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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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가 어느 정도 자리잡은 다음 영어를 시작할 경우 나타나는 대표적 현상 중 하나가 바로 '이건 영어로 뭐야? 저건 영어로 뭐에요?' 하고 묻는 건가 봅니다.
저도 한동안 질문 공세에 시달렸었거든요.
아마도 아빠가 사전 찾는 걸 봤으니 그 다음엔 아빠가 모른다고 하면 사전 갖다주며 찾아서 가르쳐 달라고 할 겁니다. (저희집이 그랬거든요. 저희집 둘째가 96년 9월생이고 작년부터 영어를 시작했거든요. 요즘은 비디오 보다가 귀에 들리는 문장을 물어봅니다. 거의 돌지경입니다.)
답글은 처음 달지만 항상 승호 아빠 글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어떤 분인지 참 궁금하네요.
승호아빠님의 글입니다.
> 새벽에 나서는데 다가오는 공기가 점점 차게 느껴집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 10월도 오늘을 포함해서 3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다들, 가을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지난 1편(아들과 함께 영어를 13편)에 이어 식탁에서 있었던 이야기 더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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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날 저녁 식사를 하는데 이번에는 승호 엄마가 불고기를 했습니다. 불고기에는 송이버섯도 들어 있었구요. 그리고, 감자 볶음도 있었습니다. 감자 볶음은 제가 무척 좋아하는 반찬입니다. 초등학교 때 도시락 반찬으로 하도 감자 볶음만 싸갔더니 그 걸 아직도 기억하는 친구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승호 엄마는 자연스럽게 제 어머니로부터 감자 볶음을 안 태우고 잘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그 결과 제 어머니가 만드시는 것과 맛이 거의 똑같은 감자 볶음을 해내고 있습니다. 밥에 물을 말아서 감자 볶음하고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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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호도 감자볶음을 좋아합니다. 승호는 원래부터 식성이 신토불이입니다. 된장국을 엄청 잘 먹고 호박무침을 좋아하며 감자, 옥수수, 물에 씻은 배추김치, 물김치, 깻잎 등을 다 잘 먹습니다. 수퍼에 가서 "엄마, 명란젓 사줘요!" 하고 외치는 바람에 주위에서 돈까스 팔던 아주머니가 돈까스 사달라는 아이는 많지만 명란젓 사달라는 아이는 처음 봤다고 야단이었답니다. 반면 빵이나 피자 같은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키 안 클까봐 걱정입니다. 저랑 승호 엄마랑 둘 다 키가 별로 안 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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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호가 버섯을 먹으려고 하면서 순간 멈칫하는 것을 예리하게 잡아냈습니다.
> '아.. 영어로 말하고 싶은데 까먹은 거로군' 그런 생각이 들데요. 나만의 착각인가요?
> "It's a mushroom" 제가 가려운 곳을 긁어 주었지요.
> 승호는 아하 하는 표정을 짓고 가볍게 따라 합니다. 오늘은 옆에서 승호 엄마도 거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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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감자도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 "It's a potato"
> 그런데 제가 potato 발음을 너무 굴렸던 것일까요? 승호가 잘 못 알아 듣습니다. 잠깐 고개를 갸웃하더니 큰 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 "팜 포테이토, 팜 포테이토, 포테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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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지 아시겠어요? 위씽 트레인에 나오는 감자가 부르는 노래입니다(승호가 위씽 트레인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제가 어느 분 글의 리플에다가 썼었지요. 위씽 트레인 이야기 조만간 해드리려고 합니다).
> 큭큭.. 기특합니다. 그런데 팜은 뭐냐구요? 승호가 잘 못 들은 겁니다. 승호 귀에는 그렇게 들렸나 봐요. 원래는 'Brown potato'입니다. 빨리 발음되는 브라운이 승호에게는 팜으로 들렸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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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그 좋아하는 디지몬 노래도 승호가 부르는 것을 잘 들어보면 틀린 부분이 많습니다. 승호가 잘 모르는 단어를 들리는 데로 따라 하는 것인데 그 발음이 틀린 경우가 있는 것이지요. 오랫동안 들어 온 우리말도 그런 형편인데 영어를 제대로 발음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요. 아니, 브라운은 팜 비슷하게 발음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승호는 들은 대로 발음했을 뿐이니까요. 하여간 그 순간 그 노래를 생각해내었다는 것이 신통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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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 다음부터 고역이었습니다.
> 승호가 식탁 위에 있는 것들이 영어로 뭔지 죄다 물어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 밥, 상추, 깻잎, 고추장, 김, 김치 등등...
> 저도 승호 엄마도 잘 모르는 것들 태반입니다. 도대체 채소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생각이 안나더라구요. 급기야 승호 엄마가 서재로 뛰어 들어가 한영 사전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조그만 사전이기에 깻잎 같은 단어는 찾아도 없더군요. 한편, 김치는 우리나라 것이기 때문에 외국인들도 김치라고 말한다고 설명하느라 힘들었습니다. 승호는 '아빠도 모르는 것이 있네' 하고 의아해합니다.
> "인석아.. 아빠는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아.. 그럴 때 보라고 사전이 있는 거야..."
> 그러면서 열심히 사전을 뒤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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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건 제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전, 단어 자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문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려 했거든요. 그런데, '이건 영어로 뭐야?' 하는 식의 질문이 이어지니까 조금 괴롭던데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지 조금 생각해보아야 겠습니다. 이 나이에 보카 33000 같은 것 다시 보아야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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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호 아빠 : [email protected]
> (승호는 97년 3월생 남자아이로 01년 9월초부터 집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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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임) 10월 둘째 주 일요일에 초등학교 총 동문 체육대회에 갔었습니다. 제가 나온 초등학교는 중간에 이사를 했기 때문에 비록 제가 다니던 교정은 아니었지만 졸업한지 20여년 만에 모교 운동장에서 뛰고 교가도 부르며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저 보다도 더 좋아한 사람은 다름 아닌 승호였습니다. 승호는 운동회하는 것 처음 보잖아요.. 그래서, 신이 났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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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요, 승호가 엄마한테 와서 이렇게 자랑했다는군요. "엄마, 아까 아빠 선생님이 나 안아 주셨다!" 저의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연락이 되어서 오셨는데 정말로 할아버지가 되셨더군요. 그런데도 제 얼굴을 똑바로 기억하시며 넌 얼굴 형이 하나도 안 변해서 금방 알아보겠다고 반가와하셨죠. 승호를 선생님께 소개드렸더니 안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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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미안했던 사람은 승호 엄마였습니다. 저야 제 모교에서 동창들이랑 노니까 좋지만 승호 엄마는 하루종일 심심했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제 생각에는 남편들 동문 체육대회 있으면 아이 데리고 꼭 참석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런 모임에 참석함으로써 아이들이 얻는 것이 생각 보다 큰 것 같아요. 아님, 엄마들 동창 체육 대회에 아이 볼 의무를 남편에게 부여하고 데리고 나가세요. 그리고, 마음 껏 피구도 하고 발야구도 하고 굳세어진 팔로 줄다리기도 하세요. 아이가 좋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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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개월 이후][RE] 승호 아빠 한동안 질문 공세 땜에 몸살 나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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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주명맘 등록일 2001-10-29 11:00 조회수 1,6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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