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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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딸의 한글 떼기 과정
한 뱃속에서 나와도 다 다르다는 얘기는 정말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저의 두 딸은 우유병 떼기, 기저귀 떼기, 한글 떼기 등 모든 과정에서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작은 아이는 뒤집기나 기기, 걷기 등의 신체적 발달이나 우유병 떼기등을 제외하고는
학습발달면에서는 큰 아이보다 뭔가를 떼는 시기도 항상 늦었고,
기저귀 떼기도 시도한지 1년 남짓되어서야 완성이 되었을 정도로
지적인 면이나 학습발달면에서는 뭔가를 떼는데 걸리는 시간이 언니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큰 아이는 뭔가를 학습한 결과가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나타나곤 했는데,
아이 아빠도, 아이 엄마인 저도 아이가 뭔가를 연습하는 과정이나
미숙한 시기의 시행착오의 과정을 별로 목격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이 아빠는 항상 큰 아이가 어디 숨어서 엄마 아빠 몰래
피나는 연습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며 우스갯소리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반면에 작은 아이는 뭔가 새로운 과정을 배워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목격되었고
그 과정에서의 아이다운 앙증맞은 시행착오들은 가족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가져다주곤 했습니다.
작은 아이의 한글떼기는 철저히 엄마의 무관심속에서 된 것이지만
큰 아이때는 그래도 거금을 들여 몬테소리 풀세트를 구입해서
부직포 벽걸이에 낱말카드나 그림 카드등을 붙여 놓기도 했었습니다.
이미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제가 또다시 첫아이를 낳는다면
절대 몬테소리 풀세트를 사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교재가 우수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시판되는 교재만이 아이에게 지적 호기심과 영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교재,교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
그 돈으로 보다 보람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겠다는 아쉬움때문입니다.
처음 낱말카드와 그림카드들을 벽걸이에 붙여놓았을 때
아이는 엄마의 의도나 바램과는 상관없이
모든 카드들을 찌익찌익 뜯어내는 것을 놀이삼아 즐겼고
(정말 온 정신을 집중해서 열심히 뜯어내더군요)
카드들을 다 떼어내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간혹 손으로 글자를 짚어 읽어주기도 하고
그림과 대응하는 글자를 찾아 짝을 맞춰 붙이는 놀이를 하기도 했지만
방 한 쪽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교구세트들을 볼 때마다
비싼건데 제대로 활용못하고 있다는 부담감이 더 컸습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까꿍' 동작하나도 멋적고 어설픈데다
아이와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잘 모르겠기도 해서
아이가 태어나서 겨우 눈이나 떴을까 말까 할 때부터
아이가 깨어 있는 것 같으면 조용조용 책을 읽어주었고,
아이가 잠들어 있는 곁에 예쁜 그림이 있는 책을 펼쳐 세워 놓으면
아이가 잠을 깼을 때 책에 있는 그림을 경이로운 눈으로 보곤했습니다.
제가 제일 잘하는게 책읽어주는 것이어서 그랬는지
큰 아이는 한 번 책을 읽어달라고 하기 시작하면 자기 앉은 키 만큼 읽은 책이 쌓이고
엄마가 목이 아파서 더 이상 읽어주기 힘들다고 할 때까지 책을 읽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좀 엉뚱한 이유지만
아이에게 앉은자리에서 삼 사십권씩 책 읽어주는 것이 너무 힘들고 목이 아파서
(워낙 제 목이 건강치 못합니다)
아이가 빨리 글을 깨쳐서 혼자 책을 읽었으면 하고 바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어떻게 한글을 깨치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해보건대
아이에게 한글을 깨치게 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낱말카드보다는 수없이 많이 읽어준 '책'인 것 같습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모두 한글을 깨치는 첫 단계는
책에 있는 문장들을 통째로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큰 아이때 아이가 혼자서 처음으로 책을 읽었을 때 (토씨하나 틀리지도 않고 )
잠깐이나마 '아니? 우리애가 천재?'하고 착각했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아이가 처음에는 외워서 책을 읽는다는 사실도 참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반복해서 읽다보니 저절로 문장들을 외워버리게 된 것이지요.
