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늘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 중의 하나가 아이가 원하지 않는 것을 가르치느냐 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특히, 아이의 연령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4살짜리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쳐봤더니 싫어한다면 별로 고민하지 않고 그만둘 것입니다. 하지만, 8살짜리 아이가 한글 배우는 것을 싫어한다고 해서 가르치는 것을 그만둘 부모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아마 설득을 하든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든지 할 것입니다. 그래도 이 경우는 판단을 내리기가 쉬운 편입니다.
조금 판단내리기 어려운 예를 들어볼까요?
8살 아이에게 수영을 가르쳤는데 아이가 중간에 수영장 가기 싫다고 했다고 칩시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할까요? 아이들은 원래 물놀이를 좋아합니다만, 선생님에게서 수영을 강습 받는 것은 근본이 다르죠. 가르치는 대로 폼을 유지하며 반복적인 훈련을 해야 하므로 그냥 노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수영을 배우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싶어할 것입니다. 우리 어른도 뭐 배우다가 중간에 그만 두는 경우 많잖아요. 똑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 8살이면 아직 어리니까 나중에 기회가 더 있을 거다 하면서 아이의 뜻에 따라 그만두게 할 수도 있고, 뭘 배우든 중간에 이런 고비는 한 번쯤 오는 것이니 극복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저희가 이번에 이런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서움 많은 승호(8살, 초등 1학년)에게 수영을 배우게 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승호의 특성(물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을 갖고 있거든요)을 알고 있는지라 돈을 더 주고 개인강습을 시켰습니다. 참, 수영을 가르치게 된 이유는 수영은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에서였습니다. 저와 승호엄마가 둘 다 수영을 제대로 못 하는데 그래서 였나요, 수영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디 물에 빠져도 헤엄쳐 나올 수는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작용했습니다. 체력 증진을 위해서라는 목적도 추가되었구요.
초반, 승호가 수영장에서 많이 울었다고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승호처럼 물에 대한 무서움이 많은 아이는 처음 보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개인강습의 장점을 살려 선생님은 처음에는 수영을 가르치기보다 승호랑 축구도 하고 물놀이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정도로 융통성을 발휘했습니다. 그 결과 승호는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었고(뭘 배울 때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는 것 만큼 중요한 요소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츰차츰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한 아이들에 비하면 진도가 아주 느렸습니다. 승호엄마는 개인강습이라 강습비도 비싼데 승호가 너무 진도가 느려 속 탄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_^)
그러는 와중에도 진도는 나아가 하루는 얼굴의 반을 물에 담그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눈까지 물에 담갔고, 또 그 다음에는 머리까지 물에 담가 완전 잠수를 하게 되고.. 뭐 그런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진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 발차기 연습을 한다, 숨쉬기 연습을 한다, 손 젓는 연습을 한다는 소식이 승호엄마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동시에 같은 반 친구 2명이 같이 강습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두요.
그러더니 얼마 전 밥 먹다가 수영 이야기가 나왔는데, 승호가 수영 선생님이 너무 무서워서 수영하러 가기 싫다고 하며 우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승호엄마는 ‘드디어 때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단계 점프하기 위해 선생님이 다소 엄격하게 승호를 지도하기 시작했다는 판단이 든 것입니다.
승호엄마와 저는 승호를 설득했습니다. 그냥 ‘오냐’ 하고 그만두게 하면 앞으로 뭘 배워도 그런 고비를 넘기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8살이면 고비를 넘기는 법을 배울 때가 되었다는 판단이 밑에 깔려 있었던 거죠.
- 무엇을 배워도 그런 어려움은 있다. 이겨내야 한다.
- 선생님이 널 싫어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지금은 엄격하게 해야 네가 수영을 잘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선생님이 일부러 그러는 거다. 선생님이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지?
- 세상의 모든 선생님이 다 그렇다(승호는 지금까지 무서운 선생님을 별로 만난 적이 없습니다).
- 아빠는 그런 어려움을 극복 못 했기 때문에 지금도 수영을 잘 못한다(이건 좀 웃기지요?).
- 조금 더 참아보고 그래도 도저히 못 하겠으면 그 때 그만 두자.
뭐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승호는 할머니들도 수영 배우는데 자기도 커서 배우면 되지 않냐고 그러더이다.
이에 대해 승호엄마가 대답했습니다.
- 승호가 두 달 배우면 할 수 있는 것을 할머니들은 2년은 배워야 할 수 있을 거다(할머니들께 죄송합니다).
- 힘 있고 젊을 때 수영을 마음껏 하는 것이 나이 들어 힘 없을 때 하는 것 보다 더 좋다.
하는 식으로 말이죠. 승호는 일단 끄덕끄덕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그랬죠. 선생님이 무섭게 하시면 나 잘 하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다 하고 생각하라고 말이죠.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습니다.
일주일 전에 승호엄마가 전화를 했습니다.
승호가 부양판도 달지 않은 맨몸으로 자유영을 해서 25m를 완영했다는 것입니다. 같이 수영 배우던 승호 친구 엄마가 눈물을 보일 정도로 감격적인 장면이었다고 하네요.
