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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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섭섭합니다. 드디어 오늘 오전에 근 2년간 해오던 프로젝트의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고 사실상 손을 털었습니다. 지난 2주간은 정말 정신이 없었습니다.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는 저는 보통 출퇴근 길 전철간에서 짬을 내어 독서를 하는 편인데 너무 바쁘고 지치니까 그럴 여력이 안 생기더군요. 그냥 눈감고 쉬기 바빴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 반월차를 내고 일찍 집에 들어와 쉬고 있습니다. 지금 승호는 잡니다.
요즘 유행하는 감기에 걸려 승호가 아주 몸이 좋지 않습니다. 감기약을 잘 못 먹었는지 온
몸에 두드러기까지 나는 바람에 항히스타민제까지 먹였습니다. 오늘은 아주 드물게도 부자
끼리 저녁식사를 해야할 상황이네요. 식탁과 냉장고를 보니 승호 엄마가 아침에 나가기 전,
그 바쁜 와중에도 카레랑 다 만들어놓고 어떻게 데워먹으라는 메모까지 남겨 놓았군요. 하
여간 수퍼 우먼입니다. 승호 병간호와 자기 일 때문에 이틀 동안 수면 시간이 3-4시간도 안
되었을텐데 말이지요. 하여간 승호가 자는 덕에 이 글을 마무리해서 올립니다. 오늘 마무리
많이 합니다. (^_^)
10월 21일 일요일이었죠. 그 날은 저와 승호랑 하루 종일 함께 돌아다니느라고 무척 바빴습
니다. 후배가 자기 아들 돌잔치에 초대를 해서 거기를 가보아야 했는데 승호 엄마 역시 일
이 있어서 나가봐야 했거든요. 결국은 승호를 누군가가 데리고 가야 했는데 그 선택권이 승
호에게 주어졌죠. 승호는 돌잔치에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승호는 가끔 자기 돌잔치 비디오
를 볼 정도로 돌잔치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데리고 나섰습니다.
돌잔치가 뷔페 식당에서 열렸는데 승호는 소면을 세 그릇 먹고 버섯돌이답게 버섯무침만 먹
더니 다른 비싼 것들은 잘 안먹더라구요. 저 역시 뷔페 식당에 가면 다른 것 별로 안 먹고
죽이랑 초밥만 먹고 오거든요? 다른 음식들이 그다지 맛이 없더라구요. 하여간 식당에서 1
시간 30분 정도 있으니까 승호가 몸을 비비 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친구와 후배들에게
인사하고 먼저 그 곳을 떴습니다.
그 당시에 승호가 이미 감기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 때 완전히 낫지 않았다가 이번에 더 심
해진 것 같습니다. 제가 에어쇼에 가지 못한 것은 돌잔치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승
호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였습니다. 그래서, 전 조심스럽게 승호에게 의사타진을 했지요.
아까 집에서 나올 때 돌아오면서 서점에 들러 책을 구경하기로 했었는데 들렀다 갈 테냐 아
니면 집으로 곧장 갈 테냐 하구요. 그러면서 아이 머리도 만져 보았습니다. 오전에 먹은 약
기운 탓인지 열은 없더라구요. 물론 힘이 넘쳐 보이지도 않았지만요. 승호는 서점에 가겠다
고 했습니다.
이제 어느 곳으로 가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 곳에서(서울대입구역)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서점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강남역에 있는 킴앤존슨 서점이요. 선릉역 근처로 매장을 확
장했다는 스토리하우스 서점도 생각났지만 거기는 위치가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아 다음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5살이나 된 녀석을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안아 주었습니다. 아무
래도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까요. 아마 강남역 5번 출구 였을 겁니다. 그리로 나가는데 승호
가 왜 번호가 써 있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제가 땅 밑에 있으면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니까
알기 쉬우라고 써 놓았기도 하고 친구 만날 때 몇 번 출구에서 만나자 하고 말하면 쉽지 않
겠느냐고 이야기해주었지요.
서점은 생각보다 쉽게 찾았습니다.
매장으로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마침 외국 여성 둘이 함께 탔거든요. 그 둘은 1층에
서 3층으로 올라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정말 말을 많이 하더군요. 얼른 승호를 쳐다 보았습
니다. 승호는 그 둘 뒤에 서서 빙긋 웃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외국인이 영어를 하는 것을 이
렇게 가까이서 보고 듣는 것은 처음 일 것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승호가 느낀 점이 많았
을 겁니다.
"승호야.. 영어 한다" 제가 귓속말을 하니까 승호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매장에 들어서니까 정말로 책이 많았습니다. 승호에게 마음대로 둘러 보라고 이야기하고는
승호 뒤를 따라다니면서 저도 구경을 했습니다. 일단 교보문고와 같이 아이를 잃어버릴 가
능성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 마음이 편하더군요. 아는 책들이 보이면 반가왔지만 그건
가뭄에 콩 나는 듯 했고 모르는 책들이 훨씬 많았죠. 승호는 집에 있는 우리말 책의 원서들
이 나오면 저를 불러서 보여주곤 했습니다.
