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한 제 답글은 아마도
너무나 교과서적이고 원론적인
그래서 별 구체적인 '공명'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답이 되지않을까 염려됩니다.
사실 6살, 10살 두 아이의 엄마이자 중학교 교사인 저 자신도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하면 된다'할 수 있는
그런 '답'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공부 잘하는 아이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학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특징은
몇가지 꼽아볼 수 있겠습니다.
소위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은
이 모든 특징을 모두 가지는 경우도 있고
이 중 어느 한 가지나 몇 가지를 가진 경우도 있습니다.
1. 적당히 우수한 두뇌를 가졌습니다.
소위 '공부하는 머리'가 트이지 않은 아이들은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서 학교 성적이 좋을 수가 없고
또래 아이들에 비해 너무 뛰어난 두뇌나 창의력을 소유한 아이들은
지루한 학교 수업에 흥미를 잃기 쉬워
오히려 '산만하고 엉뚱한 아이'로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학교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대체로
너무 낮지도 높지도 않은 지능지수(100 ~ 130)를 가진
아이들인 경우가 많습 니다.
2. 지적 호기심이 있습니다.
'원리'를 알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자가발전 공부 엔진'이 달렸다고도 할 수 있는 아이들이지요.
새로운 지식은 자신의 새로운 무지를 드러내고
아이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계속해서 새로운 지식을 탐하게 됩니다.
다만 이렇게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가
반드시 학교공부를 잘하는 아이인 것은 아닙니다.
아이의 왕성한 지적호기심이
'학교 공부' 그 밖에 있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해서
오히려 '엉뚱하고 기이한 아이'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3. 차분하고 규칙을 잘 지키는 아이.
차분한 성격과 규칙을 잘 지키려는 성향의 아이들은 대체로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지시에 잘 따르고 수업에 참여하는 빈도가 높아서
학교 선생님에 의해 평가가 이루어지는 '학교 공부'에서
일정정도 좋은 성적을 받기 쉽습니다.
4. 목표의식이 뚜렷한 아이
부모에 의해 주입된 목표이건 본인이 세운 목표이건
'공부'해서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목표'가 뚜렷한 아이는
재미만 있는 것도 아니고 쉽지만도 않은
길고 긴 학교 공부에서
때로 찾아오는 슬럼프에도 스스로를 채찍질해가며 다잡아가곤 합니다.
5. 학교 공부 성취도에도 '관성의 법칙'이 있습니다.
'성적이 우수한 아이'라는 타이틀을 걸어본 아이들은
그 타이틀을 계속 지키려 합니다.
이러한 관성의 법칙은
때때로 아이들을 심한 압박감 속으로 밀어넣기도 하고
심약한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가기도 하지만
점령한 고지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인간 본성은
적어도 현재의 '성적'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합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는 속설처럼
(특히 '스포츠'처럼 눈에 보이는 치열한 경쟁을 하는 세계에서는)
1등도 해 본 사람이 계속 한다는 속설이 있기도 합니다.
6. 문제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할 줄 안다.
많이 아는 것과 많은 답을 맞추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시험'이라는 것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요령'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문제 출제자가 무엇을 의도하고 문제를 출제하였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데 보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시험 문제를 출제하고 평가하는 교사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 중에
'모든 문제는 결국 <독해> 문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학도 과학도
문제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문제풀이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출문제 수백개씩 풀어제끼는 아이는
결코 경쟁력이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같은 내용의 문제를
문제의 문장 중 어휘만 살짝 바꾸어도 당황하며
답을 문제로 바꾸어 출제하는
지극히 낮은 수준의 응용 문제도(사실 응용 문제라고 할 수도 없지요)
자신이 풀어제끼던 패턴의 문제들에 견주어
전혀 다른 문제라고 인식하는 안타까운 아이들입니다.
기출 문제 수백개씩 풀어제끼는 그 시간에
'책'을 읽으라고,
책이 싫으면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을 습관적으로 시청해보라고
제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하여
아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7. (어떤 형태로든) 부모가 관심을 기울이는 아이들입니다.
그 관심이 바람직하고 적합한가의 여부를 떠나서
부모가 '관심'을 기울이는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할 확률이 높은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많은 아이들을 겪다보면
게중엔 정말로 '학교 공부'와는 코드가 안 맞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제가 그 아이들의 부모라면
저는 아이의 학교 공부와 학교 성적에 그다지 연연해 하지 않겠습니다.
