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오각

등록일 :2001-11-19 22:24:48

조회수 :32,346

금요일. 우리 아들 손을 꼭잡고 미술관 여행을 했습니다.
본래 오르세미술관 한국전만을 볼 계획이었으나 마음1님의 호암갤러리 소개글을 보고 무려 세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예술 분야에는 별 소질이 없는지라 오로지 제 느낌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고집으로 작품을 대했어요.

덕수궁에는 생각한 것 보다 작품수가 너무 적었으나 그나마 2층에 전시된 고야의 작품으로 위안받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1층에 전시된 작품들은 이해하기 쉽고 너무 많이 보았던 작품들이어서 큰 감동을 느끼지 못했습니다만 이따금 보이는 누드화는 울 아들에게는 조금 쑥스러웠던듯합니다.
그래서 한마디 던져보았죠.
" 사람의 벗은 몸이 가장 아름답고 자연스럽다고들 하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니?"
물론 그아이 성격상 씩 웃고는 "잘 모르겠어요."하더라구요.

아~~ 그런데 2층의 고야의 작품은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판화를 통해 섬세하게 표현된 인간의 잔인함과 사회의 부조리함.불평등구조.
그리고 고야가 살던 시대에서 200여년이 흐른 지금 무엇이 달라졌고 발전되었는가를 생각하게합니다.

진보된 세상에서 우리가 과연 행복을 누리고 살고있는가?
그당시의 불합리한 구조들이 얼마나 바뀌었는가?
발전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가?
사실 절망했습니다. 나아진것이 없는 우리네 현실과 풍요와 발전의 그늘에 가려진 나의 삶을 떠올리면서...

그리고 호암갤러리에서 [근대화단의 귀재 이인성]전을 보았습니다.
그가 살던시대는 일제시대.
1934년 "여름 실내에서"라는 작품은 얼마나 근대미술사적 가치가 있는지 모르지만 난 이인성이 싫어졌습니다.
햇살 가득한 거실에 놓인 서양의 식물들 그리고 멋진 탁자와 의자, 장식물, 그리고 바닥 한켠에 놓인 작은 고무신(흰고무신이 아니라 꽃고무신).
도슨트(문화자원봉사자)의 설명에 의하면 국적을 나타내려고 한 듯 하다고.... 글쎄 올시다.

그리고 마음1님이 좋았다는 "겨울"이라는 그림은 시간을 더 투자해서 저도 보았어요. 마음님을 조금은 알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난 역시 그림을 이해하는데 너무 편견이 있는가 봅니다.
그림을 그림으로써 이해해야 하는데 자꾸만 그가 살던 시대가 떠오르니 말입니다.

그의 대작들은 역시 훌륭했습니다만 자기가 살던시대를 충실히 그리려고 했던 덕수궁의 "고야"와 어려운시대 물질적풍요를 누리며 시대에 애써 눈감아버린 호암갤러리의 "이인성"이 자꾸만 비교가 됨은 나의 잘못된 관점일까요?

그리고 로댕갤러리.
어이구 여기 이 작품은 또 뭔가?
열심히 해설을 보고 또 보며 이해해보자를 외치고 공감해야지를 되내이며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다 결론 지었어요.
여기에 참여한 작가들은 관객들이 자신의 작품들 속으로 뛰어들어 함께하길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호흡을 가다듬고 편안하게 앉고, 누워보고, 뒤적여 보면서 그리고 내 이름과 주소를 적은 종이를 투명 플라스틱통에 넣었지요.
그들이 말하는"파편화되고 표류하는 삶이아니라 나눔과 교류, 그리고 상생의 삶을 지향한다"는 높은 이상에 공감하면서...

예술분야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획기적이고 다양한 시도들도 많아지고 있슴을 느껴봅니다.
애써 예술을 즐기려하는 부류말고도 일상적인 대중들의 삶속에서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작가들이 많아지고 있고 또 그것이 받아들여지고 있어보입니다.

아들과 길에서 군것질하면서 돌아본 이번 미술관 여행은 아주 즐거웠습니다.
이인성화가를 도데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숙제로 남기며 이 글을 맺고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