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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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들어온지도 1년은 넘어서, 3학기 중간고사를 끝냈으니
딱 기간으로만 치면 반환점을 도는 싯점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학교에서도 배운 것도 많고
또 느낀 것도 많아 틈틈이 소감을 정리해서 올리고 싶은데 뒷덜미를 누가 잡고 마구 채찍질하는 듯한 강박관념 때문에 차분하게 글을 쓸 여유를 못 가지게 됩니다.
핑계일 뿐입니다만…
지난 학기에도 제가 소감을 올렸는데, 이번 학기는 더욱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현재 제가 수강하고 있는 과목은 이명신 교수님의 조기영어교육세미나,
김지영 교수님의 조기영어교육방법론, 이희경 교수님의 심리언어학과 아동영어지도,
이숙화 교수님의 이중언어교육론입니다.
아마 제목만 들어도 쑥쑥회원분들이라면 누구나 관심 있을 주제들이고,
실제로 ‘굉장히’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듣고는 있는데 예전 같지 않은 기억력이나 순발력이 발목을 잡습니다 그려.
어쨌든 기회 닿으면 공감가는 이론들을 게시판에 풀어놓도록 하겠습니다.
수업 외에도 조기영어교육과 차원에서 새롭게 진행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바로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영어교육 자원봉사입니다.
다행히도 서대문역에 ‘나무를 심는 학교’라는 공부방이 있어 초등저학년을 위한
영어수업을 같은 과 선생님들끼리 돌아가며 맡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교재선정이나 커리 짜는 일까지 막막하기만 했고 또 선생님도 여러분이라
시간 맞추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열의만으로 모두 오케이가 되는 상황도 아니었구요.
하지만 차츰차츰 공부방에 들러서 아이들과 만나보고, 선생님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조율해가면서 이제 이 자원봉사 활동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지요.
교재선정은 일단 레몬스쿨의 지원으로 샤샤 잉글리시 1 으로 했습니다.
스토리북을 통한 수업이 이상적이지만, 그야말로 천차만별인 아이들의 지적 수준에 맞추기도
힘들고 (초1에서 4까지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레슨플랜을 만들기도 쉽지 않아 그나마 지도가 쉬운 코스북, 그 중에서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도 어렵지 않고 수업계획안도 미리 짜여져 있는
샤샤를 택하게 되었지요.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1시간 반씩 하기로 하고 8분 정도 되는 선생님이 돌아가면서 수업을 하니
한달 한번 정도씩 수고하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첫 수업을 제가 맡아 교실로 찾아갔는데, 사실 들은 것보다 더 환경이 나빠 놀랐습니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언덕배기를 좀 걸어 올라가야 나오는 작은 학교-라기보다는 집-는
중학생까지의 아이들을 모두 수용하기에도 비좁았고 깨끗하지도 않았구요.
그래도 간식을 차려주는 것을 보니 음식이 푸짐하고 맛있어 보였고 선생님들과 아이들 또한
친해 보여 좋았습니다.
그리고 우려와는 달리 아이들이 밝았답니다.
(그래도 얼마 전 이 학교가 서대문역 바로 앞의 건물로 옮기면서 환경은 훨씬 나아졌습니다.
넓고 깨끗하고, 찾아가기도 쉽고…)
뭐니뭐니 해도 가장 관심 있었던 부분은 역시 아이들이었지요. 사실 처음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다른 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계신 과대표님의 얘기를 들은 바로는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의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으니 이런 저런 말은 주의해야 하고,
절대 무엇인가를 사줘서는 안되고, 수업시간에 흐트러지더라도 좌절해서는 안되고…
실제로 수업을 시작해서는 많은 어려움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가장 힘든 점은 한 시간 안에도 시도때도 없이 기분이 변하는 아이들을 구슬리고 달래가며
수업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었지요.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든다 싶으면 시작부터 끝까지
입을 꼭 다물고 아이들과 선생님을 외면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또 한가지 어려운 점은 역시나 1학년과 4학년간의 갭이었습니다.
그래도 3학년부터는 정식 영어수업이 시작되어서 가정에서 사교육 노출의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이라 해도 몇 가지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는데 1-2학년의 경우는 정말 ‘백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white 나 pig 정도의 뜻도 모르고 있었고 알파벳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간의 수준 차 외에도 어려운 점은 항상 EFL 상황 English learner 들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인지적 수준과 영어능력 수준간의 갭입니다.
