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잘 읽었습니다.
근데요...전 한번도 파워에이드나 팬돌이를 보면서 '황산구리나 염화구리'를 떠올려 본 적이 없었는데......
역시 형란님 직업의식이 투철하십니다.^^
(전 그냥..'죠스바'이후로 가장 혀를 현란하게 물들이는 불량식품스러운 색이라고 투덜거리기만 했거든요.ㅎㅎ)
갑자기 형란님 글 읽고 나서 다시 냉장고의 그 음료를 보니 정말 그렇게 보이기 시작했답니다.음....학창시절 화학시간도 막 떠오르구요...주기율표랑 막 머리속에서 오락가락 합니다.ㅎㅎ
참...바쁜 아빠....
제게도 떨칠 수 없는 짐입니다.
8년을 꼬박 그 바쁜 남편과 바쁜 아빠 자리를 제가 대신 메워가며 살고 있으니 말예요....ㅠ.ㅠ
저도 바탕골 나들이 해봐야 겠어요.
감사합니다~
김형란님의 글입니다.
> 이번 6월이 너무나 특별한 6월이었던 탓인지
>
> 아래 글은 제 다이어리에 올린지 꽤 된 글인데, 다이어리 올릴 때 게시판에도 함께 올리던 것을 깜빡 잊고선 이제야 여기 게시판에도 올립니다.
>
> ( 아~ 제 증세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ㅠㅠ)
> ---------------------------------------------------------------
>
> 지난 7일과 8일은 제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학교장 재량 휴업일이었습니다.
>
> 6일 현충일과 일요일(9일) 사이의 이틀간 휴업이라 4일 연휴가 되는 셈이어서
> 늘 그렇듯, 3월 개학후 이맘 때 쯤이면 서서히 지쳐가곤 했던 저에겐
> 정말 '구세주'같은-'꿀맛'보다 더 간절한- 휴일들이었습니다.
>
> 제가 3년간 휴직하는동안 변한 것들이 많은데
> 그 중 '학교장 재량 휴업일'과 '체험학습'제도는
> 우리 가족의 생활 패턴에도 파장이 미치는 것들입니다.
>
> 처음엔 '재량휴업일'이라든가 '체험학습' 같은 것들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 재량휴업일이라도 뭘 했는지 모르게 지나가곤 했는데
> 이 새로운 제도들을 좀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이용하면
> 아이뿐만 아니라 온 가족에게 즐거운 '경험'과 '추억'을 가져다 줄 것 같습니다.
>
> 저의 휴업일과 큰 아이의 재량휴업일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 '체험학습'제도가 있어서 그런 것은 문제되지 않아서 참 좋습니다.
>
> 저 자신이 학교를 너무나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면서 다녀서 그런지
> 우리 아이를 기회 닿는대로 자꾸만 '학교'에서 해방시켜주고 싶습니다.
>
> 아이들 아빠가 늘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 계획했던 가족 행사들이( 아빠와 함께하는) 무산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 이번에도 정확한 스케줄을 잡지 못한채 짐도 싸는 둥 마는 둥
> 남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 방과후 집에 와서 아빠를 기다리기로 했던 큰 아이가
> 귀가 시간이 꽤 넘었는데도 오지 않아서,
> 유치원에 있는 작은 아이를 데리고 가야하는 등 생각할 것이 많은 저로서는
> 각자 다른 장소에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 모여야 하는 상황이
> 좀 정신없게 느껴졌습니다.
>
> 그러던 중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 큰 딸네미가 아빠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서
> 학교 끝나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 데리러 오라고 했답니다.
>
> 너무 스케줄이 빡빡해서 아이를 데리러 갈 틈은 없어보였던 남편이었지만
> 아이의 명령에 꼼짝 못하고 데리러 가는 중이랍니다.
>
> 그럼 아이데리고 조심해서 오라며 전화를 끊고나서
> 제 입가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느라 자꾸만 입이 벌어지는 것이었습니다.
>
> 저는 어른이 다 되어서까지도 안된다고 하는 것들을 안할 뿐만 아니라
> 안될 것이라고 짐작되어지는 것들까지도 안하고 살아왔었기에
> 제가 낳은 딸이 저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 생경하기도 하고 때로는 당황스럽기조차 하면서도
> 마음 한구석에서 '안도감'이라고 해야할지 '묘한 쾌감'이라고 해야할지
>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마음이 번져나오며 저혼자 '흐흐흐' 웃곤 합니다.