작년에 졸업한 제 제자 중 한 아이도
어려서부터 '축구'를 너무나 좋아했고
자타가 공인할만큼(학교 체육 선생님과 담임인 저까지 포함하여)
축구를 좋아하고 잘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문본주의'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그 아이의 어머니가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사이
아이는 '축구'로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마저 잡지 못한 채
내신 성적에 따라 원하지도 않는 공고를 가야 했고
고등학교에 가서도 학교는 다니는 둥 마는 둥
동네 주유소 주유원이나 핏자 배달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누구든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에너지가 폭발합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온 경험에서
공부하는 과정이, 살아가는 과정이
하고 싶은대로만 하고 살아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경우들이 수없이 많기도 해서
때로는 아이를 격려하며
때로는 머뭇거리는 아이를 부모로서 밀어주며 가야할 때도 있겠습니다만
아이가 공부를 즐기고,또 하고 싶어하는가?에 대한
냉정한 고찰이 있어야 하겠고
공부를 잘하는(혹은 공부를 잘 하고 싶어하는) 아이가 되어가는 과정은
단 며칠만에 혹은 한 달 두 달만에 이루어지는 속성단기코스가 아니라
엄마도 아이도 의식하기 힘든
긴~ 시간을 요하는 장기 프로젝트이므로
'호흡'을 길~게 가다듬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내 아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축복'일 따름이고
'우리 엄마 아빠는 그 어떤 경우에도 나를 사랑해주신다'는 절대적 믿음이
아이에게 자기존중감과 자신감을 심어준다고 믿으며
하루하루 그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경건하고도 소박한 마음으로 아이의 공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엄마가 자신없어 하는 내 아이,
세상의 그 누구가 자신있어할까요?(^_^)
아이를 너무 걱정스레 쳐다보지 마시고
(아이는 부모의 작은 눈빛과 몸짓 하나도 놓치지 않습니다)
하루에 단 한 문제씩이라도
현재의 아이의 수준에 맞는 문제를(학년에 구애되지 말고)
아이 '스스로' 해결해보게 하고
엄마는 옆에서 칭찬과 격려를 잊지않는
그런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보세요.
너무나 천천히 가는 것 같아서 답답하더라도
아이는 매일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아이들에게는 '방학'이라는 시간이 있습니다.
늦었다고, 틀렸다고 생각지 마시고
(아이는 엄마 생각을 '딱' 맞춥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신을 믿는 만큼만 자신을 믿습니다)
또래 아이들이나 주변 아이들과의 비교에 마음 상해 하시지 마시고
'온전히' 내 아이에게 '집중'하세요.
가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는 길이
(꼭 최고가 되지는 못한다해도)
공부의 길입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시는 대선배 교사중에
왕년에 연극계에 몸담고 계셨던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그러셨습니다.
"딴따라 세계야말로 온통 '끼'와 '천부적 재능'의 세계일 것 같지만
그 옛날의 재능과 끼를 자랑하던 놈들은 다 어디갔는지 사라지고
죽어라고 디립다 한 우물 파 온 놈이
그 세계에서 소위 중견이니 , 대부니 하는 자리에 남아 있더라'
아인슈타인까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학교 공부에는 그야말로 '디립다 열심히' 끝~까지 공부하는 아이를 당할 사람이 없는 법입니다.
'원리'라는 것도
처음엔 벽에 머리를 생으로 부딪치는 것 마냥
아득하기만 한 일일 수도 있지만
엄마의 전적인 신뢰와 자신감으로 격려받으며
느리지만 확실한 '자기걸음'으로 걸어온 아이는
언젠가는 '문리터짐'의 그 희열을 느끼게 될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잊지말아야 할 것은)
공부를 잘해도 못해도
엄마는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전폭적인 믿음이
아이가 무엇을 하건 자신감을 가지고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일 매일 제 자신에게 스스로 다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fullip님의 글입니다.
> 제 아이는 2학년입니다. 오늘, 어제 아이가 시혐본 수학경시대회 점수가 나왔는데 너무 낙담하여 이 글을 씁니다. 담임선생님께서 어제 본 시험지를 나눠주시곤 점수 확인시키시고 다시 걷어가셨다 합니다. 제 생각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어떤 문제들을 틀렸느냐 물어봤는데, 아이의 얘기를 듣고, 제 아이가 수학의 기본 원리를 모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m와 cm 가운데 어느 것이 편리하냐 하는(시험지를 안 봐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어떤 조건을 주고 물었겠지요) 문제에서 아이는 m가 큰 것을 잴 수 있으니 당연히 더 편리하다고 생각하여 자기는 m라는 답을 썼는데 틀렸다고 합니다. 아이가 잠이 들자 갑자기 김형란 씨 글이 생각났습니다. 언젠가 기말시험을 좀 다르게 냈더니 습관적으로 공부하던 아이들 성적이 저조하더라는 글... 그때 미처 읽지 못했던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에 대한 글도 읽었습니다. 아직도 김형란 씨의 글을 제대로 파악 못하고 드리는 우문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지만 정말 어떻게 하면 아이가 "원리를 알며 공부할 수 있을까요?" 쑥쑥에 도움될 만한 글 하나 올리지 못하고 엿보기만 하는 제가 이런 하소연만 올려 너무 죄송하지만, 혹 시간이 되신다면 답글 부탁드립니다.
정말이지 많이 반성하고 또 희망을 보게 되네요. 아직 늦은거 아니라는 생각으로 좀더 여유있게 아이들을 사랑하렵니다. 감사합니다.
fullip
2003-12-19 19:35
김형란 씨, 너무도 좋은 글 정말 감사드립니다. 글을 올려놓고는 아침이 되자 멋쩍어졌습니다. 마치 밤에 쓴 연애편지처럼... 저 자신을 사랑하듯, 나를 믿듯, 아이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또 혼자 허둥댄다면 그때 다시 김형란 씨의 글을 다시 읽어보렵니다. "하루하루 그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경건하고도 소박한 마음"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글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비탈
2003-12-19 16:06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녕 독수리 타법으로 이 길고 심오한 글을 작성하셨단 말입니까. 고맙게 읽었습니다. 명심할께요. 아자~~겨울방학~ 기다려라
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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