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몰
> 
나니아 연대기 : 사자와 마녀와 옷장 (The Chronicles of Narnia : 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을 개봉 첫날 극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았습니다.
기대했던대로, 그리고 많이 기다린 만큼 영화는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볼 수 있는 내용이었고
배우들의 연기나 의상, 무대, 그리고 특수 효과등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웠지요.
이전에 아주 허접하게 만들어진 tv 시리즈를 보고 실망한 적이 있고
(거기의 루시를 맡은 아역배우는 아무리 외모를 안본다고 하더라도..
화면에 몰입을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책도 재미있게 본 후라 더더욱 즐거웠답니다.
저는 한 1년간 잠자리 수면제로 연대기 시리즈를 독파했고, 아들은 영화를 보고 난 이후
두꺼운 시공사의 합본을 읽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번역이 이상하거나 영어표현이 궁금한
경우에는 스스로 영어판 책을 뒤져가며 비교해보고 제게 설명해주는걸 즐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파우누스는 영어판에서 Faun 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이지요. (제가 어릴 때 읽은 책에서는 그랬습니다만…) 난장이는 dwarf, 켄타우로스는 Centaur 입니다. Turkish delight 는 터키젤리로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제 기억으로는 잼 같은 젤리가 듬뿍 든 과자종류였습니다.
캐스피언 왕자에 나오는 친꼬친은 영어판에서 D.L.F. (Dear Little Friend)로 나오구요.
영화의 자막 번역 역시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를 설명해주는 좋은 동기가 됩니다.
긴 설명이 필요한 단어를 간단하게 짧은 한국어로 표현한다거나 할 경우 왜 그렇게 밖에
번역할 수 없나를 서로 얘기하기도 합니다. 이런 점은 단순한 일대일 번역이 아닌,
한국어와 영어가 가지는 깊은 문화적 차이, 거기에서 오는 뉘앙스의 차이까지 이해해야
가능하기에 좋은 텍스트가 되는 셈입니다.
어쨌든 나니아 연대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디즈니의 영화 답게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 하기에
적당한 수준입니다. 잔인하게 피가 튀기는 부분도 없고, 음산하고 사악한 분위기를 풍기는
장면도 적고, 야한 부분은 더더욱 없습니다. 있다면 아이들이 꿈꿔온 다른 세계,
토끼를 따라 들어갔다가 만난 이상한 세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환상의 공간,
그리고 온갖 신화 속 동물들과 마법, 심지어 산타클로스까지 등장하는 환상이 존재할 뿐이지요.
어른들은 믿지 못할 마법의 나라, 시간의 흐름마저도 여기와 다른 나라, 평범한 아이들도
영웅이 되고 왕이 될 수 있는 나라….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적 판타지의 기본을 모두 갖춘
작품이 바로 이 나니아 연대기입니다.
그중에서도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은 신학자이자 영문학자인 C.S. 루이스가 처음 발표한
연대기 시리즈이고, 이후 총 7권에 걸쳐 책을 펴내게 되는데 1편에 해당하는 ‘마법사의 조카’는 사자마녀옷장의 Prequel 입니다. 아이들의 말을 쉽게 믿어주는 교수나 나니아로 통하는 옷장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는 prequel 을 보면 알 수가 있답니다.
영화는 제가 책을 보며 상상했던 그 세계를 아주 충실하게 재현해냈습니다.
다만 책에는 없던 부분,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씬은 이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이들의 의도와
맞물려 적절하게 추가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있다 얘기하도록 하지요.)
귀여운 루시, 얄미운 에드먼드, 고지식한 수잔, 맏이다운 피터 등등 아역배우들의 연기도 아주
훌륭했고 아름다우면서도 사악한 기운과 위엄이 넘치는 하얀 마녀 역시 팜므 파탈과는
또 다른 멋진 악녀의 분위기를 뿜어냈습니다.
또 사실적으로 그려진 아슬란 역시 어떤 실제 배우보다 중후하고 멋있었습니다.
음악 또한 고전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영화의 맛을 한껏 살려주고 있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즐기는 것만으로 끝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아이들은 꿈을 그려낸 판타지로만 끝나면 그만이겠지만,
그래도 부모로서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부분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해리 포터는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에이, 이것도 병인가 봅니다.
첫번째, 나니아 연대기의 원작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적 세계관입니다.
무신론자였다가 신학자가 된 C.S. 루이스의 독특한 세계관이 반영된 작품이기에,
어린이 소설로만 끝내기에는 아쉬운 복선이 많습니다.
나니아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절대왕의 존재 아슬란.. 그는 평소에는 함께 하지 않지만,
신화 같은 이야기로만 전해져 오면서 나니아인들의 믿음의 대상이 되지만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 나니아를 구하며, 그를 믿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작은 벌을 내리고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큰 상을 내립니다.
또 절대악이라 할 수 있는 마녀와의 싸움에서, 내부의 배신으로 그를 대신해서 묶인 채 죽음을
당하고 진정한 희생이었기에 전설에 따라 다시 부활합니다.
아슬란의 이름을 ‘예수’로 바꾸어 읽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신약성서의 내용 그대로이지요.
중세시대, 교회에 의해 사냥의 대상이 되었던 ‘마녀’와 ‘마법사’가 아예 주인공이고
전지전능한 신 외에는 가질 수 없는 능력을 주제로 하는 해리 포터를 사악한 책으로
비판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이 나니아 연대기에는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제작단계에서부터 해리포터와 달리 기독교인들의 관심의 대상이었고 필연적으로 디즈니에서 제작을 맡게 됩니다. 원작이 반지의 제왕, 어스시의 마법사와 함께 세계 3대 판타지 걸작으로 손꼽히면서도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덜 알려진 이유는 어린이용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독교적인 색채가 강해서는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둘째, 기독교적 세계관을 넘어선 백인중심주의의 세계관입니다.
