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창이방] 날아라 은창이(061025) 2006-10-24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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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으로 은창이가 혼자 버스를 타고 도서관에 수업을 다녀왔다.

마을버스로 여덟 정거장, 내려서 공원을 따라 걷는 10여분의 길을

은창이가 혼자서 어떻게 다녀왔을까 궁금하고 기특하다.

 

지난 9월부터 은창이는 도서관에서 마인드맵 수업을 듣고 있다.

물론 수업도 좋지만 그보다 내가 목적한 것은 따로 있었다.

은창이 혼자서 버스 타고 볼일 보기.

 

여러 가지 이유로 은창이는 버스를 타고 다닐 일이 있는데

내가 바쁜 탓도 있고, 이제는 은창이가 혼자서 버스 정도는 타고 제 일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던 터에 절호가 기회가 생긴 것이다.

 

지난 주에 첫시도를 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날 은창이는 학교에서 현장학습을 갔다.

나와 은송이가 먼저 도서관에 가서 기다릴테니 도서관으로 오라는 쪽지를 남겼다.

그런데 은창이가 집에 와서 전화를 건 시간은 4시, 수업 시작 시간이었다.

은창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좀 꺼리는 편이라

30분 늦게 수업에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날은 그냥 바로 피아노 학원엘 갔다.

 

오늘은 은송이가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기회다 싶어 은창이에게 혼자 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네..차비랑 비상금으로 500원만 더 주세요. 혹시 모르니까요..”

 

교통카드를 만들어준다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오늘도 할 수 없이 동전을 챙겨주었다.

마음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수업 끝나면 버스 타고 바로 피아노 학원에 가야 돼. 피아노 학원에 가서 전화해...”

 

그렇게 녀석을 보내고 2시간이 넘게 흘렀다. 6시15분. 전화가 왔다.

 

“엄마, 지금 피아노 학원에 왔어요. 금방 연습하고 갈게요...”

 

“응...선생님께 오늘은 조금만 연습하고 간다고 말씀드려...”

 

휴...녀석이 잘해냈다. 참으로 기특하고 어여쁘다^^

 


저녁에 집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은창이는 별반응이 없었다.

어린이책 '지하철을 타고서'에서처럼 정거장을 놓칠까봐 노심초사하지는 않았을까,

내려서 가는 길에 혹시 무슨 일이 있지는 않았을까,

끝나고 친구랑 놀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다독였을까...

나는 온통 궁금한 것 투성인데 녀석은 일기장에

오늘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축구한 이야기만 잔뜩 써놓았다.

 

그러다가 문뜩 생각났는지.....

 

“아참, 오늘 마인드맵 선생님이 내가 용감하다고 칭찬하셨어.

 

우리초등학교에서 온 사람은 나뿐인데 그것도 혼자서 버스 타고 왔다고...”

 

“왜 선생님한테 너 혼자 왔다고 말했어, 먼저?”

 

“아니..오늘따라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시더라구...그래서 말했지..”

 

그랬다. 그런 이유로 처음에는 마음이 좀 쓰였다.

낯선 아이들 틈에서 숫기 없는 녀석이 어쩌나....

그나마 아는 친구는 동네 친구와 함께 와서 둘이 앉고

은창이는 혼자 앉게 되자 마음이 더욱 안쓰러웠다.

하지만 수업이 좋은지 뒷말이 별로 없는 녀석이 평소와 다른 말을 해서 물어보면

마인드맵 수업 때 선생님이 하신 말이라고 했다.

요즘에는 ‘자기주도적’이라는 말을 곧잘 한다.

그 말을 할 때면 은근히 눈에 힘도 들어간다.

놀라운 선생님의 힘이다^^

독립심도 키우고 좋은 수업도 듣고 정말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7살 때도 독립심강화훈련이랍시고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라고 했었다.

은창이는 급경사의 산중턱에 있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오는 엄마를 기다렸다.

중간에 한번은 도서관 가는 길에 친구네 집으로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난리법석이 났지만 그래도 아주 잘 훈련에 임한 은창이였다. ^^


동생 은송이는 병설 유치원에 다닌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으면 동생을 데리고 함께 학교엘 간다.

처음 얼마 동안은 엄마랑 간다는 은송이 때문에 은창이가 많이 힘들어했다.

가뜩이나 무서운 선생님 때문에 오금이 저리는 학기초여서

늦을까봐 조마조마 애간장을 태웠다.

그때도 내가 데려다 줄 수 있었지만 일부러 은창이에게 부탁?을 했다.

엄마가 많이 바쁘니까 도와달라고...

은창이는 부탁에 약하다^^;;

데려오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은창이 몫이다.

아빠와 엄마가 데리러 갈 때가 많지만 일단은 유치원에 들러 확인을 하고 오게 한다.

처음에 의도는 은창이의 독립심과 책임감을 위한 것이었는데

은창이가 너무 잘해주어서 조금은 꾀가 나기도 하는 엄마의 모습이다^^;;


2학기를 맞아 좀 뜸했던 학교 도서관 출입을 지난 주부터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인가 빌려온 책이 마법의 시간 여행 32권과 나니아 연대기 중 7권이었다.

 

“엉...나니아 연대기를 읽게? 좀 벅차지 않을까?”

 

“그거 은송이가 빌린 거야. 보고 싶다고 해서 내가 빌리라고 했어....”

 

은송이까지 챙겨서 도서관에 다녀왔던 것이다.

그리고 곧잘 은송이 보라고 공주 이야기를 빌려오곤 한다.

은창이는 사랑이 많은 아이다.


이제 은송이 유치원에는 내가 데려다 주려고 한다.

원래부터 은송이는 엄마랑 가는 것을 더 좋아했고

나 역시 그 가는 길에 고약한 은행 냄새를 맞으며 코를 찡그리고,

노랗고 빨갛게 물드는 나무들도 함께 보면서 가을을 노래하고 싶다.


어느 새 커서 내 품을 훌쩍 벗어나는 은창이다.

그래도 은송이가 안겨있는 모습을 볼라치면 여전히 저도 안아달라고 엉겨붙는다.

남자 아이라 뼈도 단단해서 말랑말랑한 은송이를 안는 것하고 달라

가끔은 ‘억’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그럴 때면 서운한 눈치다.


엄마는 늙어가고 아이는 자란다.

늙는 게 반드시 서럽고 아프지만 않은 것은

아이가 자라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만 바라보지 않으려고 나름 애쓰는 삶이지만

내 마음 깊숙이에서는 언제나 아이를 향해 있다.

어쩌면 아이만 바라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도 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아이를 위한 것일지 모른다.

한없이 바라보다 집착하고 욕심내어

사랑하는 내 아이가 ‘악’하고 소리를 지를까봐 지레 겁먹는 엄마인 것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새의 날개를 꺽어 제 곁에 두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제 길로 날아갈 수 있도록 새장을 열어주는 것이다.

 

은창아. 나는 너를 날도록 돕는 용기있는 사랑을 하고 싶구나.

 

 

꼬랑지~

 

비상금 500원은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씩 웃으면서,

"익선이랑 과자 사먹었어요.

둘이 자전거 타고 오면서 먹었는데 정말 좋았어요..."

 

혹시 모를 일은 진작부터 확실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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