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별님 질문의 요지인
영어책들을 '어떻게' 읽히고 있느냐에 대한 제 경험담은
'그저 읽고, 읽고 또 읽고'라고 밖에는 더 드릴 말씀이 없답니다.(^_^)
제가 소개한 책들이
제 나름대로는 초등 고학년 아이들이 읽을만한 책으로
분류했다 하더라도
그동안 질적, 양적인 독서의 내공을 쌓아왔다는 전제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제 아이들이 언제부터 어떻게 한글을 읽기 시작했는지도 잘 모르겠거니와
제 큰 아이가 언제, 어떻게 영어를 읽기 시작했는지는 더더욱 미스테리랍니다.
그래서 저도 설명하기 어렵지만
'매일 책을 읽다보니 그냥 그렇게 되더라'하며
책임질 수 없는(^_^) 말 밖에는 할 말이 없기도 합니다.
양적인 노출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외에는
외국어 습득 과정과 우리말 습득 과정이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비영어권에서 영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영어권에서 살면서 공부하는 것과는 다를 수 밖에 없겠지요.
영어 실력이 많이 부족한 엄마밑에서
양적인 노출도 턱없이 부족한 형편에서
그냥 매일 매일 책 읽어주는 것만으로
제법 어려운 단어들과 긴 문장들로 씌여진 책들을 읽고 이해하는 딸이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아주 가끔씩은
아이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건가 싶어서
아이에게 해석을 물어보면
직역이나 의역의 차원을 넘어 아예 '번역'을 해놓곤 해서
속으로 많이 놀라곤 합니다.
그래서 한국사람이 한국에 살면서 영어를 공부할 때는
'우리말'로 쌓인 정서와 사고가 탄탄해야
영어도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수히 많은 우리 말 책들을 읽다보니
저절로 우리 말을 읽고 쓸 줄 알게 되는 것을 지켜본 저로서는
영어도 그러려니 하는 믿음밖에는 달리 '방법'이라고 쓴 게 없답니다.
제가 아이에게 영어책들을 접해주고 있는 모양새를
크게 세가지 정도로 요약해본다면 대강 이렇습니다.
사실 아무 생각없이 하고 있는데 급조해서 요약정리하려니
어째 낯이 좀 간지럽습니다.(^_^;;)
1. 아이가 '흥미'있어 하는 책들로 '물량공세'를 합니다..
닥치는대로 그냥 쏟아 붓는 것이지요.
아이가 흥미있어 하고 재미있어 할만한 책들을
'체계'랄 것도 없이 대강 '단계'가 맞을 것 같은 것들로 골라
(체계를 따질만한 실력이 못되거든요 ^_^;;)
제가 먼저 읽고 내용 파악을 한 후
아이에게 읽어주기도 하고 함께 소리내어 읽기도 했습니다.
제 큰 아이는 늘 책을 끼고 사는 편인데
아무래도 이해가 더 빠르고 더 깊은 지식과 느낌을 얻을 수 있는
'우리말'책을 당연히 더 많이 읽고 있고
도무지 제가 독서 교육이라는 것을 할 틈을 주지 않기 때문에
기회를 잘 노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영어책을 접하게 해줘야 한답니다.
그러기에 큰 아이가 읽을 영어책으로 고르게 되는 책들은
내용이 아주 흥미진진하거나
이미 우리말 책으로 읽어서 내용 파악을 하고 있는 책이거나
아이가 좋아하는 지식전달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 되고 있습니다.
2. 그냥 읽습니다..
읽는 도중에 단어의 뜻을 물어보거나
해석을 해보라거나 하지 않습니다.
한글 습득 과정과 영어 습득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믿음때문입니다.
영어도 영어 교육도 잘 모르면서
'내 멋대로, 되는대로 영어 접해주기'방식인지라
선무당 사람잡는 격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_^;;)
제 두 딸 모두
아이가 아기 때 우리말 책을 읽어주면서
'한글떼기'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아이와 함께 그림과 내용을 즐겼지요.
수십권, 수백권의 책들을 읽는 동안
아이가 스스로 소리와 문자의 대응을 눈치채고 또, 그 규칙을 익혔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에게 우리말 책을 읽어주면서
단어의 뜻을 물어보거나 해석을 해보라고 한다면
아이가 별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겠지요?(^_^)
영어도 그럴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등장 인물들마다 다른 목소리로 변조하면서
이야기 내용과 흐름에 따라 여러가지 목소리 톤으로
온갖 쇼맨쉽을 발휘하여
행동이 필요한 부분은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우리 말 책 읽어주듯이
매일 매일 '그저'
읽고, 읽고, 또 읽어주었습니다.
아이가 어릴수록 '모르는 단어'들에 초연한 것 같았습니다.(^_^)
정작 답답한 것은 저였지요.(ㅠ.ㅠ)
아이가 커가면서 어휘나 문장의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모르는 단어나 의미가 닿지않는 단어들이 늘어가지만
앞 뒤 문맥으로 미루어 내용 파악이 되는 경우엔
몰랐던 어휘의 뜻이나 용례도 문맥으로 미루어 짐작케 되고
설사 정확한 뜻을 모르더라도 전체적인 의미가 파악된 경우에는
아이도 저도 단어 하나 하나에 연연해하지 않았습니다.
