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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
경제용어 중에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하게 되면 나머지 하나를 포기하게 되는데, 이때 선택한 것의 가치는 포기한 것의 가치와 같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사과와 배 둘 중 사과를 선택했을 경우 사과의 가치는 바로 포기한 배의 가치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골치 아픈 화두를 꺼냈습니다만, 이와 같은 연속적인 선택이 바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결정적 순간의 많은 부분이 우연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만, 그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일단 우리는 나름대로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여러 선택 상황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얻은 경우 또 한 가지를 포기하게 됩니다.
즉, 기회비용을 치루게 됩니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키우는 재미에 바삐 하루를 보내다가도, 가끔씩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 세상이 낯설기도 합니다.
전업주부가 된 지도 어언 3년 반이 되어가는 오늘 내가 한 선택이 최선이었냐를 따지기 이전에
최선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많은 것들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영어의 다른 측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외국어 학습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내 분야만을 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쓰는 많은 단어나 용어들이 국어 시간에만 배운 것이 아니듯이 외국인들도 모국어를 모국어 시간에만 배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어를 영어 시간에만 배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속해있는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용어들은 많이 낯설기 마련입니다.
제가 만일 아이를 키우지 않고, 직장생활을 계속했다면 주식과 채권 거래에 관련된 용어들만을 사용하고 알았을 것입니다.
영어라는 것이 그저 주식과 채권 가격의 변화를 알고 분석하기 위한 도구밖에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영어권 국가의 사람들이 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들
그 나라에서 나고 자랐다면 꼭 알아야 하는 단어나 표현들을 하나씩 알게 되었습니다.
기저귀가 영어로 diaper라는 것
응가가 영어로 poop 이라는 것
Mother Goose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CNN의 경제 뉴스보다 Sesame Street에서 엘모가 하는 말 들이 더 잘 들리지만
아이의 영어 그림책, 비디오, CD-Rom을 접할 때마다 사실 아이보다 더 감동 받고 즐기는 쪽은 바로 접니다.
둘째, 인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공동육아협동조합 활동을 하고 계신 제 고등학교시절 은사께서 당신은 아이들 속에 있는 인간을 본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가끔 우리는 아이가 부모를 닮았다고 생각하고,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닮기 이전에 인간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그저 내 몸을 빌어 태어났을 뿐이라는 생각을 매일 하면서
내 아이의 자유로운 본성과 인간성을 찾으려 노력하고
그 내면으로부터 자유로운 의지를 끌어 내주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임을 깨달으면서
모든 생명체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셋째, 내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결국은 내 아이를 바로 보기 위한 노력이었지만 모든 것의 출발은 아이로 부터가 아닌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어떤 훌륭한 교육학자의 이론도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엄마와 아이라는 두 변수 가운데,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겨우 33개월을 지켜본 내 아이에 대해서도, 이제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 자신에 대해서도 확실히 아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남인 내 아이를 아는 것 보다는 나 자신을 아는 것이 더 쉬운 일이라는 생각으로
저는 모든 것의 출발점을 나로부터 잡습니다.
요즘 엄마들이 영어교육을 비롯한 아이의 교육 문제를 논하는 걸 볼 때 정작 가장 중요한 아이가 빠져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저는 모든 출발이 아이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자신을 알고 성숙시키는 것으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넷째, 다양함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 온갖 과외를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렇게 제한된 환경에서 주입된 교육만을 받다 보니, 사실 다양함에 대한 포용을 배우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시간의 낭비를 용납하지 않는 교육적 환경에서 항상 주어진 일만 하고, 주어진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보고 깨어 있으려는 노력을 함으로써
특히, 요즘 들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안교육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한 가지 길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함이 함께 존재하며
꼭 이 길이 아니더라도 선택할 수 있는 더 많은 대안(alternative)들을
꿈꾸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은 아이를 키우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아이를 조금 물러나서 볼 수 있게 해주고 지나친 지식 교육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내 중심을 잡도록 도와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나이는 내 아이 나이와 같다고 말합니다.
현재는 33개월, 조금 있으면 34개월이 되겠군요.
아이와 함께 커가는 나를 보면서, 내 아이도 엄마와 함께 자라기를 바래봅니다.
아니, 엄마를 넘어서 스스로 더 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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