한 번은 승호가 흥분한 목소리로 불러서 가보았더니 얼마 전 동네 도서 대여점에서 빌려 보
았던 에릭 칼의 'The very busy spider'가 있더군요(덧붙임에 보충 설명이 있습니다). 승호
는 "spider, spider" 하면서 아는 체를 합니다. 그러더니, "very hungry spider" 라고 하기도
하고 "caterpillar" 라고도 하면서 극도의 혼란 상태를 보이더군요. 완전 mixed up 승호였습
니다. 껄껄.. 그도 그럴 것이 제목도 비슷하고 같은 작가가 그린 작품이니까 혼돈될 만도 하
지요.
저는 서점에 들어가면서 이미 승호에게 못을 박아 놓았습니다. '오늘 살 수 있는 책은 두 권
이다. 그러니 잘 골라야 한다' 이렇게 말이지요. 제가 염두에 두고 온 책이 있긴 했는데 그
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고 우선 승호가 무엇을 고르는지 살펴 보았습니다.
승호는 확실히 아이였습니다. 승호가 고른 첫 번째 책을 보면 알지요. 상어 인형이 끈으로
묶여 있는 상어 그림책을 고르더군요. 제가 보기에는 책의 그림이나 내용 보다도 오로지 그
인형 때문에 고른 것 같았습니다. 승호가 처음에는 그 책 뿐만 아니라 똑 같은 형태의 문어
인형이 달린 문어 그림책도 골랐는데 제가 비슷한 책은 상어 책 다 읽고 나서 나중에 사자
하고 제안을 했지요. 얼핏 보니 이 상어 책은 그림이나 색상은 완전히 애들 그림 같은데 문
장은 조금 어려웠습니다. 생소한 단어가 많더군요.
두 번째 책은 모리스 센닥의 'Where the wild things are' 였습니다. 이 책은 워낙 유명하니
까 다 아시죠? 승호랑 저는 이 책을 누나 집에 놀러 갔다가 한글판으로 보았는데 괴물을 좋
아하는 승호는 자연스럽게 이 책이 좋다고 했었습니다. 그 때 제가 "그럼, 승호야 이 책은
영어로 된 걸로 사 줄게.." 하고 은근슬쩍 이야기 했었거든요. 승호도 이 책을 기억하고 있
었는지 매장에서 보자 손에 들고 봅니다.
제가 사고 싶었던 책은 전에 말씀 드렸던 Leo Lionni의 'Little Blue And Little Yellow'였는
데 보이지 않아서 물어 보았더니 절판되었다고 하네요(이 책에 대해서는 아들과 함께 영어
를 14편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한 번 작전 해보려고 했는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꼭 필요하면
누나한테 빌리던지 해야겠습니다.
지하철 타고 오는데 승호는 상어 인형 달린 책을 가지고 놀면서 참 좋아하더군요. 모리스
센닥 책도 좋아하구요.
그 날 저녁 감기 기운 탓인지 승호가 일찍 잠든 사이에 저와 승호 엄마는 승호의 교육 문제
를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내년이면 6살이 되는 승호를 유치원에 보내야
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서 한글 공부 이야기도 했지요. 승호 엄마는 저에
게 아이가 듣는 자리에서 자꾸 한글 몰라도 된다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주문했고 저는 거꾸
로 승호 엄마에게 은근슬쩍 승호에게 아직도 한글을 모르니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주문했지요.
그러다가 어린이집 아이들이 다 자기 이름을 읽고 쓰게 된다면 승호에게 이름 쓰는 것만 우
선 가르쳐주자고 제가 제안했습니다. 한글은 때가 되면 순식간에 배울 수 있고 일찍 배워서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승호 엄마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다 하는데 승호만 못하면 자신감 차원에서 승호에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죠.. 그 말도 맞지요. 하지만, 제 생각은 만약
주위의 친구들이 모두 한글을 쓰고 읽게 된다면 승호 스스로 배우려 할 것이라는 의견이었
지요.
그런데, 어이없게도 승호가 갑자기 자기 이름을 쓰더군요.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한지 며칠 지
나지 않은 11월 2일쯤 부터요. 아직은 글자가 아닌 그림으로 쓰는 것 같긴 한데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린이집에서 지내는데 아무 지장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린이집에서는 아
이들이 종이에다가 뭘 그리거나 하면 그 위에다가 자기 이름을 쓰게 하나 봅니다. 이름을
쓰지 못하는 아이는 선생님이 대신 써주시구요. 그게 아마도 동기부여가 된 듯 합니다. 스케
치북에다가 잔뜩 써놓은 승호의 이름. 사진 찍어서 현상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승호 엄마의 또 다른 의견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만 시킬 수는 없다는 겁니다. 승호
엄마가 지금도 장모님께 감사히 여기는 것은 자기가 어렸을 때 피아노 치기 싫어하는데도
장모님께서 이 정도까지는 쳐야 한다고 억지로 시켰었는데 그게 지금 와서 너무 고맙다는
겁니다. 그 때 배운 피아노 덕분에 나중에 시간 나면 한 번 해보고 싶은 재즈 피아노에 대
한 꿈을 계속 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승호 엄마는 참 좋겠습니다. 전 어렸을 때 피아노 치기 싫다고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누나랑
남동생은 다 피아노 학원에 다녔는데 저만 근처에도 못 갔습니다. 집에서 혼자 뚱땅 거렸던
슬픈 시절이 생각나는군요. 하여간 다녀 본 학원이 별로 없군요. 과외마저도 무서운 대통령
이 나와서 "그거 금지해!" 하는 바람에 한 6개월 하다가 그만 두었지요. 저희 부모님께서는
그 무서운 대통령을 그 면에서는 고마워하십니다. 그 때 안 그랬으면 3명의 애들 과외시키
느라고 집안 기둥이 다 뽑혔을텐데 얼마나 다행이냐고 하시면서요. 신기하게도 저의 형제들
이 중/고교 학창 시절을 다 보내고 나니까 과외 금지가 풀리더군요. 끌끌..
