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박샘이 깔아 준 멍석에 털썩 주저앉아 내 앞에 놓인 이야기보따리를 뒤적입니다.
오늘은 어떤 재료가 손에 잡힐는지...
앗, ‘명주바지와 삼베바지’가 걸려들었네요!^^
‘명주바지 고르려다 삼베바지 고른다, 적당히 하렴~’
제 친정할머니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세월이 꽤 흘렀건만, 여전히 귓전에 맴도는 듯합니다.
언제 들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제가 혼인적령기가 되어 배우자를 고르는 데 워낙 까탈을 부리니,
보다 못한 할머니께서 제게 주신 충고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선택의 순간을 맞게 됩니다. 어쩌면 매순간이 선택의 연속인지도 모르지요. 하다못해 밥 한 숟가락을 먹어도 밥상위에 놓인 반찬을 골라야 하니까요.
어떤 선택이냐에 따라 때론 머리카락이 쭈뼛 서기도 하지요. 과연 최선일까?
나의 분신인 ‘내 아이’를 위한 선택은 어떤가요?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 아이를 ‘최고의 걸작’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은 어느 부모에게나 다 마찬가지니까요. 최고의 환경과 조건을 제공하기 위한 선택!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엄마들의 한숨소리가 들립니다.
제 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수학에 위기를 맞게 되었지요.
사실, 저는 선행학습을 그다지 지지하지 않는 입장이라 학교공부만 잘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아이가 갑자기 어려워진 수학이 싫다는 거예요.
아직 마라톤은 시작도 안했는데, 초장에 주저앉겠다고 하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위기탈출을 위해 방학동안 보충을 하기로 결정하고 학원들을 수소문했습니다. 내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었죠!
주변에 유명하다는 수학학원들을 방문했고, 마지막으로 소수그룹으로 운영한다는 수학공부방을 추천받아 찾게 되었습니다. 마침 동갑내기 아들의 수학학원을 바꿔야 한다는 친구가 있어서 함께 갔습니다.
여선생님 한 분이 중등, 고등생을 가르치는 곳이었는데, 각기 다른 학년의 학생들을 동시에 그것도 한 방에서 지도한다니 몹시 의아했습니다.
선생님이란 분은 가닥가닥 염색한 긴 생머리에 노란색 야구캡을 눌러쓰고 허벅지와 무릎이 내보이는 너덜너덜 찢어진 청바지 차림에, 길게 기른 손톱은 마치 무지개를 연상시키듯, 온갖 색깔의 매니큐어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길게 붙인 속눈썹은 눈을 깜빡거릴 때 마다 주체하기 어려운 듯 무거워 보였고요.
‘헉! 이 여자가 수학선생님??!!!’
아마 날씨라도 궂었으면 ‘야구모자 쓴 마녀’로 보였을 지도 모릅니다.
약 30여 분간의 상담 후,
딱히 첫인상이 내 타입은 아니었지만,
한참 여자로서의 호기심이 발동하던 시기의 우리 아이한테는 충분히 매력이 있을 법한 그녀에게 딸아이를 맡기기로 결심했습니다. 탄탄한 경력과 수학에 대한 열정, 무엇보다도 그녀만의 카리스마가 느껴졌습니다.
이 선생님이라면 우리 아이의 수학을 잡아 줄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함께 갔던 제 친구는 당연히 고개를 저었지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 딸아이는 지금 ‘공과대학 4학년생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배움’이란 무엇보다도 본인에게 흥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동기부여도 되고,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지요. 철들기 전까지는 ‘자기주도 학습’을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만약 내 아이가 아직 나이도 어린데 ‘자기주도 학습’을 잘 하고 있다면, 어머니께서 전생에 우주를 구하신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우주가 어물전의 생선처럼 죽~ 널려 있는 것이 아니니 내 차례까지 왔었겠습니까?
내가 전생에 우주를 구하지 못했음을 탓할 수밖에요ㅠ.ㅠ
어떤 선택이든 ‘최고’는 없습니다. ‘최선’이 있을 뿐.
선택하기 이전에 충분히 고민하고 신중했다면, 그 결정을 믿고 지켜보는 건 어떨지요?
특히 그것이 '언어 교육'이라면 ‘기다림의 미학’은 반드시 동행해야 할 ‘짝’입니다.
‘명주바지’ 고르겠다고 이곳저곳으로 아이를 전전시키다 보면 결국엔 ‘삼베바지’를 고르게 될지 모릅니다. 엄마들의 성급함과 조바심은 언어교육에 있어서는 경계해야 할 걸림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나마 어렵사리 쌓이고 있는 내 아이의 실력을
‘삼베바지 방귀 새듯’ 술~술~ 빠져나가게 해서는 안 되겠지요?^.~

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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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잘 읽었어요.
이제 초등학교 갓 입학한 녀석과 신경전을 하고 있지요.
길게 보며 가자 늘 마음 다잡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