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발롱

등록일 :2002-02-23 23:51:56

조회수 :20,226

작년 여름, 대발이는 우리나라 지도의 가장자리를 훑어나가는 여행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주어진 3박4일이라는 시간은 일정대로 움직이기에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었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중추신경에 해당하는 호랑이(토끼를 호랑이로 바꾸겠습니다.)의 등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려는 시도는 좌절된 채 내륙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했었습니다.

사실 제 장기 계획은 이렇습니다.

첫째, 대한민국 지도를 한장 삽니다.

걸어서 종단이나 횡단할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일단 두 다리 대신 자동차 바퀴의 도움을 받기로 합니다.

둘째, 하나의 일정이 마무리될 때마다 지도 속에 거쳐간 고속도로나 국도, 지방도로를 색깔별로 그어 가며 종적을 남기기로 합니다.

그에 앞서 일단 남한 땅덩어리의 감을 잡기 위해 크게 이동하며 해안선을 따라 선을 긋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계획을 세웁니다.

셋째, 긴 네모가 그려지면 그 이후 지역별, 테마별로 그때 그때 주제를 정하고 목적지를 정합니다.

여행중 이동할 때마다 지도를 보며 머리 속에 지명과 방향감각을 익힙니다.
또 다음 행선지까지 가능한 여러 길 중에 가장 짧은 길, 경치가 좋은 길 등 어른의 도움을 받으며 그때그때 적합한 길의 방향을 스스로 정합니다. (예 : 태백에서 고한 방향으로는 38번 국도와 414번 지방도 등 두 길이 가능합니다. 이번에 우리 가족은 구름을 잡을 수 있는 남한 最高의 고개를 넘고자 후자를 택했습니다.)

그 밖에, 표지판이 나오는 갈림길에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하게 합니다. 요런 방법으로 아이는 지도에 펜을 그어 가며 자신이 지나온 길을 체크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무지 신기해 합니다.

사실 9살 먹은 녀석한테는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건 엄마의 욕심일뿐이구요, 요때는 동서남북 방향 잡는 것만으로도 큰 성공이 아닐까 합니다.

앞으로의 바램이 있다면 아이가 이를 시작으로 커 나가면서 청년이 되는 그 언젠가 손때 묻은 지도를 펜자국으로 가득 메우는 날이 오기를 바랄뿐이에요. 하하하....

전국을 발로 누비며 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기기를 바라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또 한가지....

내 아이들 만큼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우르르 몰리는 곳, 시간이 나면 아무생각없이 가게 되는 곳, 다녀와서는 일상에서의 분주함이 그대로 이어졌던 곳에서 피곤함만 더 얻게 되는..그런 곳에서 아까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서입니다.

제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저희에게 그런 것들을 심어주려 애쓰셨지요.
국토의 아름다움, 사계절의 소중함, 자연의 힘과 섭리 등에 관한것을요...

하지만 정작 아무 생각없이 따라다녔던 저는 그 좋은 시간들을 띵가띵가 무심히 흘려버리고 제 자신이 내 아이를 생각하는 부모가 되어서야 그 체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더군요.

그런데 대발이 녀석, 20여년 전 제가 짓던 것과 똑같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내 따라다니더라구요.(너 나중에 후회한다. 음하하하하....)

아..
이야기가 좀 옆으로 흘렀습니다.

어쨌든 이번 여행은 지난 여름 못 채웠던 나머지 조각, 이번에는 반대로 호랑이의 등줄기를 거꾸로 되짚어 내려가는 것에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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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요........

(후기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