>
> 점심도 못 먹은 큰 아이와 남편은
> 작은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으로 가는 동안 차 안에서
> 제가 만든 샌드위치 한 쪽씩으로 점심을 때우고
> 드디어 엄마의 재량 휴업일에 큰 아이의 체험 학습일을 끼워 맞춘
> 가족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
> 우리 가족의 목적지는
> 남편의 바쁜 일정을 쪼개어 가느라 좀 급하게 결정되긴 했지만
> 예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던
> 경기도 양평군의 '바탕골 예술관'( http://www.batangol.co.kr ) 이었습니다.
> (여기를 클릭하시면 바탕골로 이동합니다)
>
> 조수미가 부른 팝송 음반과 김광석의 '일어나'를 들으며
> 서울 강동구인 저희 집에서 출발한지 한시간도 채 안되어.
> 경기도 양평의 '바탕골 예술관'에 도착했습니다.
>
> 1인당 입장료 3,000원씩을 내고 언덕길을 걸어올라 관내로 들어서니
> 평일이라 그런지( 월드컵 기간이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한 건물에서 평균 두 가족씩 정도만 마주친 것 같습니다.
>
> 사람많은 곳을 참 싫어해서
> 여름바닷가는 절대 갈 생각을 하지않는 저였지만
> 이 곳은 좀 사람이 너무 없다싶었습니다.
> 주말엔 전혀 다른 풍경일거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
> 나중에 다 돌아보고 나오면서는
> 다음엔 사람이 좀 많더라도 주말에 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래야 아무래도 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접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
> 사실 미술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 미술관 관람 경험도 별로 없는데다
> 그 날 본 전시물들 중 제 심상에 닿는 것들이 별로 없어서
> 아이와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며 작품들을 보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
> 작은 아이는 아예 미술관내 설치미술 작품을 놀이 장소쯤으로 여기는 듯 해서
> 한 쪽 눈으로는 작품을 보며 한 쪽 눈은 작은 아이의 동선을 추적하느라
> 작품에 몰입할 수 없기는 했지만
> 이것이 저의 '무지'를 덮을 수 있는 핑게거리는 못되지 싶습니다.
>
> 음악이건 미술이건 자꾸 듣고 보아야 귀가 뚫리고 눈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
> 음악이나 미술을 소위 중요 과목인 국, 영, 수 과목들의 곁들이 쯤으로 여겼던
> 저의 불행하고 암울했던 청소년 시절의 빈곤한 음악과 미술의 경험들은
> 어른이 되어서 메꾸려해도 쉽게 메꿔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
> 부모의 경험은 아이의 경험까지도 제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면
> 예전의 어느 개그맨처럼
> '내 인생 돌리도~~~~' 하고 외치고 싶기도 합니다.
>
> 제 기억에 가장 남는 작품은
> 한 쪽엔 통나무들을 위로 갈수록 약간씩 좁아지게 쌓아올렸는데
> 둥근 통나무들이 모여 직선 모서리들을 만들고 있고,
> 한 쪽엔 각목들을 위로 갈수록 약간씩 넓어지게 쌓아올렸는데
> 각진 각목들이 모여 곡선 모서리들을 만들고 있는
> 같은 작가의 두 작품이었지만,
>
> 큰 아이는 '두 얼굴'이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깊었다고 합니다.
>
> 아이의 설명에 따르면 한 사람의 목에 두 얼굴이 있는 조각 작품이었다고 하는데
> 저는 기억조차 못하고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
> 물건을 사거나 작품을 감상하거나 할 때
> 저는 대칭요소가 있다든가 해서 뭔가 '안정'되어보이고 '패턴'과 '설명'이 있는 것들을,
> 아이는 뭔가 파격적이고 불안정해보이고(제가 보기에) 설명이 어려운 것들을
> 인상깊게 생각하고 선호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 전시관에서 내려와 아트샵을 둘러보고 아래층 한지 공방으로 갔지만
> 지도 교사외엔 한 사람도 없이 '텅~ ' 비어 있어서
> 빠꼼히 문만 반쯤 열고 동정을 살펴보니
> 어느 공방이든 개관시간내에서는 사람수나 시간에 상관없이
> 늘 활동을 해볼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
> 큰 아이는 한지 부채에 수채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넣는 작업을 선택했습니다.