대개의 다른 아이들도 이런 과정들을 지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두 아이 모두 처음 외우기 시작한 책들은
몬테소리 세트에 있었던 20권짜리 '곰곰이'시리즈였습니다.
그런데 그 책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아이들에게 친화력이 있는지
그 책을 물려 받은 저의 조카도 그 책을 참 즐겨보았다고 합니다.
명화풍의 그림도 아니고, 대단한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배경색과 배경 그림이 없어서 등장인물과 사물에 집중할 수 있고
자신과 비슷한 꼬마곰의 일상이 간단한 문장들로 되어 있는 책이라서
꼬마곰 곰곰이와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인가봅니다.
곰곰이 이후로 피카소 동화나라에 있던
'민이는 여섯 살 배기. 유치원에 다니는 개구쟁이예요'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꿈나라 여행'이라는 책등을 외워서 읽더니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혼자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
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모두,
정확히 어느 시점부터 혼자 책을 읽기 시작했는지 잘 모르겠으니,
남들이 들으면 " 엄마 맞아요?" 하고 한심해할 것 같습니다.
큰 아이가 글을 읽기 시작한 시기가 그리 빠른 것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처음 읽기 시작할 때부터 받침 있는 글자까지 아주 정확히 읽었던 반면
작은 아이는 아직도 받침 있는 글자들은 간혹 틀리게 읽기도 합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에게 읽어 준 책의 양이 비교도 안되게
큰 아이에게 훨씬 많은 책들을 읽어주었다고 생각되는데
두 아이가 책을 정확히 읽는 정도는 이 차이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큰 아이가 처음 글을 깨친 후,
제가 아이 아빠에게 붙여준 별명인 '문자 중독증 환자'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글자가 써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닥치는대로 읽는 것이지요.
여호와의 증인 전도사들이 놓고 간 팜플랫이며 신문광고 전단, 식당 메뉴판,
길거리 전봇대에 붙어 있는 '룸싸롱 여직원 구함' 광고까지 큰소리로 읽어대는 것입니다.
아이 혼자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서 더 이상 목아프게 읽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기쁘
긴 했지만, 아이가 책을 혼자 읽을 수 있더라도 꽤 클때까지도 엄마가 책을 읽어 주는 것이
아이의 정서에 굉장히 좋다는 얘기에 '끊임없이'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영어 깡통인 제가 아이들의 영어 교육에 있어서도 믿는 구석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 '끊임없이'입니다.
끊임없이 엄마 목소리로 읽어준 책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한글을 깨치는 것을 본 엄마의
자신감과 여유는(언어학습은 '노출의 빈도'가 절대 관건이라는 믿음)
아이들의 '영어학습'에까지 전이가 되서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고 함께 영어 동화 비디오들을 봅니다.
엄마가 읽어 줄 때도 있고 혼자 읽을 때도 있고 하는 시간들이 지나고
이제 더 이상 아이 혼자 책을 읽는 것이 신기한 일이 아닌 일상이 되어버린 어느 날
뱃속에 있는 동생의 이름을 이렇게 짓자며 큰 아이가 '김지호'라고 또박또박 쓴 종이를 내밀
었습니다. (당시 아이는 탤런트 김지호를 아주 좋아했거든요 ^-^ )
아이가 글자를 가르쳐 달라고 한 적도 없었고, 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친 적도 없고,
아이가 글자 쓰기 연습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었기에
저는 아이가 써가지고 온 '김지호' 라는 세 글자가 경이롭기만 했습니다.
(아이의 공식 첫 글씨로 아이 앨범에 보관해놓았습니다)
작은 아이는 큰 아이와는 달리
읽기와 쓰기를 아이가 깨쳐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보여졌습니다.
큰 아이는 책을 읽어 줄 때 글자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어달라고 한 적도 없었고
혼자 읽을 때도 손으로 짚어가며 읽은 적이 없었는데
작은 아이는 처음에 글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한 글자 한 글자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어달라고 하였고
혼자 읽을 때도 손가락으로 글자를 하나 하나 짚어가며 읽었습니다.
