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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
제 스스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여럿 있지만, 그 중 한가지가 바로 책에 대한 생각입니다.
첫째는 책이란 것은 어느 정도 무거워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스스로의 굴레로 인해 저는 만화책과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 편입니다.
단, 영어 공부를 위해서 영미 소설은 거의 원서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책이란 것이 옆에 많이 있으면 있을수록 맘이 뿌듯해지는 욕심입니다.
대학에 가서 제일 좋았던 것은 커다란 도서관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보통 학과시험이나 고시, 취직시험 등의 시험 공부장으로 이용되었던 도서관 열람실 보다는 주로 책이 빽빽이 꽂혀있는 서고 사이를 누비며, 시험과는 전혀 관계없는 책들을 읽기에 바빴습니다.
그리고, 서점에 들러서 맘에 드는 책이 있으면,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사놓고는 시간이 없어서 다 읽어 보지도 못하는 일이 다반사 였습니다.
물론, 세월이 흘러 그래도 그럭저럭 사놓은 책들은 한 번씩은 읽어보게 되긴 했지만 말입니다.
이런 굴레는 아이 엄마가 된 후로도 벗어나지 못해서,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 또는 대형서점 나들이를 합니다.
물론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가 읽을 책을 찾기 위해서 입니다.
신간들을 살피고, 또는 오래 전에 출판되었지만, 빛을 못 본 묻혀있는 보물들을 찾으면서, 그저 많은 책 사이를 거니는 것 만으로도 맘이 뿌듯해짐을 느낍니다.
더구나,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에는 관심 밖이었던 어린이 책에까지 관심을 가지면서,
특히 영어 그림책들을 접하면서, 전에 느끼지 못한 또 다른 재미에 흠뻑 빠져 있습니다.
이런 저는 아이 영어책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영어로 말해주지 않고, 영어책도 읽어 주지 않았을 때에도 저는 이미 수십 권의 영어 그림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두 다 제가 읽으려고 산 책이고, 그 중 어떤 것은 지금까지도 아이에게 한 번도 읽어 주지 않은 책도 있습니다.
순수 창작 그림책 뿐만 아니라, 첫발견 시리즈, step into reading 같은 readers book, 사이언스 스토리 북, 런투리드 시리즈 등 모두 지금도 제가 더 많이 읽고 있습니다.
아이에게는 기껏해야, 창작 그림책 위주로 잠자기 전에만 보통 두 권에서 많으면 네 권 정도만 읽어 줍니다.
책을 좋아하는 제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데 소홀한 이유는 물론 게으름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제가 의식적으로 책 읽어주기를 경계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제 자신과 아이를 분리시키려는 노력입니다.
스스로 활자매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강박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아이가 책을 좋아해서, 스스로 읽을 나이가 되어 새로운 지식을 얻고, 책 속에서 자신과 같은 생각을 찾아보는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지만, 제가 먼저 그런 아이로 키우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내 아이가 나와 같은 아이가 되도록 키우기 보다는 스스로 자신을 찾아가는 아이로 자라길 원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는 아이가 소설과 만화만을 읽는 아이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스스로의 선택일 경우에는 흔쾌히 인정하고자 합니다.
둘째, 아이들은 제일 먼저 책으로부터 편견과 지식의 단편을 배웁니다.
우리 아이가 제일 처음 영어로 말한 문장이 Rabbit eat carrot. 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아이가 영어 문장을 말했다는 기쁨보다는 정말 토끼가 당근을 먹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보던 책에 있는 토끼가 당근을 먹는 그림은 아이에게서 정말 그럴까 하는 의문을 빼앗아갔습니다.
보통 아이 책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또 다른 문장,
spring comes, flowers grow…, In spring, flowers bloom…
그런데,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앞 정원에는 11월에도 장미가 피어났습니다.
자연과학에 관한 책도 예외가 아닙니다.
보통 상어라면 우리는 무섭고, 사람을 공격하는 동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아이 영어책에도, 상어에 대한 표현은
mean as a shark, teeth for biting, watch out, 등이 주를 이룹니다.
이에 반해 고래에 대한 표현은 거의 gentle giant 입니다.
하루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방송을 보았습니다.
무참히 희생되는 상어의 이야기였습니다.
