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남의 나라인데 굳이 둘 중 어느쪽 생활권에 우리가 가까울까를 따져보는 것
자체가 약소국가의 설움인 것도 같네요.
아무튼 제 생각으로는, 미국식 영국식 영어 둘 중 어느 하나가 어떠한 이유로 해서든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 한, 우리 역시 둘 중 어느 하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영국의 아이들이 쎄써미와 블루를 계속해서 보는 한,
미국의 아이들이 DK의 책과 롤링의 해리 포터를 계속해서 읽는 한,
보이지 않는 두 나라 어른들의 자존심, 나아가 국가간의 자존심 싸움이야 어떻든
말이지요.
그리고, 더구나, 우리의 아이들이 위의 것들을 선별해 접하게 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저도 한때 (반미감정으로 들끓던 시절) 천박한 미국 영어를 버리고 영국의 고급 영어를
배우겠노라고 영국인들을 만나고 BBC 학원을 다니고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치기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영국의 깊은 민족적 뿌리나 역사를 파헤친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발음이 좀 다르고 어휘가 좀 다르다고 어느 한쪽을 고집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도 외국인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한 적이 있고 남편도 현재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관계로
각국의 외국인들을 접할 기회가 종종 있는데, 영/미인뿐 아니라 어느 나라 사람을
만나서든, 발음이나 어휘의 차이 자체가 의사소통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속으로야 서로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든 미국인과 영국인이 만나 대화할 때
이런 것들이 문제된다고 들은 적도 없고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영국 영어에 대한 미국인들의 생각은 들어본 일이 없지만 미국 영어에
대한 영국인들의 생각(주로 불만, 경시)은 종종 듣곤 하는데 최근에 이런 일이 하나
있었지요.
얼마 전 영국인 부부와 식사를 할 일이 있었는데, 남편과 그쪽 남자분(영국 본사 직원)은
주로 일 얘기를, 그쪽 와이프와 저는 애 키우는 얘기를 주로 나누었지요.
그러다 한국에서의 영어교육 얘기가 잠깐 나왔는데, 두 부부 모두 '미국식 영어'에 대한
큰 반감을 표시하더군요.
제가 생각해도 그렇겠다 싶은 게, 유구한 전통의 자기네 말을 가져다가 발음도
빠다 냄새나게 굴려대고 다른 표현을 자꾸 만들어내니 우선 자존심이 상하겠죠.
게다가 과학, 문명, 매체 등 여러가지 길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그 언어를 퍼뜨려가고 있는,
심지어 본토인 영국에까지 미국식 영어를 상륙시키고 있는 그들을 보며 영국인들
자존심깨나 상할 일이지요.
자기네 아이들도 벌써 발음이 부모와 다르다는 거에요. 쎄써미, 블루... 등에
일찍부터 노출돼 있으니 말이에요.
water가 왜 도대체 '워러'라는 거에요. 워터, 워터. 몇 번씩이나 '터'를 강조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그런데 대화 끝날 무렵 그 남자분, twenty four를 자연스럽게 트,워,니...
저희도 첨엔 아무렇지도 않게 들었다가 잠시 후 넷이 모두 동그란 눈을 뜨고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답니다. (그 부부에겐 '쓴' 웃음이었겠지요.)
어쨌건 영/미국식 영어에 대해 저는 큰 신경은 쓰지 않고 있습니다.
책이면 책, 비디오면 비디오, 아이 역시 오히려 선입견 같은 것 없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가 되셨기를...
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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