그리고 '읽는다'와 '이해한다'가 반드시 동시성을 띤다거나
같은 의미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작은 아이를 통해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찌된 일인지 엄마는 싫어하고 꺼려하는 학습지를 아이들은 참 좋아해서
큰 아이도 시장골목에서 떼쓰고 졸라서 받아보게 된 아이템플 학습지를 즐겨 풀었고
작은 아이도 서점에 갈 때 간간이 구입한 '나는 5살이예요' 등의 단행본 학습지들을
즐겨하곤 하는데,
(어떤 때는 졸린 눈을 비벼가며 하는 아이가 저로서는 참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큰 아이는 문제를 읽고 문제의 뜻과 문제가 요구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반면,
작은 아이는 분명히 문제의 문장들은 또박또박 정확히 읽지만 읽고나서
"그럼, 엄마, 어떻게 하는 거예요?"
하고 제 얼굴을 쳐다볼 때가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이런 면이 나아지고 있기는 합니다만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짚어가며 읽는 것이 글을 읽고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작은 아이의 글자 쓰기 과정도 큰 아이와 사뭇 다릅니다.
큰 아이는 어느 날 느닷없이 제대로 된 글자를 써서 '척'하고 내밀었던 반면
작은 아이의 글자쓰기 시작은 우리가 모르는 영어를 보통 '솰라솰라 '라고 하듯이
희한하고 꼬불꼬불한 모양의 글자아닌 '흉내글자'를 종이마다 써서 저에게 갖다주는 것이었
습니다.
유치원에 들어갈 때도 신발장에 씌여 있는 친구들 이름을 다 읽어야 교실로 들어가고
유차원에서 집에 올 때도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하고서야 집에 오는 등
'글'을 익히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든 과정들이 다 보여졌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판이하게 다른 두 아이의 한글 익히기 과정에서도 공통점은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읽기와 쓰기에 대한 열망이 잠재되어 있어서
때가 되면 스스로 읽고 싶어하고 쓰고 싶어한다는 것이 첫 번째 공통점이고,
책을 많이 읽어주다 보면 어느 날부터인가 책을 통째로 외워서 읽다가
'소리'와 '글자'의 대응을 눈치채더라는 것이 두 번째 공통점이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구체적인 것, 일상과 가까운 것부터 익혀가더라는 것이
세 번째 공통점입니다.
그러니까 '사랑' 보다는 '사과'를, 김대중(전 대통령)보다는 김승우(아빠 이름)를
먼저 읽고 쓰기도 먼저 써 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공통점은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본능적으로 닮고 싶어하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책 읽는 모습과 글 쓰는 모습을 흉내내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계획하기를 즐겨하고(실천하기가 아니고 계획하기입니다 ㅠㅠ)
계획한 것을 메모하기를 즐겨해서 늘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종이와 연필을 가지고 와서 엄마 옆에서 함께 끄적거립니다.
휘갈겨 쓰는 제 글씨까지 그대로 흉내내길래
본의 아니게 저 혼자만 보면 되는 메모까지 정자체로 쓰곤 했습니다.
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들의 한글떼기를 걱정할 필요를 전혀 느껴보지 못했거니와
이미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작은 아이의 한글 떼기가 완성되어가는 지금
완벽히는 아니어도 초등학교 입학전까지만 어느 정도의 읽기와 쓰기를 할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
'읽기'와 '쓰기' 그 자체를 구조적으로 학습하는 것으로부터 한글 교육을 시작할 것이 아니
라 책을 읽고 '느끼는' 과정에서 저절로 읽기를 터득하고 쓰기까지 스스로 학습하게 된다는
믿음이 점점 확고해집니다.
'책'은 아이의 '생각주머니'를 키워 줄 뿐만 아니라
엄마의 목소리로 읽혀지는 문장들과 아름다운 그림들은 아이의 감성과 감각을 키워주고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시간들은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말할 수 없는 충만함을 가져다 줍니
다.
아이의 한글떼기에 필수 품목은 한글 학습지가 아니고
'엄마가 읽어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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