위에 예를 들은 어린이 책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비딕, 죠스로 이어지는 상어는 사납고, 사람을 물어 죽인다는 편견으로 인해
많은 상어들이 무참히 학살되고 있었습니다.
무의식중에 받아들여진 편견으로 사람들은 상어 지느러미 요리를 위해 지느러미만을 잘라낸 뒤 상어 몸통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바다 속에 던져 버리고 있었습니다.
상어란 존재는 인간에게 해가 되는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상어가 다 식인 상어는 아니며
(사람을 공격하는 상어는 아주 일부에 불과합니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상어는 꼭 필요한 존재 입니다.
그런데, 편견과 단편적 지식으로 인해 상어는 인간에게 영원한 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지식의 단편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통해 주입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더 이상 아이들 책을 맹신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실 문제의 근원은 아이들 책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다는 이유로 다양한 사실과 관점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단편의 지식을 유아기에 책을 통해 미리 넣어주는 것 보다는 더 천천히 알려주더라도, 올바른 사실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유아는 만 4세가 되면, 정형화된 지식과 편견을 내면화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유아기부터 치우치지 않는 생각과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지식의 다양성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한데, 많은 경우 책이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유아는 책으로부터 배우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교육학자들이 말하기를 유아기는 감각기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즉, 오감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는 말입니다.
실제 사물을 보고, 만져보고, 느껴보고, 냄새 맡아 보고, 맛 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책을 통한 것은 모든 것을 시.각.화 해버립니다.
그러지 않아도 무뎌지는 다른 감각들이 제 기능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엄마로부터 옛날 이야기로 들었던 이야기들을 이제는 그림책을 통해서 봄으로써, 엄마와 아이의 인간 관계 사이에, 책이라는 사물이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책이 사물에 대한 호기심을 막기도 합니다.
책에서 미리 본 동물을 더 좋아 할 것 같았던 아이가, 직접 실물을 보고는 시큰둥해 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미 아이들에게는 실제로 본 동물보다 세밀화로 그려진 책에 있는 동물이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겁니다.
따라서 책을 읽어 주는 것은 아이를 위한 것이기 보다는
엄마를 위한 것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편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시골에 가서 흙 냄새를 맡게 해주는 것 보다는
시골 풍경이 그려져 있는 책을 읽어 주는 것이 편하고,
아이가 진흙탕에서 맘껏 뒹굴면서 놀게 하기 보다는
진흙의 용도에 관한 책을 읽어주는 것이 더 편합니다.
물론 책을 읽어주는 일도 어느 정도는 엄마의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고,
현실적으로 직접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함께 뒹굴며 노는 것보다 책 몇 권 읽어 주는 것이
엄마들에게 더 편한 방법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가 책을 너무 좋아한다는 이유로,
또는 책을 읽어 주는 것이 좋은 엄마가 되는 지름길이라도 되는 듯이
아이들에게 열심히 책을 읽어 주는 것이
어찌 보면 엄마들의 합리화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습니다.
저도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지식, 감성, 간접 경험, 공감 등
책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수동적인 책 읽기에 그치지 않고,
책에 쓰여진 내용을 스스로 의심해 보고,
다르게도 생각해 보고,
책이 주는 고고한 환상에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특히 유아기에는 사물을 머리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이 나오는 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을 통해 내면화하여,
몸 전체에 새겨 넣었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토끼가 만져보고 싶어 종이 느낌밖에 없는 책에 있는 토끼 그림을
손으로 쓰다듬어 보는 아이를 위해
궁여지책으로 DK사에서 나온 Touch and Feel 책을 사주었던
한심한 엄마인 나를 생각해 봅니다.
시골집에 가서 토끼를 직접 만져보면서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를 보면서
과연 내가 책으로부터 아이에게 무엇을 알려 줄 수 있을 까 생각하면서,
오늘도 책을 더 읽어 달라는 아이에게 선심 쓰듯이 단 두 권의 책만 읽어 주고는,
내가 읽어 준 책을 유심히 살펴 봅니다.
혹시나, 내가 아이가 왜라고 물을 수 있는 권리를 책을 들이밀면서 박탈해버린 것은
아닌지 살피면서 말입니다.
이래서 저는 아이 책을 열심히 읽으면서도 정작 아이에게 책 읽어 주는 데는
인색한 엄마가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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