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 2015-02-05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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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지났으니 길고 지리했던 겨울이 저만치 물러가는 느낌입니다. 이제 추위는 다 가고 곧 꽃피는 봄이 오겠지요. 이맘때가 되면 곧 있을 아이들의 입학을 앞두고 준비하느라 분주했던 날들이 기억납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아이의 입학을 앞둔 엄마들의 그 마음, 다 똑같겠지요?

 

첫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할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첫아이라 떨리고 설레고 마음은 부산합니다. 열린교육을 한다는 유치원에 원서를 넣었는데 경쟁률이 엄청 높았습니다. 요즘도 유명한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들은 임신 중에 원서를 미리 써야 한다니 경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어쩌면 요즘이 더욱 치열한 것 같기도 하고요. 20여 년 전이지만 당시에도 유명 사립유치원들의 경쟁률은 만만치 않았으니, 추첨하던 날의 그 긴장감은 지금도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내 아이의 번호가 불렸을 때 느꼈던 그 기쁨과 감격. 눈물까지 핑 돌았으니 지금 생각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네요.

순수하고 아직은 미숙했던 초보 엄마. 엄마는 아이와 함께 그렇게 커 가는 것 같습니다.

 

둘째인 큰 아들은 생일이 일러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야 했습니다. 설렘보다는 근심이 앞섰으니, 겨우 제 이름 세 글자를 깨우치고 입학한 아들입니다. 일찌감치 스스로 한글을 깨우친 누나와는 달리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까지 한글 배우기를 거부했지요. 학교 가서 배울테니 걱정말라고요. 무슨 배짱인지 도통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름은 써야한다며 겨우 어르고 달랬습니다. 커다란 스케치북을 식탁에 올려놓고 매일 짬을 내어 색연필로 이름쓰기를 연습했지요. 왼손잡이여서 그랬는지 거울에 비친 듯 방향이 뒤집힌 글자들. 그래서 글씨만은 오른손으로 쓰라고 사정을 하며 붙잡고 가르쳤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들이 글자를 처음 쓸 때, 일명 ‘거울 효과’ 현상이 일어난다고 하네요. 거울에 비친 글자의 형상으로 글자를 쓰게 된다는 이론인데 자연스레 치유가 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름 세 자 쓰다 겨울이 다 가고 입학시기가 되니 이런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졸이는 상황인지 암담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엄마, 걱정마세요. 학교가서 다 배울게요’라며 달랑 제 이름 세 글자 쓰고는 씩씩하게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한글을 줄줄 읽고 능숙하게 쓰는 아이들 속에 우리 아이는 유일하게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아이였고 담임선생님마저 의아해 하셨지만 걱정하지 말라 위로해 주셨습니다. 사실 읽기와 쓰기는 초등학교에서 배워야 할 과정인데 오히려 내 아이가 정상일지 모른다며 애써 위안을 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으니 그저 난감할 따름이었지요ㅠㅠ

 

입학 후 며칠이 지난 후, 12시면 집에 와야 할 아이는 오지 않고 얼마가 지났을까요.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학교로 달려갔지요. 얼굴이 붉게 상기된 아이는 끙끙대며 칠판의 글씨를 연신 쳐다보며 알림장 내용을 베껴 쓰고 있었습니다.

국어 교과서에서는 이제 겨우 ㄱ,ㄴ,ㄷ...을 배우는데 알림장이라니...

다른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안타까운 마음에 담임선생님이 대신 써준다 해도 마다하고 1시간이 넘도록 끝까지 고집을 피우니 선생님도 꼼짝없이 아이를 지켜보고 있더군요. 쓴다기 보다는 철자를 그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이가 작업을 마칠 때까지 어쩔 수 없이 기다렸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받아쓰기 시험이 시작되었고 첫 시험엔 2문제를 맞아왔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러게 엄마가 하자고 했을 때 한글을 공부했으면 좀 좋아?’ 맘속으론 굴뚝같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습니다. 자존심 강한 아이가 얼마나 속상할까, 후회될까를 헤아리니 마음도 아프고 야단친다고 달라질 것도 좋아질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아들의 자존심이 손상 받을까 걱정되었지요.

 

‘이 어려운 받아쓰기를 두 개나 맞았어? 한글 배운지도 얼마 안되었는데 정말 대단해! 곧 잘 할 수 있겠는데, 정말 잘 했어!’

 

도 닦는 심정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받아쓰기라면 한 번도 틀린 적 없는 누나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자신과 비교하며 자랑할 만도 한 딸아이가 묵묵히 동생의 받아쓰기 공부를 도와주었으니 고맙기도 했습니다. 서너 번의 받아쓰기 시험을 지나 완전히 다 맞아오는 아들이 대견해 졌으니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들여다보고 더 쓰면서 화장실까지 책을 들고 들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믿음직스럽기까지 했으니 아들에 대한 기대와 신뢰는 아마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른들이 말씀하십니다.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고.

 

조금은 어눌하고 조금은 늦는 것 같아도 결코 늦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엄마의 조바심이 아이보다 먼저 앞질러 나가 있는 것이지요. 아이가 자세를 가다듬고 출발선에 제대로 서기를 기다려봅니다. 준비된 아이는 언제든 달려 나갈 수 있으니까요.

아이가 준비되기를 기다리는 것도 엄마가 감당해야 할 과제인 듯싶습니다.

아이의 입학으로 들떠있는 엄마들에게 꼭 필요한 마음의 여유를 권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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