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서 아이에게 신경을 못써요. 아이와 진지한 대화를 하고 싶은데….
부모님께는 속상한 말일 수 있지만, 자녀와의 진지한 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이제 아이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어볼 기회가 없었던 가정이라면, 훌쩍 커버린 자녀와 갑자기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부모나 아이 모두에게 어색하고 불편한 경험일수밖에 없습니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대화를 시도한다 해도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토로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평소에 부모와 대화하는데 익숙한 아이들도 예민한 사춘기에 접어들면 부모와의 대화를 슬슬 피하기 시작합니다. 하물며 애초부터 부모와 대화할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이라면 몇 배나 더 힘들 것입니다.
큰 마음을 먹고 아이에게”우리 얘기 좀 하자! 했더니 아이가 한마디도 안하고 땅만 쳐다보고 있더라. 딸이 “아빠, 나 지금 바빠!”라며 컴퓨터 앞에 앉아 눈길조차 주지 않더라. 시큰둥한 아이의 반응에 화가 치밀어 큰소리로 야단치고 나니 마음이 영 불편하더라며 후회하는 등 상담을 하며 이제껏 만난 많은 부모가 자녀와의 의미 있는 대화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맞벌이하는 가정뿐 아니라 부모 중 한쪽이 하루 종일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가정에서도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시간을 갖기란 수비지 않습니다. 잔소리는 쉬지 않고 하지만, 아이의 삶에 대해, 생각과 느낌에 대해 물어보고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부모는 많지 않습니다.
어쩌다 진지한 대화를 해봐야지 싶어서 아이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다가도 아이의 답이 성에 차지 않거나 부모로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내용이기라도 하면, 바로 아이의 다음 말을 듣는 것은 뒷전이고 방금 한말에 대한 반박과 야단을 시작하기 일쑤입니다.

“넌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넌 바로 그게 문제야!”,”그건 벌써 아빠가 옛날에도 얘기했잖아!”, “공부는 안하고 만날 그런 아이들하고만 돌아다니니 네가 그 모양 그 꼴이지!” 항상 대화중간에 돌변하는 일방통행 아빠 엄마의 잔소리가 반가운 아이는 이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대화하자는 부모의 제안에 솔깃해서 ‘오늘은 혹시.. ‘기대하며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은 아이도 한두 번 이런 ‘변’을 겪고 나면. 다시는 부모와 한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려 하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오랜 시간 상담일을 하며 배운 소중한 교훈이 있다면, 바로 ‘대화의 시작은 듣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대화하자고 해놓고 상대방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얘기만 늘어놓은 사람과는 절대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은 법입니다. 종종 그 상대가 불쌍해 보여서 얘기를 들어나 주자 할지언정 결코 자신의 마음을 열고 속내를 내보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결국에는 내 얘기가 아닌 자기 얘기를 늘어놓을 게 뻔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부모가 어떻게 하면 아이와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겠냐며 상담을 청합니다. 사실 저처럼 오랜 시간 아이들과 생활해온 사람에게도 처음 대화의 문을 열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대화의 주체로서 아이를 존중하고, 아이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만큼 깊은 대화를 가능하게 되는 방법은 또 없으리라는 점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마음만으로는 상대에게 그 의도를 전달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아이이기 때문에 내가 가진 관심을 겉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얘기를 주의 깊게 듣고 있다는 몸짓을 보여야 합니다. 이를테면 하던 일을 모아놓고 아이 앞에 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아이가 말하는 동안 아이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는 것입니다.
아이가 재미있는 얘기를 하면 소리 내어 웃거나 잔잔한 미소로 동조해주고, 속상한 얘기를 하면 “정말 힘들었겠구나”공감을 표현하고,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서는 “그래? 난 잘 몰랐는데, 그건 어떤 거야?”하고 질문하는 모습은 아이로 하여금 ‘아, 엄마 아빠가 내 얘기에 관심을 갖고 있구나’하는 믿음을 갖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신나서 자기 얘기를 한마디라도 더 꺼내놓으려고 할 것입니다. 특히 아이가 감정을 표현할 때 (너무 슬퍼요, 너무 힘들어요, 오늘 정말 신났어요 등등) 그 감정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보인다면, 아이는 자신의 더 깊은 내면세계를 부모와 함께 나누려고 할 것입니다.

또 한가지 부모인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녀와의 대화는 어떤 거창한 주제를 놓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토론하듯이 자녀의 생각과 부모의 생각을 교환하는 형식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요즘 아이가 즐겨 듣는 음악이 무엇인지, 제일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누구인지, 아이들끼리 모이면 무슨 게임을 하고 노는지 등등 아이가 쉽게 공감하고 부담 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가벼운 주제들부터 시작한다면, 오랫동안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한 가정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천천히 다가갈 수 있도록 윤활유 역할을 해줄 것입니다.
꼭 탁자 앞에 앉아 “우리 얘기 좀 하자” 할 것이 아니라, 침대에 누운 아이 옆에 털썩 누워 지극히 일상적인 목소리로 “00야! 요즘 네 친구들이 제일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 아빠(엄마)도 그 가수 노래 좀 다운 받아줄래?”, “네 친구 00 그때 남자친구 있었잖아. 아직도 걔네 사귀니? 그만뒀어? 왜, 무슨 일 있었대? 아, 그랬구나. 그런데 넌 학교에 좋아하는 남자애 없어? 라고 물으면 어떨까요.
어느 날 갑자기 달라진 부모의 모습에 아이들은 ‘우리 엄마(아빠)가 갑자기 왜 저래?”하며 어색함을 감추지 못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어색함은 아이의 마음을 열고 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색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모나 자녀 모두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그래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두 번 해보고 말았다가 다시 1년, 2년이 지난 뒤 같은 시도를 한다면 그나마 한두 번 했던 시도조차 기억 속에 묻히거나, 아이 마음속에 ‘또 저러다 말겠지’하는 불신을 심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저는 아이와 대화를 시작하고 끌어가는 주도권은 100% 부모가 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도권이란 아이에게 강제로 대화를 요구할 권리가 아닙니다. 청소년기의 민감한 나이에 자녀와 깊은 대화를 하려면, 아이들이 부모를 신뢰하고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할할 때 있습니다. 이때 그저 앉아서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에 신뢰를 쌓을 수 있는 행동들이 함께 따라야 합니다. 때로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꾹 삼키고 인내를 발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주도권은 이런 것입니다. 아이의 마음에 신뢰가 쌓일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도, 그렇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화를 참고 야단을 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인내하며 끝까지 아이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도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만이 밀고 당기는 조절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우리 부모는 모두 아이와 대화할 때 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쪽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녀와의 대화, 오늘 바로 가장 쉬운 일부터 해보시기 바랍니다. 쉬운 주제로, 쉬운 이야기부터 말입니다.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자녀 옆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원진

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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