사실 샤샤는 유치원 수준의 아이들에게 포커스를 맞춘 책이기에 3-4학년 정도 되는 아이들에게는
쉬울 수도 있는 교재이거든요. 그 안에 나오는 모든 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으면서 내용 자체는
시시하게 생각되는 것이 아이들의 문제점이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어느 코스북, 어느 스토리북으로 접근하든 마찬가지로 접하게 됩니다만.)
그래도 챈트나 노래 등으로 아이들의 분위기를 이끌어주고 요리나 만들기 등의 액티비티를
적당히 넣어주면서 아이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니
점점 선생님도 아이들도 익숙해지는 듯 합니다.
수업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에는 아이들의 입성도 반듯하고 성격도 밝아서 그다지 어려운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아까도 언급했듯이 수업태도의 문제나 사전영어지식의 전무함이 제가 보통 생각하고 있던
요즘의 초등학생과 약간 다르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어느 정도 자원봉사 수업이 진행되고 나서 학교를 책임지고 계신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은 조금 놀라웠습니다. 저희가 가르치고 있는 6명의 아이들 중 정상적 (정상이라는 말을 이렇게 써도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으로 양부모님들 밑에서 행복하게 크고 있는 아이들은 단 한명 뿐이라구요.
그 중 두 자매는 어머니가 안 계시고 아버지도 거의 집에 없는 상황이라 고시원에서 먹고 자며
스스로 문을 잠그고 밥을 챙겨먹고 다니고.. 또 한 아이는 미혼모가 키우는 아들이고,
또 한 아이는 가정폭력으로 부부 간의 불화가 잦고, 또 한 아이는 어머니가 혼자 일을 하며
키우는 상황이고… 선생님의 말씀을 빌자면 “모두 상처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므로
사랑으로 감싸줘야 한다”는 상황이었습니다.
가끔 속을 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밝게 웃고 장난도 치는 그 녀석들에게서 언뜻 언뜻 비치는
그늘에 저런 원인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많이 아프기도 하고,
겨우 이런 것 밖에 해줄 수 없다는 현실에 자괴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또 한가지 든 생각은, 지금 제가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이 아이들의 영어지식뿐이지만
그 이외에도 얼마나 많은 것이 결핍되어 있을지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지식만이 아니라 이 아이들은 지적인 욕구 자체를 상실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왜 배워야 하는지,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인지를 깨닫지 못했다는 느낌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아이들도 셀 수 없이 많고 반대로 이미 챕터북을 읽고 유창하게 영어대화를
하는 아이들도 많은 상황에서, 결국 계층간의 격차가 세습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닌가, 혹은 내가 거기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습니다.
앞서가는 (?)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조바심치고 안달을 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부모들의 마음을 나도 가지고 있으면서, 그냥 남보다 더 잘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만 이때까지 애써왔던 것은 아닌가 다시 한번 자책하며 생각해보게 되었단 얘기입니다.
쑥쑥닷컴을 처음 만들었을 때, 그래도 함께 정보들을 나누고자 했던 것은 ‘공유함으로써 같이
성장하자’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공유’라는 것도 어찌보면 역시 작은 섬 안에서의 폭풍일지도 모르고, 제가 꿈 꿔왔던
더 넓은 공유로의 차원까지 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장애와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쑥쑥닷컴을 모르거나, 혹은 이런 영어교육법을 모르거나, 혹은 인터넷이나 부모교육을 위한 시간, 또는 여유조차 없는 부모님들은 결국 그 대상에서 소외 될 수 밖에 없게 되고..
그렇게 얘기한다면 쑥쑥닷컴은 결국 그래도 ‘기본은 있는’ 사람들만의 장으로 머무르겠지요.
사회가 흉흉해지고, 부유층을 타겟으로 한 범죄가 늘어날 때 일시적인 방편 같은 ‘방범카메라’ 같은 것을 생각하기 보다 근본적인 빈부격차 해소방안을 찾는 것이 더욱 현명하듯이, 지금 내 자식들의 영어능력을 키우기만 골몰하기보다 사회전체적인, 공교육 차원에서의 대책과 부모교육이 더욱 절실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공교육의 정책을 결정하는 쪽에서는 유아영어교육에 대해서는 아예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적어도 현재 실시되고 있는 초등학교 영어교육만이라도 좀 더 내실을 기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여전히 안타까운 마음에 괜히 짧은 생각을 올려보게 되네요.
형이민이맘 
[다이어리] 그들만을 위한 인터넷, 모두를 위한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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