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이었다.
남편이 집에 있어서 혼자서 얼른 도서관에 다녀오마 했다.
사서님에게는 다소 미안한 일이지만 일단 손에 잡히는 책을 좌르륵 가져다가는
책상에 앉아 대충 흝어보고는 그 중에서 대출가능한 권수의 책을 고른다.
그 날도 그랬다. 아이들 책을 대충 골랐는데 마지막 즈음에 남은 책이 [내 짝꿍 최영대]였다
여러번 들었던 책이지만 그 때까지 읽지를 못했던 것은
아무래도 우리 아이들 연령과 먼 책이어서였다.
그래도 많이 듣던 책이라 빌릴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책이 얇아서 그냥 읽기로 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별 생각않고 읽어내려가던 책의 중간 쯤에 그 낯설고 아픈 영대의 엉거주춤한 등짝을 보는데
급기야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왕따에 대해 그 어떤 설교조의 내용보다 그 한 컷이 내 가슴에 못이 되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바보같은 영대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고
그림은 말하고 있었다.
그저 아이들과 떨어져 그렇게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물그러미 바라보는
영대의 뒷모습은 분명 여러가지 감정이 섞여있을 얼굴을 대하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이야기는 좋은 결말을 갖는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최영대하면 나는 아픈 가시처럼 영대의 그 뒷모습이 생각난다.
또 하나의 책은 [명애와 다래]다.
다래는 이 책의 주인공 여자아이다.
그리고 명애는....여자아이의 아픈 할머니이다.
다래는 아파서 맨날 누워만 있는 할머니가 못내 밉고 속상하다.
엄마, 아빠가 그런 할머니에게만 신경쓰느랴 놀이동산에도 같이 못 가니 화가 난다.
그러다가 얼핏 잠이 들었다가 깨니 할머니가 함께 놀이동산에 가자고 이끈다.
할머니는 아프지도 않고 씩씩하다.
놀이동산에 가는 동안, 또 즐겁게 노는 동안 점점 할머니는 젊어진다.
나중에는 다래만큼 어려진다.
그리고 해가 져서 돌아올 때는 다래가 갓난 아기 명애를 들쳐업는다.
그리고 잠에서 깨니 여전히 할머니는 아프시고 말이 없으시다.
다래는 다음 가을에도 신나게 놀자고 명애에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많은 것을 잊고 산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처럼 젊고 활기찬 시간은 도저히 없었던 것처럼
무심히 때로는 원망스럽게 힘없고 쇠잔한 모습의 노인으로만 바라본다.
또 우리는 그런 모습이 아니 올듯이 송구스런 기운이 넘치기도 한다.
지금은 돌아가셔서 내 곁에 안계신 나를 키워준 할머니...
할머니 마지막 즈음에 내 손을 잡고 마냥 미안해하시는 모습을
그저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 슬그머니 뺐던 내 어리석은 모습이 생각나서였을까...
나는 쏟아지는 눈물에 어쩌지를 못하고 도망치듯 도서관을 나왔다.
그렇게 몇 날이 지나서 다시 우연히 보게 되었을 때
이제는 좀 넉넉한 마음으로 보리라 믿어 빌렸건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그저 하나의 판타지쯤으로 눈이 동그래지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목이 메어 그 책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어디서 들은 말인데 책은 간접경험이 아니라 직접체험이란다.
책을 읽은 다음 마음의 어떤 감정이 일어 몸 상태가 변하고
또 그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삶에 변화가 있음을 생각해볼 때
그것을 어찌 간접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냐는 것이다.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직접체험이라는 것이다.
나도 그 말에 공감한다.
아이책을 보면서 눈물이나 짠다고 혀를 차는 할머니가 이제는 곁에 없으니
참 쓸쓸한 가을밤이다.

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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