일단은 아이가 내용을 즐겨야한다고 생각해서였지요.
정 답답하면 나중에 아이가 사전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3. 우리말로 개념을 잡고 있는 내용부터 공략합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꼭 우리 말로 먼저 내용을 접했거나 우리말로 먼저 개념이 잡혀있는 것들을
영어로 접해줄 필요는 없었던 것 같고
영어와 우리말로 동시에 혹은 영어로 먼저
'내용'과 '개념'을 접하곤 했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우리말로 자리잡은 정서와 사고의 깊이와 넓이가
영어로 쌓여진 그것들과 점점 그 차이가 심하게 벌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 자신이 이중 언어 환경을 조성해줄만한 실력이 전혀 못되는 탓에
우리말과 영어의 노출과 활용의 양적, 질적 차이가 점점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아이에게 이미 익숙한 것들을 '영어'로 들이미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딸에게 접해주고자 고르게 되는 영어책들은
아이가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는 명작동화라던가
아이가 이미 그 개념을 인지하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휘가 다소 어렵더라도 내용 자체가 아이의 우리말 인지 수준에
어느정도 부합하는 내용의 책들에 더 높은 점수를 주며 고르는 편입니다.
내용이 시시하다고 느껴지면 아이가 흥미를 잃는 것 같아서 그리하고 있는데
언어발달학자나 영어교육 전문가들은 뭐라고 말씀들 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_^;;)
중요한 것은
'매일 매일' 끊임없이 읽는다는 것이지요.
'독서백편의자현', 이것만을 굳게 믿으면서 말이지요.(^_^)
은별님의 글입니다.
> 밑에 초등 고학년을 위해 아주 좋은 책들을 자상하게 추천해 주시니
>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 그런데 이 책들을 초등생 아이가 어떻게 읽어 나가는지, 모르는 단어는 일일이 사전찾아가며 읽는지... 아니면 어떤 식으로 읽히고 계신지 경험담도 좀 소개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 chapter book들을 초등생이 읽기에는 만만치 않은 단어들이 포함되어 있고 중학생 이상이 읽기에는 인지적 수준에 맞지 않는 것이 더러 있는데.....
> 읽히고 계신 분들은 어느 정도 수준에서 어떻게 읽히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
> 다른 분들의 답변도 환영하고 미리 감사드립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방향과 많이 비슷하세요(^^).그래서 너무 기쁩니다.형란님만큼 꾸준히 잘할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형란님과 비슷한 교육방향으로 가고 있다는게 왠지 반은 성공했다라는 생각입니다.^^행복하세요.
은별
2004-06-11 11:48
찬사를 보냅니다. 너무나 잘 하고 계시네요. 제가 원하던 경험담을 들은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게 뭔지 아는 엄마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행복합니다. 언어는 사고의 비빌 언덕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님의 말씀대로 우리말로 쌓이는 지식과 정서는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화이팅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
김형란
2004-06-11 10:59
공룡님(^_^), 제가 영어를 아주 못하기에 우리말 보다 영어를 더 심도깊게 접해줄 수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아주 안정적으로(?) 우리말에 무게 중심이 쏠릴 수 밖에 없었지만요, 혹시 제 영어 실력이 뒷받침되었었다면 또 어떻게 욕심을 부려봤을지는 모르는 일이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input 이 있어야 output 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국어 교육에 실패하는 엄마는 없다는 말처럼 우리말 교육은 저절로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말 input 이라는 것이 일상에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지 input 없는 output은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요즘엔 너무나도 영어를 중요시하다보니 우리말로 쌓이는 지식과 정서는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영어에의 노출을 훨씬 많이 시켜주시는 경우도 많은데 저 개인적으로는 다소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개념'자체야 우리말로 습득하건 영어로 습득하건 상관없지만 '말은 정신이다'라고 말할 때의 그 '말'이라는 것의 엄청난 무게를 곱씹어 본다면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하는데는 아주 많은 생각이 뒤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공룡
2004-06-11 00:07
김형란님 글을 읽으니 다시 한 번 머리를 치게 되네요. 이렇게 중요한 걸 전 왜 이제야 깨달았는지...전 우리말은 자라며 저절로 누구나 다 잘하는 줄 알았지 뭡니까. 지금 초1 인 첫째아이는 우리말과 영어의 수준차이가 엄청납니다. 영어는 외국 저학년정도 수준인데 국어는 유아 수준입니다. 과학을 좋아해서 어려운 전문용어가 많이 나오는 내용을 접하면 제가 슬쩍 물어 봅니다. 그러면 아들 왈-몰라..우리말론 몰라. 영어로 만 알아...흑흑흑..지금부터 라도 천천히 해야지 생각합니다. 워낙 한글을 싫어해서 앞으로 난관이 예상되지만 어쩝니까. 여러분 우리말 책도 많이 많이 읽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