저도 ‘그럴 수가’ 하는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습니다.
승호는 졸지에 우리 집에서 수영을 제일 잘 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수영 못 하는 아빠 엄마 덕에 말이죠. 저도 어찌어찌 하다보면 25m를 가는데, 단 물위에 나와 있는 얼굴에 물이 많이 튀거나 하면 그대로 꼬르륵입니다. 흐흐)
승호는 축하선물로 요즘 인기있는 딱지를 선물받고 의기양양해졌습니다. 여기저기서 축하 해주는 분위기 속에 승호는 이번 일로 중간에 포기했더라면 결코 맛볼 수 없었을 성취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집에서 수영하는 자세를 취해보라고 했더니 절도 있는 자세가 나옵니다. 팔 젓고 목 돌려 숨쉬는 동작이 훈련된 대로 나옵니다. 바로 교육 받은 결과죠. 그래서, 교육과 훈련이라는 것이 무서운가 봅니다. 물을 그토록 무서워하던 아이가 맨몸으로 25m나 헤엄치다니 말이죠.
그제는 시간이 되어 저녁 때 승호가 강습 받고 있는 수영장으로 구경을 갔습니다.
조금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강습은 이미 끝나있었고 승호는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고 있더군요. 제가 한 번 수영을 해보라고 승호에게 부탁했죠. 그러자, 승호는 지쳤는지 딱 반만 가겠다고 하고는 출발선으로 뽀르르 뛰어 갑니다.
그리고는 물에 뛰어 들더니 힘차게, 절도 있는 동작으로 헤엄을 칩니다.
바라보는 제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아직도 갈 길은 멉니다. 요즘은 배영을 같이 배우기 시작한 모양인데, 이거 뒤로 눕는 것이 또 장난 아니잖아요. 물에 대한 겁이 많은 사람들한테는 특히 더.. 게다가 물에 젖은 귀를 손으로 후볐는지 귀 입구에 염증이 있다고 해서 이번 주는 수영을 쉬어야 할 상황입니다. 중이염이 아닌 것이 다행이지요.
그러나, 이미 한 번의 고비를 넘겼기에 다음 고비는 더 쉽게 넘기리라 생각합니다.
승호 친구들을 보면, 부모의 생각에 따라 위에서 언급했던 문제를 푸는 방식이 다 다르더군요. 어떤 아이 부모는 아이가 싫다고 하면 그 즉시 그만 두게 합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때 까지 그렇게 할 생각인 것 같더라구요. 그렇게 결정한 배경으로는 아이가 아직 어리니 그런 것으로 스트레스 줄 필요 없다 라는 생각이 있겠지요. 일리 있는 생각입니다. 저와 승호엄마 역시 수영의 경우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다른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모든 것에 대해 그런 식으로 대응한다면 아이에게 좋지 않은 습관을 남길 수도 있을 거라는 우려를 해봅니다.
판단이 잘 안 설 때는 먼저 아이들을 길러 본 부모의 조언을 듣는 것도 참 도움이 됩니다. 이번 수영의 경우는 저희 누나의 조언을 들었는데 수영은 7,8살 때 배우는 것이 적기이며, 이 때 고비를 넘기지 못 하고 중간에 그만 둔 아이들은 나중에 결국 배우지 못 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살면서 기본이 되는 것들, 배워두면 많은 도움이 되는 것들은 그래도 아이들이 부모 말을 잘 들을 때인 저학년 때 가르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들이 머리가 커지면 가르치려 해도 거부해버리면 그만이거든요.
하여간 이번 일을 통해 아이의 나이와 배울 대상의 중요성을 이리저리 저울질 하며 판단을 내려야 하는 부모 노릇이 절대 쉽지 않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그런일이...ㅎㅎ 아영이도 물을 무서워해서 집에 수영장 있어도 첨엔 아이드르이 놀러오면 자긴 표 받는 아줌마 한다고..그러고 서 있더라구요..어찌나 속상한지..^^ 제가 수영을 하고,수상 스키를 타는거랑 남편이 수영 조교였던거..그런거랑 아영이랑은 전혀 상관이 없어..그도 속상했는데..지금은 아이마다 다 다르다..그러면서 웃습니다..우는것 보다 나으니깐요..ㅠㅠ 오는 9월부터 수영을 배우러 가는데...아영이도 잘 하겠죠..승호 처럼요~^*^
승호아빠
2004-08-27 13:55
지금 부모들 보면 수영 제대로 못 배운 것을 후회하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이 고생(?)하고 있나봅니다. 허허... 승호 수영이야기 읽어 주시고 코멘트 남기시며 관심을 표명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승호가 네 가지 영법을 다 익힐 때 까지 수영을 배울지 모르겠으나 좀 더 발전된 모습이 보이면 또 소식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채리사랑
2004-08-26 09:25
저두 어릴때 학교들어가기전에 유원지가서 물에 빠져서 아버지가 건지셨는데 숨도 쉬지 않는 애를 살려내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학교 다닐때까지 항상 물이 무서웠습니다. 이 무서움을 극복하려고 대학 3학년때 수영을 배우기 시작해서 한 4개월가량 짧은 기간 동안 배웠더랬습니다. 그래서 승호심정이 더 잘 이해가 되는군요. 수영은 자기 방어를 배워야할 것중 하나일테니까요. 그 어려움을 극복하게 도와주신 부모님이 너무 대단하신대요.
