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어린 시절이 대부분 그러하듯 집안에 어린이용 서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거의 유일한 어린이용 전집은 50권짜리 어린이용 위인전이었습니다.
누런 갱지에 깨알같은 글씨로 적혀있던 책이었지만, 저는 이 책을 마르고 닳도록 읽었습니다.
초등 고학년이 되어서는 친구네 집에 책을 빌리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들어가니 도서관이 제대로 구비되어 있어 학교 도서관도 많이 이용했고,
학교앞 서점은 제가 한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 책읽는 곳이었어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큰애를 낳자마자 독서교육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큰애는 저를 많이 닮아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더니
휴식시간에 책을 즐겨보는 아이로 자라주었습니다.
다만 남자아이다보니 주로 만화책을 많이 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특정 분야의 책만 한정해서 읽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이 아이의 일상에 독서가 일부가 되었으니 만족스럽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둘째(7세)입니다.
이 녀석이 16개월쯤 된 어느날,
저랑 형이랑 둘이 정답게 책을 읽고 있는 소파로 다가오더니
읽고있던 책을 뺏어 바닥에 던져버렸습니다!
이때부터 둘째에게 책이란 자기와 엄마 사이를 갈라놓는 흉물(?)이 되어버렸죠!
하지만 형을 따라하고 싶어하는 둘째의 본능 덕분에
이 녀석도 책에 다소 관심을 갖기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형처럼 뭔가 몰입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보니
책을 봐도 첫장부터 끝장까지 쭈욱~ 스토리를 따라가는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이 나오는 대목만 펼치고
끝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자기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더군요!
처음엔 이 녀석의 독서 스타일에 영 적응이 안되었습니다.
'왜 얘는 책만 펴면 엉뚱한 소리만 하는 것일까?'
게다가 첫째는 다소 긴 책을 읽어줘도 머리속에서 상상하며 이야기 흐름을 잘 따라오는데
둘째는 이야기가 조금만 길어져도 금새 집중력이 흐트러지며 재미없다고 하니 좀 답답했습니다.
둘째라서 너무 책을 안읽어줘서 그런가 싶어 둘째에게도 장편 동화(300쪽)를 한달에 걸쳐 읽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일일드라마를 보듯 흥미를 갖고 장편동화를 듣던 첫째와 달리 다소 지루하게 의무적으로 책을 듣더군요. 그래서 다시 짧은 그림책 읽어주기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둘째와 어떻게 책읽기를 해야할지 약간 가닥을 잡았습니다!
둘째는 평소 저랑 놀이하기를 좋아합니다.
배트맨 놀이, CCTV 놀이, 미장원 놀이, 세탁소 놀이, 영화관 놀이 등
다양한 주제로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 연극을 하듯 둘이 놉니다.
그리고 잠자리에서는 자신이 주인공이 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합니다.
이 녀석은 수동적으로 책 내용을 듣는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자기가 등장인물이 되어서 이야기속에 참여해서
그 이야기를 책 내용과 다르게 이끌어가는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일단 책을 한번 읽어준 다음,
두번째 읽을때는 녀석을 등장인물로 넣어주어
저랑 마치 연극을 하듯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를 다르게 만들어갑니다.
실제로 며칠전 Dragon gets by 란 책을 읽어줬는데,
녀석이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내가 드래곤한테 그문은 밖으로 나가는 문이 아니라 옷장문이야 하고 말하면?"
"그럼 드래곤이 고맙다고 말해."
"엄마, 내가 드래곤한테 그 마루는 원래 흙이라서 더러운거야 하고 말하면?"
"그럼 드래곤이 그렇구나 하고 더이상 빗질을 안해."
The big hungry bear 를 읽어줄때
bear 대신 녀석의 <이름+monster> 라고 읽어주니
아주 좋아서 죽으려 들더군요.
그러면서 자신이 적극적으로 이야기 안에 들어가서
책 내용과 다른 반응을 보이면서 다른 결말로 이끌어가는 겁니다!
우리는 대개 아이가 책에 관심이 없으면
아이가 좋아하는 책으로 접근하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더라구요.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의 책을 보여주면 대개 흥미를 갖기는 하지만,
그 밖의 주제를 다룬 책들은 여전히 낯설어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이가 어떤 식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고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지 살펴본후
그 고리를 책읽기와 연결시킬때 비로소 아이한테 책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다가오는것 같습니다.
둘째는 사실 책보다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더 관심이 많고,
사람들 사이의 감정의 교류나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것도 좋아합니다.
버튼이 많은 기계나 복잡한 파이프 구조물, 그리고 악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러다보니 책은 지루하고 재미없고 따분한것이 되어버렸어요.
하지만 자기가 적극적으로 이야기속에 참여해서 이야기를 바꾸어나가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아이는 책읽기가 놀이의 연장이요, 유의미한 활동이 되었던 것이죠!
아이들이 커갈수록 엄마의 노력보다는 타고난 성향이 더 중요하다는걸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엄마의 역할은 아이가 부족해 보이는 자질을 억지로 보충해줄것이 아니라,
아이가 이미 태어나며 가지고 온 좋은 자질들을 발굴해서 꽃피울수 있도록 도와주는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큰애는 태권도를 하고 오면 얼굴이 밝아지고, 작은애는 피아노를 치고 오면 얼굴이 밝아져요.
이 아이들의 밝은 얼굴을 잘 기억하며,
자기안에 있는 에너지의 불씨를 잘 살려주도록 지켜주는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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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맘님 잘 지내시지요?^^*
CCTV놀이 어떻게 하는것인지 궁금해지네요~
칼럼글이 게시판에 자동으로 올라가지던데...이번에는 게시판에 안보여서 그냥 못읽고 넘어갈 뻔 했습니다.
아이의 안에 있는 불씨를 살려주고 지켜주는 엄마가 저도 되고 싶어요~^^*
두 왕자님들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반가워요~
추운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