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프로스트(Robert Prost)의 ‘가지 않은 길’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입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을 살다보면 지난 시간을 돌이키며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후회와 동경이 있게 마련이지요. 두고두고 미련이 남을 수도 있고요. 그러나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기에 마음을 비울 수밖에요.
아이를 키우면서도 가지 않은 길이 떠올라 뒤돌아보게 됩니다. 물론 보이지는 않지만 그 길을 택했으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보기도 합니다. 아이를 위해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 순간들. 내 아이가 나의 순간의 선택으로 인해 혹시나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은 아닐 지 불안한 것이 엄마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결혼은 앞둔 젊은 커플들이 작성한다는 ‘가사 분담리스트’는 마치 천칭에 무게를 달듯 엄격하기까지 합니다. 청소와 세탁, 식사준비와 쓰레기 분리수거 등등 항목들도 세세하고 형평성에 맞게 각자의 책임을 분배한다니 참으로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들의 당당함이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가 잘 된 분담리스트라 해도 시간이 흐르면서 피해갈 수 없이 기우는 것이 바로 육아의 무게입니다. 직장 일과 가사, 육아의 삼중고에 시달려야 하는 워킹맘들에게 가장 큰 부담은 역시 육아입니다. 육아는 엄격한 분담이 불가능한 엄마의 몫이기 때문이지요.
워킹맘들에게 아이의 양육은 무엇보다도 해결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양육자는 할아버지, 할머니라는데 요즘 선선히 내가 손주를 돌보겠다 나서는 조부모들을 찾기란 그다지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결혼을 운운하며, 이왕이면 사돈이 나보다는 나이도 어리고 건강하며 시간 여유도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니 손주의 양육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가 맞는 듯싶습니다. 자식입장에서는 평생을 자식 뒷바라지에 바친 부모에게 내 자식까지 맡기기가 염치없기도 하고, 멀리 떨어져 살거나 건강이 편편치 않은 부모님들도 계시기에 어쩔 수 없이 가족이 아닌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형편도 있습니다.
얼마 전 일입니다.
시간이 날 때면 간간이 운동을 하러 가는데 하루는 몇몇 회원들과 할아버지 회원 한 분이 쉬는 시간에 함께 커피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아들은 가까이에 분가를 해서 살고 있었고 아직은 돌이 채 되지 않은 손자 하나를 두고 계셨습니다. 할머니의 관절과 허리가 부실한 이유로 맞벌이를 하는 아들네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손자를 돌보았고 시간이 날 때면 할아버지께서는 가끔 오가며 손자를 들여다보셨습니다.
그날도 역시 손자가 궁금해 아들집에 들르셨는데 도우미 아주머니는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있었고 손자는 보이지 않더랍니다. ‘아무개가 어디에 있냐’는 물음에 아주머니는 ‘저기, 잘 놀고 있어요’라고 답했는데, ‘저기’로 발걸음을 옮긴 할아버지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네요.
달랑 기저귀만 걸친 채 세탁기통속에 들어 앉아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던 손자!
세탁기 속의 귀한 손자라니, 얼마나 놀라셨을지...ㅠㅠ
청소하는 동안 아이를 나름 안전한 곳에 두었다는 아주머니의 그 비상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울지도 않고 들어 앉아 있는 모습으로는 이미 처음은 아닐 거라는...
할아버지의 고민은 이 사실을 과연 전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누구에게 알려야 할 지, 병든 아내에게? 아니면 아들, 며느리에게?
우리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섣불리 입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의 양육을 남에게 믿고 맡기기도 쉽지 않지만 설령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봐 준다해도 양육방식의 이견으로 인해 갈등을 겪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아이의 양육 또한 오롯이 부부의 몫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마땅한 탁아기관이나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 속에 워킹맘들에게 든든한 최고의 구세주는 역시 부모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아이를 돌봐 주신다면 감사하고 다행일 뿐이지요.
이왕 들어선 워킹맘의 길이라면 뒤돌아보거나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갖기 보다는 꿋꿋하게 걸어 나아가는 소신이 필요합니다. 아이로 인한 크고 작은 문제들은 어느 엄마이건 다 겪는 고충입니다.
내 아이를 돌보고 계신 그분들의 방식을 어느 정도는 존중하고 자신의 의견을 정중하게 제안하고 조율하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아이돌보기가 힘들다는 하소연도 기꺼이 들어 드리고,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이나 수고비도 잊지 말아야겠지요.
생물학적 엄마는 특별한 자질이 필요 없다지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과 배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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