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오랫만에 민규(5세)와 양재동 교육문화센터로 나들이를 했습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아서 매표소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그 많은 객석을 대부분 다 채웠더군요. 일층 이층..

 

앞서 몇몇분의 호두까기 인형 후기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사람마다 공연에 대한 경험이 다양하니 같은 작품에 대한 느낌도 다양합니다.

 

아이와 공연을 그리 자주 보지 못하는 저나 민규로써는 가뭄에 단비같은 공연이기에 그럴까요?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시시했을 것들도 오랜 여운으로 남습니다. (아마도 공연 후에 호두까기 인형과 뮤지컬의 대사를 그대로 실어놓은 책을 구입해서 곱씹으니 더 그런가 봅니다)  

 

저나 민규는 원작 호두까기 인형의 화려한 발레공연도 본 경험이 없기에

그야말로 백지에 그림 담아내듯 그렇게 이번 공연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우선 원이맘님 따님이 표현했던 '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세계에 온 것 같아.

이건 저도 느꼈던 겁니다. 다만 전 다소 연결성이 떨어지는 듯한 스토리구성이

'신비하고 환상적인 꿈의 나라'로 느껴졌다는게 다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시종일관 이어지는 생생한 음악 연주와

주인공들의 아름답고 시원스런 노래..가 무대를 꽉 차게 만들었습니다.

또 등장인물들의 특이하고 기발한 의상도 충분이 볼꺼리가 됐습니다. 

다만 무대배경이 한두번쯤은 파격적으로 바뀔법도 한데..하고 기대하며 봤는데 이렇다할 큰 변화는 없이 조명으로 떼우는?듯해서 좀 싱겁긴 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공연했던 뮤지컬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환상적인 장면 한두개 쯤은 있어줘도 좋을텐데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말이죠)

 

또 아쉬웠던 건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담은 CD를 시판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공연 쉬는 시간에 나와보니 뮤지컬 내용을 그대로 담은 호두까기인형 책과 목각인형만을 팔고 있더군요. 저나 민규는 뮤지컬공연을 좋아하는데.. 공연을 보고 나서는 꼭 공연의 감동을 재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음악을 담은 CD를 사서 듣고 또듣고 하거든요. (CD가 하도 많이 들어서 튀는거 아시져? 그렇게 될때까지.ㅋㅋ) 이번 공연도 CD를 꼭 사고 싶었는데 없더라구여. 너무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몇일 안지났는데 벌써 멜로디가 거의 기억 안 나네요..)

 

그나마 책과 인형을 사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민규는 말탄기사를 연상케하는 말탄 호두까기 인형(25,000원)을 골라서 손에 꼭 쥐고 안 놓더군요. 인형이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잠깐 말성였습니다만, 아이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애절하게 원해서 큰 맘 먹고 사줬습니다. 15,000 원 정도면 망설임없이 샀을텐데.. (옆에 어떤 엄마는 10만원짜기 대형 인형을 척척 사주시더군요. 허걱..) 많은 엄마들이 지갑을 열었다 닫았다 하시더라구여. 아이들은 큰애나 작은애나 할 것없이 호두까기 인형에서 눈을 못떼고. 공연중에 판매하는 것이니 대폭 할인하셔도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듭니다. 아이들은 그 인형 하나로 공연에 대한 추억을 여운을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을텐데 말이져.

 

책도 잠깐 말성이다가 샀는데, 의외로 반응 좋습니다.

특히 이상한나라의 앨리스 구조라 아이와 스토리중심의 대화를 나누기엔 좀 무리가 있는데 책이 있으니, 게다가 책의 대사가 뮤지컬 등장인물의 대사와 똑같아서 제가 마치 무대의 말탄기사처럼, 우아한 숙녀처럼 (가고 싶으면 가~ 그런데 반드시 우리와 싸워서 이기면 그대 가~ 이거 너무 웃겼져? ㅎㅎㅎㅎ) 대사를 읇조리며 연기를 했더니 애가 뒤로 나자빠지네요. 숨도 안쉬고 웃어요. ㅋㅋ 아무튼 저희 집에서는 공연의 재미를 재연할 수 있는 좋은 매체가 되고 있습니다. 공연 가시는 분들, 공연의 감동을 집에서 연장하고 싶으시면 인형이나 책, 꼬옥 사주세요.

 

민규한테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어디였냐고 물으니,

 

생쥐 다섯마리가 어마어마한 크기의 무시무시한 유령형상으로 변해서 '마리 혼자 남겨놓고 메아리 노릇을 하게 하면 호두까끼인형의 갈 길을 알려주겠다고' 하는 부분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그 장면은 제가 봐도 소름끼치도록(?) 섬뜩하고 무서워서 민규 눈을 가려주려고 했었거든요. 민규가 순간 많이 긴장하는 것도 느꼈고. 그런데 의외로 그 장면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표현하니 신기하더군요. 생쥐 다섯마리가 각자의 목소리를 내면서 얘기하는 장면이 으스스하더라구여.

 

또 재미있는 장면은 생쥐 다섯마리(살색 바바리코트입은 남자 다섯)가 중간에 나와서

박진감 넘치는 멋진 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하네요. 이 장면은 저도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이런 볼꺼리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멋진 dance를 보여줘서 눈을 즐겁게하는. 민규 왈,

'어? 이 아저씨들은 상하이 써커스 아저씨들보다 더더더 멋지게 춤을 추네, 그치 엄마?'

 

전 개인적으로 공연을 보면서 잠시 뭉클했던 부분이.

마리와 호두까기 인형이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자신의 세계에 충실하게 위해서 용감하게(?) 헤어지고 그 아픔을 감래하는 모습이 특이하고 뭉클했습니다. 대부분의 가족뮤지컬이 골치 섞일필요없는 해피앤딩인 것에 반해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마리는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은.. 아픔은 있는 법이지..' 하며 짠..한 아픔을 혼자 간직하더군요. 그러면서 아픈만큼 조금식 성숙해지고. 나중에 커서 우리 민규도 저런 사랑의 아픔을 경험하고 맘에 안고 가겠지.. 싶으니 왠지 제 마음이 짠..해 지는 거 있져. 녹녹치 않은 험이 인생을 우리 아이는 어떻게 잘 헤쳐나갈까.. 싶어서 잠깐 센치해졌었습니다. 눈물 찍.

 

참, 쉬는 시간이 10분 정도 있었는데.

사람들이 워낙에 많다보니.. 너무 짧았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수백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향해 돌격하는데..정말 무시무시하더군요. 물론 끊없이 이어지는 줄을 따라 겨우겨우 일을 보고 들어가니 2부 공연을 벌써 시작됐습니다. 진행요원이 화를 버럭 내더군요. '지금 관격분들 항의가 대단하거든요. 굉장히 화가 나셨어요. 일찍 일찍 공연장에 들어오세요!" 좀 황당했어요. 사람이 이렇게 많고 화장실은 한정되어 있는데.. 관객 숫자를 보고 대충 시간이 많이 걸릴꺼라 예상되면 관객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이러저러해서 쉬는 시간을 10분에서 15분으로 늘이겠습니다.. 공지를 하던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슴다. -.- (나만 그렇게 느낀건가? 하긴 어떤 분들은 쉬는 시간에 무대 밑에서 연주한 연주자들의 악기를 구경하셨다져?) 아무튼 어느 공연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쉬는 시간은 짧고 사람은 많이 붐비니, 화장실은 '공연 시작 전'에 꼬~옥 들리심이 좋을 듯 합니다. 잊지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