>
> 작은 아이(44개월)가 하기엔 좀 무리가 아닐까 해서
> 큰 아이에게만 한지 부채를 쥐어주었더니
> 작은 아이의 낯빛이 변하며 불만스러운 얼굴이 되길래
> 부채하나 버린들 뭐 어떻겠냐는 마음으로(하나에 5,000원입니다. ㅠㅠ)
> 작은 아이에게도 부채를 주었는데,
> 그림을 다 그려놓고 보니
> 구상화인 큰 아이 작품보다 추상화인 작은 아이 것이 더 멋져보였습니다.
>
> 아이들이 한지 부채에 그림을 그리는 동안
> 남편과 저는 한지 공방 안을 휘이 둘러보았습니다.
>
> 한지의 원료가 되는 닥나무와
> 닥나무로부터 헝겊처럼 벗겨내어진 껍질들,
> 이것으로부터 뽑아내어진 솜같은 뭉치들,
> 이것들을 물에 풀어 틀망으로 건져올려 말려서
> 종이를 만들기 위한 공정이 이루어지는 작업대등을 둘러보며
>
> 아주 오랜 옛날
> 종이가 되리라고는 꿈도 못꾸며 자랐을 어느 닥나무 하나가 베어지고,
> 베어진 나무가 적당한 크기로 툭툭 잘려지고,
> 처절하게 한 겹 한 겹 벗겨지고,
> 여차저차해서 온 몸이 솜처럼 풀어지어
> 틀망에 한겹으로 누워 서로 부둥켜 안은채 고스란히 말라서
> 한 장의 종이가 되기까지의 과정들과
>
> 그런 과정들을 온전히 '혼자서' 해냈을지도 모를
> 오래전의 어느 '사람'을 상상해보았습니다.
>
> 저는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합니다.
>
> '우리가 너무 '원시'에서 멀리 온 것이 아닐까?
>
> 매일매일
>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을
> 먹고, 입고, 쓰고 있는데
> 시작에서부터 내가 그것들을 얻기까지의 과정들이
> 절대 멈출일도 없고 잘못될 일도 없다는 듯 톱니바퀴처럼 맞물리어
> '처거덕처거덕' 돌아가다
> '툭'하고 마지막 구멍으로 빠져나온 최종 단계의 것들만
> 손에 쥐게 되는,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상들이
> 아주 가끔씩은 알 수 없는 '소외감'과 '불안함'을 느끼게 합니다.
>
> 이런 불안감을 없애려는 이유인지
> 어떤 과정이나 공정이든지 마지막으로 먹거나 입거나 쓰게 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 온전히 저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것 두어가지쯤은 배워보고 싶다는,
> 아니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
>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요?
>
> 지금은 못보지만
> AFKN에서 방송했던 세서미 스트리트를 아이들과 열심히 보았었습니다.
>
> 아이들과 영어공부 좀 해보자고 보기 시작했던 프로였지만
> '영어 공부'외에 다른 '영감'을 얻게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
> 제게 인상깊었던 한 장면은
> 유치원 아이들이 들판에 밀의 씨를 뿌리고
> 밀이 자라고, 다 자란 밀을 아이들 손으로 베어내서
> 아이들 손으로 밀을 갈아서 밀가루를 만들고,
> 만들어진 밀가루를 반죽하여 빵을 만들어 먹는 장면이었습니다.
>
> 몇 달에 걸쳐 이루어졌을 이 작업들이
> 아이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 자신들이 씨뿌리고 키운 밀로 빵을 만들어 먹던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얼굴을 보며
>
>
> 그 때는 너무도 감명깊어서
> 우리 아이들과 함께 저렇게 전 과정을 모두 해볼 수 있는 뭔가를 꼭 찾아내어
> 해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었는데,
>
> 아직까지도 그런 것을 찾아보지도 못한채
> 누군가에 의해서 다 만들어진 것들을 먹고 입고 쓰기에도 바쁜
> 초라한 현대인의 일상에서 한순간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
> 이런 '영감'을 다시한번 일깨웠던 것은
> 쑥쑥에서도 얼마전 그림책과 함께 공구했던
> Thomas depaola의- 제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작품인
> "Charlie Needs a Cloak"이라는 비디오 영어 동화였습니다.
>
>

>
> 나래이터의 설명외에 대사도 없이
> 이탈리아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음악이 참 인상적인,
> 너무나도 저를 매료시킨 비디오였습니다.
