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일반] 아이의 놀이와 엄마의 놀이 2000-12-26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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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이에게 쓰기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아이와 ‘놀아준다’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첫째, 이 말이 아이를 놀이의 주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놀이에 종속시키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며

둘째는 놀이를 통해 엄마가 무엇인가를 학습시키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놀이에 관한 책들이며, 정보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유아들은 놀이를 통해서 배우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놀이라는 이름을 앞에 달고 있습니다.

‘놀이’로 배우는 수학, ‘놀이’로 배우는 영어, ‘놀이’로 배우는 과학 등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책들이나, 정보, 또는 교구들을 보면서, 이 중 얼마나 많은 활동들을 아이들이 놀이로 느끼는 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한 동안 저는 우리 아이에게 블럭놀이와 퍼즐놀이를 시켜보려고 애써 본 적이 있습니다.

보통 이런 놀이들이 아이들의 공간 감각과 창의성을 키워준다면서 이런 놀이를 많이 권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지금도 그렇지만, 블럭과 퍼즐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래의 아이들이 다 재미나게 가지고 논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는 그저 자동차 바퀴를 굴리며 노는 것에만 열중을 했습니다.

한 동안 의식적으로 아이에게 블록과 퍼즐을 들이밀기도 하고 함께 놀아보려고 했지만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때로는 다른 아이들은 다 하는 놀이를 우리 아이만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에 좀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 무슨 기준으로 블록놀이와 퍼즐놀이가 자동차 놀이보다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둘째, 왜 나는 내 아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무슨 근거로 하찮게 여기는가 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놀이가 아이의 입장이 아닌 엄마의 기준으로 행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쑥쑥의 이벤트 게시판에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들이 많이 올라옵니다.

아이와의 놀이를 위해 교구제작을 하는 엄마의 정성에 저 같은 게으른 엄마는 많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올라오는 놀이 중 어떤 것은 이미 우리 아이와 함께 해보려고 시도해 보았던 것들도 있었습니다.

아이가 더 어렸을 적 부직포로 모양을 만들어 붙여보기나 분류하기 등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이런 것들을 전혀 놀이로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제가 계획을 세우거나 책에 나와있는 방식을 참고로 해서 놀이를 하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아이를 방임 또는 방치 하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요즘 아이들을 무조건 놀게 하자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이런 의견에도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아이에게 교육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단, 진정한 교육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경험(놀이) 자체가 아니라, 경험을 해석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노는 능력을 통해 무엇을 해석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지식교육을 통해서, 해석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바로 올바른 교육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취지에서 보자면, 제가 생각하는 놀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놀이의 시작은 아이가 한다. 즉, 놀이는 아이 주도적이어야 한다.



둘째, 놀이의 마무리는 엄마와 함께 한다. 즉, 놀이를 통해 해석력을 키울 수 있도록 엄마가 도와준다.




제 경험상 제가 짜놓은 놀이 계획에 맞춰 아이와 놀이를 하는 경우 현재의 아이의 관심사로부터 놀이로 끌어가기가 힘들고 아이의 현재 기분을 고려하지 않게 되므로 실패하는 확률이 높았습니다.



따라서 저는 제 아이가 일을 저지르면(?)(즉 아이 입장에서는 놀이이지만, 많은 경우 제가 보기에는 골치 아픈 장난으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뒷마무리를 함께 하면서 아이와 이야기를 하는 방식을 씁니다.



첫째 에피소드

하루는 아이가 우유가 가득 든 1000ml 짜리 우유팩에서 컵에 우유를 따르는 놀이(?)를 하다가 마루에 우유를 다 쏟아 놓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큰 우유팩의 우유를 작은 컵에 담을 수가 없었겠죠.

이 때 저는 아이와 함께, 우유팩의 크기와 컵의 크기를 비교해 보고, 큰 우유팩 하나에 몇 컵의 우유가 담겨 있나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왜 우유를 조심스럽게 따라야 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둘째 에피소드

하루는 아이에게 시리얼을 주었더니, 시리얼에 물을 잔뜩 부어 놓았습니다.

이때 제가 아이에게 Does the cereal sink or float? 하고 물었더니, 아이는 눈이 휘둥그래 지면서 자신이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큰 소리로 Cereal float 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Yoonjae taste it? 하고 묻길래, 먹어보라고 했습니다.
아이에게 Which one is more delicious? Cereal with water or cereal with milk? 라고 했더니 아이가 Cereal with milk. 라고 대답합니다.

물에 불은 맛없는 시리얼을 먹은 아이는 다음부터는 이런 장난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셋째 에피소드

하루는 냉장고에서 버터를 꺼내 놓고, 손으로 만지면서 놀고 있었습니다.

이 때 제가 What happened to the butter? 하고 물으니, 아이가 it melts. 라고 대답하는 겁니다. (그 전에 버터를 빵에 놓고 전자레인지에 녹여봐서 알고 있더군요. )

그래서 제가 Why do you think the butter melts in your hands?

아이 묵묵 부답... 제가 Because your hands are warm. That’s why mommy keeps butter in the refrigerator.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아이가 녹여 놓은 버터를 어쩔 수가 없어 아이에게 케잌용 칼을 주고 열 조각으로 자르라고 한 후 비닐 봉지에 넣어 냉장고에 다시 넣었습니다.

그 이후로 제가 카레라이스나, 볶음밥을 해주려고 버터를 냉장고에서 꺼내놓으면, 어느 틈에 달려와 Mommy, put the butter in the refrigerator to keep it cold 라고 외치며, 요리를 다 끝내기도 전에 냉장고에 집어 넣습니다. 그리고, 버터를 가지고 장난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넷째 에피소드
하루는 아이가 제 책상에 있는 물건들을 던지며 놀고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제가 Look, all the things fell down to the floor. 하고 말했더니, 아이는 자신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마냥 신기해 합니다.

제가 Can you make the things float in the air? 라고 하니, 아이는 물건을 공중에 띄워보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될리가 없죠. 다 바닥으로 떨어지죠.

제가 그때 슬쩍 중력(Gravity)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The gravity is the force that pulls everything down to the ground. Gravity makes things come down. 이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만약 제가 중력에 관한 책을 들이대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먼저 시도했다면, 아이는 분명 지루해 했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이 먼저 시작한 놀이로부터 개념을 도출해 내주니, 아이는 마치 자신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낸 것처럼 여깁니다.

몇 가지 이야기만 적었지만, 제 아이가 워낙 개구장이이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에겐 놀이, 엄마에겐 귀찮은 장난을 합니다.

저는 이때마다 이 장난(놀이)이 장난(놀이)로 끝나지 않게 해주는 방법을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다보니, 아이가 자신이 하는 모든 놀이가 커다란 발견이라도 되는 듯이 생각해 전혀 야단맞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지만 제가 이야기를 해주면 스스로 깨달아 같은 장난을 반복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저는 아직까지는 이런 방식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요즘 쏟아지는 교구나 교재들이 모두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가르친다.’ 라는 것을 공통문구로 내세우는 것을 보고 과연 이 가운데, 얼마만큼이나 아이들이 자신에게 의미 있는 놀이로 받아들일지를 생각한다는 것이 그만 이렇게 장황한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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