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자질쟁이라는 낙인, 보복이 두려우니까!
바로 옆에서 왕따를 당하는 피해 학생을 바라보며 가해 학생들과 한편이 되어 같이 웃고 즐기는 아이들을 ‘능동적인 관객형’이라고 한다면, 어떻게든 피해학생을 도와주고 싶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은 ‘수동적인 관객 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짐작하건대 피해학생만큼이나 여린 마음을 가진 아이들은,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바라보면서 가해 학생들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마음속에 있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하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과 무력감으로 분명 많이 힘들거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에게 말씀 드리고 싶은데 혹시라도 그 사실이 알려져서 가해 학생들에게 보복을 당하기라도 하면 어쩌나, 아이들에게 고자질 쟁이라는 낙인이라도 찍혀서 엉뚱한 피해를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용기 있게 말을 꺼내지 못한 이 아이들은 손가락질하며 탓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 위치한, 아이들이 사회성 함양 및 왕따 문제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비영리단체인 아동위원회의조사에 따르면 미국 학생들도 가해 학생들이 보복이 두려워서, 다른 아이들에게 고자질쟁이로 손가락질당할까봐, 어른들에게 말해도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할 것 같아서 등의 이유로 본인이 직접 겪고 있거나 주위의 친구가 당하는 왕따 피해에 대해 부모나 교사에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 미국이든 한국이든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이 자신의 일을 어른에게 자유롭게 털어놓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듯합니다.
우선 친구의 안전을 위해, 피해를 당하는 친구 대신 정의로운 마음으로 도움을 청한 아이들이 오히려 가해 학생들의 보복을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것은 결코 아이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안전과 신변을 보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우리 어른들의 탓이 큽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아이들이 마음 놓고 친구가 당하고 있는 부당한 피해를 전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있으니 분명 머지않아 아이들이 불안해하지 않고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를 도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이 주어진다고 해도 아이들은 마음속에서 가해 학생들을 고자질하고 있다는 죄책감까지는 떨쳐버리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많은 아이가 자라면서 친구나 형제의 잘못을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말씀 드리는 것은 형제를 곤란에 빠뜨리는 나쁜 의도의 ‘고자질’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우리의 그릇된 가르침을 받아온 아이들에게 처음부터 다시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이 ‘고자질’과 ‘도움을 청하는 것’의 차이를 확실히 구분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고자질은 누군가를 곤경에 빠뜨리거나 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그 사람의 잘못을 얘기하는 행위이고, 도움을 청하는 것은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으로 다른 누군가가 상처와 피해를 입었을 때 억울한 약자를 도울 목적으로 사실을 밝히는 행위로서, 그 목적 면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아이들이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전이라도, 고통을 당하고 있는 주변의 친구를 위해 용기를 낸다면, 적어도 고자질쟁이라는 조롱을 받을 까봐 걱정하는 일 없이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우선 주위의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그 목적은 가해 학생을 벌주기 위함이 아니라 피해자 친구를 도와주기 위함이라고, 그 목적을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보면 주저 없이 바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라고 확실히 인식시켜주어야 합니다. 피해를 입고 친구를 구해주는 역할은 너의 몫이고, 그 다음에 가해 학생을 벌하거나 피해 학생에게 필요한 또 다른 도움을 주는 것은 어른들이 결정할 사안이라는 점 또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설령 가해 학생이 벌을 받는 다고 해도 그 벌은 도움을 청한 아이들이 주는 게 아니라, 사회와 학교가 만들어 놓은 규정에 따라 어른들이 그 학생과 많은 학생을 위해 심사 숙고한 뒤 결정한 일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받아들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미국 학교에서 근무할 때,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 생기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경로는 대부분 피해 학생을 통해서라 아니라, 그 주위의 같은 반 친구들을 통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겪고 있는 피해가 아니라며 그냥 눈감고 지나쳐버릴 수도 있겠지만, 많은 학생 중 단 한 사람이 내는 용기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친구의 생명까지도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모두가 꼭 기억해주기를 바랍니다.
이원진

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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