>
> 아주 낡은 망토를 걸치고 있던 양치기 소년 챨리가
> 자기가 키우던 양의 털을 깍아서 양잿물에 빨고
> 빗으로 빗어 정리한 후 털실로 만들고
> 붉은 색 열매를 따서 털실을 빨갛게 물들이고
> 몇날 며칠을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짜서
> 또 몇날 며칠동안 옷감을 재단하고 바느질을 하여
> 드디어 빨간 새 망토를 입은 양치기 소년이 됩니다.
>
> 양털을 깎는 봄부터 염색을 하는 여름동안을 거쳐
> 가을내 옷감을 짜고 겨울내 바느질하여
> ( 털을 깍였던 양의 털은 그동안 어느새 또 자라고)
> 드디어 새로운 봄에 빨간 새 망토를 입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챨리,
>
> 늘 무언가를 소비하기만 하는 최종 소비자인 저로서는
> 그 모든 과정을 온전히 '혼자' 해낸 챨리의
> 그 '희열'이 무척이나 동경스러웠습니다.
>
> 물건을 소중히 여기고 아껴써야 한다고,
> 버리는 음식물이 없도록 싹싹 긁어먹어야 한다고,
>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고 싶어질 때
> 여러 계절과 지난한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챨리의 새 망토 이야기는
> 엄마의 잔소리를 우아하게 대신해 줄 수도 있습니다.
>
>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있는 동안
> 아이들은 자기가 그림을 그려넣은 커다란 한지 부채를 들고
> 까르르 까르르 웃으며
> 엄마 아빠에게 휘이 휘이 부채를 부쳐주었습니다.
>
> 궁녀들이 큰 부채들고 부쳐주었을
> 옛 임금과 왕비가 하나도 부럽지않았습니다.
>
>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나들이는 예정보다 처지기 마련이어서
> 별로 한 일도 없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 (사전 준비나 정보가 부실했다는 것이 더 큰 이유겠지요)
> 한지 공방을 지나 오솔길 산책로를 따라가
> 판화나 염색 작업을 할 수 있는 공방과 도자기 공방을 둘러보며
>
> 다음에 다시 방문 할 때는
> 한지를 직접 만드는 공정도 해보고
> 도자기도 빚고 그림도 그리고 채색도 하여 말리고 굽는 과정도 해보리라 마음먹었습니
> 다.
>
> 공방들을 휘이 둘러보고 작은 산등성이를 올라
> 커다란 차양이 쳐진 피크닉장에서 음료수를 마시자며 잠시 쉬었습니다.
>
> 큰 아이는 탄산음료라는 이유로 평소에 엄마가 안 사주는 사이다를,
> 아토피 때문에 먹거리에 제한이 많은 작은 아이는 게중 괜찮아보이는 오렌지 쥬스를,
> 아이들 아빠는 제가 제일 싫어하는 파워 에이드 마운틴 블라스트를,
> 각각 사들고 왔습니다.
> (색깔이 꼭 황산구리같은 파워에이드 마운틴 블라스트와 팬돌이 블루,
> 색깔이 꼭 염화구리같은 파워에이드 타이달 블라스트 같은 음료수들은
> 제 취향으로는 아무리 갈증이 나도 도무지 마실 마음이 들지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
> '물'외에 다른 색깔있는 음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는
> 왜 생수를 파는 자동판매기는 없는 것인지가 늘 불만입니다.
>
> 사람 다니는 곳에 물을 파는 곳이 없을리가 없다고 굳게 믿고
> 피크닉장 옆의 바탕골 극장 건물내의 매점에서
> 생수를 찾아 사들고 와서 마시며
>
> 산들거리는 바람과 한쪽 끝에 세워진 솟대와
> 솟대를 더욱 솟대처럼 보이게 하는 파란 하늘을 감상하고 있는데,
>
>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아빠 뒤를
> 두 딸이 아기 염소들처럼 쫄쫄 따라갑니다.
>
> 낮동안 쨍쨍 쏟아지던 햇빛은
> 이제 서쪽으로 기울며 온화하고 자상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
> 극장과 아트 갤러리 건물 사이로 보이는 파란 조각 하늘과
>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나뭇잎들,
> 먼 발치에서는 무엇인지 모를 나무로 깍아만든 조각품들,
> 그 사이로 역광을 받으며
> 앞서가는 아빠와 그 뒤를 쫄쫄 따라가는 아이들의 실루엣은
> 그대로 '그림'이었습니다.