진정한 기독교 정신은 살아있는 모든 인간의 평등을 모토로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시리즈에서는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이 눈에 띕니다.
예를 들어 ‘말과 소년’편과 ‘마지막 전투’편에서 나타난 칼로르멘인들에 대한 묘사를 보면
그 세계에서도 유럽계열의 백인과 아랍계열의 나라가 구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아슬란을 믿지 않는 칼로르멘의 인종들은 야만적이고 잔인하며, 검은 피부에 터번을 쓰고
언월도를 차고 다닙니다. 티스로크라 불리는 그들의 왕은 술탄과 흡사하고 그들이 믿는 신은 산자를 희생물로 바쳐야 하는, 네개의 팔이 달린 우상으로 묘사됩니다.
물론 해리포터 역시 영국작가의 책이기에 백인중심임은 어쩔 수 없지만,
조앤 롤링의 ‘퀴디치의 역사’ 등에서 나타난 내용을 보면 페르시아의 양탄자나 동양의
다른 마법에 대해서는 형태가 다를 뿐 무시한다거나 배척해야 할 상대로 묘사되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종교가 아닌 문화를 다루고 있기에 덜 민감해서..일 수도 있겠지만요.
한가지 더, 말을 하는 동물과 그렇지 못한 어리석은 동물을 이원화 시킴으로써,
야만과 문명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말 못하는 짐승은 먹어도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친구로 대하며, 그런 동물을 먹었을 경우에는 식인종 대하듯 묘사(‘은의자’ 편)하고 있습니다. 개고기에 대한 서양인들의 편견 깊은 시각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면 과장일까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프로젝트 중에 ‘바이 바이 키플링’이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키플링은 바로 유명한 소설 ‘정글북’의 작가입니다. 인도에서 태어나 인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을 쓴 키플링은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영국의 제국주의자였습니다.
‘동양과 서양은 절대로 결합될 수 없다.’는 극단적 오리엔탈리즘을 가지고 있던 그를 조롱하듯
동서양의 아름다운 만남을 형상화한 것이 바로 백남준의 작품이었지요.
C.S. 루이스나 키플링이 살았던 시기, 제국의 지식인들은 아마도 그럴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것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나니아와 같은 뛰어난 작품을 읽히면서도 우리는 현대의
모럴에 맞게 아이들을 지도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셋째, 역시 기독교적 패권주의 역시 언뜻 언뜻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처음 영화를 볼 때, 피터가 기차역에서 엄마와 헤어지며 자기 나이 또래의 소년병을 응시하는
모습은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듯 보였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니아에서는 피터 자신도 전투의 선봉장으로서 칼을 휘두르게 됩니다. 그것도 ‘악의 무리’를 물리치고 ‘아슬란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성전’에서 말이지요.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악의 통치하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구해내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강대국이 일으키는 전쟁을 생각하면 바로 이런 작품들이 어릴 때부터
백인들의 사상을 지배하도록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슷한 모토를 내걸었던 십자군 전쟁을 연상시키는 것은 제 자신만의 과장은 아닐테지요.
사실 부모의 입장에서 칼을 들고 다른 이들을 죽이는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다는 것은
상당히 아찔한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피터가 칼에 피를 묻히고
샤스타와 코린이 전투에 참가하고 (말과 소년), 왕자가 배신자의 목을 자르고 (캐스피언왕자),
유스터스(마지막 전투)가 다른 이를 시체로 만듭니다.
해리 포터에서는 살인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그마저도 모두 절대악이라 할 수 있는 볼드모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해리 자신은 아버지를 배신한 원수를 만나서도 피를 묻히지 않고, 가끔 얄미운 상대가 나타나면 골탕을 먹이긴 해도 극단적인 방법으로 복수를 하진 않습니다. 나니아 연대기와는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지요.
이교도에 대한 단죄, 악에 대한 응징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손에 피를 묻히게 하는 작품.
탈이데올로기를 가장한 이데올로기의 강요라고 봅니다.
학부시절, 모윤숙의 시를 읽고 이것이 과연 진정한 휴머니즘인가에 대해 교수님이 질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쟁의 참혹함…. 무고한 병사들의 희생을 애통해하며 복수를 노래하는
시였는데, 결국 또 다른 병사들의 희생을 당연한 듯 요구하고 있기에,
이것은 진정한 휴머니즘이 아니다 라고 토론했었지요.
나니아 연대기 연작을 모두 읽고 나서, 판타지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환상적인 체험을 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작가의 사상이 우리 아이들에게 잘못 심어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따지고 보면 제가 열광했던 해리포터도 이런 식으로 비판할 점이 아주 많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니아는 유독 부족한 제 눈에도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많이 보이고,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좋아할 요소가 가득하기에 같이 생각을 나눠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아이들이 즐겁게 보고 끝낼 작품 하나를 가지고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닌지,
다른 분들의 의견도 듣고 싶네요. ^^
p.s. : 기독교적 세계관 자체를 부정하기 위함이 아닌 것은 아시지요?
다만 저는 자신의 종교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이교와의 타협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
가치관에 대해 경계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종교문제는 워낙 민감해서…
히플러 
같은듯 다른 두 판타지, 나니아와 해리포터
최신
이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