하여간 이 이야기가 왜 나왔냐 하면 승호 엄마는 때가 되면 승호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싶어하거든요. 그런데, 승호는 바이올린이 싫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승호는
초등학교 1학년인 이종 사촌 형이 바이올린 켜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있는데 어렵게 느꼈나
봅니다). 그래서, 제가 승호 엄마에게 바이올린 싫다는데 음악 공부를 정 시키고 싶으면 피
아노를 시킬 생각하지 그러냐고 말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 겁니다. 승호는 피아노는 좋다고
했거든요.
승호 엄마는 승호가 아직 피아노를 안 배워봐서 그렇지 배우다가 어렵다는 것을 알면 그만
치려고 할텐데 그 때도 아이가 싫다고 하면 그만 두라고 할거냐는 이야기입니다. 들어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네요. 사실 전에 제가 승호에게 넌지시 물었거든요.
"승호야.. 넌 왜 바이올린이 싫고 피아노가 좋아?"
승호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쉽잖아.. 이렇게 두드리기만 하면 되니까..."
이 대답에서 승호 엄마의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저도 느끼긴 했습니다.
이번에는 승호 그림 이야기로 주제가 넘어 갔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승호가 다른 것
은 다 좋은데 그림이 좀 늦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선생님들은 아이 부모에게 웬만하면 다 좋
다고 말씀하실텐데 그 정도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
습니다. 제가 봐도 승호는 그림이 참 늦어서 아직도 구체적인 것들을 잘 그리지 못합니다.
3,4 살 아이 보다도 못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걸 보고 있는 승호 엄마의 속이 상할 만도
합니다(승호 엄마는 패션 일러스트레이션 과목을 주로 강의해 왔거든요). 대신 저는 속으로
뜨끔 했구요. 전 그림 무지 못 그리거든요. 아무래도 승호가 저를 닮은 것 같습니다.
위기를 넘기기 위해 제가 그랬죠.
"조급해하지 말자.. 승호가 엄마가 그림 그리고 옷 만드는 것 보면서 컸는데 지금 당장 잘
표현은 못해도 그게 다 속으로 쌓이고 있는 중 일거야.. 끝까지 그림을 잘 못 그릴 수도 있
지만 감성은 형성될 거야.."
그러자, 승호 엄마가 그럽니다.
"그래.. 그럼 시간 날 때마다 인사동 같은 곳에도 데리고 가서 다양한 것들을 좀 보여 주어
야겠다"
이런 식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하다가 12시 넘어서야 전 잠자리에 들었구요.. 승
호 엄마는 잤는지 안 잤는지 모르겠습니다. 할 일이 많다고 했거든요.
교육이란 것, 참 힘든 종합 예술이자 엔지니어링 작업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부모들이 바라는 것.. 그 사이에 교묘한 절충(trade off)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승호 아빠 : [email protected]
(승호는 97년 3월생 남자아이로 01년 9월초부터 집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덧붙임) 하루는 승호랑 집에서 자동차 놀이를 같이 하다가 제가 조금 지겨워서 씽씽카 타러
나가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승호는 물론 좋아했지요. 이미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
는데 아빠가 씽씽카 타러 나가자고 할 줄은 몰랐을테니까요. 한 참을 타다가 요즘 지하철에
서 읽을 책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저는 동네 도서 대여점에 한 번 가보기로 했습니다.
가 보았더니 순 만화 뿐이고 몇 권의 소설이나 수필도 순정 위주의 책 들 뿐이었습니다. 뽑
아들 만한 책이 없더군요. 그런데, 승호는 뭔가 발견한 모양입니다. 'The very busy spider', 'Freight Train',
'무지개 물고기' 이렇게 세 권을 빌리자고 합니다. 참 내.. 어떻게 이런 책들은 있는지 모르
겠어요. 어린이 책 자체가 별로 없었는데 말이지요.
하여간 대여기간이 3박 4일이라고 하니까 승호는 매일 밤 많이 읽어야겠다고 하더군요.
| 아들과 함께 영어를 17 : What kids like vs. What parents wa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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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승호아빠 등록일 2001-11-08 18:02 조회수 1,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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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영어를 17 : What kids like vs. What parent..
계절에 관한 영어표현 질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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