>
> '아빠'와 함께 하는 딸들은 얼마나 든든할까요.
>
> 저는 말할 수 없는 충만함으로
> 그 장면을 제 마음속에 새겨두었습니다.
>
> 디지털 카메라를 회사에 놔두고 챙겨오지 않은 남편과
> 미리 일러두지 못한 저자신을 탓하면서도
> (저희 부부는 늘 이렇습니다)
> 한편으로는 저의 신통챦은 촬영기술로
> 그 때 제 망막에 새겨진 그 '그림' 이상의 것은
> 나오지 않았을거라고 믿어졌습니다.
>
> 샌드위치 한쪽으로 대충 점심을 때운 남편과 큰 아이 때문에
> 좀 이른 저녁을 먹어야했습니다.
>
> '바탕골'을 나와 양평대교 쪽으로 조금 달리니
> 건물 외관은 이집트풍인데
> 간판에는 '퓨전 한정식'이라고 써있어서
> 분위기는 좀 애매했지만 가족의 입맛을 골고루 만족시켜줄 같은
> 식당 한 곳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
> 큰 아이는 피라미드 건물에 왠 한정식이냐며 계속 궁시렁대더니
> 동생의 아토피 때문에 덩달아 못 먹어왔던 스파게티를
> 아빠에게 애원했습니다.
>
> 아이들은 약한 부분을 참 잘도 압니다.
>
> 못 먹게 하는 엄마 때문에
> 자장면과 스파게티에 대한 큰 아이의 열망은 점점 더 간절한 것으로 되어서
> 이모에게는 자장면을 아빠에게는 스파게티를 애원하곤 합니다.
>
> 가격대비 만족도가 그럭저럭 괜찮다고 평가하며 식사를 마쳐갈 즈음
> 하룻밤을 양평에서 지내기로 했던 남편이 좀 미안한 표정으로
> "미안한데, 사무실로 좀 들어가봐야겠는데.......
> 아무래도 일이 좀 많이 밀려서......" 하는데,
> 저도 실망이 컸지만 큰 아이의 실망이 대단했습니다.
>
> 남편의 약속위반을 야속해하면서도 어쩌지못하는 저와 달리
> 큰 아이는 실제적인 저지행동에 들어갔습니다.
>
> 아빠에게 맹비난을 퍼붓더니
> 온 가족의 벗어놓은 신발을 어디론가 숨겨버린 것입니다.
>
> 신발을 숨겨놓고 씩씩대는 큰 아이나
> 미안함과 난처함으로 어정쩡해진 남편이나
> 왜그런지 안스럽기만 했습니다.
>
> 결국 아빠가 아이에게 져서
> 다음 날 아침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협상을 하고,
> 식당에서 얻은 자동차 극장 할인 쿠폰에 있는 극장의 위치를 확인한 뒤
> 우리 가족이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
> 배고플 때는 식당만 보이더니
> 잘 곳을 찾으려니 숙박업소들만 보입니다.
>
> 이 주변에 소위 '러브 호텔'들이 많다던데
> 러브 호텔과 러브 호텔이 아닌 곳은 어떻게 확실하게 구별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
> 저녁식사를 했던 식당에서 양평대교를 지나기 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 힐 하우스라는 호텔만이 확실히 러브호텔이 아닐 것으로 보였습니다.
>
> 옆에 딸린 정원이 너무나도 예뻐서
> 아침에 산책할 욕심도 나고,
> 아이들 데리고 더 멀리 잘 곳을 찾으러 다니기도 무리인 듯 해서
> 그곳에서 큰 아이가 쟁취한
> '아빠와의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
> 객실로 들어서자
> 컨트롤 박스를 이리저리 조작해보는 등
> 아이들이 새로운 장소를 탐색하느라
> 노트북으로 계속 작업하는 아빠에 대한 방해공작도 미미했습니다.
>
> 이부자리를 깔아놓으면 늘 그러하듯
> 아이들은 까르륵 끼르륵 원없이 까불어댑니다.
>
> 하지만 그 시간은 평소보다 짧아서
> 큰 아이는 금새 골아 떨어졌고
> 유치원의 하루를 모두 리바이벌하고서야 잠이 드는 작은 아이도
> 흥얼거리던 노래소리가 잦아들더니 잠이 들었습니다.
