈은 무엇일까?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꿈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 큰 뜻을 품은 사람은
모두가 커지려 할 때 작아져야 하기에
모두와 함께 할 수 없는 외로움을 견뎌내야 한다.

청소년을 올바르게 키워보고 싶은 꿈,
그것은 자신이 밀알이 되어 썩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강석준 신부는 큰 뜻을 품었고
작은 밀알이 되어 외롭게 싹을 틔워가고 있다.

강석준 신부, 논산대건고교장
PESS청소년교육연구소 www.pess.or.kr

 


교육, 영성만이 답이다
논리적인 사람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학문이 논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논리적인 사람이 영성계발이 되지 않으면
그 논리는 경직된 논리일 뿐이어서 창조적이지 못합니다.
영성이 계발되어야 논리적이면서도
논리에 매이지 않는 유연성을 갖게 되고
그 유연성에서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