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아이 2015-01-14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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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의 일입니다. 전공과목의 문화 관련 강좌를 맡게 되었는데 때마침 본국의 유명화가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는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사진이나 TV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귀한 작품들이었기에 학생들이 감상하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라 여겼지요. 학생들에게 전시회에 다녀 온 후 감상문을 제출하라는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세계적인 미술계 거장의 작품이니 감상문 또한 기대하면서요.

 

학생들의 감상문을 하나 둘씩 읽으며, 대학입시 논술교육의 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같이 흠 잡을 데 없이 잘 짜인 글의 형식과 전개 방식이 실로 감탄스러울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글을 읽고 나면 어딘가 허전하고 심지어 씁쓸한 느낌까지 받게 되었으니, 참으로 모를 일이었습니다. 정갈한 글들이었지만 천편일률적인, 마치 교복을 입은 한 무리의 학생들을 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잘 훈련된 글쓰기의 달인들이 제출한 감상문이었습니다.

대학 논술시험이 대세를 이루던 시절, 채점에 투입된 교수님들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글의 내용이 다 거기서 거기다 보니 정작 고를만한 글들이 없어서 오히려 학생들의 필체나 띄어쓰기에 더 시선이 가더라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엄마들은 아이들의 독서와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교육기관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삼삼오오 팀을 만들어 유명 선생님을 초빙하기도 하지요. 독서와 글쓰기의 중요성,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아이가 책읽기에 폭 빠져 즐거울 수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어떻게 이끌어 주어야 할 지, 정말 어려운 숙제입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시절, 그 때도 역시 독서와 글쓰기 교육은 필수 과정이었고 우리 아이도 한 켠에 끼어 대여섯 명의 친구들과 팀을 만들었습니다.

일명 ‘철학하는 아이들!’

초등생이 철학을 한다니 거창하기도 하고 어떤 지도를 할런지 자못 궁금했습니다.

교육 첫 날, 엄마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는데, 지도 선생님이 그 자리에 모였던 엄마들에게 종이와 연필을 주며 앞에 놓인 커피 잔을 그려보라 하더군요. 만져 보고 들어보고 잘 보고 난 후 그리라는 말과 함께...

잠시 후, 엄마들이 내민 종이엔 자신이 본 커피 잔이 예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손잡이의 곡선이 단아한 커피 잔의 모습. 그야말로 커피 잔이라면 모름지기 이 모습일 것 같다는 그런 그림이었지요.

그 중에서도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는 엄마의 잔은 조금 더 고왔던 것 같긴 합니다ㅎㅎ

엄마들은 서로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웃으며 품평회를 했습니다.

 

잠시 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계신 어머니들 모두 커피 잔을 옆에서만 보셨군요.

위에서 내려다 볼 수도 있고, 컵 밑바닥에서 위쪽으로 볼 수도 있고, 손잡이 방향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

헉!

커피 잔이라면 으레 옆모습을 그려야 한다는 엄마들의 획일화된 고정관념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앉아있던 자리 또한 각기 달랐지만 그려진 잔이 놓인 각도는 모두 다 동일했으니, 우리는 각자 무엇을 보고 그렸던 것일까요? 제대로 보긴 했던 걸까요? 우리는 모두 자신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커피 잔의 모습을 종이위에 그렸던 겁니다.

 

이후, 우리의 아이들은 철학교육 팀에서 다양한 주제에 대한 글을 읽으며 토론하고 자신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과정을 밟게 되었습니다.

생각하는 아이들, 토론하는 아이들.

수업인지 전쟁인지 알 수 없었던 설전은 시간이 흐르며 진정되어 갔고 아이들의 토론 기술 또한 자리가 잡혀가는 것을 지켜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사고능력이 얼마나 크게 성장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물을 대하는 시각이나 사고의 폭은 확장되지 않았을까 기대합니다. 경계와 제한이 없는 자유로운 사고의 흐름은 결국 자신만의 독창적인 느낌과 세계를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길잡이가 되겠지요.

 

가끔은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질문 같지도 않은 당연한 것을 묻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어른들의 갇혀진 사고와 판단이 과연 정답이고 옳은 것인지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내 아이가 독특한 시각과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한 번쯤 자문해 보는 건 어떨까요?

혹시 인류를 구원할 인재는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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