>
> 아이들이 잠든 사이에
> 남편과 저는 살짝 빠져나와
> 아까 익혀 두었던 자동차( Drive in) 극장인 양평극장에서
> 영화 '집으로'를 보았습니다.
> (강변에 스크린 뒷면의 양평극장이라는 글씨는 큼지막하게 보이지만,
> 정작 들어가는 입구는 놓치기 쉽습니다)
>
> 아이들은 일전에 할머니 댁에 갔을 때 이미 본 영화였고
> 밤늦은 시간이기도 해서
> 아이들이 잠든 틈을 타서 부부끼리 영화를 보려니
> 마음 한구석 찜찜한 불안감은 있었습니다.
>
> 작은 아이를 낳고부터
> 우리 부부의 문화생활은 좀 한심해져서
> '쉬리'와 '타잔'을 구민회관에서 보는 수준이 되어버렸습니다.
>
> 아이들과 함께 보았다면
> 아이들의 표정도 살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눠가며 볼 수 있었을텐데
> 그점이 참 아쉬웠습니다.
>
> 자동차 극장은 자동차안에서 영화를 보기 때문에
> 어린 아이들과 영화를 볼 때 다른 사람 눈치 볼 일 없어서 좋을 것 같기는 한데,
> 노천 스크린이라 저녁때 이후에야 볼 수 있다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
> 저는 개인적으로 외화보다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데다
> 제가 좋아하는 깜찍한 한국 영화인 '미술관 옆 동물원' 감독의 작품이라
> 꼭 봐야겠다고 별러왔으면서도 정작 실천력이 부족한 탓에
> 이렇게 시골 자동차 극장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
>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
> 웃어야 할 것 같은 장면에서도 그냥 눈물만 나옵니다.
>
> 먼저 영화를 봤던 아이들에게서
> 이런 '눈물'의 흔적은 볼 수 없었는데 말입니다.
> ( 9살, 5살 아이들에겐 당연한 일일까요?)
>
> 당연한 일이겠지만
> 우리 큰 아이는 상우( 주인공 남자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 저는 상우 외할머니를 동일시한 탓이겠지요.
>
> 손자에게만 자장면을 먹이고
> 허리춤을 뒤져 몽땅 꺼낸 천원짜리, 백원짜리들을
> 손바닥 가득 종업원에게 펼쳐보이던 할머니,
>
> 손자가 심술부리며 먼저 타고간 버스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서
> 먼지 풀풀 날리며 회차하는 버스 뒤로 먼지속에 모습을 보이시던 할머니,
>
> 마지막에 손자를 떠나보내고 돌쌓인 산등성 길을 무상하게 올라가며
> 점점 작아지던 할머니.
>
>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와도
> 늘 저희 엄마와 다투셨던 기억밖에 없는 친할머니와도
> 살가운 '정'을 나눠본 기억도 없는데,
> 말못하시는 상우의 할머니께서 미안하다는 뜻으로
> 가슴께를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실 때마다
> 저도 자꾸 가슴이 쓸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
>
> 영화를 다 보고나서 훌쩍거리며
> 마찬가지로 훌쩍거리고 있는 남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
> "아이들도 이런거 알까?"
>
> 남편은 대답합니다.
>
> " 그럼, 그 이상도 알지. 말로 표현 못할 뿐이지."
>
> 저는 늘 '......일까? ...할까?'하는 '의문'을 품으며 '의심'하곤 하는데
> 아이들 아빠는 무관심의 포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 '그럼....... 당연히 .......하지. 그 이상으로 더 ........하지.'라며
> '믿음'과 '여유'를 가집니다.
>
> 너무 바쁜 탓에 무늬만 아빠라며 비난하면서도
> 제가 우리 아이들의 '아빠'를 자꾸만 아이들 곁에 끌어다 놓는 이유가
> 바로 이것입니다.
>
> 영화를 보고 돌아와 보니
> 나란히 뉘어놓았던 아이들이 아주 어려운 자세로 뒤엉켜
> 잘도 자고 있었습니다.
>
> 남편은
> " 어때요, 이정도면 오늘 아빠 노릇 톡톡히 한거지요?" 했고
>
> 저는
> "글세~ 중요한건 일회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 조금씩 쌓아가는 '일상'이라니까요~" 했습니다.
>
> 세상의 모든 아빠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
> "아이들과 '일상'을 함께 하세요" 라고.
>

쑥쑥몰

> 




 



'가능해서'탈이지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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