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즈라 잭 키츠의 아버지는 아들이 그림쟁이가 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아들이 여덟 살 때 동네 가게의 광고 그림을 그려 주는 대가로 25센트를 벌어 오자 아버지는 한숨을 푹푹 내쉽니다. 키 크는 것만큼 그림 실력도 쑥쑥 자라 에즈라는 고등 학교 때는 스칼라스틱 출판사 주최의 전국 미술 대회에서 실업자를 묘사한 그림으로 상을 받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가워하지 않지요. 

당시 미국의 상황은 우리 나라 IMF보다도 훨씬 심각했던 경제 공황기여서 도처에서 실업자가 넘쳐 나니, 커피 가게 종업원으로 근근이 먹고 사는 유태계 폴란드 이민자 아버지는 아들이 예술 쪽으로 기울어지기보다는 현실적 기술을 갖기를 절실히 바랄 수밖에요. 고등 학교 졸업할 때는 드로잉을 잘 했다고 메달도 받고 미술 전공 상급 학교에서 장학금도 세 번이나 받기로 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하필 이 때 세상을 떠납니다.

아버지의 유품인 지갑에는 색이 누렇게 바랜 신문 기사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생활고 때문에 겉으로는 아들의 꿈에 반대했지만 속으로는 그 아들이 너무도 자랑스러워 미술 대회 수상 기사를 오려 지갑 속에 정성스레 간직하고 있었던 거죠. 소수 민족의 설움에 관한 한, 에즈라는 속이 까맣게 탄 사람이지요. 

유태계 폴란드인인 그의 원래 이름은 “Jacob (Jack) Ezra Katz”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야고보’라는 이름은 유태인이라는 게 확 드러나고 ‘Katz’라는 성도 폴란드 이름임이 너무나 분명해서, 1950년대의 반유태적 분위기에서 차별의 대상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그는 ‘Ezra Jack Keats’로 이름을 바꿉니다.

에즈라 잭 키츠가 만든 어린이 책은 무려 여든다섯 권이 넘습니다. 『눈 오는 날』로 칼데콧 메달을 받은 것을 포함해서 상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세상을 떠난 그가 받은 가장 좋은 선물은 아무래도 1997년에 프로스펙트 공원의 놀이터에 세워진 피터와 윌리의 청동상과 피터의 의자일 것 같습니다. 햇볕 좋은 가을날, 에즈라 아저씨의 영혼이 가끔 그곳으로 내려와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