장미정원
2004-08-26 07:31
항상 쓰신 글 읽으면서 느끼지만 정말 좋은 부모님이세요..^^
민준성준맘
2004-08-25 17:50
우리 아이도 초1인데요, 작년부터 태권도를 해서 1년이 조금 넘었지요. 워낙 소심하기도 하고 집에서 책 보는것만 좋아해서, 거의 제가 강제로 밀어붙였지요.같이 시작했던 애보다 두달쯤 늦었지만 이번에 드디어 공인심사에서 품띠를 땄습니다. 근데 이제 태권도를 쉬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습니다. 처음 시작할떄 약속했거든요. 품띠 따고 나면 너에게 결정권을 주마 하고요.. 그동안도 몇번 그만둘 고비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만 자유를 주기로 했습니다. 울 아들도 수영을 시키고 싶지만 비염과 중이염떔에 좀 더 자란 후에 시켜볼까 합니다. 3학년쯤,, 그떄도 시작하기전에 최소한의 기간이나 진도는 약속하려고 합니다. 승호일이 울 아들 경우랑 비슷해서 공감이 많아 가네요..
김형란
2004-08-25 15:45
승호가 큰 '공부'를 했네요. 승호도 승호 아빠와 엄마도 모두 장하십니다. 아이의 뜻을 최대한 존중해주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때로는 적절한 'push'도 매우 중요함을 깨닫곤 합니다. 한가지 일에서 고비를 넘겨본 아이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본 아이는 다른 일에서도 적절하게 자신을 조절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물에 빠져 된통 혼난 기억때문에 한달넘게 수영을 배워도 물에 뜨지 못하고 결국 수영을 못배운 저로서는 승호의 수영 공부가 인생 역전 드라마 만큼이나 장하게 느껴집니다. 승호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승호아빠님도 큰 공부하셨지요? (^_^)
juliet
2004-08-25 11:42
너무 부럽네요. 우리 애는 7살인데, 물을 너무 무서워해서 머리를 캡없이 감은지 이제 한달밖에 되지 않았어요.그러면서 혼자서 대야에 물 받아놓고 수경끼고 얼굴 넣는 연습을 하고 합니다.그래도 얼굴은 거의 넣지 않아요. 계속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만... 하고는 싶고 무섭기도 한 딸아이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네요. 하여튼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집토끼
2004-08-25 11:38
승호는 여러가지 면에서 제 아들 자랑이와 비슷하네요. 학교 끝나고 오면서 집에가서 뭘 할지 생각이 안 난다고 안달을 하는 것도..수영도 네 살때인가 아파트 내에 있는 풀장에 몸을 담그는 것도 무서워 하는 것을 두고 보기만 하다가 남편이 입술이 파래서 덜덜 떠는 아이를 안고 물속에 푹 들어가 버렸습니다. 저는 아이가 잘못 될까봐 간이 콩알만해졌는데, 그 일 이후로 아이가 물을 좋아하기 시작을 하더니, 자신감이 생겨서 물 속에서 나오질 않으려고 하더군요. 정식으로 수영을 가르치진 않았지만, 물속에서 놀다가 수영을 스스로 시작했고(개헤엄), 남편이 자유형..얼마 전에는 버터플라이까지 가르쳐서, 아이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기만 하는 것도 심심치 않습니다.^^* 저도 승호가 수영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감동이 되네요. 그래서, 가끔은 push(약간의 강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카라2
2004-08-25 11:26
어른이 된 지금 제가 후회하고 있는 일중 하나가 수영을 제대로 못하는 겁니다..예전에 수영강사가 유난히 호흡을 못하는 저에게 잘하라고 하던 말들이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해서 중도에 포기했거든요...지금 이 나이를 먹고보니,,어떤 일을 해내고 얻는 성취감같은 걸 느낄만한 사건이 없습니다,,그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정말 어렵게 고비를 넘기고서라도 이루고싶은 게 참 많은데요..그나저나 부모로서 어려운 저울질을 참 잘 하셨습니다 ㅎㅎ^^
영인맘
2004-08-25 11:13
참~ 잘하셨네요, 읽으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저희 아이들 둘도 같이 개인레슨을 4개월 시켰어요. 그리고 일반 아이들 반에 넣었는데 저는 아주 만족했습니다. 물을 무서워했었는데 저희는 4개월동안 접영까지 다 했었어요. 또 재밌는 얘길 할까요? 둘째가 1학년때였죠. 그때 선생님이 수영대회가 있다고 한번 나가보가고... 경험이라고.. 해서 나갔었죠. 학생 선수들 무지 많은데 말이죠. 자유형 100m, 배형 50m,, 물론 성적은 8명중에 5등 했지만... 너무 자랑스러웠답니다. 승호도 그렇게 할 수 있을겁니다.
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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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연 
겁쟁이 승호가 수영을 하게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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