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아이돌 2014-11-1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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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의 감들이 빨갛고 탐스럽게 열렸습니다. 가지가 찢어질 듯 주렁주렁 매달렸네요.

감만큼이나 영근 가을도 이제는 끝자락을 향해 갑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집 근처 공원에 산책을 나갔습니다. 눈 내리 듯 떨어지는 낙엽들이 마치 왈츠 곡에 맞춰 춤을 추는 듯 했지요. 마침, 친구가 보내 준 레하르의 [금과 은]을 들으며 벤치에 앉아 가을 햇빛에 반사되는 낙엽과 함께 빛의 물결을 감상했습니다.

얼마쯤 걸었을까요. 넓은 잔디밭 공원을 마주하게 되었고 저만치에 학생들처럼 보이는 무리들이 줄지어 앉아 무언가를 하는 듯 했습니다. 마치 학교 마당에 반별로 줄지어 앉은 학생들 같았다고나 할까요.

 

날씨도 좋으니 사생대회가 있나 보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창시절 이맘때면 글짓기, 그림그리기 등 사생대회가 열렸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올랐습니다. 무리들을 피해 공원 외곽으로 한참을 걸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푯말이 세워져 있더군요.

S석, R석.

저녁에 있을 콘서트를 기다리는 줄이었고 요즘 인기가 높은 아이돌그룹들이 출연을 한다는군요. 돗자리에 도시락에 만반의 준비를 한 학생들이 이미 여러 시간을 기다린 듯, 개 중에는 지쳤는지 누워있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마니아들이나 펜클럽 회원들이겠지요. 주로 중고등학생들입니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배꼽을 잡고 웃는 학생도 있고, 환한 표정으로 곧 있을 콘서트를 기다리는 설렘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행복한 아이들입니다.

 

딸아이가 중학생이던 시절에는 ‘동방신기’라는 남자 아이돌 그룹이 대단한 인기몰이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날 딸아이 앞으로 택배를 받았는데 펜클럽 회원들이 입는 빨간 후드티더군요. 열광하는 아이를 말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콘서트가 열리는 늦은 가을, 담요를 싸들고 잠실종합운동장 담벼락 밑에서 밤을 지새운 적도 있습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감기 걸리지 않도록 단단히 준비해가라는 말 한마디 뿐. 그 누구도 제동을 걸 수 없는 열정적 시기입니다. 입만 열면 그룹 멤버들에 대한 얘기였지요. 전문가가 따로 없고 스케줄도 꿰고 있습니다. 딸아이의 열병을 지켜보며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시절, 딸아이와 갈등없이 기다릴 수 있었던 까닭은 앞서 경험한 친구 덕분입니다.

나보다 결혼을 몇 년 일찍 한 친구의 딸이 중학생이던 시절엔 HOT라는 그룹이 대세였는데 친구 딸아이의 방은 온통 HOT의 사진과 달력, 브로마이드, CD 등 작은 전시관이 따로 없었습니다. 친구는 없는 용돈에 이것저것 사들이는 딸이 못마땅했고 공부는 하지 않고 가수에 미쳐서 돌아다닌다고 딸과 싸우기 일쑤였습니다. 속상하다는 하소연이 끊이지 않았고 딱히 대책도 세우기 어려운 상황이었지요. 아이들의 고집 또한 대단합니다. 엄마한테 아무리 혼나도 딸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콘서트도 다니고 음반도 꾸준히 사들였으니 딸과의 전쟁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미치는 것도 한 때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사그라들게 마련이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사춘기 소녀들의 열정이 그들의 이상과 만나 폭발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들은 설 수 없는 세상에 그들을 대신해서 화려함과 자유를 뿜어내는 아이돌그룹이 너무나도 멋졌었겠지요.

HOT에 미쳤다던 그 딸도, 동방신기에 빠졌던 내 딸도 세월이 흐르니 너무나도 반듯하고 자기 몫을 잘 하는 꽤 괜찮은 아이들로 성장했습니다.

엄마에겐 든든하고 흐뭇한 딸들입니다^^

 

유행처럼 성했다가 사라져 가는 아이돌그룹에 우리의 아이들은 홈빡 빠져듭니다. 대리만족일 수도, 꿈을 꾸어 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왕이면 열정적인 게 더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맛을 알고,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줄 줄 안다’고 합니다.

아이돌에 빠져 10대의 열정을 불태웠던 아이들은 그 열정을 또 다시 어디엔가 쏟아 붓게 될 것입니다.

죽어있는 아이들 보다 살아 움직이는 아이들,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아이들의 에너지에 응원하고 싶습니다.

 

군에 들어간 큰아이도, 얼마 전 훈련소에 들어간 작은 아이도 전과는 다르게 여자 아이돌 그룹의 싸인을 받고 싶어합니다. 마니아도 펜클럽 회원도 아닌 아들들입니다.

힘든 군생활에 위로가 된다니 작년엔 큰아이를 위해, 올해는 작은 아이를 위해 여성 아이돌그룹의 싸인을 수소문해 받습니다.

아들을 기쁘게 해 주려고, 군생활에 활력소가 되라고 이제는 엄마인 내가 아이돌 그룹을 섭외합니다. 싸인을 손에 들고 기뻐할 작은 아이의 싱긋이 웃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나도 더불어 행복해 지니, 고마운 아이돌그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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